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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님의 서재입니다.

정비공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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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작품등록일 :
2020.01.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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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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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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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낯선 천장

DUMMY

원래 내가 세웠던 계획은 간단했다.

자기장 트랩을 설치해서 정화 로봇을 붙잡고, 정화 로봇을 분해해서 나에게 필요한 부품을 얻는다.

순발력이나 운이 필요하지 않은 아주 간단한 계획이다.

그렇지만 그 아주 간단한 계획은 잔뜩 뒤틀리며 쓸모없는 사족이 잔뜩 붙어버렸다.

우선 첫 번째로, 가지고 왔던 자기장 트랩이 폭발에 휘말리며 고장나버렸단 것이다.

그 결과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건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전자기장을 방출하는 볼트들 뿐이다.


[예상 도착 시간: 8분 23초]


볼트들의 자기장은 정화 로봇을 붙잡긴 적합한 강도지만, 범위가 문제다.

정화 로봇은 내 눈높이쯤에서 떠서 움직이니까, 바닥에 설치된 볼트의 범위엔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볼트의 범위 내에 정화 로봇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스모커들의 연막에 있었다.

폭발로 대부분의 연막이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따로 챙겨둔 연막은 무사하다.

다 박살난 스모커의 몸체에서 연막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분리한 후, 내부의 카트리지를 내가 가진 연막으로 바꿔 끼운다.

치이익.

사방으로 연막을 흩뿌리기 시작한 카트리지를 정화로봇이 지나갈 자리에 놔두고.


[예상 도착 시간: 7분 48초]


스모커들의 머리에 달려있던 전기 충격기를 볼트와 결함한다.

전기 충격기 상부의 방전기를 볼트로 바꿔 끼우고 연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원을 넣어본다.


“어우, 야.”


파직!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며 증폭된 볼트의 전자기장이 주위의 고철들을 끌어당긴다.

이 정도라면 정화 로봇을 붙잡을 수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불가능.

좀 더 화력을 높혀야 한다.

더 화력을 높이려면...


[예상 도착 시간: 5분 59초]


이번 원정에서 사용할 일 없이 허리춤에 대롱대롱 메달려 있던 방전탄을 하나 분해한다.

실수로 방전탄이 그대로 방전을 일으키지 않게 주의하며 그대로 핵심 부품을 전기 충격기와 합친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한 화력이 나오겠지.

개조한 전기 충격기까지 정화 로봇의 예상 경로에 가져다 두고.

이젠 더 이상 재생하지 않는 살덩어리와, 살덩어리에서 분리한 마석에 다가간다.

저 마석은 지금은 필요 없고, 지금 필요한 건 저 살덩어리다.

살덩어리 안에 무언가 신호를 발신하는 부품이 없는데 어떻게 신호를 주고 받았을까?

그 해답은 살덩어리 자체가 하나의 회로라는 것이다.

저 안에서 거대한 마석을 동력원 삼아 살덩어리 자체에서 신호를 송수신하던 것이다.


“회로 설계도입니다.”

“오케이.”


그 말은 저 살덩어리에 적당히 회로를 추가한다면 원격으로 볼트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되다는 것이다.

로봇이 데이터베이스에서 꺼내온 회로 설계도를 살펴보며 응급 수리 키트 안의 타르로 회로를 그려넣는다.

물론 나만의 방식으로 회로를 개조해서 그려넣었지만, 로봇은 그동안 내가 개조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것인지 별다른 말을 하질 않았다.

그래,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괜찮으면 괜찮은 거야.


[예상 도착 시간: 3분 34초]


“으윽...”


보호복의 회로와 살점으로 만든 회로를 연결하기 위해 허벅지 부위의 파편을 단숨에 뽑아낸다.

날카로운 고통이 지나가고, 네크로 가스에 잠시동안 노출된 살갖에 감각이 없어진다.

서둘러 살점 회로를 펴발라 구멍을 틀어막는 것과 함께 회로를 연결하고, 전기 충격기에도 살점을 이어붙여 회로를 연결한다.


[예상 도착 시간: 1분 25초]


“발동. 부탁한다.”

“저만 믿으십쇼, 주인님.”


바닥에 자리를 잡고 플라스틱 탄환을 장전한 고철 소총을 전기 충격기에 겨눈다.

자기장이 유지되는 시간은 고작 몇초 남짓한 시간뿐.

그 몇초 안에 방아쇠를 당겨야 정화 로봇을 격추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실수하면 다음이 없다는 생각에 절로 긴장된다.


[예상 도착 시간: 30초]


예정 시간이 가까워지며 정화 로봇이 조용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실제로는 정화 로봇의 소리가 들릴 리가 없겠지만.


