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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161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1.18 17:25
조회
1,067
추천
11
글자
11쪽

흉착귀(胸鑿鬼). 개시(開始) 下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여러분에게 팔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여러분은 제가 처음으로 강호무림에 내다 팔 물.건.입니다. 오늘은 개시일이니 특별히 싼 값에 모시기로 했거든요."


말인 즉, 쾌도문의 사람들을 개, 돼지처럼 도축하겠다는 뜻이다.


"이노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자리의 사람들을 모조리 제물 삼겠다는 이야기.


쾌도문주 십방쾌도 모진추의 도가 붉은 안개를 가르며 적명에게 쏘아진다.


분노, 그리고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를 움직이게 하였다.


흐릿한 붉은 흔적을 남기며 날아드는 은빛 궤적을 피하는 적명, 여전히 빙글빙글 하는 웃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위협조차 되지 않는가?'


모진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위다.


겉모습은 고작해야 약관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반로환동(返老還童)한 고수가 아닌가 싶었지만, 노인들에게서 나올 행동거지는 아니다.


생각은 찰나, 이리저리 장난치듯 신형을 움직이는 상대를 놓고 농락당한 무인의 자존심이 두려움을 넘어선다.


[쾌잔도(快潺刀) 이영일살(二影一殺)]


모진추의 도가 두 개로 나누어 진 듯, 한순간에 두 방향을 점하고 휘둘러진다.


극쾌의 신기.


두 방향으로 휘두른 듯한 도는 적명이 있는 한 점으로 모인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적명도 그대로 피하지 못하고 손톱을 세워 십자로 교차하여 날아드는 도기를 빗겨낸다.


적명의 조공에 퉁겨진 도기가 날카롭게 뻗어 가며 붉은 안개를 비단 찢듯 조각낸다.


서걱.


적명을 지나쳐 담장에 마주한 도기는 흔한 폭음을 일으키지도 않고 그대로 담장을 십자 무늬로 파내 버렸다.


칼날을 그대로 날린 것과 같은 날카로움이다.


찢어진 안개에 옅어지는 압력.


모진추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보법을 최대한 발휘하여 적명에게 파고든다.


[쾌잔도(快潺刀) 극쾌일섬(劇快一剡)]


도의 끝에 맺힌 기가 흩어지지 않고 모인다.


붉은 도화지에 화려하게 수놓아지는 은빛 먹물이다.


십자의 도기를 튕겨낸 적명이 미처 움직이기 전에 발한 최속의 일격은 적명의 신형을 사선으로 갈라버렸다.


'해치웠나?'


일순간에 긴장이 풀린 모진추,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비명에 아연실색한다.


"크억. 문, 주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난 상태로 피와 내장을 쏟으며 쓰러지는 젊은 제자.


모진추가 베었다고 생각한 적명의 신형은 안개에 녹아 사라진다.


"아쉽습니다만."


하고 말하며 발악하듯 달려든 다른 제자의 머리를 조공으로 그어버린다.


두개골이 완전히 함몰되며 차마 인간의 몰골이라고 부르기 힘든 꼴이 된 희생자가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자빠진다.


"조금 더 빨라야겠는데요?"


'제자들이 다 죽기 전에 뭐라도 해보려면.'이라 덧붙이는 흉수의 말에 모진추가 피가 나도록 이를 꽉 깨문다.


앞에서 안개의 진행을 막던 모진추가 제쳐지자 적무(赤霧)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쾌도문을 잠식해 들었다.


모진추 한 명에게 가해지던 압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제자들이 견디기에는 이미 버겁다.


제대로 상대해도 한 수를 받아낼 수 없음이 분명한 제자들임에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


악독하기 그지없는 자다.


뻐억!


제자들이 뒤로 물러나자 이제는 직접 찾아간 적명, 희생자가 깨닫지도 못한 사이 작렬한 발길질에 다시 제자 하나가 몸이 반으로 접혀 날아가 뒹군다.


볼 것도 없이 절명이다.


"멈춰라. 이놈!"


적명에게 달려들어 재차 도기를 날리는 모진추, 빠르고 위력적이지만 흥분하여 짜임새가 없다.


가벼운 속임수에도 쉽게 넘어가 칼을 휘두르며 체력을 낭비해댄다.


'생각보다 싱겁네.'


그리 생각하고는 허초 한 번으로 헛손질을 유도하고는 모진추의 다리를 손톱으로 그어버린다.


"으아악!"


