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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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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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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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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646

작성
20.05.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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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동행(4)

DUMMY

머리통에 도끼가 박힌 채 쓰러져 있는 오크의 모습에, 석호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미소와 함께 석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후, 대자로 뻗어 누웠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석호의 입에선 계속 웃음이 새 나왔다.


“크크큭! 큭! 컥! 아..아아...더럽게 아프네”


젠장, 너무 아파서 웃음도 제대로 안 나온다.

비록 몸은 아프지만, 오크를 죽였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맘 같아선 오크의 대가리에 다리를 얹고,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뼈마디, 마디 안 쑤시는 데가 없어. 석호는 그냥 대자로 누워 웃는 거로 만족했다.


“아, 아저씨!!!”


저 멀리서 들려오는 걱정에 찬 다희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순간 석호의 뒷골이 확 당겨왔다.


물론, 저게 가식이 아니란 건 석호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길 동안, 신이 나서 날뛰던 다희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괜히 심술이 났다.


“아, 아저씨! 괘, 괜찮으세요?!”


다희는 단숨에 석호에게 달려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다희의 두 눈엔 눈물이 고여,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에휴.....또 눈앞에서 저러니 금세 맘이 풀린다.

하긴, 뭐 다희가 뭘 어떻든 자신이 화낼 입장은 아니다.

다희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을 목숨이었으니.


“으으윽! 응, 괘...괜찮 큭! 쿨럭, 쿨럭.”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다희의 모습에 석호가 애써 괜찮은 척 해보려 했으나, 전신에서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석호의 모습에 다희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아...아저씨...흐윽. 아저씨...죽으면 안 돼요. 아저씨 흐윽”


다희의 커다란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다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괘...괜찮아. 으윽...나...난 괜찮으니까 그...그만 울어.”

“아저씨이이...으아아앙”


자신의 머리에 와닿는 그 따듯한 온기에, 다희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리곤 자신의 얼굴을 석호의 가슴에 묻었다.


다희는 너무 무서웠다. 또 누군갈 잃게 될까 봐.


지금까지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일찍 세상을 떠났었다.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그리고 할머니도......

그렇게 하나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떠날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게 다 자신 때문이라고.

자신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거라고.

처음에는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해 보았다.

하지만 다희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냄새는 점점 더 짙어졌다.

그래서 다희는 더욱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으면 더는 누군갈 잃을 일도 없기에.


뭐 굳이 자신이 밀어낼 필요도 없었다.

세상이 저주받은 자신을 밀어냈기에.

그렇게 다희는 닫힌 마음의 문처럼, 세상으로 향하는 문도 꽉 닫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런 꽉 닫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석호네 가족이었다.


처음에는 동네 유지인 할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다른 동네 사람들처럼.

하지만 석호네 가족은 달랐다.

오히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더 자주 자신의 문을 두드렸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불쌍해서? 아니면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잘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하지만 싫지 않았다.

그 따뜻한 관심이.

그래서 다희는 더욱더 문을 꼭 닫았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석호네 가족이 좋아질까 봐.

하지만 늘 그랬듯, 세상은 다희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다희가 문을 걸어 잠그면 잠글수록 석호네 가족은 더 자주 문을 두드렸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희는 석호네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흐흑 미안해요 흐윽 아저씨 미안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마음을 연, 석호네 가족.

그런데 석호마저 떠나 보낼 뻔했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만약 자신이 석호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자신이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자신이 아주 조금만 더 빨리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더라면......


“으윽...괘...괜찮아...다희야. 네가 왜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으아아앙”


석호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 다희의 머리를 쓸어가며 우는 다희를 달랬다.

하지만 다희는 석호가 그럴수록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다희는 너무 무서웠다.

석호가 자신이 저주받은 사람인 걸 알고 돌아설까 봐.


처음 세상이 뒤집힌 그 날, 집 앞마당에 게이트가 생겨났던 그 날.

자신은 선택을 받았다.


다희는 알고 있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그리고 그날이 오면 자신이 각성할 거라는 걸.

그 믿음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큰 힘을 가지고도, 자신은 그날 망설였다.


만약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날뛰던 오크와 코볼트떼를 단숨에 때려잡은 후 바로 밖으로 나갔더라면......

온 동네에 울려 퍼지던 코볼트와 오크의 울음소릴 들었을 때 바로 뛰쳐나갔더라면......

아마 마을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아저씨도 다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날 자신은 망설였다.

혹시, 아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에게 보였던 친절이 가식은 아니었을까?

만약, 자신이 지금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 모든 재앙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그때.

