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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159
추천수 :
44
글자수 :
63,646

작성
20.05.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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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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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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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동행(1)

DUMMY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 깜깜한 공간.


석혼 그 어둠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석호는 지금 상황이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일단 석혼 이 어두운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빛을 찾아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석호가 빛을 찾아 헤맬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어디야? 무서워 빨리 와. 우리 서ㅇ...... ㅇ빠 보고 싶데’


아내의 목소리다. 그런데 잘 들리지 가 않는다.


석호는 목소리의 향방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아내를 찾는데, 저 멀리서 환한 빛이 보인다.


석호는 그 빛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목소리는 선명해졌다.


‘오빠. 나 무서워. 빨리 와. 빨리 와서 나하고 우리 서율이 좀 지켜줘’


환한 빛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간절한 목소리.

석호는 그 목소리를 따라,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빛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빛 속에서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이 걸어 나온다.

바로 세상에 하나뿐인, 삶에 모든 것인 딸 서율이가.


석호는 반가운 마음에, 서율이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서율이가 단숨에 석호의 품으로 달려와.....


짝-!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리고선 그 조그만 입을 열어, 석호에게 말했다.


‘...씨’


한데 귀가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코앞에서 말을 하는데도 잘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서율아 지금 뭐라고 그랬니?’


잘 들리지 않는 딸의 목소리에, 석호가 물었다.

그러자 서율인 다짜고짜 석호의 뺨을 또 때렸다.


짝-!


그리고선 다시 한번 그 작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저..’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잘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서....’


짝-! 이번엔 석호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서율이가 석호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리곤 아주 선명하게 말했다.


“아저씨!”


아...아저씨?!

석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나뿐인 딸이 자신을 보고 아저씨라니....


‘그래,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아저씨!”


서율이는 혹시나 석호가 착각했을까 봐, 그 조그만 입을 열어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어째 목소리가 이상하다.

여섯 살 아이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성숙하다.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아니 서율이 쟤는 아빠를 아저씨라 부르면서, 지금 누굴 보고 정신을 차리라는 거지?

그런데 서율인 말로도 모자라 다시 한번, 석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짜악-! 이번엔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눈앞이 다 번쩍인다.


“으..윽!”


그 조그만 손이 어찌나 매운지, 뺨이 다 얼얼하다.


“저...아저씨.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다시 한번 더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서율....어!


아직도 얼얼한 뺨을 문대며 석호가 눈을 떴을 때.

서율인 오간 데 없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걱정스레 바라보는 다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꿈이었구나.’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사이에 꿈을 꾼 것 같다.


‘겨우 이정도 부상에 기절하다니......’


10년 전엔 허벅지와 하복부 두 곳에 총알을 박고도, 20km를 넘게 걸었었는데.

그런데 고작 갈비뼈 몇 개 나간 거로, 하루에 두 번이나 기절하다니.


‘하아. 한심한 새끼!’


얼마나 못 미덥고 한심했으면, 아내와 서율이가 꿈속에까지 찾아 왔을까.....

그렇게 석호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


“저...아저씨, 괜찮으세요?”


다시 한번 다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그...그래.”


순간 잊고 있었다.

자신을 깨운 게 다희였다는 걸.

그리고 곧이어 석호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다희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다는 걸.


순간 민망해진 석호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으...윽!”


옆구리에서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몸을 일으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석호를 다희가 도왔다.

다희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킨 석호는, 아직 다희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말을 전했다.


“고맙다. 다희야.”

“예! 아, 아니에요.”


석호의 고맙다는 말에, 다희는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선 손사래를 쳤다.

이럴 때 보면 또 영락없이 수줍은 많은, 평범한 십 대 소녀 같다.


“아니야, 정말 고마워.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아! 아니,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다희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저...자, 잠깐, 세...세수 좀 하고 올게요.”


다희는 이젠 붉어지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선, 냇가로 뛰어갔다.


“...귀엽네.”


그런데 빈말이 아니라, 오늘 다희한테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자신의 목숨도 목숨이지만 다희가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면, 서율이와 아내의 안전을 확인도 못 한 채, 언제까지 쓰러져 있었을지 모른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자! 아내와 딸은 반드시 내 손으로 지킨다!’


속으로나마 마음을 다잡자, 어지러웠던 정신이 조금 맑아진 기분이다.

그리고 정신이 맑아져서인지, 몸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석호는 일단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도로 곳곳에 멈춰선 차들과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사체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도로 곳곳에 멈춰 서있는 차들과 불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신호등.

이로 미루어 다희의 EMP 가설을, 마냥 헛소리로만 치부할 순 없을 것 같다.


석호는 다희의 말처럼 EMP가 터졌다는 가정하에, 아내와 접촉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만약, 정말 다희 말처럼 EMP가 터진 거라면......’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아내와 연락 할 방법이 전혀 없다.

진짜로 EMP가 터졌다는 가정하에, 아내와 접촉 할 방법은 딱 하나.

직접 팽성으로 이동해 만나는 것.

한데, 그것도 마냥 쉽지가 않다.


EMP 사태라면 모든 교통편도 마비가 됐을 거다.

여기서 팽성까지 대략 140km.

차로 이동한다면 약 2시간 거리다.

하지만 차량을 이용한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량을 제외한 가장 빠른 이동 방법은.......


‘자전건데.....’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를 이용해 팽성까지 이동한다면, 대략 9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다.

그런데 문제는......


‘괴물.....’


가게에 나타났던 괴물들이다.

도로 곳곳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뒤집혀 있는 차들로 보아, 꽤 많은 괴물이 더 존재할 게 분명하다.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나는지 모를 괴물들이 존재하는데, 무방비 상태로 자전거를 타는 건 너무 무모하다.