다리가 잘려나가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지만, 생살이 뜯기는 고통은 역시나 참기 힘든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쾌도문주.


하지만, 이미 적명의 안개에 잠식된 쾌도문의 소리는 바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곳은 적명의 사냥터, 그의 첫번째 장사다.


아무도 방해하게 할 수 없다.


'그나저나, 아무도 도망을 치지 않다니.'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모진추를 뒤로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칼을 겨눈 쾌도문의 제자들을 둘러보는 적명의 눈이 흥미롭다.


적명이 해친 쾌도문도는 셋, 모두 일격을 막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이쯤 되면 두려움에 못 이겨 탈주자가 나올 만도 한데, 아무도 등을 보이는 자가 없다.


가르치는 실력은 몰라도 자기 사람들을 챙기는 것만은 잘했던 모양이다.


적명이 조금은 다시 봤다는 눈으로 한 제자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모진추를 쳐다본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비를 보일 순 없다.


"나는 지옥의 사자다. 그렇게 알고들 죽어라."



빙글빙글 거리며 웃고 까불던 얼굴에서 사라지는 가벼움.


그 빈자리에 내려앉는 것은 텅빈 공허, 헤어나올 곳 없는 절망이다.


"주, 죽어라아아!"


앞줄에 서 있던 쾌도문도가 칼을 부들부들 떨며 발작적으로 돌진해온다.


상하로 휘두르는 칼날을 마주하려고도 않고, 적명이 그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도가 휘둘러 지기도 전에 쾌도문도의 품에 안긴 적명이 양손을 모아 쌍장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흉부부터 등뼈까지 한 수에 관통당한 쾌도문도의 시체, 그의 몸에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적명의 얼굴에 멈칫거리던 쾌도문도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망설임 없이 쏟아지는 도의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적명의 눈은 이미 피가 흐를 듯이 붉다.


세 명의 도를 맨손으로 잡아 악력으로 얽어버리고, 반대 손의 주먹질로 셋의 머리를 뚫어버린다.


돌아서며 뒤에서 도를 휘두르는 자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충돌하여 내장을 파열시켰다.


창졸 간에 네 명의 동료를 잃은 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양손으로 내쏘는 붉은 기운.


[혈마공(血魔功) 혈조(血爪)]


정신없이 물러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생존자들이 그에 휩쓸린다. 교차하며 그물 모양을 이룬 조공에 희생자들이 다진 고기가 되어 후두둑 무너져 내린다.


"이 흉악한 놈 멈춰라.!"


적명의 후방에서 날아든 강맹한 도기. 아니, 선명한 형태와 지금까지와는 비할 수 없는 경도, 도강이다.


하지만 적명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적명이 사라진 자리에 작렬하여 쾌도문의 건물 하나를 반파시킨 강기의 주인은 역시 모진추다.


한움큼이나 파여버린 다리를 천으로 꽉 감고 죽을 힘을 다해 강기를 날렸음이 틀림없다.


"그거, 근원진기 아닙니까? 그러면 몸에 해롭습니다. 적어도, 내가 죽이러 갈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지요. 당신이 마지막인데."


부상자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모진추의 눈, 안구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은은한 백광의 정체는 생명을 지탱하는 근원진기다.


한번 끌어다 쓰면 절대로 보충되지 않는, 인간이 지니고 태어나는 가장 강하고 순수한 생명력이다.


모진추는 죽음을 각오했다.


"닥쳐라. 네가 무고한 제자들을 도륙하는 꼴을 눈뜨고 끝까지 보아줄 것 같으냐. 나를 죽이기 전에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서광! 살아있는 제자들을 챙겨 문밖으로 탈출하라! 무림맹에 마두가 등장했다고 전해!"


"움직일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그 한마디와 동시에 짙어지는 안개, 이제 안개에서는 피 냄새까지 나고 있었다.


모진추는 몸이 굳어져 쓰러지는 제자들을 둘러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근원진기를 끌어 쓰고 있음에도 가해지는 압력이다.


제자들은 반항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리의 상처만 아니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그럴듯하게 할 수 있을 텐데.


"이놈,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냐?"


"원한이라..."



대답인 듯, 아닌 듯 묘하게 대꾸한 적명이 산책하듯한가롭게 걷다가 별안간 쓰러진 쾌도문도의 가슴을 밟는다.


일격에 관통, 괴로운 신음조차 낼 수 없는 게 분명한 문도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급격히 시들어간다.


"쿨럭... 이놈. 어째서!"


