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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님의 서재입니다.

정비공이 너무 강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SF

제스키위
작품등록일 :
2020.01.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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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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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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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최종보스

DUMMY

“인큐베이터가 왜 필요해? 임신했어?”

“아냐! 내가 쓸 게 아냐!”


오랜만에 부끄러워 하는 펜리르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것도 잠시, 펜리르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의 사진을 꺼냈다.


“이건?”


사진에는 꽤 커다란 사이즈의 알이 찍혀 있었다.

생김새로 봐선 하피의 알이 아니라 용인족의 알인데.


“그거, 용의 알이야.”

“용의 알? 용인족이 아니고?”

“그래. 용인족이 아니고, 용의 알.”

“용인족이 아니라고?”

“용의 알이라니까?”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내가 여기 와 있는 거지. 젠장.”


아니, 용의 알이 도대체 왜 쓰레기장에 떨어져 있어?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은 펜리르도 마찬가지인지 이마를 꾹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어떻게든 용족들에게 연락을 하긴 했어. 다음 주에 알을 찾으러 온다고 하더군.”

“그래. 잘 됐네.”

“문제는 말이지, 알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거야.”

“상태가 이상해?”

“천인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는데, 자기들도 용의 알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하더라. 그 대신, 용의 알을 넣어두던 인큐베이터를 받았는데... 고장난 상태였어.”


천인들도 모르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설마 하는 거지만, 아무도 그 인큐베이터를 고칠 수가 없었다. 그런 거야?”

“...정답이야.”


수치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며 내 질문에 대답하는 펜리르.

그렇단 말이지?

이건 꽤 괜찮은 일이다.

잘 풀린다면 펜리르 뿐만이 아니라 용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지?”

“평생 치료소 무료 이용권?”

“진심은 아니지?”

“물론 농담이지. 뭘 원하는데?”

“흠...”


어디보자.

개털 냄새 나는 장비들은 딱히 필요가 없고.

그나마 멍멍이들이 쓰는 보호복 정도가 탐나기는 하는데, 어차피 나는 멍멍이들의 것보다 몇 배는 뛰어난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

장비가 딱히 탐나지 않다면... 그냥 마석이나 받을까?

어차피 이 의뢰는 개털 냄새 나는 보상보단 용족들의 보상이 주 목적이니까.


“뭐, 대충 마석이나 챙겨줘. 요즘 의뢰가 안들어와서 가난해.”

“그래. 고맙다.”

“물건은 언제 가져다 줄건데?”

“오늘 안으로 가져다 주지. 마석도 함께 말이야.”

“오케이.”


곧장 치료소를 나오자 하늘섬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고철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공장들.

스승님들의 대장간과는 달리 하늘로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다.

로봇은 아직도 무언갈 고민하고 있는지 여전히 말이 없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는지 오크 작업반장에게 구박받는 엘프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 어디선가 돌풍이 불어왔다.


“아이리스?”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거야? 호출 신호가 네 집에서 와서 뭔가 하고 가봤더니 쓰러져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법이지.”

“어휴... 나래가 엄청 걱정하고 있다고.”

“나래가?”


아, 젠장.

릴리스에게만 말한 거였다면 아직 들키지 않았을 여지가 남아있었을 텐데.

나래에게 아이리스가 말해버린 이상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졌다.


“그래. 나래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많이 걱정했다고.”

“미안. 덕분에 진짜 살았어.”

“말로만?”

“어... 그러니까...”


설마 여기서 구조자의 권리를 들먹일 생각인가?

아이리스, 너마저!


“킥킥, 표정 풀어. 너랑 나 사이인데, 구조자의 권리를 들먹이겠어? 그냥. 나중에 부탁 하나 들어주겠다던 거, 하나 더 들어주면 돼.”

“...그럼 되는 거지?”

“응. 그거면 돼.”


뭔가 그녀의 호의를 이용해먹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나중에 더 크게 보답해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아이리스를 잠시 붙잡았다.


“야, 잠깐만.”

“응?”

“한... 3달? 그 쯤에 정비 받으러 찾아와라.”

“3달 뒤? 왜?”

“그 때쯤이면 새로운 부품을 구할 수 있을거 같거든. 뭐.”


내 말을 들은 아이리스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게.”

