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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님의 서재입니다.

미궁도시의 천재 염동력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corvette
작품등록일 :
2024.03.17 17:09
최근연재일 :
2024.04.10 13:42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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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2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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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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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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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5화

DUMMY

그러나 예상했다시피, 고작해야 8인으로 이루어진 공격대로 층계보스를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공대원들이 전원 6레벨 이상이며 보스몹과의 상성을 고려해 최고의 조합을 짰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았을 일이었겠지만, 지금 공대의 구성은 난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애당초 바크만이 리더로 있는 올드팽 클랜원 전원이 탱커였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타 클랜과 연합을 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때마침 클랜에 남은 인원이 그들밖에 없었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이 세 사람에게서 딜링 능력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단지 그 뿐이라면 모를까.


하필 래빗홀 클랜의 나타샤마저 순수 딜러보다는 딜탱에 가까운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즉, 8명 중 4명의 포지션이 탱커인 상황. 이것만 해도 이미 공수 밸런스가 완전히 박살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그래도 만약 남은 4명 중 강력한 폭딜러가 있다면 또 모를 일이었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


애초에 아직 레벨 4에 불과한 이준은 딜러로선 사실상 논외에 가까웠고.


래빗홀의 나머지 3명도 탐색능력에 특화된 로그 계열이었으며, 그나마 한 명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계열이긴 했지만, 고대 병기의 방어력을 뚫을 수준의 폭딜러는 아니었다.


폭딜이 필요한 보스를 상대하는 데 탱커만 4명이고 딜러는 고작 3명, 그나마도 순수 딜링능력보다 탐색에 치중된 스타일이며, 남은 한 명은 아예 레벨부터가 기준 미달인 상황.


당연히, 쳐발리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뒤로 다 빼요! 저 자식이 외피를 다 수복했다고! 다시 사격을 개시할 거요! 내가 다시 막아볼 테니까 반대쪽에서 딜을 집중해!”


철컥, 위이잉! 투투투투—!


외피를 수복한 고대 병기가 자가수복모드를 해제하고 다시 동체에서 기관포를 꺼내어 공대원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물론 그래봐야 저층계에서 출현한 보스인 만큼 그리 까다로운 공격은 아니었다.


목표를 지정하고, 기관포에 동력을 제공하여 모터가 돌고, 그렇게 모터가 고속으로 회전하게 된 다음에야 대략 10~20발 정도의 사격을 날린 후 동작을 멈춘다. 이 일련의 동작은 사격개시까지 대략 3초의 딜레이, 그리고 사격 완료 후 다음 사격 준비까지 대략 4초의 인터벌을 갖고 있었기에 미리 기관포의 총구 방향만 살펴두어도 피하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때의 일이지, 칼이나 단검 따위의 근접 무기를 든 근거리 딜러들 입장에선 삐끗 실수하면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공격이었다.


때문에 일행들 중 가장 탱킹 능력이 높고, 반격형 기술을 갖춘 바크만이 일행들을 대신해 방패로 기관포를 막으며 버티고, 그 동안 다른 대원들이 병기의 외피를 부수는 것에 집중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퍼석! 퍼석!


고대병기의 외피는 모래를 딴딴하게 뭉쳐둔 듯한, 그러나 견고한 바위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었다. 덕분에 나타샤를 비롯한 딜러진의 공격으로도 충분히 파손을 시킬 순 있었지만, 그래봤자 기본 구조가 단순한 탓인지 조금만 시간을 주어도 이내 자동수복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전체적인 피해량을 끌어올려, 놈의 수복력보다 높은 딜량을 가하는 것이 핵심전략이었고,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원거리 딜러였다.


피이잉! 팍!


래빗홀 소속의 궁수가 날린 화살이 외피에 푹 박혔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해당 지점으로 대여섯 개의 금속 파편이 날아들어 추가피해를 입혔다. 좁은 지점에 충격을 여러 번 가하여 상대적으로 깊은 손상을 남긴다. 그렇게 해당 부위 전체적으로 내구도가 약해진 상태에서, 이준이 바이스 동작을 응용하여 금이 간 부분을 통째로 잡아 뽑았다.


퍼석!


그렇게, 마치 단단한 모래성을 한땀 한땀 파고드는 감각으로 딜을 넣다보면, 어느 순간 내부에 자리한 코어가 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 전술로는 외피를 부수고 코어를 드러내어 2페이즈에 진입하는 것까진 가능했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순 없다는 게 문제였다.


