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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님의 서재입니다.

미궁도시의 천재 염동력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corvette
작품등록일 :
2024.03.17 17:09
최근연재일 :
2024.04.10 13: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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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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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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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9화

DUMMY

‘또 난민 캠프에서 주워왔다고?’


다소 미묘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금방 의미를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나보군.’


중년 모험가는 일부러 난민 캠프까지 찾아와 난민들에게 쓰레기탐사를 할 기회를 챙겨주는 양반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누군가를 챙겨준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이준은 옆에서 얌전히 듣기만 했다.


“흥. 뭘 알고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만, 이 녀석은 혼자···.”


“알아. 얘가 걔지? 최근 빌리지에 정착한 난민 중에서 트롤을 잡은 놈이 있다며. 희멀건한 얼굴에 빼빼 마른 동양인 꼬마. 내가 그런 소식도 못 들었을까봐?”


“···흠, 알고 있으면 뭐 됐고.”


중년 모험가는 그렇게 흐지부지 말을 맺었고, 나타샤는 불쑥 이준을 돌아보았다.


“이봐, 꼬맹아. 대충 듣자하니 첫 탐사에서 솔플로 트롤까지 잡아낸 슈퍼 루키라고 하던데, 누나가 조언 하나 할게. 여기 게헨나에선 말이야, 너무 혼자 독보적이어도 버티기가 힘들다?”


이준은 다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나타샤의 말은 다소 엉뚱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야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생존률도, 성장가능성도 높아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진 나타샤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미궁은 말이야. 결국엔 파티 플레이가 중심인 곳이야. 당장 1층 탐사만 하려고 해도 3인팟을 꾸려야 하고, 심지어 1층계 보스를 잡으려면 그런 파티 3개가 연합해 9인 공격대를 만들어야 하지. 사실 뭐, 지금이라면 딱히 문제가 없을 거야. 이미 실력도 입증되었겠다, 오히려 기존에 있던 파티들이 나서서 널 영입하려고 안달복달 할 테니까. 근데 이제 2층, 3층, 나아가 4층이나 5층까지 도전하게 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지금껏 함께 열심히 으쌰으쌰하던 파티원들과 쭉 함께 갈 수 있을까?”


이준은 잠시 생각했다. 닉스와 벙어리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똑같은 난민 출신으로, 비슷한 시기에 미궁에 처음 도전했지만 이준 자신과 그 두 사람 사이엔 이미 현격한 격차가 존재했다.


“···아뇨. 그렇진 않겠죠. 아마도 전 앞으로도 다른 파티원들보다 빠르게 레벨이 오를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층계를 올라갈 때마다 매번 새 파티를 구해야 할 가능성도 높겠죠.”


“흠. 이제 보니 머리도 마냥 나쁘진 않나보네. 맞아. 미궁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함께 다니는 ‘동료’들도 너무 뒤쳐져선 안 돼. 매번 혼자 앞서나가기만 하면 나중엔 동료라곤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 거다. 물론 실력은 있으니까 ‘파티원’정도야 발품 조금 팔면 언제나 구할 순 있겠지.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순간에, 혹은 어마어마한 대박을 거둔 순간에, 그들이 진심으로 널 지켜주려 할까? 반대로 너도 그들을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이준으로선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의 문제였다. 다만 그럼에도 어렴풋하게 인지하고 있던 문제이긴 했다. 그야 당장 적당한 파티—좀 더 직설적으론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파티를 구하지 못해서 여기 당나귀좆까지 찾아온 상황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이준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니 나타샤도 기분이 썩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고는 가볍게 이준의 어깨를 쳤다.


“그러니까 만약 그런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우리 ‘래빗홀’ 클랜을 찾아오라구. 이래봬도 10층 탐사대까지 운영 중인 꽤 잘 나가는 중견급 클랜이니까.”


결국 다 듣고 보니 클랜에 영입을 하려고 밑밥을 깐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나타샤의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었으니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여하튼. 그래서 우리 위대한 래빗홀의 단원 나타샤께선 어인일로 이런 쥐좆만한 동네엘 찾아오셨는지?”


