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힐튼 서울, 남자 죽음을 향해 달리다(2)
바람처럼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물체는 - 몹시 당황하여 -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들을 쳐다보던 남한의 국정원 요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를 바람처럼 빠져나온 국정원 요원을 확인한 것은 그 두 사람의 눈뿐이다.
눈의 망막을 통해 전달된 지각이 뇌로 전달되고 다시 뇌에서 명령을 받은 신체의 감각기관이 반응을 한다.
두 요원은 느슨하게 내려트러 놓은 팔을 들어 일자로 뻗고 검지손가락에 신경을 전달하여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하지만 두 요원 모두 방아쇠에 닿아있는 검지손가락에 신경이 전달되지 않는다.
국정원 요원, HE, 이태우에 의해 타격을 받은 두 요원은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한 사람은 우측 가로로 비스듬히 쓰러지고 다른 한 사람은 앞으로 고꾸라진다.
“뭐야!
무시기야!”
“탕!”,
“탕탕!”
두 요원이 HE의 타격에 의해 쓰러지는 타이밍과 동시에 11층 복도를 향해 몸을 돌렸던 호위사령부 선임요원과 부하 요원은 권총을 꺼내 발사한다.
하지만 한 번의 총격은 연속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들이 쏜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엘리베이터 도어와 벽면에 박힌다.
번개처럼 다가온 HE는 그들에게 타격을 가한다.
HE의 움직임을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단지 바람처럼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으로 느낄 뿐이다.
그들 또한
“으으음!”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진다.
두 사람도 앞의 두 요원과 마찬가지로 온 몸의 운동신경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단지 두 눈만이 신경이 살아있다.
#3 엘리베이터 앞에 쓰러진 네 명의 북한 호위사령부 요원들의 눈에는 남한 국정원 요원의 뒷모습이 보인다.
조금 전 보았던 그의 앞모습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의 눈이 시뻘건 핏물이 쏟아질 것처럼 - 지옥에서 지옥문을 뚫고 나타난 야차처럼 - 빨갛게 변해있는 것만이 눈을 통해 전달되어 그들의 뇌 속에 기억되어 있다.
HE는 바닥에 쓰러져 엉금엉금 기고 있는 네 사람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 로비 코너를 돌기직전 깊은 심호흡을 한다.
11층 복도 끝 30여 미터 거리에는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1110호가 있다.
HE는 가방에서 연막탄 두 개를 꺼내 뇌관 꼭지를 딴다.
연막탄은 매캐한 냄새와 함께 뇌관 꼭지에서부터 희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나온다.
HE는 연막탄 한 개를 복도를 향해 바닥으로 힘차게 굴리고 다른 한 개는 복도 끝 1110호를 향해 힘껏 던진다.
1층 중앙 로비에서 터진 수류탄 폭발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연이어서 11층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들려온 총격소리에 30여 미터에 달하는 11층 복도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복도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중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얼굴도 보인다.
“방에서 나오지 말기오!”
“아떻게 된기야?”
“나오시면 더 위험합니다!
방에서 기다리십시오!”
11층 복도 중간쯤 되는 위치에는 십여 명의 호위사령부 요원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이 총소리가 난 11층 엘리베이터 로비를 향해 뛰어가려는데 폭발소리와 총소리에 놀란 북한 방문단 관리들이 한꺼번에 각 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11층 복도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호위사령부 요원들이 복도로 나온 사람들을 헤치고 엘리베이터 로비를 향해 가려는데 이번에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1,2초 만에 복도 전체에 가득 찬다.
“좀 비키기오!”
“제발 좀 방 안으로 들어갑세!”
호위사령부 요원 다섯 명은 복도로 나온 관리들을 헤치고, 희뿌연 연막탄 연기 속을 지나 총소리가 난 엘리베이터 로비 5미터 근처까지 접근하였다.
“탕 탕 탕!”
그들은 먼저 엘리베이터 로비를 향해 선제적으로 총격부터 가한다.
“탕 탕 탕!”
1차 총격을 가한 후, 호위사령부 호위 1 국 제 9 조 조장인 전근호 중좌가 수신호를 한다.
