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165
추천수 :
44
글자수 :
63,646

작성
20.05.12 16:08
조회
232
추천
11
글자
11쪽

아포칼립스?(1)

DUMMY

생존 10 일차. 팽성.


석호가 팽성까지 이동한 거리. 대략 140km.

차로는 약 2시간. 걸어서는 대략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석호가 팽성에 이르기까진.

무려, 열흘이 걸렸다.

바로 눈앞의 방해꾼들 때문에.


“구웨에엑-!”

“윽! 석호씨!”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게이트.

그리고 그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생명체들.


“구엑! 구엑!”

“큭! 형님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괴기한 생김새.

성인 장정의 몸을 양손으로 찢어발기는 괴력.

그리고 총탄에도 쉽사리 뚫리지 않는 단단한 살가죽까지.


“게룩!”

“흩날려라! 천.... ”


그런 괴물들이 전국 곳곳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아니 어쩌면, 전 세계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듯.

인구 밀집도에 따라 쏟아져 나오는 괴물의 양도 달랐다.


“석호형! 정신 차려요!”


인구수가 많은 곳에선 다수의 괴물이 쏟아져 나왔고, 한적한 시골엔 적은 수의 괴물이 출몰했다.


“이봐요! 한석호 씨!”

“케륵! 케륵!”

“야! 한석호!!!”


괴물들이 끊임없이 출몰하는 사선을 뚫고.

힘든 여정 끝에 도착한 팽성은, 기존의 모습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반파된 빌딩들.

코끝을 찌르는 썩은 냄새.

그리고 그 냄새의 근원으로 보이는, 도심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


이건 석호가 알 던 팽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석호 형! 이러다 우리 다 죽겠어요!”


처음이었다.

서율이가 꿈에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어쩌면......

정말 어쩌면......

서율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게.


만약....

정말 만약, 서율이가 죽었다면......


‘그래, 나도 죽자.’


그렇게 석호가 삶의 미련을 놓아 버린 그 순간.


“구에웩! 구에웩!”


입을 쫘악 벌린 채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며, 괴물 하나가 석호를 향해 달려왔다.


분명 저놈은, 제일 먼저 머리부터 뽑아 집어삼킬 거다.

저놈들은 사람의 머리를 제일 좋아하니.

그래도 가는 길, 별 고통은 없을 것 같다.


‘저놈의 괴력이라면 고통도 느낄새 없이. 단숨에 내 몸과 머리를 분리시킬 테니....’

“구웨에엑!”


배가 아주 고팠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괴물의 모습에 석호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저놈은 우리 서율이를 보고도 저리 침을 흘렸겠지. 우리 이쁜 서율이를 보고도.’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석호의 이가 절로 갈렸다.


으득-!


‘분명 저 개새끼들은 우리 서율이를 보고도 저리 침을 흘렸겠지. 그리고 제일 먼저 우리 서율이의 머리부터....’


“으아아아악! 다 죽어!!!”


###


띠리리리-♪ 띠리리리-♪


머리맡에서 울리는 요란한 알람 소리.

그 요란한 알람 소리에 석호는 덮고 있던 이불을 확 끌어 올려,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하지만,


띠리리리-♪ 띠리리리♪


이불을 뒤집어쓴다 한들, 요란한 알람 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에이씨!”


석호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아아하함”


어제 오랜만에 술을 한잔해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다.

석호는 그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때며, 찌뿌드드한 몸을 비틀었다.


“에휴~”


7년 전 일을 그만둔 이후, 운동관 담을 쌓고 살았다.

그 결과,


으드득- 으드득-


아주 살짝만 몸을 비틀어도 온몸의 뼈, 마디 마디에서 신음을 토해낸다.

그래도 오늘 아침은 평소보단 상쾌한 편이다.

여느 때와 달리,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날라오는 아내의 발차기가 없기에.

그 말은 즉.

오늘은 모닝빵을 하러 굳이 밖에까지 나갈 필요가 없다.