[예상 도착 시간: 15초]


심호흡을 하며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는다.


[예상 도착 시간: 10초]


독기가 옅어지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정화 로봇의 실루엣이 보인다.


[예상 도착 시간: 5초]


4.

3.

2.

1.

지금.

파지직!

연막이 시퍼렇게 빛나며 정화 로봇을 향해 자기장을 뻗었다.

자기장의 손아귀에 붙잡힌 정화 로봇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하듯 움직였고.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로는 불안하니 연발로 발사한 총알이 정화 로봇의 몸에 명중하고, 자기장이 사라진다.


“성공입니다, 주인님!”

“오우, 그렇지. 그래. 성공할 줄 알았어.”


욱신.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통증을 억지로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서둘러야 한다.

지금 남은 산소 잔량은...


[잔여 산소량: 4%]


하하.

진짜 간당간당하네.

바닥에 추락한 정화 로봇의 껍질을 대충 빠루로 때어내고, 내용물을 분해한다.

정화 필터, 마석, 엔진, 회로.

쓸만한 내용물을 전부 덜어내고 로봇이 보여주는 설계도를 확인해본다.


“재료만 다르지, 근본적인 부분은 다 같네.”


쓰레기장에서 전해지는 방식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건 시스템에겐 공기 정화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애초에 쓰레기장은 정화 필터를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니까 둘의 설계가 닮은 건 당연한 것이겠지.

재료는 충분하다.

용접을 할 수 없다는 게 불안하지만, 임시 방편으로 살덩어리를 사용한 접착제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불안한 것은.

내가 산소통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산소통을 개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이제 한 숨 놨네요. 제가 주인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주인님이 총을 잘 쏘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한 방에 맞지 않으면, 여러 방을 갈기면 되는 거잖아?”

“그런 마음으로 총을 쏘시니 맞질 않는 겁니다!”


가장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한 걸까?

로봇은 지금까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어떻게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집중 안돼. 임마.”

“에, 뭡니까? 세계 최고의 정비공이 고작 이 정도로 집중이 흔들리는 겁니까?”

“음소거 해버린다.”


로봇 나름대로 내 긴장을 풀려고 한 짓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덕분에 다시 뭉근하게 끓어오르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잔여 산소량: 3%]


쓸대없는 긴장을 덜어내고 산소통의 구멍을 틀어막은 살갖을 뜯어낸다.

귀중한 산소가 밖으로 유출되기 시작하고, 나는 침착하게 산소통에 정화 필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잔여 산소량: 1%]


어느세 1%까지 떨어진 산소.

네크로 가스가 산소통 안에 섞이고 있는 걸까?

옅은 아몬드 향기가 코 안을 맴돈다.

정화 필터를 설치하는 건 다 끝났으니, 이제 회로를 잇는 일만 남았다.

침착하게.

침착하게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침착하게를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회로를 이어나간다.

좋아.

거의 다 했다.

마지막 회로 하나만 이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때.


[잔여 산소량: 0%]


화악.

목 안으로 밀어닥치는 네크로 가스.

목이 화끈거리고,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크헥, 켁. 켁.”


순간 고통이 느껴졌지만, 손을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은 덕분에 곧바로 정화 필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시 코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독기를 중화해간다.

몇 초만 더 늦었으면 이미 목이 완전히 녹아내렸을 거다.

아니, 녹아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꽤나 큰 데미지를 입었다.

산소통에 뚫린 구멍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짧은 거리라면 이대로 이동해도 상관없겠지.


“크헥, 켁. 최단 거리. 표시해줘.”

“알겠습니다.”


무언가를 바쁘게 검색하고 있는 듯 내 명령에 짤막하게 대답하는 로봇.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눈 앞에 표시되는 경로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입을 때지 않고, 내 목 안에서 핏물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만 보호복 안에 울려퍼진다.


“도착. 했습니다. 주인님.”

“도착, 했냐?”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로봇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반투명한 결계가 쳐져 있는 균열이 보인다.

허리춤을 뒤적거려 갈고리 총을 발사하고, 그대로 천천히 지하를 빠져나왔다.

서둘러 회복약을 입 안에 털어넣었지만,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제대로 된 포션이 아니어서 그런가?

젠장, 분명히 30% 희석액이라 그랬는데, 50% 희석액인가?


“일단... 가게로... 가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가게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서랍 어딘가에 내가 중화제를 넣어놨었는데, 그게 어딨더라?


“윽...?”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이 가까워진다.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의식.

어두워지는 의식 한켠에서 로봇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어권 탈취. 비상 조작을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던거 같은데.

로봇을 처음으로 주웠던 날이었나?

무언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느낌을 느끼며 나는 끔뻑 의식을 잃어버렸다.


