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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166
추천수 :
44
글자수 :
63,646

작성
20.05.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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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동행(6)

DUMMY

“스으읍. 후우우”


성태는 담배 연기를 속 깊이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뱀눈 또한 담배가 당겼다.

뱀눈은 성태의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형님, 저도 한 대만....”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편하게 펴.”


‘시불 놈 그냥 폈으면 또, 개지랄했을 거면서’


그렇게 두 사람이 담배를 피자, 여자를 어깨에 둘러멘 백곰이 다가왔다.


“왜요? 형님도 한 대 드릴까요?”


뱀눈이 담배를 내밀며, 백곰에게 묻자. 백곰은 고개를 내저었다.


“담배 맛없다. 백곰 맛없는 거 싫다. 성태 형아 나 패고프다.”


백곰의 말에 성태는 장난꾸러기 어린 동생을 꾸짖듯 웃으며 말했다.


“야 임마, 형아 아니고 형님. 형님이라고 해야지.”


“나 배고프다. 형님 형님아”


백곰의 멍청한 소리에 성태의 골이 절로 아파 온다.

한 놈은 언제 배신을 때릴지 모르는 간잽이 새끼에, 한 놈은 아이큐가 50도 안 되는 바보 천치.

이런 놈들과 계속 같이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에휴, 그래. 밥 먹자.”


어차피 백곰하고 말씨름을 해봐야 자신의 골머리만 더 아파질 게 뻔하기에, 성태는 깔끔하게 백곰하고의 대화를 포기했다.


“형님 어떻게? 여기다가 자리 펼까요?”


백곰 때문에 성태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자, 뱀눈은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끄고선 성태에게 물었다.


“야 이 새끼야! 모텔에 와서 자리를 펴긴 뭘 펴. 널린 게 방인데.”


“아, 그럼 음식 가방 주십시오. 제가 얼른 올라가서 제일 좋은 방 찾아서 세팅해 놓겠습니다.”


“됐어, 넌 여기서 망이나 보고 있어. 백곰아 가자.”


“예?! 마...망이요?”


망을 보라는 성태의 말에 뱀눈이 놀라 물었다.


“그래, 이 새끼야. 뭔 일이 생긴 줄 알고. 한 놈은 망을 봐야지.”


“아니...그...그래도....”


“걱정마 이 새끼야! 이따 설거지 시켜줄 테니까 망이나 잘 보고 있어.”


“네...에. 형님”


너무도 단호한 성태의 말에, 뱀눈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떨궜다.


성태는 뱀눈을 로비에 남겨둔 채, 백곰과 여자만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캬아아악 퉤! 에이, 개새끼”


성태와 백곰이 위로 올라가자, 뱀눈은 둘이 올라간 방향으로 침을 뱉으며 성태를 욕했다.

그래도 1년 넘게 형님으로 모셨는데, 그런 동생을 못 믿어 음식 가방을 손에 쥐고선 놓을 생각을 안 한다.

아주 더럽고 치사한 놈이다.

만약 백 곰만 아니었다면, 진작 자신의 손으로 담가 버렸을 거다.


“그냥, 이참에 확! 독립해버려!”


뱀눈은 출입문을 바라보며 그냥 이대로 혼자 떠나 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 이내 포기하고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어두운 밤에 혼자 떠나는 게 무섭기도 하고, 설사 밤이 아니더라도 백 곰 없이 괴물들과 마주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뱀눈의 발길을 붙잡은 건, 바로 백곰의 어깨에 메여있던 여자였다.


“그래. 갈 때 가더라도 국민 여동생이 무슨 맛인지 보고 가야지.”


뱀눈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 야들야들하고 부드럽던 감촉이.


뱀눈은 살면서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의 엉덩이를, 자기 같은 삼류 양아치가 떡 주무르듯 주무를 날이 올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그 슈퍼스타의 알몸을 마음껏 유린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 구석에 숨어서 이 모든 걸 다 지켜본 석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정확히 상황 파악이 된 건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세 명의 남자가 질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과 의식을 잃은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거였다.


‘어떡하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지는, 그냥 이대로 다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상대의 전력이 정확하게 파악도 안 됐을뿐더러, 아까보단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아직 몸 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다.

괜히, 오지랖을 부려 나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석호는 냉정한 판단으로, 끓어오르는 의협심을 꾹꾹 눌러 내렸다.

지금은 어설픈 의협심보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만나기 전엔, 절대로 죽어선 안 됐다.


‘미안합니다.’


석호는 누군지도 모르는 여성에게 속으로 사과 했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은 자신이 용납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석호가 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사이, 뱀눈은 담배를 하나 꺼내물고선 라이터 불을 등불 삼아, 로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하아. 씨팔 혼자 있으니깐 존나 무섭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뱀눈은 지금 괴물이 튀어나올까 봐 무서운 것보단, 귀신이 튀어나올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


“아 씨팔! 강 같은 평화 다음이 뭐지? 에이 좆까! 나무아미타불 관셈보살”


그렇게 뱀눈은 밀려오는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찬송가와 염불을 외며 로비 주위를 빙빙 돌았다.


온갖 헛소리를 해대며 점점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사내의 모습에, 석호는 몸을 더욱더 안쪽으로 바짝 붙였다.