적의 규모와 위치. 그리고 무장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적진에 홀로 떨어졌을 땐?


몸을 숨긴 채 아군의 구조를 기다린다.


전장에서 삶아 남는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다.

전혀 파악되지 않은 적진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다.


하지만 꼭 움직여야 한다면?


최대한 조용히,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도보.


140km 정도면 걸어서 하루면 충분......몸 상태를 고려해서 3일.

괴물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3일이면 가능할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한 석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반드시!”


석호는 스스로 의지를 다지기 위해, 굳이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이건 아주 오래된 버릇 중 하나다.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 같은 거랄까?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나, 굳은 다짐을 할 때. 석호는 늘 이렇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누가 듣든 안 듣든.

그런데 이런 석호의 독백을, 또 누군가가 들은 것 같다.


“저, 저도 갈래요.”


다희였다.

정말로 세수를 하고 왔는지, 다희의 얼굴은 물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다희 쟤는 지금, 어딜 가는진 알고 따라가겠다고 하는 건가?


“다희야. 나 어디 가까운 데 가려는 거 아니야.”

“네. 저도 알아요. 서율이 구하러 가는 거잖아요. 저도 같이 갈래요. 서율이 구하러.”


다희는 자신도 서율이를 구하러 가겠다는 대목에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 다희의 모습에 석호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자신이 혼자 갔을 때와 다희와 함께했을 때.

과연 이 두 가지를 따져 봤을 때, 어떤 게 더 서율이를 만나러 가는 데 도움이 될까?


일단 혼자 움직이면 누굴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된다.


하지만 다희와 함께 움직인다면?


분명 이래저래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신경을 좀 더 써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면에서 다희와 함께 움직이는 게 훨씬 이득이 많다.

물론 다희는 독특하고,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다.

하지만 괴물을 때려잡는 괴력 하나만 보더라도, 오히려 먼저 함께 가자고 빌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답은 어차피 정해진 것.

더 생각해봐야 시간만 낭비다.


“그래, 고맙다. 다희야.”

“아, 아니에요. 고, 고맙긴요! 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장미를 풀풀 풍기던 다희는, 석호의 고맙다는 말에 다시 얼굴이 붉어져 허둥지둥 됐다.


‘아무래도 고맙다는 말은 자주 하면 안 될 것 같네.’


#


석호와 다희는 팽성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각각 집과 가게를 들렸다.

아무래도 짧지 않은 여정에 막무가내로 출발하는 것보단, 간단하게라도 필요한 짐을 챙겨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희가 챙겨온 짐이 어째 좀 그렇다.


“저...다희야 그건 또 뭐니?”

“아, 이거요. 배낭인데요.”


물론, 석호도 그게 배낭인 건 잘 안다.

그런데 왜?

왜 그 큰 배낭을 메고 있냐는 거다.

그것도 일반 배낭보다, 훨씬 큰 배낭을.


“저...그 안에 뭐 들어있는 거니?”

“아, 안에요. 음...옷 이랑 무기랑 식량이랑 물이랑 침낭도 있고, 텐트도 있고 또...”


아니, 지금 걸어서 팽성을 가야 하는 마당에, 저 무거운 걸 들고 가겠단 말인가?

그냥 얼핏 봐도 3, 40kg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데.


“아...안 무겁니?”

“네, 하나도 안 무거워요.”

“그, 그래. 그렇다면야 뭐....”


뭐 본인이 안 무겁다는데, 자신이 뭐라 하겠는가?

뭐 가다 힘들면, 조금씩 버리겠지.


하지만 다희는 그런 석호의 생각을 비웃듯, 그 큰 배낭을 메고서도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참 볼수록 이상한 아이다.

어디 일본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교복을 입고 있는 거며, 자기 키만 한 검에, 또 자기 몸무게보다 더 나갈 것 같은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이, 딱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다.


그런데......저렇게 치마에 구두를 신고 오래 걸으면 불편하지 않나?


석호는 장거리 도보여행을 하기엔 불편해 보이는 다희의 복장에, 다희를 불러 세웠다.


“저기, 다희야.”

“네?”

“혹시, 다른 신발이나 옷은 없니?”

“있는데 왜요? 혹시, 이 옷이랑 이 신발이랑 안 어울리나요?!”


순간, 다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 아니. 잘 어울려. 근데, 그 복장은 좀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도 갈 길이 꽤 먼데.”

“그럼, 저...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갈가요?”

“그래, 아무래도 갈 길이 먼데, 복장이 좀 편해야지.”

“저, 그럼. 잠시만요.”


다희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도로 위에 정차 되어 있는 차들 중, 차 내부가 넓은 SUV 차량을 골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희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석호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젠장!”


바지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을 찾긴 했는데, 난리 통속에 담배가 다 짜부라졌다.

석호는 담뱃갑 속의 담배 중, 제일 멀쩡한 놈을 하나 골라 입에 물었다.

그리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꺼냈다.


치직- 치직-


다행히 라이터엔 이상이 없다.


스으읍. 후우-.


석호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며, 갑갑한 속을 달랬다.


‘조급해하지 말자 한석호, 서두르지 말자.’


지금 서두르고 조급해한다 할지라도,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조급하게 서둘렀다간 몸에 탈이 날 수 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서율이를 만나려면, 이제부턴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판단하고, 더욱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석호가 담배로 머리를 식히며 마음가짐을 단단히 다질 때, 다희가 들어갔던 SUV의 차 문이 열렸다.


“저...어때요? 이거면...괜찮을까요?”


차에서 나온 다희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석호게 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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