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170
추천수 :
44
글자수 :
63,646

작성
20.05.12 16:09
조회
135
추천
6
글자
11쪽

아포칼립스?(2)

DUMMY

“지난주는 백숙이었으니깐, 이번엔 도리가 낫겠지.”


남은 닭을 챙겨 식당 부엌으로 온 석호는 커다란 중식도를 들어 닭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스윽- 사악-


겉으로 보기엔 둔탁해 보이는 중식도의 날이 스칠 때마다, 닭이 부위별로 해체됐다.

순식간에 다리와 날개를 몸통에서 떼어낸 석호는 중식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렇게.


탁! 탁! 탁!


들어 올린 중식도가 도마 위의 닭을 내리칠 때마다, 닭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나갔다.


“몇 시나 됐지?”


닭 손질을 마친 석호는 고갤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10:40]


“이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일반적으로 12시쯤 점심예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산골 촌구석이라 평일에 점심예약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요리부터 서빙까지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에, 최소 12시 이전엔 모든 준비를 마쳐놔야 한다.


시간을 확인한 이후 석호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


지글- 지글-


조각난 닭과 함께 갖은 채소와 양념이 버무러진 냄비가 끓어오른다.

석호는 끓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뿌연 김과 함께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무 맵게 했나?”


코끝을 찌르는 매운 냄새에 석호는 간을 보기 위해, 숟가락으로 국물을 떴다.


후우-후우-


석호는 뜨거운 국물을 후우 불어가며 조심스레 맛을 봤다.


후루릅-


매콤한 국물이 입으로 들어오자 혀끝이 알싸하다.

좀 맵다. 하지만 또 닭볶음탕은 매워야 제맛 아닌가.


“음.....설탕만 조금 더 들어가면 되겠네.”


석호는 끓는 냄비에 설탕을 한 숟가락 더 넣은 후 국물을 자작하게 졸였다.

국물이 적당히 쫄자 석호는 가스 불을 끄고, 조리된 닭볶음탕을 포장 용기에 담았다.


“김치는 있으려나?”


지난주에 좀 챙겨주긴 했으나, 혹시 몰라 김치와 밑반찬을 좀 더 챙겼다.

그렇게 닭볶음탕과 밑반찬을 챙긴 석호는, 식당을 나와 아랫동네로 향했다.


조리된 요리를 챙겨 지금 석호가 향하는 곳은.


“다희가 집에 있으려나?”


다희네 집이다.

다희는 일찍이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 최근엔 그 할머니마저 돌아가셔 천애 고아가 된 아이다.

다희완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다희 할머니완 꽤 가깝게 지냈었다.

그런 할머니와의 옛정.

그리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아이가 안쓰러워 석호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밑반찬과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석호의 동정심이 남다른 건 아니다.

석호가 다희를 살뜰히 챙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 슬슬 계약 연장 얘기도 해야는데....”


석호가 운영하는 식당 건물의 주인이 다희네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상황.

그리고 다희는 할머니의 유일한 혈육.

그 말은 즉, 지금은 다희가 건물주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임대료를 올려버리면 답이 없다. 그래서 석호는 계약 연장을 앞두고 평소보다 더 자주 음식을 해 날랐다.


#


산골 촌구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잘 지어진 2층 전원주택.

바로 다희네 집이다.


띵동-


석호가 벨을 누르자마자 잠시 후 인터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누구세요?


다소 어눌하지만 앳된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다.

“어, 다희야. 나 촌닭 삼촌이야.”

-아...예. 잠시만요.


인터폰이 끊긴 후 철컥 소리와 함께 대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잠금장치가 풀리며 대문이 살짝 열리자, 석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휴. 완전 개판이네.”


대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자, 발목까지 올 정도로 길게 자란 잔디와 마당 곳곳에 무성한 잡초가 석호의 눈을 어지럽힌다.


“쯧쯧. 지난주만 해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다희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이 집이 동네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가장 예쁜 집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 가신지 두 달 만에 이정도로 망가질 줄이야......


석호가 엉망인 다희네 집 안마당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마당 건너 안채 건물의 현관문이 열렸다.

그 열린 현관문 사이로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곱게 딴, 소녀라는 단어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자아이가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소녀는 석호를 보곤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아...안녕하세요.”

“어, 그래. 다희야. 안녕.”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다희의 모습에, 석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어색하게 인사를 받은 석호가 안마당을 지나 현관 계단에 이르자, 다희가 조심스레 석호에게 물었다.


“저...무, 무슨일로....?”

“어, 이거 닭이랑 밑반찬인데. 너 먹으라고.”

“아...예, 고맙습니다.”


다희는 석호가 건네는 닭과 밑반찬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며, 다시 한번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그, 그래.”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가?

말관 달리 표정은 별로 안 고마워 보인다.


‘근데 얜 왜 아직 학교를 안 갔지? 어디 아픈가?’


뭐 남의 집 애가 학교를 가던 말던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런데 가족을 다 잃고 혼자가 된 얘가, 11시가 다 되도록 학교도 가지 않은 채 혼자 집에 처박혀 있으니 신경이 좀 쓰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진 잘 모른다.

하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 건진, 석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쓸쓸해 보이는 다희의 얼굴이 신경 쓰였다.

물론 건물주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근데, 아직 학교를 안 갔네? 어디 아프니?

“아...아니요.”


평소 행동거지로 봐선 아무 이유 없이 학교를 빠질 아이가 아니다.

혹시...학교에서 따돌림 같은 걸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석호의 머리를 스쳤다.


