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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님의 서재입니다.

미궁도시의 천재 염동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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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vette
작품등록일 :
2024.03.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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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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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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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DUMMY

그림자가 항복을 선언한 것은 이준이 배째라 전법을 사용한지 딱 5일만의 일이었다.


처음 큐브 1층 라이벌 스테이지1에 접속해 그림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날 이후로.


이준은 매일 오후 10시쯤에 고정적으로 라이벌 스테이지에 접속했고, 그렇게 접속을 할 때마다 레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워 배짱을 부렸다.


그렇게 1일차.


그림자는 1회차땐 얼을 타다 죽었고, 2회차땐 이준에게 무어라 항의를 하다가 죽었다.


2일차.


그림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테이지에 접속하자마자 이준에게 격하게 항의했지만 이내 소용없다는 걸 알곤 자신도 이준처럼 바닥에 누워버렸다.


3일째.


그림자는 안절부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놈은 이준에게 항의를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혼자서 돌파할 방법도 강구해내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다 2번 다 죽었다.


그리고 4일차.


이날, 그림자는 아예 접속 시도 자체를 하지도 않은 듯했다. 이준은 오후 10시부터 11시까지 쭉 라이벌 스테이지에 입장큐를 걸어놨지만, 결국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하여 5일차가 된 오늘, 이준은 어쩌면 오늘도 그림자가 안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당장 이준 본인부터도 천장에 깔려 죽는 고통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미친 짓을 때려치우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솔직히 좀 재밌긴 해.’


일단 아직까지는 깔려 죽는 고통보다 그림자를 엿먹이는 재미가 더 컸기에, 이준은 며칠 정도는 더 이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10시가 되자마자 입장큐를 돌렸더니, 의외로 이번엔 바로 접속이 되었다. 아마 어제 하루를 푹 쉰 그림자가 심기일전하여 미리 큐를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시야가 한 차례 암전했고, 이내 이준은 큐브 공간에 들어섰다.


“······.”


그림자는 말없이 조용히 서있었다. 그러나 놈은 이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대가리를 박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은 쫙 펴고, 이마를 땅바닥에 그대로 찍는, 그런 비굴한 자세를 취했다.


‘흠. 도게자?’


이게 정확히 도게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림자가 전달하고픈 게 무엇인지는 충분히 느껴지는 자세였다.


그림자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흠.”


그러고 있을 때 역시나 이번에도 천장이 우르르 진동하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림자는 바닥에 처박은 이마를 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마 이 상태 그대로 천장에 깔려 압사당할 때까지 버티려는 걸지도 몰랐다.


‘음, 뭐 이 정도라면야···.’


그래서 이준은 가볍게 박수를 두 번 짝짝 쳤다. 그러자 도게자를 하고 있던 그림자가 고개만 살짝 들어 이준을 올려다보았다.


이준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반대편 방향의 레버를 가리켰고, 그 순간 그림자의 얼굴엔—비록 이준으로선 알아볼 순 없었지만, 환희어린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벌떡!


방금까지 엎드려있던 게 거짓말처럼, 그림자는 오뚜기마냥 벌떡 일어서서는 헐레벌떡 이준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가 레버를 밀기 시작했다.


이준 역시 반대편 레버로 가서 레버를 밀었고, 그렇게 천장이 두 사람을 깔아뭉개기 전에, 출구가 열리며 진동이 멎었다.


그런 뒤.


그림자는 이준에게 다가와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아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진 않아도 대략적으론 알아 볼만 했다. 뭐 부하로 삼아달라거나 그런 의미 아닐까 싶었다.


‘그건 좀 싫은데. 징그럽고.’


이준은 그러고 있는 그림자의 어깨를 툭툭 쳐서 일으켜 세운 뒤 손가락으로 자신과 그림자를 번갈아 가리켰다.


그런 다음 양손가락을 쫙 펼쳐 보인 뒤, 다시 한 번 자신과 그림자를 번갈아 가리켰다.


[ㅇ_ㅇ!]


그러자 이내 그림자도 이해했다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가리키며 손가락 5개를, 이준을 가리키며 손가락 5개를 펼쳐보였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림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로배율은 각자 5:5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공평하게 설정되었다.