스파이더맨이 자신을 일깨워 주지 않았더라면, 아저씨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다희는 안마당에서 날뛰던 괴물들을 해치운 후 잠시 망설이다, 이내 자기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벽에 붙어있는 스파이더맨 포스터가, 다희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포스터에서 이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마치,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스파이더맨의 눈빛에, 다희는 마음을 굳게 먹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만약, 그날 스파이더맨이 아니었다면.......아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희는 석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울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thanks spider man’


#


“저...다...다희야.”


어딘가 많이 불편한듯한 석호의 목소리.

기어들어 가는듯한 그 목소리에, 다희는 혹시 석호의 부상이 더 심해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가던 길을 멈췄다.


“예, 아저씨.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그...그게 아니라 저...저기...너도 힘들 텐데 우리 좀 쉬었다 갈까?”


이동 중에도 많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막상 다희가 걸음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니, 석호는 오히려 그게 더 부담스러웠다.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에, 어쩔 수 없이 다희의 도움을 받긴 했는데.......

어째 그 도움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하다.


지금 석호와 다희의 모습은, 마치 영화 보디가드의 한 명장면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뒤바뀐 상태로 말이다.


차라리 등에 업혔으면 좀 더 나았으련만, 다희의 등은 이미 커다란 배낭이 먼저 선점을 하고 있어, 석호는 공주님 자세로 다희에게 안겨야만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쪽팔림 때문에 불편했다.

하지만 쪽팔림은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었다.

괴물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한시라도 빨리 서율이에게 가기 위한 건데 쪽 좀 팔리는 게 뭐 대수랴.

그래서 내일모레면 나이가 마흔임에도 불구하고, 덩치도 더 작고 키도 더 작은 여자의 품에 안기는 수모도 감내할 수 있었다.

그것도 교복 입은 여자의 품에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희의 흉부가 겉보기완 달리 많이 발달해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에이,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 하나도 안 힘들어요.”


너무도 해맑은 모습으로 자신은 걱정 말라는 다희.

그런 다희의 모습에 석호는 이젠 불편함을 넘어 죄책감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석호가 다희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석호는 너무 불편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위아래로 흔들리며 시선을 어지럽히는 다희의 가슴.

애써 눈을 감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지만, 자꾸 몸에 부딪혀 오는 그 뭉클한 감촉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한 번 신경을 쓰고 나니,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아니, 솔직히 내가 좀 힘들어서 그래. 우리 잠시 쉬었다 가자.”


힘들다는 석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정말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석호는 한시라도 빨리 다희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자의 그곳은 의지만으로 컨트롤이 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 아예 자고 갈만한 곳을 찾아볼까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안전한 곳으로 피해서 쉬는 게 났겠죠?”


아니! 지금 당장 내려줘! 라고 말하고 싶은 맘은 굴뚝 같았으나, 지금은 다희의 말이 백번 옳았다.


엄한 곳에 모든 신경이 쏠려, 해가 지기 시작한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 마당에, 불편함을 좀 풀고자 사방이 탁 트인 대로변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그래, 그러자.”


석호는 하는 수없이 다희의 말에 수긍했다.


“아저씨, 그럼 조금만 빨리 움직일게요.”


그 말을 끝으로 다희는 석호가 답을 하기도 전에, 석호를 안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다희는 최대한 반동을 줄이기 위해, 석호를 바짝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동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다희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석호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고, 몸이 흔들릴 때마다 석호의 전신 근육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정작 통증은 석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석호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이건 뭐 에어백도 아니고.’


다희의 흉부 압박이었다.

그렇게 석호는 다희가 안전한 곳을 찾을 때까지, 그 어느 때보다 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


후우. 정말 지독한 싸움이었다.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달려들었을 때도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오크와 맞붙었을 때도 이처럼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다희는 부상이 심한 석호를 위해, 보다 편하고 안전한 잠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희의 품에 안겨있는 시간은 늘어 날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늘어날수록 석호는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석호는 그 외롭고 힘든 싸움에서 결국 승리했다.

다희가 부서지지 않은 무인텔을 발견하고, 혹시 모를 위험에 무인텔 안을 전부 둘러 보고, 제일 아늑하고 깨끗한 방을 찾아 자신을 침대 위에 눕힐 때까지, 석호는 다희의 그 풍만한 품 안에서 단 일 센치의 신체 변화 없이 버텨냈다.


발육이 남다른 흉부를 이용한 다희의 압박 공격도 훌륭했다.

하지만 석호의 정신력이 조금 더 강했다.

물론 부상의 도움이 컸지만.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던지, 다희의 품속에선 통증도 못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희의 품에 벗어난 지금도, 통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석호는 별로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혹시 신경을 다친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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