“그래. 그래라.”


그렇게 아이리스를 하늘로 돌려보내고, 나는 로봇의 본체를 손으로 툭툭 쳐본다.

지금쯤이면 귓속말로 온갖 주접을 떨 놈이 아직도 조용하니 좀 불안하네.

죽은 건 아니지?

그치?

쓰레기장의 거리를 걷다, 교회로 향하는 갈림길 앞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교회를 바라보고, 슬그머니 발걸음을 돌려 가게로 향했다.

지금 바로 교회에 가는 건 그렇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게에 돌아왔고, 그제서야 로봇의 입이 떨어졌다.


“주인님. 사람답다는 건 도대체 뭘까요?”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나 했더니, 그런 쓸모없는 걸 생각하고 있던 거였어?”

“쓸모없다뇨!”


아니.

진짜 쓸모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보나 마나 또 자기는 사람을 흉내내는 로봇일 뿐이니 뭐니, 이러면서 고민하던 거 맞지?”

“그렇...습니다. 주인님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인님을 돕고 싶어도, 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지 않는 건 할 수 없다는 걸요.”

“모르는 건 평범한 사람도 당연히 못하지. 모르는 일을 멀쩡하게 해내는 건 용사 정도는 되야 가능한 일이라고.”

“...아무튼. 저는 깨달은 겁니다. 제 본질은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에 불과하다고요.”

“그래. 넌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보호복에서 로봇의 본체를 분리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영양가 없는 로봇의 한탄을 들어준다.


“좀 제대로 들어주세요! 전 진지합니다!”

“그래. 그 진지한 고민을 난 너무 많이 들어봐서 쓸모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할 뿐이야.”

“네?”

“자동인형들. 그 녀석들이 맨날 하는 고민이거든. 그거. 나중에 돌스 가서 대화 나눠볼래? 대화가 잘 통할거 같은 느낌인데.”

“그, 그렇습니까?”

“네 고민은 자동인형으로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이 맨날 하는 고민이야. 뭐, 자기한테 주어진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존재다? 웃기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하라고 명령을 받기라도 했나 보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모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쩌면 사실 이 세상이 누군가의 꿈일 수도 있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누군가의 망상일 수도 있지. 그런 식으로 어쩌면, 하는 가정을 하면 끝도 없어.”

“그런가요...”

“네가 네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한, 너는 사람다운거야. 설령 네 의지가 조작된 거여도 말이지.”


내 말을 전부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했다는 듯 조용히 중얼거리는 로봇.

나중에 돌스에 데려가서 자동인형들이랑 대화를 나누게 하면 뭐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겠지.


“정 그렇게 자기 정체성에 고민이 든다면,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 넌 나만의 로봇이라고. 보나마나 또 시스템이 자아를 뺏기지 않을까 걱정되서 고민하기 시작한 거지? 지난번에 내가 뭐라고 했지?”

“...주인님의 것을 뺏어가게 놔두지 않는다고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돼.”


보호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나는 박살난 보호복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로봇도 고민을 집어던졌는지 밝아진 모습으로 참견해오기 시작했다.


“주인님, 이왕 수리하는 김에 저 산소통은 때어버리죠? 디자인에 감점 요소만 됩니다.”

“뭔 소리야? 저게 디자인의 완성인데?”

“무슨 소립니까! 보호복은 매끈한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부속품은 필요없습니다!”

“보호복은 뭔가 주렁주렁 메달려 있어야지. 어? 기본적인 모습에서 뭔가를 더 추가해서 개조했다는 느낌이 팍 오는게 보호복의 참맛인데. 그걸 모르네.”

“주인님이야말로 최첨단 슈트의 참맛을 모르네요.”


로봇은 이것저것 내 보호복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지만, 어쩌겠는가?

꼬우면 자기가 직접 개조해야지.


“제가 하루종일 들어가 있을 보호복은 제 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취향이 반영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님!”

“로봇에게 인권은 없다.”

“너무합니다!”


그래도 뭐, 지금의 디자인이 구리다는 건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일단 산소통부터 좀 크기를 줄일까?

지금은 너무 커서 마치 배낭을 짊어진 듯한 크기다.

배낭?

잠깐만, 그럼 그냥 배낭의 기능까지 추가하면 되는게 아냐?

