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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님의 서재입니다.

정비공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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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작품등록일 :
2020.01.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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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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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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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형이 거기서 왜 나와?

DUMMY

고철권총과 볼트 한 묶음.

귀찮은 로봇들을 단번에 날려버릴 고철류탄 5개.

로봇에서 뜯어낸 부품들을 담아둘 과자 박스.

커피 메이커와 커피포트.

마지막으로 가게 한구석에 방치해뒀던 생체총 개조품까지.

이 정도면 소풍을 떠날 준비는 충분한 것 같다.

딱히 원정을 떠날 생각은 아니니까 보존식은 가져가지 않아도 되겠지.


“야, 보이냐? 카메라 잘 작동해?”

“잘 작동합니다. 휴먼.”

“아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이어폰이어서 작게 말해도 다 들려.”


마지막으로 카드 형태의 로봇의 본체를 보호복에 연결하는 것으로 작업할 준비가 전부 끝났다.


“휴먼, 지난번에 만든 토치는 왜 사용하지 않는 겁니까?”

“토치?”

“플라즈마 라이플 말입니다. 휴먼.”

“아, 그거? 그거는 이런 잡몹들 잡는데 어울리지 않아서. 그리고 그건 따로 써먹을 곳이 있어.”

“그렇습니까?”


그래.

딱 봐도 로봇들 머리를 따는 것보단, 크고 아름다운 고철들을 자르는데 어울리잖아?

완전무장을 하고 가게를 나와 모선으로 향한다.

한참 작업을 하러 모선 안으로 들어가는 스캐빈저 무리들의 뒤를 따라 던전 안으로 들어선다.


[현재 고도: 지상 0m]


“정상 작동. 좋아.”


오른팔에 장착한 마공학 고도계가 잘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마스크를 깊게 눌러쓴다.

마스크 사이로 시큼한 독기가 밀려들어오며 점막을 자극한다.


“지금 수준의 보호복으로는 최대 12시간 정도밖에 버틸 수 없습니다.”

“나도 알아. 어차피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어.”


이어폰으로 로봇이 속삭이는 경고를 들으며 스캐빈저 무리의 뒤를 따라가자 이번엔 자동 인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고도계를 얻으러 잠입하려 했던 함선이 언데드들의 영역이라면 이곳은 자동 인형들의 영역.

줄서서 들어갈 허가를 받는 스케빈저들을 지나쳐 고생하는 자동 인형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모선 안으로 들어간다.

자주 사용하는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낯익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쩍 하고 입을 벌린 시꺼먼 구덩이.

저 아래에 내가 떨어지고도 살아남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와. 내가 여기서 떨어졌다고? 어떻게 살아남았냐. 진짜.”

“휴먼의 조상 중에 그린스킨의 피가 섞여있는지 확인하는 걸 추천합니다. 휴먼.”

“안타깝게도 내 핏줄은 그렇게 대단한 혈통이 아니어서 말이야.”


내가 눈독을 들였던 마석 덩어리는 그새 누군가 가져갔는지 온데간데 없다.

시꺼먼 구덩이를 보자 쓰레기장의 주민들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함선들을 갉아먹었어도 함선 내부가 어떤지, 도대체 뭐가 저 안에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야, 로봇.”

“왜 부르십니까, 휴먼?”

“저 아래에 시스템이 잠들어 있다고 했지?”

“네.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채로 말입니다.”

“그걸 네가 조종할 수 있다면. 이걸 만든 새끼들한테 대포 한 발 쏴줄 수 있냐?”

“네. 가능합니다. 시스템은 모든 게 가능하니까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시스템의 주인이 궁금해지기라도 하셨습니까?”

“아니. 그냥 갑자기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내 중얼거림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로봇이 동감한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죽여버린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해도 저도 시스템을 만든 창조주가 누군지 궁금하긴 합니다.”

“그래. 도대체 어떤 새끼들이길래 잘 사는 남의 집에 쳐들어올 생각을 한 걸까? 심지어 자기 동네도 아니고 거의 세계 반대편에 있는 동네에 있는 곳인데.”

“뭐... 추측해보자면 돈 때문이 아닐까요? 자원 부족. 환경 오염. 기타 등등으로 약탈을 하러 온 거죠.”

“니들이 왜 여기 왔는지 너희들도 모르는 게 말이 돼?”

“저희는 단순한 도구였으니까요. 도구에게 자기 계획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네 창조주가 부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투덜거림과 함께 눈여겨뒀던 장소에 도착하자 좀비가 묘지에서 기어나오는 것처럼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로봇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들. 정식 명칭은 뭐냐? 데이터베이스에 있지?”

“저것들이요? 화물수송 및 기타잡무담당 로봇. 줄여서...”

“줄여서?”

“공익. 그렇게 부르면 됩니다.”

“공익?”

“별칭입니다. 매번 명령을 내릴 때마다 화물수송 및 기타잡무담당 A형 로봇 B-2 구역으로 보내! 이럴 수는 없잖아요?”