중년 모험가가 그리 말하며 나타샤에게도 컵을 내밀었다.


“응, 뭐. 당연히 2층 보스 퍼스트킬을 노리고 온 거긴 한데···. 일단 당장 출발할 건 아니고, 적당히 탐색부터 진행하는 느낌? 사실 최근 들어 다른 거주지에서도 추가층계가 발견된 일이 몇 건씩 있었거든. 그래서 클랜원들도 여기저기 파견을 나갔고 덕분에 아직 미궁을 탐사중이거나 혹은 입장제한 상태인 클랜원들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남아있는 놈들 중에서 6레벨 이상의 놈들만 모아 부랴부랴 척후대를 꾸린 거지. 최소한 보스룸 위치는 파악해둬야 하니까.”


“흠, 그러면 그 6레벨 이상의 친구들은?”


“대충 여관 잡아놓고 쉬고 있지 뭐. 서로 잘 알던 사이도 아니고, 이런 구질구질한 술집에까지 같이 다녀줄 의리는 아직 없는 사이라서.”


그러며 나타샤가 컵을 들어 안에 든 것을 한 모금 마셨다. 이내 이준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입가에도 어린애처럼 우유자국이 살짝 묻어났다. 나타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힘들어 진짜. 하.”


***


어쨌거나 결국 당나귀좆에서도 별 다른 수확을 얻진 못한 셈이었다. 우연히 타이밍 좋게 7레벨이나 되는 나타샤와 만나긴 했지만, 그녀는 이미 클랜 소속이었고 같이 다니는 동료들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자 이준은 차라리 닉스나 벙어리 소녀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두 사람은 딱히 실력이 좋다고 보긴 힘들어도 최소한 이준 자신을 배신하거나 할 가능성은 낮았던 것이다. 반지도 털린 상태로, 반쯤 죽어가면서까지 꾸역꾸역 미궁에 남았던 닉스나, 그런 닉스를 도와주려고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미궁에 남았던 벙어리 소녀나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너무 약해.’


그나마 닉스는 1렙이라도 찍었지, 벙어리소녀는 여전히 논플레이어였고, 무장도 이준이 줬던 칼뿐이다. 이들을 데리고서 2층에 도전하려면 최소한 며칠 정도는 1층에서 머무르며 이준이 두 사람을 쩔 해줘야만 했다.


결국 별 수 없이 이준은 다시금 게이트 광장에서 파티원들을 더 물색해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여관방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정이 지나고, 큐브에서 황금빛 광채가 반짝였기에 이준은 습관처럼 1단계 블록을 밀고 버튼식 스위치를 볼칵 눌렀다.


그러자 이내 시야가 암전하며 이준은 큐브 공간으로 진입했다.


[ㅇ_ㅇ!]


이제는 제법 친한 척 하는 태도마저 자연스러워진 도게자가 이준을 반겼다. 두 사람은 곧장 익숙하게 레버를 밀어 천장을 멈춰 세운 뒤 탐사를 나섰다.


척!


[ㅇ_ㅇ7]


첫 몬스터 무리와 조우하자마자 이번에도 또 도게자가 이준에게 경례를 올려붙이곤 앞으로 뛰쳐나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준은 손을 뻗어 도게자를 멈춰 세웠다.


[ㅇ_ㅇ?]


도게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준을 돌아보았고, 이준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허우적대며 : 사실 나는 경험치가 넉넉하다.]


[허우적대며2 : 그래서 네가 일부러 자살까지 하면서 경험치를 몰빵해줄 필요가 없다.]


[허우적대며3 : 그냥 맨 처음 약속했던 대로 5:5로 나눠먹자.]


그렇게 이준이 허우적대는 꼴을 한참 지켜보던 도게자는, 문득 몸을 살짝 옆으로 틀더니, 먼산을 바라보며,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콧잔등 위로 끌어내리곤 자신의 표정—비록 이준에겐 보이지 않았지만—을 마치 소라게처럼 숨겼다.