#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사실 낯선 천장은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었다.

여긴... 멍멍이가 운영하는 치료소인가?

멍한 머리로 몸을 일으켜보자, 보호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보호복이 잘 개서 근처의 벽에 걸려있었다.

서둘러 보호복을 장착하는 동안 내가 일으킨 소란을 느낀 걸까?

방 안으로 정장을 입은 늑대 수인이 들어왔다.


“몸은 이제 괜찮지?”

“얼마나 청구했을지 걱정되는데.”

“얼마 안해. 알잖아? 네크로 가스 중독은 마을 기금에서 나간다는 거.”

“그랬던거 같네.”


보호복에 전원이 들어오고, 어딘가 침울한 로봇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주인님...”

“뭐야? 갑자기 왜 이리 침울해?”

“갑자기 현실을 깨달은 기분이 들어서요.”


갑자기 왜 이러지?

가게에 돌아가서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겠다.

내가 로봇과 대화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펜리르는 짧막한 감상을 남겼다.


“그게 그 소문의 애완동물?”

“애완동물이라기 보단 전술 인조 정령 같은 느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대여할 생각은 없어? 값은 제대로 치룰게.”

“그럴 생각은 없어.”


허벅지에서 느껴지던 상처도 이젠 다 아문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지?

화면 한 구석에 표기되는 시간을 보자, 최소 12시간 정도는 잠들어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도 일어나질 않아서 교회에 연락해놨다.”

“아니, 왜.”

“당연한 거 아냐? 일단 릴리스가 네 후견인 입장이니까.”


젠장.

내가 이래서 치료소에 들리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교회로 돌아가면 나래가 또 잔뜩 잔소리를 해오겠네.


“돌아가면 그 배달부한테 감사 인사나 해라. 여기까지 널 데려온게 그 녀석이었어.”

“아이리스? 아이리스가 왜?”

“내가 아냐? 네가 쓰러지기 직전에 연락이라도 했나보지, 뭐.”


로봇이 알아서 아이리스에게 신호를 보낸 걸까?

보통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로봇이 알아서 자기가 했다고 하며 자신을 뽐낼텐데 왜인지 아까부터 말이 없다.

대충 전달할 이야기는 다 전달한 것 같은데 펜리르는 여전히 방을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이건 설마...


“뭐 할 이야기라도 있어?”

“의뢰가 하나 있는데.”

“의뢰? 그런건 그냥 스캐빈저나 네 공장에서 일하는 놈들 아무한테나 시키면 되잖아?”

“기계에 관련된 일이어서.”

“평소엔 내가 손대면 이상하게 된다고 싫어하더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도대체 뭔데?”


내 의아한 물음에 펜리르는 주위를 몇 번 더 살피고, 한 번 더 살핀 다음에 내게 속삭였다.


“인큐베이터. 만들 수 있지?”

“인큐베이터?”


인큐베이터?

그게 도대체 왜 필요해?


작가의말

사실 익숙한 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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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날 쓰레기장은 +9 20.01.22 789 35 13쪽
23 지하 20m +2 20.01.21 802 29 13쪽
22 심기체 +5 20.01.20 831 28 13쪽
21 최종보스 +1 20.01.19 845 31 11쪽
» 낯선 천장 +5 20.01.18 843 35 12쪽
19 위기탈출 공돌이 20.01.17 848 32 12쪽
18 오리무중 +2 20.01.17 908 34 12쪽
17 지하 10m로 +2 20.01.16 969 36 12쪽
16 지하실의 비밀 20.01.15 985 35 14쪽
15 어둠의 상인 +5 20.01.14 1,025 39 12쪽
14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1 20.01.13 1,031 40 9쪽
13 마녀사냥 +3 20.01.13 1,022 36 13쪽
12 총으로 해결 못하는 일 +3 20.01.11 1,058 35 15쪽
11 공돌이 괴롭히기 +3 20.01.10 1,150 38 12쪽
10 배달부 +3 20.01.09 1,227 35 14쪽
9 형이 거기서 왜 나와? +6 20.01.08 1,259 36 12쪽
8 스승의 은혜 +1 20.01.07 1,411 39 15쪽
7 취업의 기술 +3 20.01.06 1,577 40 13쪽
6 울어봐, 울어서 네 가치를 증명해봐 +3 20.01.05 1,783 47 13쪽
5 사이좋은 남매 +4 20.01.04 2,012 52 12쪽
4 야, 로봇 +8 20.01.04 2,167 60 13쪽
3 지금 이해를 못하시나본데 +7 20.01.03 2,483 57 18쪽
2 고철을 모아서 +9 20.01.02 2,719 70 14쪽
1 고철더미에서 +9 20.01.01 3,590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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