라이벌이란, 때로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칠 때도 있는 법.


그렇게 이준과 그림자 사이의 동맹이 형성되었다.


***


동맹을 맺은 이후로 그림자는 이준에게 굉장히 친절해졌다. 그리고 친절해진 것의 배 이상으로 과하게 철저해졌다.


몬스터가 2마리가 나오면 깔끔하게 이준과 자신이 각각 한 마리씩 잡았지만.


때때로 몬스터가 홀수로 나올 경우엔, 남은 한 마리를 자기가 패다가도 어느 정도 양념쳤다 싶으면 이준에게 막타를 양보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5:5분배를 고집했던 덕분에 이준은 때때론 오히려 불편함마저 느꼈다.


어쨌건 4레벨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힘을 합치자 더 이상 두 사람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첫날 이준이 통수를 맞아 사망했던 화살발판 함정에 도달했다.


[ㅇ_ㅇ;;]


함정 앞에서 그림자는 다소 뻘쭘한 기색을 보이며 천천히 안전발판만 골라서 걸어 나갔다. 이준에게 안전한 경로를 확실하게 설명하려는 듯했다.


물론 이준은 앞부분의 안전한 발판은 저번에 봐둔 적이 있으므로 굳이 그림자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림자가 저 정도로 성의를 보이고 있기에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함정발판 구간을 무사히 지난 뒤 얼마간 더 걸어갔을까.


통로가 일순 크게 넓어지며 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그리고 저 멀리에 커다란 트롤 두 마리와, 그보다는 조금 덩치가 작지만 웬 요상한 장신구와 지팡이를 들고 있는 트롤 한 마리가 서있는 게 보였다.


‘흠, 호위트롤이 두 마리에, 저 이상한 놈은···, 주술사쯤 되려나?’


그림자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준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대충 이준이 이해하기로는, 호위병 두 마리는 별 거 없는데, 가운데 지팡이를 든 주술사가 위험하다는 의미인 듯했다.


[!!ㅇ_ㅇ!!]


급기야 그림자는 양손을 크게 들어 올리며 무언가가 펑 터지는 듯한 묘사를 했는데, 아마 트롤 주술사가 그런 형태의 공격을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었다.


근데 뭐 어쨌든, 생각해보면 그림자 혼자서 사냥을 시도한 적도 있으니 둘이서 잡는다면 딱히 큰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이준과 그림자는 각자 호위트롤을 한 마리씩 상대했고, 주술사가 주문을 미처 다 외우기 전에 놈들을 끝내는 데 성공했다.


“케엑!”


뒤늦게 주술사가 주문을 다 외워서 화염구를 이준에게 날렸지만, 이미 대충 느낌상 이럴 거라 예상하고 있었던 이준은 손쉽게 화염구를 피했다.


‘저러다 아마 뻥 터진다고 했지?’


살짝 옆으로만 피했다간 폭발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이준은 염동력으로 움직임을 보조해 화염구에서 재빨리 멀어졌다. 덕분에 잠시 후 화염구가 펑 하고 터졌을 때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수가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호위병은 깔끔하게 2마리였지만, 아마도 스테이지 보스로 추정되는 주술사는 한 마리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냥 단순히 놈을 죽이는 거라면 이준이나 그림자, 둘 중 한 명만 염동력을 발동해도 손쉬운 일이었다. 주술사는 덩치가 작은 만큼 완력부터가 일반적인 트롤에 비해서 약했고, 실제로 근접해서 공격하려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기에 원거리에서 화염구만 잘 피하면서 바이스로 뱃가죽을 뜯어버리면 알아서 죽을 듯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공로분배에 문제가 생긴다. 이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고, 그림자도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ㅇ_ㅇ↗]


그림자가 난데없이 이준을 향해 양손을 들더니 그 상태로 정수리에 손을 모았다. 흡사,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 동작처럼 보였다.


‘?’


순간적으로 이준은 불쾌한 감정을 느꼈지만, 곧이어 이어진 그림자의 동작에 비로소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자가, 정수리에 모은 양손을 좌우로 벌리며 확 찢어버리는 동작을 취했던 것이다.