지이잉—!


코어의 모습이 외부에 드러난 순간 고대 병기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방어형태로 자세를 취한 뒤 동체 주변으로 반투명한 에너지 장막을 펼쳤다. 그리곤 그 상태로 동체 상부 커버를 열어젖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흡수한 마력으로 부서진 외피들을 다시 재생시켰다.


이것이 2페이즈였다. 이 상태로 외피의 수복이 완료되면 다시 1페이즈로 돌아가 앞선 상황을 반복할 것이었고, 그러니 지금은 공격대의 모든 딜량을 에너지 장막—쉴드에 쏟아부을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공격대는 그러는 대신 보호모드에 들어간 보스는 내버려두고 보스룸 입구 쪽의 마법진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장시간에 걸친 트라이로 인해, 대원들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보스가 동작을 멈춘 지금, 안전하게 퇴각을 하는 것이었다.


보스룸 내부의 마법진에 올라타자, 이내 단거리 공간이동이 발생하며 보스룸 외부 입구에 위치한 마법진으로 이동되었다. 입구 마법진 뒤편으론 결계로 막혀있는 보스룸이 있었고, 그 결계 너머로 외피를 수복중인 보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보스룸 내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반투명하던 결계가 어두워지면서 더 이상 내부공간을 살필 수 없게 되었다.


“···후우.”


이것으로 3번째 트라이가 실패로 돌아갔다. 앞서 2번의 공략 때보단 외피를 깨는 속도가 더 오르긴 했지만, 본질적인 문제, 에너지 쉴드를 타개할 방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내일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혹시 어쩌면 공대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나타샤가 상황을 정리했고, 이내 공대원들은 저마다 쉴 자리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이준은 흘낏 시계를 확인했다.


‘23시 35분.’


저녁 무렵 공략을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준은 잠시 도게자를 소환해서 다시 트라이하는 것을 염두에 둬보았으나 이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게자가 공대에 추가된다고 해도 이준 자신보다도 약한 출력으론 별다른 쓸모가 없을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미 다른 파티원들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상태인지라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준도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닉스와 레나 곁으로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닉스가 이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공격대가 보스를 공략하는 동안엔 입구 결계가 반투명해져 내부를 살필 수 있게 변했고, 덕분에 닉스는 보스룸 안쪽에서 벌어진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가 있었다.


‘글렀네.’


미궁 초짜인 닉스가 보기에도 지금 공격대의 화력은 보스를 잡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그랬기에 닉스는 이준이 혹여나 기분이 안 좋을까봐 걱정이었다.


“별일 없었죠?”


하지만 정작 이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리어 닉스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어쨌건 닉스와 레나를 미궁에 내버려두고 자리를 비웠던 건 사실이니까.


“아, 넵! 여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딱히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다.


타지역에서 몰려든 고레벨 클랜원들은 이미 다들 이곳을 떠났지만, 그런 고레벨 클랜원들이 모여 있을 동안 집단야영지를 형성한 현지인급 모험가들은 여전히 보스룸 입구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엔 탈출 포탈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안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보스를 트라이중인 공격대가 있는 탓에 호기심으로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수는 차츰 늘어, 이튿날 오전이 되었을 땐 거의 3~4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보스룸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오전이 되자마자 공대원들은 미리 정해둔 대로 다시 트라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준은 포탈에 입장하기에 앞서, 공대원들에게 간단히 도게자에 대해 설명했다.


“흠, 소환수를 부릴 수도 있단 말이요? 뭐, 전력이 더 늘면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한 번 소환해보시오.”


그렇게 이준이 큐브를 들고 도게자를 소환했다.


[ㅇ_ㅇ!]


도게자는 소환되자마자 반갑게 이준을 향해 인사를 했지만, 이내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분위기도 묘하단 걸 알아차리곤 살짝 주춤했다.


어쨌거나 간밤에 자정이 되자마자 스테이지에 접속하면서 대략적인 상황 설명은 해둔 상태.


도게자는 이내 자신만만한 제스쳐를 취해보였다.


그렇게 이튿날 첫 트라이를 시도했을 때.


[ㅇ_ㅇ;;]


딱히 상황에 변화는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이준조차도 안간힘을 써야 겨우 0.5인분을 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준보다 출력이 절반이나 떨어지는 도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보스의 어그로가 도게자에게도 끌리면서 다른 일행들이 조금 한숨을 돌릴 여유 정도가 생겼을 뿐, 본질적인 타개책이 되진 못했다.


