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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의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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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명인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4
최근연재일 :
2020.05.19 18: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171
추천수 :
44
글자수 :
63,646

작성
20.05.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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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동행(5)

DUMMY

“으...윽”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니 다시 통증이 밀려온다.


‘휴우.’


다행히 신경 손상은 없는 것 같다.


석호는 다시 밀려오는 통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석호는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가며, 몸 전체를 하나하나 체크 했다.


“으...음”


손이며 발이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밀려오는 통증에 움직임이 다소 불편하긴 하나, 다행히도 마비가 온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불과 두 시간 전만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숨만 쉬어도 참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소 불편하긴 해도, 참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설마.....자연 회복력 같은 능력이 생긴 건가?’


하아. 순간 석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다희와 너무 오래 붙어 다녔나 보다.

생각하는 게 어째 점점 다희를 닮아간다.


“그건 그렇고, 다희 얘는 어디까지 간 거야? 왜 이렇게 안 와?”


혹시...또 괴물들을 만난 건가?


어느새 해가 다 떨어져 가는데도 불구하고, 마실 물을 좀 구해 보겠다고 나간 다희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물론, 다희의 괴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괴물들을 걱정해야겠지만, 문제는 곧 있으면 해가 떨어진다는 거다.

아무리 다희가 강하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이 보일 때 이야기다.


석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비록 해가 완전히 떨어지진 않았지만, 방안이 꽤 어둡다.

석호는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렇게 라이터 불을 등불 삼아, 석호는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왔다.


유리창 하나 없이 사방이 꽉 막혀있는 무인텔의 복도.

석호가 있던 방안보다 더 어두웠다.

간혹 석호의 몸이 크게 흔들려 라이터의 불이 꺼질 때면, 무인텔의 복도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흑으로 변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변해버린 세상.

그 변해버린 세상에서 정말 적응하기 힘든 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도, 그리고 괴물 같은 능력의 다희도 아닌, 바로 어둠이었다.

전기가 사라지면서 해가 지고 나면, 단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그나마 이런 건물 안에서는 촛불이든 라이터 불이든, 불이라도 피울 수 있다.

하지만 괴물들이 득실 데는 바깥에선, 담뱃불조차 피울 수가 없다.


석호는 그 교훈을, 지난 사 일간의 여정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첫째 날, 이동 중 너무 어두워 횃불을 만들었다가 한번.

둘째 날, 야영 중 물을 끓이려고, 불을 지폈다가 한번.

셋째 날, 잠이 안 와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다 한번.


그렇게 세 번의 위기를 겪고 난 후, 석호와 다희는 깨달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아주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괴물들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란 걸.


1층 로비로 내려온 석호는, 바로 라이터의 불을 껐다.

라이터의 불이 꺼지자,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다.

눈을 어느 정도 어둠에 적응시킨 석호는, 조심스레 로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오늘도 별 하나가 안 보이네.”


문밖으로 나온 석호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된 일인지 세상이 변한 뒤론, 밤하늘에 별이 보이질 않는다.

딱히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밤만 되면 매일같이 먹구름이 가득해 별은커녕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별빛 하나 없다 보니, 사방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석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마음은 급한데 발길은 더디기만 하다.

지금도 어디선가 울며 떨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메어 온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와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끊임없이 나타나는 식인 괴물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이 답답한 현실에 지금 석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그저 한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그렇게 석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런데 어째 발소리가 한 명이 아니다.

석호는 발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야, 뱀눈. 확실해? 저쪽에 뭐가 있긴 있는 거야?”


“에이, 형님. 아시잖습니까? 저 천리안인 거. 좀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긴 하지만, 확실합니다. 저쪽 앞에 분명히 큰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새끼, 잘난 척은. 시끄럽고 빨리 가기나 해. 아주 거시기가 불끈불끈해서 미치겠다.”


“크크크. 저도요 형님. 이게 무슨 횡잰지. 아주 저년 얼굴만 상상만 해도 쌀 것 같습니다.”


“이 어린놈의 시키가! 어디서 형님 노는 데, 숟가락을 얹으려고 그래!”


“에이, 성태 형님. 제가 어찌 형님 식사하시는데 언감생심 낄 생각을 하겠습니까. 형님 식사 다 마치시고 나면, 그때 제가 깔끔하게 설거지만 하겠습니다.”


“크하하하, 이런 미친 새끼, 말하는 거 보소. 그래 좋다! 내 설거지는 너한테 맡기마. 크하하하”


너무 어두워 정확하게 상황 파악이 되진 않지만, 들려오는 대화 내용이 꽤 지저분하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 지저분한 대화가 점점 가깝게 들린다는 거다.

아무래도 뱀눈이란 사내가 말한 큰 건물이, 이곳인 것 같다.


오 일만에 처음으로 듣는 다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

하지만 석호는 반가움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지저분한 대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지금 석호는 부상으로 인해 거동이 많이 불편한 상태다.

더욱이 상대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는데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었다.

일단 석호는 다시 무인텔 로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선 출입문을 잠그고, 몸을 한쪽으로 숨겼다.


#


잠시 후.

쿵- 쿵-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요! 누구 없어요?”


몸을 숨긴 석호는 숨소리를 죽이고선, 문밖의 남자들을 주시했다.


건물 안쪽에서 아무런 소리가 없자, 뱀눈은 잠긴 출입문을 앞뒤로 흔들었다.

하지만 안에서 잠긴 문은 조금 흔들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성태 형님,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문이 잠겼는데 어쩌죠?”