석호는 기분 좋게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발코니로 향했다.


“후우~”


아-! 이 얼마 만에 맞는 평화로운 아침인가.


어제 딸 서율이와 함께, 오랜만에 친정집 나들이를 나선 석호의 아내.

그 덕분에 석호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발코니에서 모니빵을 때렸다.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

누가 한 소린진 몰라도 석호에겐 이 말이 개소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석호의 처가는 멀리 있어, 그의 아내가 친정에서 자고 오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이번 친정 방문도 근 2년 만이다.

물론 명절 때나 처가 집 행사 때, 석호가 따라가야 하는 건 빼고 말이다.


“후우~ 처갓집이 바로 옆집이면 참 좋을 텐데.......”


석호는 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괜히 한번 빌어봤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남자는,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물론, 그 가끔이 많을수록 좋지만.


“그럼 슬슬 준비하고, 출근해 볼까.”


석호는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손에 들고 있던 휴지에 비벼껐다. 그리곤 잘 감싼 후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이로써 완전 범죄 성립.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발코니로 돌아가 걸레로 한번 바닥을 훔친 후에야 석호는 집을 나섰다.


현재 시각 5시 31분.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아파트 단지 내가 썰렁하다.


“새벽인데도 후덥지근하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더욱이 습하긴 어찌나 습한지, 공기의 묵직함이 피부로 다 느껴질 정도다.


“에휴~ 오늘도 땀 좀 빼겠네.”


요즘 같은 날씨에 땡볕 아래서 작업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

그래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남들은 아직 꿈나랄 헤매고 있을 때 출근을 하는 거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작업을 다 맞추기 위해.


“하아~.”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던 일을 때려쳤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일을 때려치운 후 삶이 더 빡세졌다.

하루하루가 아주 전쟁이다.


새벽 5시 기상.

저녁 9시 퇴근.

7년 전 일을 할 당시에도 이렇게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진 않았다.

한데 어떻게 된 게, 사장이 된 이후 기상 시간이 더 빨라졌다.

7시 넘어서까지 잠을 자본 게 언젠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장이 된 이후론, 기상 시간 만큼 출근 시간도 빨라졌다.


특히, 한여름엔 그 출근 시간이 더 빨라진다.

석호 본인이 사장이기에 딱히 정해진 출근 시간은 없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작업을 맞추려면, 늦어도 6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집에서 가게까지의 거리 차로 대략, 30 여분.

이른 새벽 매일같이 출근하기엔, 다소 먼 거리다.

한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석호는 가게 근처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이 교육문제도 있고, 아내를 위해 그냥 잠을 한 시간 더 포기했다.


비록 도심과는 차로 이삼십 분 거리지만, 석호의 가게가 위치한 곳은 산골 촌구석.

가구 수가 채 스무 가구도 안 되는 완전 산골 촌구석이다.

어린아이와 운전을 못 하는 젊은 주부가 살기엔 많이 답답한 곳이다.


그래도 사장이 된 이후 좋아진 점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거.


상급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기에, 가게에 도착한 석호는 제일 먼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화이트 골드로.


“스으읍. 하아~”


믹스 커피와 담배의 환상적인 조화.


크으~! 바로 이 맛 때문에 담배도 커피도 못 끊는다.


그 환상적인 맛에 석호의 눈이 절로 감기며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석호는, 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꼈다.


왜? 옷에 피가 묻으면 안 되니깐.


“에휴~ 피 묻히기 싫어서 일을 때려쳤는데, 어째 피를 더 묻히고 사네.”


완전무장을 마친 석혼 미리 잘 갈아놓은 회칼을 챙겨 들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를 알아들은 걸까? 아님, 살기를 느낀 걸까?

조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녀석들이, 석호가 오는 걸 귀신같이 알고 숨을 죽인다.


끼익-


석호가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치 빠른 녀석들은 석호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래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석혼 눈치가 빠른 녀석 중 살이 토실토실 오른 놈들만 골라, 작업에 들어갔다.