이쯤 되자 나타샤는 아예 전략을 바꿨다. 때마침 보스룸 주변엔 소문을 듣고 몰려든 현지인 모험가들이 제법 많은 상황. 이들 중에 2파티 정도를 공대에 참가시킨다면, 어쩌면 앞서보다는 상황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타샤의 기대와 달리 모험가들의 반응은 다소 싸늘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게 최소한 어느 정도 승률이 보이기라도 해야지, 지금처럼 쉴드를 못 까서 다음 페이즈로 진입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안 그래도 2층 배율 버프로 자기네 사냥하기도 바쁜 모험가들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승산 희박한 보스 트라이에 시간을 낭비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아침 일찍 소환된 도게자만 놀게 된 상황이었다. 있어도 딱히 도움이 안 되고,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포지션.


[ㅇ_ㅇ;;]


도게자는 자신의 입장이 애매하단 걸 알아채고는 이준에게 슬쩍 다가가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했다. 근데 그 표현이 워낙 애매해서 이준도 잘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레나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뭔가를 쓱쓱 적어서 이준에게 내밀었다. 앞서 도게자와 함께 사냥하게 된 이래, 이런 식으로 레나가 도게자의 몸짓을 해석해서 이준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곤 했는데, 그 정확도가 꽤나 놀라울 정도였다. 아마 레나 본인이 말을 못하니, 같은 상황에서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캐치하는 능력도 높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도게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사냥하러 가고 싶대요.]


그랬다.


경험치 중독자인 도게자로선 지금 미궁에 소환된 1분 1초가 황금과도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준은 도게자에게 알아서 혼자 사냥하라 일러두고 신경을 껐다. 도게자는 혼자 신나게 사냥을 나갔다가 지속시간이 끝나자 저 혼자 사라졌다.


아무튼 그렇게 트라이 이틀차 때도 별다른 변화 없이 저녁 무렵이 되었고, 일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8명이서 다시 트라이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3일차 자정이 되었을 때 이준은 버릇처럼 큐브 공간에 접속했다.


그런데 어쩐지 도게자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랐다.


여느 때라면 이준이 나타나자마자 척,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을 도게자였지만.


[-_-↙]


오늘은 어쩐지 굉장히 쿨하고 멋진 자세로,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준은 뭐 도게자니까 저럴 때도 있겠거니 하면서 대충 넘기고 레버를 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도게자가 이준을 막으며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어 보이는 거였다.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 어이. 여긴 이 도.게.자.님.께 맡겨 보라구?]


그러더니 천장이 우르르 소리를 내면서 내려오는 순간, 양쪽 레버의 중심부쯤 되는 위치에 서더니 양쪽 팔을 멋들어지게 펼쳐보였다.


끼기긱!


그와 동시에, 양쪽 출구 앞에 위치한 레버가 동시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끝까지 달칵 넘어가면서 천장을 멈춰 세운 것이었다.


“도게자, 너···?”


그제야 이준은 알 수가 있었다. 마침내 도게자가 5레벨로 렙업을 했음을.


도게자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친 뒤, 그 손으로 이준을 가리켰다.


[허세를 부리며 : 네 덕분이다. 전우여···! 내 심장을 네게 바치겠다.]


***


근데, 뭐.


도게자가 5레벨을 찍어서 혼자 스테이지1의 레버를 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곤 해도.


사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어떠한 특별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느냐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친구 소환으로 소환된 시점에서 도게자의 출력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렇게 되면 4레벨인 이준과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보스킬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여러 번의 트라이 실패와 퇴각이 반복된 덕분에 층계 붕괴의 진행속도만 더 빨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젠 그러한 정황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수준까지 이르러 있었다.


덜컹, 텅···.


‘또 천장에 붕괴된 부위가 생겼어. 게다가 이번엔 좀 많이 큰데?’


보스룸 천장 한 복판의 일부가 큼지막하게, 마치 포장지 벗겨지듯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더니 허공으로 낙하하던 와중에 반짝이는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천장 구조물이 붕괴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천장이 벗겨진 부분 너머로, 흡사 우주공간과 비슷한 공간이 펼쳐져있었다.


천장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붕괴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진행되는 것인지, 지면 쪽은 아직 멀쩡했지만, 높은 쪽의 벽면 여기저기가 벗겨져 그 너머의 외부공간이 보여 지고 있었다.