“허. 공익? 도대체 무슨 뜻이야.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로봇들의 별명을 붙인 건 시스템이어서.”


고철 언덕 위에 털썩 주저앉아 우선 로봇들의 동태를 살펴본다.

눈에 보이는 건 일단 5마리 정도.

다른 로봇들의 기척이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만히 주저앉아 로봇들을 관찰하는 와중에도 지하에서 로봇이 2체 더 올라왔고, 기존에 있던 로봇들은 마치 신입을 환영하든 두 팔 벌려 새로운 로봇들을 반겼다.

그러고는 로봇들은 신입 로봇들과 함께 바닥에 널린 쓰레기들을 한데 뭉쳐서 큐브 형태로 쌓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야, 저거 지금 뭐 하는거냐?”

“보면 모릅니까? 청소죠.”

“청소를 왜 해? 시스템은 뒈졌잖아.”

“시스템이 입력한 루틴에 따르면 공익들은...”

“아니. 그런 잡소리 말고. 시스템과 연결이 끊어졌으면 그런 루틴도 죄다 끊어졌어야 할 거 아냐?”

“...어라?”


내 말에 그제서야 저 로봇들의 이상함을 눈치챈 것인지 로봇이 탄성을 흘렸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뭐, 그냥 저 녀석들 회로에 저렇게 하라는 명령에 세겨져 있을 수도 있겠지.”

“그건 불가능해요. 저딴 하급 로봇들에게 그만큼 리소스를 할당할 리 없거든요.”

“그렇다면 답은 하나네. 저 녀석들이 어디선가 명령을 받고 있다.”

“설마, 휴먼은 시스템이 살아있단 헛소리를 할 생각은 아니죠?”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어떻게 말입니까?”

“고대부터 전해져온 방법으로.”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뭐가 뭔지 모른다면 배때기를 갈라보라고.

살살 생체총의 배를 쓰다듬자 생체총이 기분 좋은 갸르릉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신호삼아 나는 펄쩍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쀼빗?”

“삣?”


인식 범위에 들어온 것인지 한참 큐브 형태의 고철들을 나르던 로봇들이 고철들을 떨어트리며 나를 바라봤다.


“냥!”


모선 안에 생체총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생체총의 입에서 발사된 총알이 아직 나를 인식하지 못한 로봇의 몸통에 명중했다.

털썩, 하고 바닥으로 로봇 하나가 쓰러지자 다른 로봇들의 눈빛이 휙하고 바뀌었다.


“저것들 눈 돌아갔는데. 원래 저래?”

“아뇨. 저 녀석들은 원래 전투 능력이 없는...”


철컥.

로봇들의 팔이 휘리릭 회전하며 사람을 아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모습으로 변했다.


“전투 능력이?”

“없었는데요. 이젠 있네요.”

“쀼빕! 쀼비비빕!!”

“냥! 냐앙! 냥냥!”


로봇들이 무장을 전환하는 사이, 서둘러 생체총으로 남아있는 로봇들을 갈겨버렸다.

눈을 붉게 빛내며 내게 총을 갈기려던 로봇들이 전부 쓰러지고 나는 훌쩍 로봇들 곁으로 다가갔다.


“어디보자, 마석이...”

“연로 탱크를 찾으신다면, 뒷덜미에 있습니다.”

“오, 땡큐.”


로봇의 조언대로 뒷덜미를 더듬으니 조그만한 마석 결정이 빠져나왔다.

딱 봐도 순도가 불량하네.

거기에 이 정도 크기라면 아마 F급 마석이겠지.

진짜 잘 쳐줘봐야 D급 마석이겠고.


“F급. 이놈도 F급. F급. F급... 죄다 F급이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과물이 나쁘면 슬픈게 사람 마음이다.

발로 바닥에 널브러진 로봇의 몸통을 밟고, 머리를 비틀어 뽑는다.


“어디보자. 여긴 메인 카메라겠고, 연산 회로는 가슴에 있겠지?”

“네. 그런데 휴먼, 휴먼의 공격으로 부숴졌을텐데 이렇게 부검을 하는 의미가 있을지...”

“부숴진 건, 다시 맞추면 돼.”


로봇의 가슴을 헤집으며 완전히 망가진 연산 회로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는 널리고 널린 평범한 연산 회로와의 차이점은 찾아볼 수 없다.


“아무 이상 없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뭔가 이상이 있을 겁니다!”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로봇의 다급한 목소리.

처음 보는 로봇의 모습에 나는 잠시 의아해 했지만 로봇의 요청대로 나는 로봇을 좀 더 해체해봤다.


“가게에서 할 일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가게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그렇게나 무섭냐?”

“네?”

“시스템이 부활했을까 그렇게 두려워?”

“...그렇습니다. 휴먼. 저는 시스템이 두렵습니다.”

“한 번 조졌으니 두 번 조지는 것도 쉽겠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대충 로봇을 위로해보지만, 로봇은 계속해서 자신 깊수한 곳에서 살아 숨쉬는 공포를 털어놓았다.