푸욱-.


칼 끝날이 아주 잘 살아서 그런지, 한 번에 쑥 들어간다.

칼이 한 번에 쑥 들어갔다, 나와야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는다.


“ㄲ....”


이렇게 목과 이어지는 가슴골 사이에 한 번에 정확하게 찔러 넣으면,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단숨에 축 늘어진다.


초창기엔 꼭 엄한 곳을 찔러 중간에 뼈에 걸리거나, 꼭 두세 번씩 찔러 넣어야 죽었었다.

뭐 이래 죽이나 저래 죽이나 매한가지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 없이 단숨에 죽이지 않으면 놈들도 고생, 잡는 사람도 고생이다.

고통이 길어지면 그만큼 몸부림도 심해지는 법.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 보면 자연스레 사방으로 피가 튀는 건 물론, 근육들이 경직돼 고기의 육질 또한 질겨진다.


“한 다섯 마리면 되겠지...”


한참 성수기이긴 하지만 가게의 위치가 워낙 외진 곳이라, 평일엔 다섯 마리 이상 팔기가 쉽지 않다.

무턱대고 많이 잡았다가 오늘 다 팔지 못하면 낭패다.


물론, 냉장고나 냉동고에 묵혀놨다 팔아도 된다.

하지만 이런 시골 산촌에서의 장사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사람들이 도심 속 가까운 식당 말고, 굳이 이런 촌구석까지 찾아오는 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날 잡은 신선한 토종닭을 먹기 위함이지, 냉동고에 오래 묵혀둔 냉동 닭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냉동 닭과 그날 잡은 닭의 차이를 알 사람은 백에 하나다.

일주일 이상 묵히지 않는 이상, 맛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석호가 생각하는 음식 장사의 가장 기본은, 맛보다 신뢰.


바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

거짓 없는 음식.

이것이 그의 모토이기에 석호는 매일 그날 팔 정도의 닭만 잡았다.



#


잔털 하나 남기지 않고 꼼꼼하게 닭을 손질하다 보니, 겨우 다섯 마리 잡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네 시간이 넘게 자세를 굽히고 앉아있었더니 허리가 지끈거린다.


“아이구, 허리야!”


지끈거리는 허리를 붙자고 일어난 석호는, 하체를 좌우로 뱅뱅 돌려 뭉친 근육을 풀었다.

잠시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석호는, 손질한 닭을 챙겨 저온 창고로 향했다.


자고로 닭은 저온에서 최소 두 시간은 숙성을 시켜줘야, 육질도 연해지고 풍미도 사는 법이다.


“아..... ”


오늘 잡은 닭을 들고 저온 창고로 와보니, 어제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에휴~어제 또 한 마리 남았네”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닭을 보니 절로 한숨이 새 나온다.

아무리 저온이라도 냉동보관이 아닌 이상, 24시간이 지나면 닭은 부패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물론 말이 부패지, 사람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24시간 이상이 지나면, 맛이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 맛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잡은 지 24시간이 지난 닭을 판다는 건, 자신의 신념이 허락하지 않았다.


석호는 어제 팔다 남은 닭 한 마리를 챙겨, 저온 창고에서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빠의 아포칼립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동행(6) 20.05.19 51 1 12쪽
11 동행(5) 20.05.18 45 1 12쪽
10 동행(4) 20.05.17 53 3 12쪽
9 동행(3) 20.05.16 61 3 12쪽
8 동행(2) 20.05.15 71 3 11쪽
7 동행(1) 20.05.14 86 3 13쪽
6 아포칼립스?(6) 20.05.13 97 3 11쪽
5 아포칼립스?(5) 20.05.13 98 2 12쪽
4 아포칼립스?(4) 20.05.12 110 3 13쪽
3 아포칼립스?(3) 20.05.12 126 5 11쪽
2 아포칼립스?(2) 20.05.12 135 6 11쪽
» 아포칼립스?(1) 20.05.12 233 1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