그리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F-S 대거를 뽑아 들었다.


저벅-저벅-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

석호는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선, 숨을 꾹 참았다.


“수리수리 마수리 사바하 마바하~ 씨발 좆까 존나 무서 사바하 마바하~”


뱀눈은 숨어있는 석호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헛소리를 내뱉으며 석호의 옆을 지나쳤다.

그런데 뱀눈이 석호의 옆을 지나치던 그 순간, 석호가 어둠 속에서 뛰쳐나왔다.

어둠 속에서 뛰어나온 석호는 뱀눈의 뒤통수를, F-S 대거 손잡이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퍽-!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뱀눈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사내.

아무래도 기절한 한 것 같다.


“하아~ 하아.”


뱀눈을 기절시킨 석호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모르겠다.

왜 그런 건지.

평소 의협심이 투철하다거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하고 살았다.

길을 가다 불쌍한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있으면, 천 원짜리 한 장 건네는 정도.

추운 겨울 취객이 길거리에서 자고 있으면, 경찰서에 신고 전화를 넣는.

딱 그 정도만 하면서 살았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괜히 시비 붙을까 멀리 돌아가는 그런 부류였다.


그런데.....왜? 왜 그랬을까?


아마도 순간, 아내 민정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아내와 딸을 생각해서 그냥 참고 못 본 척 지나가려 했는데, 오히려 아내 얼굴이 떠오른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의 아내가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누군가가 자신과 똑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석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칼을 뽑았다.

그 누군가도 자신과 똑같은 선택을 하길 바라면서.


결단을 내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칼을 뽑아 들고나니 석호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석호는 쓰러진 뱀눈의 입을 한 손으로 꽉 틀어막고선, 뱀눈의 목을 대검으로 그었다.

제대로 경동맥을 그었는지, 뱀눈의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친다.


“크...”


쏟아지는 피와 함께 새어 나오는 뱀눈의 신음.

석호는 더욱 세게, 뱀눈의 입을 틀어막았다.

뱀눈은 잠시 몸을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축 늘어졌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석호의 온몸을 휘감았다.

정체 모를 기운은 석호의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전신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 짜릿한 자극에 정신이다 혼미했다.


전신을 자극하는 짜릿함.

뭐라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아니, 오히려 묘한 희열마저 느껴진다.

마치 잠들어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다.


그 묘한 희열에 절로 석호의 눈이 감겼다.

그렇게 묘한 희열을 만끽하길 잠시, 석호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곤.


“하아. 하아.”


석호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뭐...뭐지?’


도대체 뭐였을까?

뭐가 자신의 혼을 그렇게 쏙 빼놓았던 걸까?


순간 석호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의문들이 파고든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눈앞에 들어온 뱀눈의 시체 때문에.


‘하. 이런 상황에 정신을 놓다니......하아아. 한석호 너도 많이 죽었다.’


그런데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 걸까?

체감상으론 꽤 오래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검에 묻은 피가 마르지 않고 뚝뚝 흘러내리는 거로 보아, 다행히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다.


석호는 아직도 멍한 머리를 세차게 한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대검에 묻은 피를 축 늘어진 뱀눈의 옷에 스윽 문대 닦아냈다.

대충 피를 닦아낸 석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향했다.

분명 빛 한점 없는 깜깜한 로비인데, 계단으로 향하는 석호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조금 전과 달리 지금 석호에게 어둠은, 그리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석호는 이런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석호가 계단을 오르자, 2층 복도에서 불빛이 새 나온다.

아무래도 2층 복도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석호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선, 고개를 살짝 내밀어 빛이 새 나오는 복도를 살폈다.


2층 복도에는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촛불을 키워놓고 앉아있다.

그 덩치의 사내는 빵과 과자, 그리고 생라면을 정신없이 주워 먹고 있었다.


‘어떡하지...?’


과연, 저 덩치를 상대할 수 있을까?

덩치로 봐선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석호가 백곰을 눈앞에 두고 고민을 하고 사이, 꺄아아아악-! 하는 여자의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젠장...’


여자의 비명 소리에 석호는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석호는 대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고선, 복도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석호가 복도에 뛰어들자, 정신없이 음식을 주워 먹던 백곰이 살짝 고개를 돌려 석호를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흐리멍덩한 백곰의 눈빛.

순간 석호의 등으로 식은땀이 흐른다.

백곰의 덩치는 석호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이길 수 있을까.....?’


석호는 바짝 긴장한 채, 대검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주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한 걸음 한걸음 백곰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석호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백곰은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석호를 무시한 채 다시 먹는 데 열중했다.


‘뭐...뭐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백곰에게 다가가던 석호는, 전혀 예상 못 한 백곰의 반응에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아니,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까?


눈앞에서 칼을 들고 있는 사내가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태연한 백곰의 모습에 석호는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끼야아아악-!”


다시 한번 가녀린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석호는 그 비명에 다시 용기를 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백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는 데만 열중할 분 석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 백곰의 반응에 석호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조심스레 백곰의 곁으로 다가가던 석호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특이한 능력이 생긴 건, 다희뿐만은 아닐 거라고.

분명 눈앞의 사내도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보는 사람이 칼을 들고 접근하는데, 어찌 저리 태연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저 덩치의 사내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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