“혹시, 학교에 무슨 일 있니? 누가 막 괴롭히고 그러니?”


이건 좀 너무 오지랖인가?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좀 꼰대 같단 생각이 든다.


“저...그...그게...저 학교 안 다니는데....”

“아.....그...그래.”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역시....오지랖은 떠는 게 아니다.

괜한 오지랖에 분위기만 싸늘해졌다.


‘아니 근데, 학교를 안 다니는데 왜 집에서 교복을 입고 있지? 교복이 아닌가?’


가슴팍에 붉은 리본이 달린 군청색 세라복.

이건 아무리 봐도 교복인데.....아닌가?


석호가 다희의 복장을 두고 심각한 고찰에 빠져있는 사이, 다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어, 왜?”

“저, 더 할 말 없으시면....그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어...어, 그래.”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어. 그, 그래. 자, 잘 있어.”


꾸벅 인사를 하며 축객령을 내리는 다희의 모습에, 석호도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한 후 황급히 다희네 집을 나왔다.


#


“에이씨! 계약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네.”


정작 중요한 얘기는 한 마디도 못하고 가게로 돌아온 석호는 홧김에 담배만 연거푸 피워댔다.


“하아~ 이번 주 안엔 쇼부를 봐야 하는데.”


지난겨울 장사가 너무 안돼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올여름 바짝 당겨야 대출 이자도 갚고, 생활비도 할 텐데.......


후우,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다.

한여름에 들어섰는데도 하루에 다섯 마리 팔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임대료마저 오른다면.......하아, 답이 안 나온다.

서율이 유치원비에 학원비. 그리고 올해는 장모님 환갑까지 겹쳤는데.....

에휴,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에 나오는 건 한숨뿐.

답답한 마음에 계속 담배만 당긴다.


석호는 담배 한대를 더 꺼낸 후 거진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뱃불에 이어붙였다.

그리곤 연기를 쭈욱 빨아드렸다.


스으읍-


쓰다. 연이어 줄담배를 펴서 그런지 혀끝이 알싸하다.

원래 몸에 좋은 건 쓰다 했는데.

이놈은 몸에도 나쁜 것이 뭐 이리 쓴 건지.

그런데 왜 이걸 못 끊는 걸까?

몸에도 나쁘고, 쓰기만 한걸.


후우우-


내쉰 숨과 함께 뿜어져 나가는 독한 담배 연기.

뿌연 담배 연기가 잠시 허공에 머물다 흩어진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던 석호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끊을까....’


맛도 없고, 몸에도 안 좋고 무엇보다 비싸긴 우라지게 비싸다.

한 달에 네 보루 정도 피니, 이놈의 담배만 끊어도 1년이면 200 이상이 세이브된다.


쓰으읍-


돈 생각을 해서 그런지, 담배 맛이 더욱 쓰다.

그런데,


‘끊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딱 세 번 금연을 시도했다.


처음 일을 그만둔 날.

서율이가 태어난 날.

그리고 서율이가 아빠 입에서 담배 냄새나서 뽀뽀하기 싫다고 한 날.

하지만 세 번 다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허~.”


돈 때문에 담배를 끊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석호의 입에서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도 못 끊게 했던 담배를, 돈 때문에 끊을 수 있단 생각이 왠지 비참했다.


‘1년만 일을 다시 할까?’


1년. 예전에 하던 일을 딱 1년만 더하면 은행 빚....아니지 한 2년 해서 가게까지 확 인수해....아니야 하는 김에 3년 더 해서 이민 가서 살까?

그런데.....


‘써주는 데가 있으려나?’


잠시 고민을 하던 석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경력이 있다지만 무려, 7년. 7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 7년의 공백을 무시할 순 없다.

거기에 내일모레면 40이다.

그런데 그런 아저씨를 써줄 회사가 있을까?

설사 있다 해도 박봉일 게 뻔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석호의 입에서 다시 한번 헛웃음이 터졌다.


“하아.....”


석호가 하던 일을 그만둔 이유는, 자신의 손에 더는 남의 피를 묻히기 싫어서였다.

자고로 손에 피를 묻히면, 그 피 값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

피를 묻힌 장본인에게든, 아니면 그 주변 인물에게든.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석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석호에겐 가족이 있다.

처음 석호가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도, 아내 미영을 만난 후 자신도 가족이란 걸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석혼 그걸 가졌다.

그런데 가족을 갖고 싶어 그만둔 일을, 이젠 가족 때문에 다시 할 생각을 하다니......


참 인생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에휴~.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장사 준비나 하자.”


석호는 다 타들어 간 담뱃불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머릿속의 잡생각도 같이 털어냈다.


막 담뱃불을 털어내고 석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바로 그 순간.


‘뭐...뭐지?!’


정체 모를 위화감이 석호의 온몸을 감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빠의 아포칼립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동행(6) 20.05.19 52 1 12쪽
11 동행(5) 20.05.18 45 1 12쪽
10 동행(4) 20.05.17 53 3 12쪽
9 동행(3) 20.05.16 61 3 12쪽
8 동행(2) 20.05.15 72 3 11쪽
7 동행(1) 20.05.14 86 3 13쪽
6 아포칼립스?(6) 20.05.13 97 3 11쪽
5 아포칼립스?(5) 20.05.13 99 2 12쪽
4 아포칼립스?(4) 20.05.12 111 3 13쪽
3 아포칼립스?(3) 20.05.12 126 5 11쪽
» 아포칼립스?(2) 20.05.12 136 6 11쪽
1 아포칼립스?(1) 20.05.12 233 1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