아직 붕괴가 완전히 시작된 건 아니지만, 결코 먼 일도 아니라는 것을 경고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어쨌건, 그렇게 3일차 9번쨰 트라이도 실패로 막을 내렸고, 공대원들은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보스룸을 빠져나와 야영지로 돌아왔다.


야영지는 이제 거의 50명에 가까운 모험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공격대가 보스킬에 성공할 거란 기대감은 완전히 접은 상태였다.


도리어 이번엔 공격대가 몇 분 만에 퇴각할 지를 두고 자기들끼리 내기까지 벌이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


지금은 뭔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야, 방금 전, 천장 부분이 큼지막하게 떨어져나가 붕괴되어 사라지는 걸 모두가 보았으니까.


이전과는 달랐다. 이전의 붕괴는 보스룸 밖에선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이번 천장이 떨어진 건 그 부위가 커도 너무 컸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랬기에, 지금까진 반쯤 흥미위주로만 즐기고 있던 모험가들에게도 경각심이란 것이 깨어나고 만 것이다.


“···그, 방금 전에. 천장 떨어진 거 맞죠?”


야영지의 모험가 한 명이 그렇게 공대원들에게 질문했고.


“···네. 층계 붕괴의 전조현상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진 좀 여유가 남았습니다.”


리더인 나타샤가 그리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나타샤의 대답은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모여 있던 모험가들의 귀에는 여유가 남았다는 것보다 붕괴의 전조현상이란 단어가 훨씬 더 선명하게 박혔던 것이다.


“자, 잠깐!? 만약 그러면 붕괴가 진행되면 2층에서 사냥은 계속 가능한 겁니까?”


“아뇨. 붕괴가 시작되면 층계를 이루는 근간구조가 허물어지기 때문에 즉시 포탈로 탈출해야 합니다. 이 땐 탈출 포탈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생성되고 체류시간 제한도 없기 때문에 탈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붕괴가 되면 위험하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배율 버프가 유지가 되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 모험가가 외친 순간, 그간 다소 흐릿했던 불안감이 비로소 뚜렷한 형태를 가지면서 모험가들 사이에서 서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배율 버프 때문에 미궁에 입장한 처지였던 것이다.


“아···. 그건 당연히···. 층계 자체가 붕괴되는 거니까요. 버프를 떠나서 사냥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겁니다.”


나타샤가 대답한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불안한 침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야 이내 모험가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폭발했으니까.


“아니, 그러면 그쪽은 지금까지 계속 답도 없는 트라이만 하면서 붕괴 시간을 앞당기고 있었다는 겁니까?”


“이러다가 배율 버프가 끝나기도 전에 2층이 붕괴해버리면, 그 손해는 누가 책임지나요?”


“아 몰라! 시발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야! 일어나! 당장 사냥가야지!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마저 뽕이라도 뽑자고!”


“와, 진짜 상위 클랜들 이기적이란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내가 직접 경험할 줄은 몰랐네.”


욕설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사냥을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많은 인원이 모인 만큼, 그들이 단숨에 토해내는 불만도 그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


삽시간에 죽일 놈이 된 나타샤는, 멘탈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뭐 때문에 지금까지 꾸역꾸역 남아서 답도 없는 보스 트라이를 하고 있었는가?


“난···. 당신들을 위해서···. 빌리지의 존속을 위해서···.”


하지만 그런 나타샤의 중얼거림은 모험가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야, 그들의 절반 정도는 애초에 타지역에서 넘어온 이들이었고, 나머지 절반도 이곳 빌리지에 적을 두고 있긴 했지만, 빌리지 그 자체보단 당장 배율 버프로 빠르게 성장해서 이곳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애초에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이미 7레벨에 이르러, 나름 잘나가는 중견급 클랜에 스카우트되어 조장 역할까지 맡으면서 승승장구하던 나타샤에겐, 이곳 빌리지가 추억어린 소중한 고향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장 3레벨, 4레벨 수준으로, 어떻게든 성장하고 또 성장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모험가들 입장에선, 이곳 빌리지는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구질구질한 동네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그 사실을 나타샤는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크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그만해요. 의미 없으니까.”


이준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고, 덕분에 나타샤는 겨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렇게 공대원들은 분노한 모험가들을 피해 구석진 장소로 이동했다. 일행들은 말이 없었고 나타샤만이 배신감에 이를 악물고 있었다.