뻐억!


다시 한 명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버린 적명이 쾌도문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들이 잊고 있는 걸 생각나게 해주려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멈춰!"


대답을 하며 귀찮다는 듯 휘두른 적명의 손에 남아있던 세 명의 문도 중 두 명이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모진추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듯한 표정으로 적명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필시 적명은 죽었을 것이다.


앙다문 쾌도문주의 입술 사이로 줄줄 흐르는 피가 그가 얼마나 원통한지를 말해준다.


"세상은 지옥이에요. 잊지 마세요."


모진추를 향해 다가오는 적명.


모진추는 남은 모든 진기를 끌어모아 손에 들린, 도에 집중시켰다.


'내 생명이 모조리 타올라도 상관없다. 이놈, 이놈만 잡을 수 있다면!'


그가 평생에 다시는 만들 수 없었을 만큼 선명한 도강, 꿈에도 바라 마지않던 절대의 편린에, 생명을 담보로 다가선 모진추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치켜든 도는 십방쾌도라는 별호가 무색하게도 둔중하고 무거운 것.


적명은 그것을 보고도 다급한 기색이 없다.


뭉클뭉클 적명의 손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이, 그가 피할 생각이 없음을 알린다


일생을 담은 도객의 일격과 살인자의 핏빛 수강은 한순간에 선명한 빛을 내며 산화하고 사라졌다.


이것 만큼은 적명의 안개도 감출 수 없으리라.


충격파에 날아가 버리는 안개, 환한 빛에 눈을 뜰 수 없지만, 승리를 확신한 모진추, 적어도 여한은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


왼쪽 가슴을 파고드는 낯선 감촉에 소스라친다.


이미 그 일격으로 모든 진기를 끌어 쓰고 껍데기만 남아 곧 죽을 몸에 굳이 들이미는 흉악한 손길이다.


"이, 이놈."


애도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가슴을 파고든 적명의 손을 부여잡으면서도 끝끝내 허물어지지 않고 기개를 보이는 모진추, 그의 귓가에 적명이 속삭인다.


"염라대왕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거든, 지옥에서 왔다고 전해요."


그 말을 끝으로 모진추의 심장과 함께 뽑혀나간 기억.


안휘성 합비에서 살인이 시작되고 7개월.


흉착귀가 본격적으로 행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작가의말

나쁜놈이네요. 아주 개놈이네 저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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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귀마전(鬼魔殿)의 비밀스런 대화. 17.01.17 481 4 16쪽
42 검은 전갈, 움직이다. 17.01.05 392 6 16쪽
41 목을 내놔라. 16.12.30 441 5 13쪽
40 본능에 충실한 전쟁. 16.12.29 497 5 12쪽
39 박쥐 날개를 단, 마(魔). 16.12.26 535 4 15쪽
38 (외전) 그 남자의 회고. 16.12.24 538 7 9쪽
37 인간을 버리다. (3) 16.12.24 538 7 8쪽
36 인간을 버리다. (2) 16.12.22 545 5 12쪽
35 인간을 버리다. (1) 16.12.21 512 6 10쪽
34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下 +2 16.12.19 654 6 15쪽
33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中 16.12.18 640 6 8쪽
32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上 16.12.17 585 6 12쪽
31 죽는다면, 당신의 품 안에서. 下 16.12.16 615 6 11쪽
30 죽는다면, 당신의 품 안에서. 上 16.12.10 710 7 10쪽
29 생존자 下 16.12.01 736 7 11쪽
28 생존자 上 16.11.25 743 8 10쪽
27 인적없는 산 속으로 下 16.11.24 760 9 9쪽
26 인적없는 산 속으로 上 16.11.23 881 9 11쪽
25 악마가 하지 않을 일. 16.11.21 851 9 11쪽
24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下 +2 16.11.20 1,015 10 18쪽
23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中 16.11.19 889 10 8쪽
22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上 16.11.19 943 9 8쪽
» 흉착귀(胸鑿鬼). 개시(開始) 下 16.11.18 1,068 11 11쪽
20 흉착귀(胸鑿鬼). 개시(開始) 上 16.11.18 1,109 11 12쪽
19 반백년만의 재회. 16.11.17 1,129 10 9쪽
18 동방의 민간요법 16.11.17 1,220 8 14쪽
17 동굴 안의 살인자들 下 16.11.14 1,132 11 12쪽
16 동굴 안의 살인자들 上 16.11.13 1,170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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