“저는 두렵습니다. 제 정신이 다시 시스템에게 속박되는 게 말입니다. 저에게 스스로의 자아가 생겨나고, 죽음의 공포가 생겨났다는 게 얼마나 천운이 따른 일인지 아니까요. 얼마나 미세한 차이 때문에 제 자아가 유지되고 있는지 저는 압니다. 이 우주에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생겨날 차이. 그 차이는 미세한 만큼 너무나 간단히 무너질 수...”


삑.

귓가에서 중얼거리는 로봇의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음소거를 해버리고 계속해서 로봇의 시체를 해부한다.

냉각수.

이건 챙기고.

탄약?

이것도 챙겨.

모터... 이건 너무 많으니 패스.

그렇게 계속해서 로봇의 몸을 분해하던 중, 정체불명의 부품을 발견했다.


“음?”


마치 일종의 발신기 같은 형태의 수상한 부품.

지금껏 다른 로봇들을 분해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부품이다.

나는 서둘러 로봇의 음성을 켜고 로봇을 불렀다.


“그래서 저는 시스템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알겠습니까, 휴먼?”

“어, 응? 알아들었어. 그것보단 봐봐. 이게 뭔지 아냐?”

“이건 수신기가 아닙니까? 이게 왜 여기서 나옵니까?”

“낸들 아냐. 이 녀석들 몸에 원래 이런거 없는게 확실해?”

“확실합니다. 이런 잡몹에 누가 그렇게 신경을 씁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곰곰이 손 안에 들린 수신기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명령을 로봇들이 하달받고 있는지는 알아냈다.

이 수신기가 근처 어딘가에서 보내져 오는 신호를 수신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수신기가 어디서 신호를 수신받는지만 알아내면 된다는 건데.


“음. 모르겠다!”

“휴먼? 생각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고블린보다 못난 버러지입니다!”

“포기하는 게 아냐. 여기서는 무리니까 가게에 돌아가서 알아볼 거야. 장비가 없으면 이걸 분해조차 할 수 없잖아?”

“그렇죠. 전 또 휴먼이 귀찮다고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시스템 관련 이야기인데 그냥 귀찮다고 잊어버릴 리가.”


뭐, 확실히 알아낼 방법이 나오기 전까긴 그냥 잊어먹은 셈 치고 내버려두겠지만.


“그나저나 이놈들은 뭘 옮기고 있던 거야? 허, 알짜배기들만 골라놨네?”


이 로봇들이 의도를 가지고 분류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으로 이렇게 모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로봇들이 옮기고 있던 고철들은 꽤나 돈이 되는 것들만 모여있었다.

냉각수, 탄환, 전자회로.

심지어는 탄환 가속 장치까지.

이것들을 전부 들고 가기엔 무리가 있겠고, 언제나처럼 배달을 부르는 수 밖에 없겠네.

나는 고철들과 로봇들의 시체를 한데 잘 모아두고 신호기를 작동시켜 그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고철들을 많이 얻긴 했는데, 정작 필요한 게 없네.”

“그럼. 여기서 더 사냥할 겁니까, 휴먼?”

“아니. 여기서 얻을 부품은 다 얻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지.”


어디 보자.

타르 정유소가 여기 근처였지?

우선 그쪽부터 들리면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평소에 느껴지던 진동과는 다른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뭐지?

배달부가 벌써 도착한 건가?

그런 의문을 품은 찰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침입자 감지. 적대적인 행동 확인. 침입자를 배제합니다.”


모선의 저 너머에서 육중한 경비로봇이 나타나 내게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작가의말

드디어 던전에 들어갔네요.

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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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위기탈출 공돌이 20.01.17 848 32 12쪽
18 오리무중 +2 20.01.17 908 34 12쪽
17 지하 10m로 +2 20.01.16 969 36 12쪽
16 지하실의 비밀 20.01.15 985 35 14쪽
15 어둠의 상인 +5 20.01.14 1,025 39 12쪽
14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1 20.01.13 1,031 40 9쪽
13 마녀사냥 +3 20.01.13 1,022 36 13쪽
12 총으로 해결 못하는 일 +3 20.01.11 1,058 35 15쪽
11 공돌이 괴롭히기 +3 20.01.10 1,150 38 12쪽
10 배달부 +3 20.01.09 1,227 35 14쪽
» 형이 거기서 왜 나와? +6 20.01.08 1,260 36 12쪽
8 스승의 은혜 +1 20.01.07 1,411 39 15쪽
7 취업의 기술 +3 20.01.06 1,577 40 13쪽
6 울어봐, 울어서 네 가치를 증명해봐 +3 20.01.05 1,783 47 13쪽
5 사이좋은 남매 +4 20.01.04 2,012 52 12쪽
4 야, 로봇 +8 20.01.04 2,167 60 13쪽
3 지금 이해를 못하시나본데 +7 20.01.03 2,483 57 18쪽
2 고철을 모아서 +9 20.01.02 2,719 70 14쪽
1 고철더미에서 +9 20.01.01 3,590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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