‘알겠군. 반으로 찢어버리자는 거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림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트롤 주술사를 바라보았고, 각자 왼쪽과 오른쪽에서 주술사의 팔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케엑?”


4레벨에 이르면서 이준은 거의 400kg에 가까운 출력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이준과 수준이 비슷한 그림자 역시 그에 준하는 출력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양쪽에서 수백 킬로 단위의 장력이 가해지자, 트롤 주술사의 어깻죽지에서 뼈가 어긋나더니 이내 피부와 근육이 좌우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끄에엑!”


주술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놈은 더 이상 주문을 외울 여력이 없어보였고, 쥐고 있던 지팡이도 이미 놓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술사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져서 죽는 일은 없었다. 왜냐면 몸체가 양분되기 전에, 장력을 견디지 못한 팔이 먼저 뜯겨나갔고, 그렇게 잡아당길 부위가 애매해진 두 사람은 이번엔 양쪽 다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허공에 붕 뜬 채 가진 바 유연성의 한계를 넘어선 자세로 양 다리를 벌리게 된 주술사의 사타구니에서, 이내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찌직, 찌지직···.


놈의 사타구니가 찢어지며 그 사이로 선혈이 줄줄 흘러나왔다. 주술사는 거의 기진맥진하여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좀 질기네.’


질기면 좀 더 오래 씹으면 될 뿐이다. 이준과 그림자는 계속해서 양쪽에서 주술사를 잡아당겼고, 끝내 주술사는 하반신이 양쪽으로 크게 찢어지며 사망에 이르렀다.


[스테이지 클리어]

[공로 배율]

[??? : 51% 1st]

[이준 : 49% 2nd]


아쉽게도 정확히 반반씩 공로배율을 챙겨가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준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즉시 큐브의 상태를 확인했다.


큐브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탓인지 아무런 광채를 뿌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스테이지를 깼음에도 2단계 블록의 모습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그것을 보며 이준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라이벌 스테이지만 깨서는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가 없어. 다음 단계에 도전하려면 혼자서 싱글 스테이지를 깨야만 하는 거야.’


그래서 그림자도 이준에게 도게자까지 해가면서 빌었던 것이다. 이준이 도와주지 않으면 라이벌 스테이지를 깰 수 없고, 그러면 혼자서 싱글 스테이지를 깰 레벨이 될 때까지 성장할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이준이야 미궁을 탐사하면서 레벨링을 할 수 있으니 그런 문제에서 다소간 자유롭다.


하지만 그림자도 그럴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


라이벌 스테이지에 접속할 때 차원벽을 넘어서 결속되는 듯한 감각도 그렇고, 아마 그림자는 이준이 있는 미궁도시와는 전혀 별개의 차원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준처럼 미궁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도 없기에, 큐브로 얻는 경험치에 목을 매는 것일 터였고.


‘그렇다면 라이벌 스테이지는 한 번 깨도 반복적으로 계속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셈이 되겠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림자가 패턴을 달달 외울 때까지 반복 플레이해온 이유가 없을 테니까.’


아마 그림자는 예전 한 때는 다른 파티원이 있어 함께 라이벌 스테이지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상대방이 먼저 싱글 스테이지를 깨버리면서 혼자 낙오되어 고립된 것이리라.


어쨌거나 이준은 큐브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큐브는 단순히 일일 퀘스트를 제공한다기보단 차라리 염동력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훈련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단말기에 더 가까워보였다.


라이벌 스테이지가 다중접속훈련을 겸하여 반복성 일일퀘스트 역할을 하는 듯했고.


싱글 스테이지는 진행사항이 기록되며 도전과제가 달려있는 1회성 메인 미션이라고 보면 될 듯했다.


물론 딱히 이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결국 큐브의 핵심기능은 안전한 공간에서 경험치도 얻고 전투경험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1층으로 확장되면서도 이러한 특징은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럼 당분간은 계속 그림자와 파티플을 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문득 이준은 그림자를 계속 그림자로 부르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러면, 뭐···. 앞으론 도게자라고 부르자.’


그렇게 그림자는 도게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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