“흠···.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바크만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장이 되어 처음으로 맡은 임무였던지라 어떻게든 성공해내고 싶었던 그였지만,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된 판국에 답은 없어보였다. 그럴 바에 하루라도 빨리 미궁을 탈출해서 입장제한시간이라도 줄여놓는 게 더 이득인 상황이었다. 그야 7레벨인 그로선 2층 수준은 아무리 배율 버프가 걸렸더래도 매력적인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바크만을 비롯한 올드팽 클랜원들까지 떠나고 나자, 이제 나타샤의 곁엔 클랜원 3명과 이준, 그리고 이준이 달고 다니는 닉스와 레나밖에 남지 않았다.


8인으로도 클리어가 불가능했던 보스룸.


이제 5명이 되었으니 클리어 확률은 확실히 0%에 수렴한다. 아니, 5명으론 보스룸에 입장을 해도, 내부의 마법진을 벗어나도, 보스가 출현하질 않는다. 그야 보스 트라이를 하려면 입장제한인원의 절반 이상이 입장해야만 했기에.


“어떻게···. 젠장···. 이기적이라니. 나는···, 마을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인데. 애초에 층계 붕괴가 시작된 것도 매드독 클랜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 때문인데. 나는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나타샤가 비통하게 중얼거렸다. 다른 클랜원들도 그런 나타샤에게 아무 말 못하고 눈치만 보았다. 비록 조장이긴 했지만, 나타샤는 아직 어렸다. 남들보다 빠르게 7레벨에 이른 그 성장속도를 인정받아 조장이 된 것이지, 정작 나타샤는 모험가로서도 여전히 애송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당연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다. 그저 억울하고 슬플 뿐이었다.


하지만.


‘흠.’


이준은 아무래도 그딴 건 상관없었다. 그야 이준은 딱히 이곳 빌리지에 정을 붙인 것도 아니었고, 모험가들이 분노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으며, 나타샤와도 서로 얼굴만 아는 정도의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게다가 당장 도게자만 해도 자세한 사정을 몰라서 그렇지, 만약 정확한 사정을 알았다면 보스 클리어에 비협조적으로 나왔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즉, 이 부분에 있어선 나타샤도 그만큼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게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여태까지 의미 없는 트라이와 퇴각만 반복하지 않았어도, 2층 층계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 유지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이준에게도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던 것이다.


보스룸 천장 복판에 생겨버린 커다란 구멍.


그리고 그 아래쪽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 보스몹.


부족한 딜량과 그를 채워낼 방법.


그리고, 도게자.


“도게자.”


[ㅇ_ㅇ;;!]


이준이 도게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게자는, 영문도 모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뻘줌하게 있다가 이준이 자신을 찾자 반갑게 돌아보았다.


이준은 도게자를 향해 수신호로 설명했다.


[엄지로 보스룸쪽을 가리키며 : 테스트해볼 게 있어. 도게자. 보스몹이 경험치 얼마나 줄 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자 도게자의 눈알에 또 광기가 서서히 서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이따가 또 한 편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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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6 24.04.07 927 41 13쪽
21 21화 +1 24.04.06 1,015 43 12쪽
20 20화 +5 24.04.05 1,075 52 12쪽
19 19화 +5 24.04.04 1,129 47 12쪽
18 18화 +1 24.04.03 1,203 50 13쪽
17 17화 +1 24.04.02 1,309 52 12쪽
16 16화 +2 24.04.01 1,327 57 13쪽
15 15화 +5 24.03.31 1,414 54 12쪽
14 14화 +1 24.03.30 1,524 52 12쪽
13 13화 +3 24.03.29 1,531 61 13쪽
12 12화 +2 24.03.28 1,567 59 12쪽
11 11화 +2 24.03.27 1,562 60 13쪽
10 10화 +1 24.03.26 1,573 56 16쪽
9 9화 +1 24.03.25 1,589 60 13쪽
8 8화 +3 24.03.24 1,668 56 13쪽
7 7화 24.03.23 1,695 55 12쪽
6 6화 +2 24.03.22 1,784 57 13쪽
5 5화 +2 24.03.21 1,837 55 12쪽
4 4화 +4 24.03.20 1,980 51 14쪽
3 3화 +1 24.03.19 2,116 56 15쪽
2 2화 +1 24.03.17 2,161 59 13쪽
1 1화 24.03.17 2,588 5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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