[ㅠ_ㅠ···]


그래놓고 일부러 감동받은 척 우는 표정으로 이모티콘을 쓰는 게 역시나 도게자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이준이 전달하려고 했던 바는 정확히 전달이 된 듯 했다.


아무튼 이준이 갑자기 이렇게 제안을 한 것은 앞서 나타샤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영향이 컸다.


문득 새삼스럽게, 이준은 자신에게 동료라고 할 만한 상대가 실제론 도게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도게자와도 헤어져야만 할 때가 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조금쯤은 도게자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뭐 어쨌든, 이제 와서 본다면 이준과 도게자는 서로에게 한 번씩 엿을 먹였고, 한 번씩 보답도 해주면서 서로 쎔쎔인 상황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맨 처음 스테이지를 깼을 때처럼 5:5로 철저하게 몬스터를 나눠먹으며 탐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잔잔바리 구간을 넘겨 보내고 트롤 주술사와 그 호위병들을 조우했고, 각자 호위병들을 한 마리씩 잡은 뒤, 저번과 마찬가지로 주술사의 다리를 좌우로 찢어 끔살내버렸다.


[스테이지 클리어]

[공로 배율]

[이준 : 50% 1st]

[??? : 50% 1st]


그리고 평소처럼 곧장 시야가 암전하며 현실 공간으로 돌아가는 대신.


[업적 : Rival? Rival!의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Rival? Rival : 라이벌 플레이어와 동일한 공로 배율 달성]

[업적을 달성하여 <친구>기능이 해금됩니다.]

[라이벌 플레이어 ‘???’를 친구로 추가하시겠습니까?]


새로운 문자열이 이준의 눈앞에 떠올랐다.


“······.”


당연한 얘기지만, 이준의 선택은 [Yes]였다.


***


<친구>

[목록]

◉온라인 : 도게자

○오프라인 : 없음

[추가 기능]

-접속 시도 시 온라인 상태인 친구에게 알림 발생 : On

-친구가 접속 시도 시, 알람 확인 : On

-친구 소환


“흐음.”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큐브에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큐브를 쥔 채로 가볍게 염동력을 가하면, 마치 큐브 공간에 입장할 때 떠오르는 문자열과 비슷한 것들이 이준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들은 흡사 AR증강이랑 느낌이 비슷했는데, 각 메뉴를 열거나 닫거나 혹은 실행시키는 동작 모두 염동력, 즉 생각만 하면 자동으로 진행되었다.


어쨌거나 이준은 큐브 공간 내에서 나오기 직전에 도게자를 친구로 추가했고, 닉네임도 도게자라고 정식으로 붙여주었다.


그리고 나와서 큐브를 확인했더니 이러한 것들이 생겨나있던 것이었다.


특히, 다른 것들이야 당장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친구 기능 중에서 ‘친구 소환’이란 기능이 이준의 눈에 밟혔다.


해당 메뉴는 현재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것처럼 녹색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눌러봐?’


그래서 이준은 눌렀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듯, 염동력으로 해당 메뉴를 누른 순간.


파아앗—!


갑자기 허공에서 차원이 깨지는 현상과 함께, 노이즈가 가득한 인간 형태의 그림자가 그 사이에서 쏙 튀어나왔다.


그 그림자의 형태는 익히 이준이 알고 있던 도게자와 비슷했지만, 아마 큐브 공간이 아니라선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평소보다 좀 더 노이즈가 심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림자의 색깔이 여느 때처럼 회색빛이 아니라 연한 연두빛이었는데, 흔히 온라인 게임에서 파티원을 표기할 때 쓰이는 그런 색상이었다.


어쨌든.


[ㅇ_ㅇ!!!???]


그렇게 친구 소환 기능을 통해 소환된 도게자는 말 그대로 깜짝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이준을 발견했고, 또 이준이 손에 들고 있는 큐브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야, 큐브 공간에는 현실의 물건들을 가지고 갈 수가 없었고.


그것은 지금 이준이 손에 들고 있는 큐브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랬기에, 도게자는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자신이 소환된 공간은 큐브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벌이자 친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차원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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