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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169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1.17 22:51
조회
1,129
추천
10
글자
9쪽

반백년만의 재회.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달그락 달그락.


노을이 지는 산.


주홍색으로 하늘을 불사르며 사라지는 태양의 단말마에 등지고 선 초목이 어둡게 흐느낀다.


부는 바람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검정 소가 끄는 달구지 한 대.


달구지에는 노인과 낫 한 자루가 실려 있다.


노인은 잠을 자는 모양인데, 이끄는 사람이 없이도 소는 산에서 내려오는 좁은 길을 망설이지도 않고 내딛고 있었다.


"팔자가 아주 늘어졌구나."


갑자기 인근의 숲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노인을 향하는 것이 틀림없다.


노인이 고개를 든다.


"뉘시오?"


여지없는 촌로, 하지만 수풀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런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내 거대한 살기를 일으키며 접근하기 시작한다.


사방을 둘러싸는 붉은 안개에 시야가 흐려지자, 검정 소가 걸음을 멈추고 불안한 듯 투레질하며 길게 운다.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그리고 거기에 달려드는 두 개의 그림자.


"흑주, 흑공!"


하오문주가 미처 물러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은 문주의 직속 호위인 쌍흑을 제압하고는 하오문주의 앞에 섰다.


기척은 느껴진다.


죽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하오문주가 눈앞의 남자를 맞이한다.


목소리의 주인은 적명과 함께 있던 백의의 노인, 은혈이다.


하오문주가 가벼운 신음을 낸다.


반백년 만에 보는 얼굴이다.


하지만, 하오문주의 표정에 긴장은 있을지 언정, 의외라는 기색은 없다.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달구지에서 내려오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옅은 붉은 기운이 도는 낫 한 자루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구나."


"그럼요. 이 목숨이 생각보다 아주 질깁니다."


그 말에 팽 소리가 나도록 콧방귀를 뀌는 은혈이다.


"네 제자 놈. 그놈을 강호에 풀어놓은 것은 네놈의 생각이렷다?"


역시나 그것이다.


하오문주는 제자에게 혈마공을 전수했지만, 그것을 안정시킬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적명이 홀로 수련하고 언젠가 한계를 넘겨 탈주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작금의 천하에서 적명이 제명에 죽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단 한 존재가 그를 직접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남의 손아귀에 놀아나면 이자가 불쾌한 반응을 보일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제자가 광인이 되어 척살되는 꼴을 눈뜨고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녀석을 만나셨습니까?"


"만났다 뿐이겠느냐? 아주 곤죽이 되도록 패줬는데."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혈마공의 폭주를 안정시켜 달라고 했더니 두들겨 팼다고 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걱정 마라 놈은 살아있다. 이제 사람의 심장을 파내는 것도 관둘 수 있을 것이고."


패줬다는 말에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라는 것도 잊고 살기를 일으키는 하오문주를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여준 은혈.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낫을 휘둘렀을 게 뻔하다.


이런 식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박질을 하는 것도 인간의 재미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 경험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눈앞의 노인은 비록 촌로처럼 보이지만, 천하에서 둘밖에 없는 성혈공의 전수자다.


질 리도 없겠지만, 피곤하긴 할 것이다.


"네놈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왔다."


간단하게 하오문주에게 용건을 전하는 은혈, 아주 오랜만에 보았다고 하면서도 안부 따위는 묻지 않는다.


붉게 빛나는 그의 눈, 그것은 그가 그런 종류의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해드리지요."


"네놈은 대답해야만 한다."


이어지는 침묵, 질문하겠다는 사람이 말이 없으니 하오문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길지 않은 침묵의 끝에 은혈이 입을 연다.


"그놈이 가지고 있는 수갑. 축혈신철(築血神鐵), 너희가 말하는 혈철로 만든 것이었다. 혈인혈사 이후로 비슷한 것이 강호에 나타났다는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어째서 하오문이 그것의 제련법을 알고 있는 것이냐."


"역시 그랬습니까? 혈수갑은 역시 혈철로 만든 것이었군요."


"무슨 말이냐. 그게 하오문에서 나온 물건이 아니란 말이냐?"


은혈의 추궁에 재차 고개를 가로저어 강하게 부정하는 하오문주, 모자란 대답은 입으로 보충한다.


"그 아이의 아비가 만든 것입니다. 저도 확신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헌데 혈철도 노야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었습니까?"


"그것은, 성혈공을 만든 곳에서 개발한 것이니라. 인명(人命)을 이용해 철에 생명을 불어넣어 신기에 가까운 무구를 만드는 기술이다."


"그 또한 인신공양이라는 말입니까?"


굳어지는 얼굴의 하오문주, 그러거나 말거나 은혈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간다.


"놈의 아비를 만나야겠다. 그자는 어디 있느냐?"


"죽었습니다. 혈수갑은 그 친구의 유작입니다."


"죽었다?"


"적명에게 듣지 못하셨습니까?"


듣기는 무얼 들었겠는가.