“어쩌긴 잠겼으면 열어야지. 어이, 백 곰. 냄비는 여기 뱀눈한테 맡기고, 일로 와서 문 좀 따라.”


성태의 말에 곰같이 큰 덩치의 사내가,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여자를 뱀눈의 등에 업혔다.

백곰이 여자를 뱀눈의 등에 업히자, 자연스럽게 뱀눈의 손이 여자의 치마 속 엉덩이로 향한다.


“흐미. 야들야들 한 것, 아주 손이 녹네, 녹아”


뱀눈은 자신의 등에 업힌 여자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

그런데 뱀눈의 등에 업힌 여자는 자고 있는 건지 아니면 기절을 했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뱀눈이 등에 업힌 여자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쉰 소리를 해대자, 옆에 있던 성태가 뱀눈에게 성을 냈다.


“이 새끼가! 형은 아직 맛도 안 봤는데, 어디서 더러운 손을 갖다 대!”


“에이, 형님. 자고로 음식은 손맛 아닙니까. 제가 또 형님 맛있게 드시라고 이렇게 미리 주물러 놓는 거죠.”


“하아~ 새끼, 이빨하곤. 야 이 새끼야! 헛소리 그만하고 안에 들어가기 전까진 얌전히 있어. 괜히 건드려서 깨우지 말고, 지금 깨어나서 소란 떨면 우리 전부 다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깐.”


“헤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백곰은 출입문 앞으로 다가가 잠긴 문을 무식하게 흔들어댔다.


덜컹-! 덜컹-! 소리만 요란하지,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백곰! 살살 좀 해라, 그러다 괴물들 다 튀어나오겠다.”


성태는 시끄러운 소리에 백곰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런 성태의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백곰은 더욱더 세게 문을 흔들댔다.

그렇게 계속해서 백곰이 힘을 쓰자 문의 흔들림은 점점 더 거세졌고, 결국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여...열렸다. 문.”


문을 연 백곰은 고개를 돌려,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백곰의 모습에 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백곰 저놈은 힘도 좋고, 말도 잘 듣고 다 좋은데, 너무 멍청하다.

위험한 상황에서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는 못 된다.

하지만 무식한 만큼 이용해먹기엔 딱이다.


“그래, 수고했다. 야 뱀눈, 냄비는 백곰한테 맡기고 앞장서.”


성태는 백곰의 등을 가볍게 한번 두드려 주고선, 고개를 돌려 뱀눈에게 명령했다.

비록, 문이 잠겨있었다곤 하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네, 형님.”


뱀눈은 성태의 말에, 두말없이 등에 업고 있던 여자를 백곰에게 넘겼다.

그런데 어째, 뱀눈의 표정이 좋지 않다.


‘에이씨, 박성태 이 개새끼! 맨날 위험 건 나만 시켜!’


뱀눈은 속으로 성태를 씹어가며, 문을 열고 무인텔 안으로 들어갔다.

무인텔 안으로 들어온 뱀눈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무인텔의 로비는 바깥보다 더 어두워, 아무리 눈이 좋아도 무용지물이었다.

뱀눈은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부싯돌을 긁어 라이터에 불을 켰다.

비록 라이터의 불이지만, 순간 뱀눈의 주변이 밝아졌다.


“야 이 새끼야! 불 안 꺼!”


성태는 순간 주변이 밝아지자, 성난 목소리로 뱀눈을 다그쳤다.

뱀눈은 성난 성태의 목소리에, 재빨리 라이터의 뚜껑을 닫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숨어있던 석호는 침입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워낙 짧은 순간이라 얼굴을 보진 못 했다.

하지만 라이터를 들고 있는 키가 작은 남자와 바로 뒤, 자신과 비슷한 체구의 남자.

그리고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의식을 잃은 여자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주변 확인도 안 하고 불을 켜면 어떡해!”


‘에이! 개 쫄보 새끼! 그럼 지가 앞장서던가!’


자신을 다그치는 성태의 말에, 뱀눈은 짜증이 확 솟구쳤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티 낼 정로도 멍청하진 않았다.


“헤헤, 형님. 죄송합니다.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여서요.”


“쪼개지마! 이 새끼야! 뭘 잘했다고, 실실 쪼개!”


“죄...죄송합니다.”


“됐어! 이 새끼야. 맘에도 없는 소린 그만하고, 담배나 한 대 줘봐.”


조금 전까지 라이터의 불을 켰다고 화를 내던 성태가 담배를 달라 말하자, 뱀눈은 어이가 없었다.


“예?! 다...담배요? 여, 여기서 피우시게요?”


“그래, 이 새끼야!”


“아니...형님. 방금 형님께서 불 켜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뱀눈은 자신이 이리 말대꾸를 하면, 분명 성태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넌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냐! 뭐가 튀어나올 거였으면, 네가 불을 켰을 때 진작에 튀어나왔겠지.”


‘이런 개새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 씹새끼야!’


억지 논리를 피우면서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는 성태의 말에, 뱀눈은 열불이 터졌다.

하지만 애써 속으로 삭이며, 담배 한 대를 꺼내 성태에게 건넸다.


“키이야! 역시, 우리 성태 형님. 그새 그걸 캐치 하시다니. 역시, 머리를 쓰는 건 형님이 최고 십니다.”


뱀눈은 온갖 아부를 떨어가며 다시 라이터를 꺼내, 성태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새끼, 이빨 털긴. 닥쳐, 이 새끼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뱀눈의 아부가 싫지 않은지, 성태의 얼굴엔 흡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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