어차피 오늘 보호복의 인공 근육과 회로의 성능을 더 강화할 생각인데, 조금 무게가 늘어나는 정도는 괜찮겠지.


“아~ 어디 무한 증식하는 살덩이 괴물 없으려나~”


다음 번에 만나면 반드시 플라즈마 커터로 사지를 찢어서 재료로 만들어주겠어.

아니, 그냥 목숨만 붙여두는게 더 이득이려나?

그 살덩이 회로는 꽤 많은 곳에 응용할 수 있을텐데.


“그러고 보니까, 주인님. 그 괴물은 도대체 뭐였던 걸까요?”

“글세? 마석을 조사해봐도 별다른 이상은 없더라.”


기계의 세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살점의 괴물이라.

분명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게 분명할텐데.


“뭐, 데이터베이스에 그런 거 없어? 살덩이 괴물 비스무리한 걸 만드는 놈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제 데이터베이스엔 없는 자료네요.”


일단은 모선 안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마녀처럼 누군가가 숨어든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지하 10m 아래에 숨어들어서 호문쿨루스를 만든다고?

하, 그 말은 왕도에서 로봇을 만드는 시설을 만든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 함선 내부에 숨어들었다기 보단, 함선 자체가 변했다는 게 더 맞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함선이 바뀌었을까?

함선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시스템.

며칠 뒤의 미래 정도는 가뿐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다는 모든 로봇들의 지배자.

모선이 추락하며 시스템 또한 정지했다는 게 통설이지만...

만약 시스템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최근의 사태가 시스템이 부활하며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아냐.

시스템이 부활하고 있다면 로봇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겨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로봇들은 멀쩡하고,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고 있을 뿐인데...

문득 자신이 시스템이라면 어찌했을지 생각해본다.

미래마저 예측할 수 있다면, 자신의 최후까지 예측하지 않았을까?

내가 내 최후를 예측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백업, 혹은 내 위치를 대신할 누군가를 만들겠지.

그렇다면 지금의 변화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의 권한을 일부 계승한 누군가가 벌이는 짓이 아닐까?

뭐, 이런 식으로 추리해봤자 어떤 미치광이가 지하 10m 아래에서 놀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하는 것일수도 있으니 의미 없다.

일단은 500m 아래 어딘가에 위치할 저 로봇의 본체를 찾자.

저 녀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본체를 되찾으면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완전히 시스템의 목숨을 끊어놓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보호복의 수리를 계속하던 중, 누군가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아, 멍멍이가 인큐베이터를 보내겠다고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지만, 가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멍멍이네 애들이 아니었다.


“오빠? 건강해 보이네?”

“...미안.”


정말 화났다는 듯, 싸늘하게 웃고 있는 나래의 모습이었다.


작가의말

최종보스는 여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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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위기탈출 공돌이 20.01.17 851 32 12쪽
18 오리무중 +2 20.01.17 913 34 12쪽
17 지하 10m로 +2 20.01.16 972 36 12쪽
16 지하실의 비밀 20.01.15 988 35 14쪽
15 어둠의 상인 +5 20.01.14 1,028 39 12쪽
14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1 20.01.13 1,034 40 9쪽
13 마녀사냥 +3 20.01.13 1,025 36 13쪽
12 총으로 해결 못하는 일 +3 20.01.11 1,061 35 15쪽
11 공돌이 괴롭히기 +3 20.01.10 1,155 38 12쪽
10 배달부 +3 20.01.09 1,230 35 14쪽
9 형이 거기서 왜 나와? +6 20.01.08 1,264 36 12쪽
8 스승의 은혜 +1 20.01.07 1,415 39 15쪽
7 취업의 기술 +3 20.01.06 1,582 40 13쪽
6 울어봐, 울어서 네 가치를 증명해봐 +3 20.01.05 1,786 47 13쪽
5 사이좋은 남매 +4 20.01.04 2,015 52 12쪽
4 야, 로봇 +8 20.01.04 2,172 60 13쪽
3 지금 이해를 못하시나본데 +7 20.01.03 2,487 57 18쪽
2 고철을 모아서 +9 20.01.02 2,724 70 14쪽
1 고철더미에서 +9 20.01.01 3,601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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