만난 지 꼬박 하루도 안되었는데다가, 조금 전까지 객잔에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아무 방에나 처박아 놓고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라고 호통을 쳐놓고 나온 처지인데.


차마 그 말을 하지는 못하고 침묵을 지키는 은혈, 하오문주는 하오문주대로 복잡한 표정이다.


'혈수갑이 인신공양을 통해 만든 무기라면, 그 친구가 만들던 적철도 비슷한 것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남궁세가가 적환 일가를 몰살시킨 것은 그 일과 상관이 있는 것인가? 적환이, 자네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남궁세가가 자신들의 무기사업에 방해될까 싶어서 적환과 일가를 살해했다는 가정, 분명히 그 상황에서 더 납득 갈 가정은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산적들이 저지른 짓이고, 남궁세가가 그를 토벌하며 끝났지만, 하오문은 오래전에 그 산적 중 몇몇이 남궁세가 외당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적명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바로 문주 본인의 지시.


하지만, 적명의 아버지 적환이 혈인혈사를 일으킨 바로 그 수수께끼의 대장장이라면, 그의 실력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외진 곳에 기거하던 것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성미가 이해가 간다.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많이 나오던 적토산의 실종자들도...


산짐승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지만, 의외로 깊은 산이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던 부분이다.


남궁세가가 그 일을 알았다면?


무림의 혼란을 막고 인명의 피해를 막고자 적환을 처단한 것이라면?


적명이 가진 복수심은 갈 곳을 잃은 증오가 될지도 모른다.


"우연이라고 말하자니, 기가 막힌 일이로군."


은혈이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혈철, 성혈교가 축혈신철로 부르던 그 물건, 그는 그 물건의 정확한 제조법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는 산 것이 산 것을 죽이는 행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지만, 고작 더 나은 무기 따위를 만들기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격렬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적명이 그것을 가진 것을 보고, 하오문이 제조법을 어떻게 손에 넣은 줄 알았다.


하오문주가 그럴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수에 넘치는 것이 들어오면 죽을 줄 알면서도 손을 대는 것이 인간이라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적명의 친부가 그 물건을 만든 자라니.


적명이라는 그놈의 운명 자체가 이미 없어져 버린 성혈교,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가는 은혈의 일족과 긴밀하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명, 그놈이 그 제조법을 알고 있느냐?"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하오문주에게 은혈이 다소 가혹하다 싶을 만큼 추궁하는 투로 물음을 던진다.


입을 열기 힘겨워 보임에도 천천히 대답하는 하오문주.


"모릅니다. 그랬다면, 제 아비가 사람을 제물로 무기를 만드는 걸 알았다면 녀석의 성미에 그렇게 격렬하게 흉수를 증오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그 제조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렷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 말을 듣자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는 은혈.


떠나려던 그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헌데... 네놈,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구나?"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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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귀마전(鬼魔殿)의 비밀스런 대화. 17.01.17 481 4 16쪽
42 검은 전갈, 움직이다. 17.01.05 392 6 16쪽
41 목을 내놔라. 16.12.30 442 5 13쪽
40 본능에 충실한 전쟁. 16.12.29 497 5 12쪽
39 박쥐 날개를 단, 마(魔). 16.12.26 535 4 15쪽
38 (외전) 그 남자의 회고. 16.12.24 538 7 9쪽
37 인간을 버리다. (3) 16.12.24 538 7 8쪽
36 인간을 버리다. (2) 16.12.22 545 5 12쪽
35 인간을 버리다. (1) 16.12.21 513 6 10쪽
34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下 +2 16.12.19 654 6 15쪽
33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中 16.12.18 640 6 8쪽
32 누군가를 위해 죽는 다는 것. 上 16.12.17 585 6 12쪽
31 죽는다면, 당신의 품 안에서. 下 16.12.16 616 6 11쪽
30 죽는다면, 당신의 품 안에서. 上 16.12.10 710 7 10쪽
29 생존자 下 16.12.01 736 7 11쪽
28 생존자 上 16.11.25 743 8 10쪽
27 인적없는 산 속으로 下 16.11.24 760 9 9쪽
26 인적없는 산 속으로 上 16.11.23 881 9 11쪽
25 악마가 하지 않을 일. 16.11.21 851 9 11쪽
24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下 +2 16.11.20 1,015 10 18쪽
23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中 16.11.19 889 10 8쪽
22 도사 우길(于吉). 참전(參戰) 上 16.11.19 943 9 8쪽
21 흉착귀(胸鑿鬼). 개시(開始) 下 16.11.18 1,068 11 11쪽
20 흉착귀(胸鑿鬼). 개시(開始) 上 16.11.18 1,109 11 12쪽
» 반백년만의 재회. 16.11.17 1,130 10 9쪽
18 동방의 민간요법 16.11.17 1,222 8 14쪽
17 동굴 안의 살인자들 下 16.11.14 1,132 11 12쪽
16 동굴 안의 살인자들 上 16.11.13 1,171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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