조장의 신호에 따라 그의 부하요원 다섯 명은 흩어지며 제각각의 자세로 엘리베이터 로비가 있는 복도를 돌며 2차 총격을 가한다.
전근호 중좌와 두 명의 요원은 옆으로 슬라이딩하는 자세로 총격을 가하고 다른 두 명의 요원은 덤블링하듯이 공중제비를 하며 총격을 가한다.
“탕 탕 탕!”
“그만!
멈추라우!”
전근호 중좌의 흡사 비명 같은 고함소리에 총소리는 멈춘다.
멈추라고 소리를 내지른 전근호 중좌는 엎드렸던 바닥에서 일어나며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곳에는 자신의 부하들만이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게 아닌가?
“이 간나새끼!
뛰기오!”
전근호 중좌의 지시에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방향을 틀어 11층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다시 11층 복도로 향한다.
복도는 방금 전보다 더 갑갑한 상황이다.
HE가 던진 두 개의 연막탄에서 나온 연기는 11층 복도를 완전히 뒤덮어 1미터 바로 앞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근호 중좌와 호위사령부 요원 네 명은 복도를 지나간다.
복도에는 방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는 북한 방문단 관리들과 호위사령부 요원들이 뒤섞여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전근호 중좌와 요원들은 복도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며 지나가는데 점점 복도 끝 1110호가 가까워진다. 이때
“팍! 퍽!”
“윽! 어이쿠!”
1110호 앞쪽에서 뭔가를 치는 둔탁한 소리와 타격을 맞은 사람의 비명소리가 연막탄 연기 속을 뚫고 들려온다.
전근호 중좌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 3개를 뻗는 수신호를 하자 그를 따르던 네 명의 부하 요원들이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굽히고 몸의 자세를 낮춘 채 좌우 복도 벽면에 몸을 밀착한다.
엘리베이터 로비로 접근했을 때처럼 1110호를 향해 총격을 가해야 한다.
‘테러분자가 출몰했을 때는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먼저 총격을 퍼붓는다.’
‘테러분자가 있다고 판단되는 위치에 우선적으로 총격을 가한다.’
‘그 위치에 설혹 우리 요원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무조건 총격을 한다.‘
북한 호위사령부 호위 1 국 교본에 나와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상한 교안이 명확하게 교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총을 쏠 수가 없다.
이 지침은 전근호 중좌가 호위 1 국 요원들의 교관으로 12년 동안 있으며 입이 닳도록 교육한 내용이다.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이 발생했는데 총을 쏠 수가 없다.
호위사령부 호위 1 국 제 9 조 조장 전근호 중좌는 다리가 얼어붙고 입이 말라붙어 부하들에게 총격을 가하라고 명령하지 못하고 있다.
“조장 동지!
명령을 내리시라우!”
“쏘지말라우!”
복도 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1110호로 전진중인 부조장 심원덕 소좌가 눈짓과 함께 전근호 중좌에게 명령을 재촉한다.
그는 부하들에게 오히려 쏘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널 부러져 죽은 자신 부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테러분자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부하들이 쏜 총탄에 벌집이 되도록 맞아 죽은 것이다.
조장 전근호 중좌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복도 벽면에 등을 기댄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복도 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1미터, 2미터,
점점 1110호가 가까워진다.
“으으음!”,
“으윽!”
“살려주기오!
목숨만 살려주기오!”
전근호 중좌의 귀에는 부하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의 귀에는 부하들이 - 숨이 끊어질 듯 - 가래 끓는 소리로 목숨을 구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1110호 문 앞에는 자신의 부하 네 명이 지키고 있었다.
네 명 중 두 명은 죽었는지 아무 소리가 나지 않고 신음소리를 내는 부하는 누구인지 분간이 안가지만 가래 끓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부하는 조석기가 분명하다.
키 190에 맨손격투에서 진 적이 없는 조석기가 누구에게 어디를 어떻게 맞아서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공화국 최고의 격투가임을 자부하는 조석기가 일대일도 아니고 동료 세 명과 함께 있었는데 단 한 사람에 의해 타격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는 지금 마지막 숨을 다해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전근호 중좌와 부하 네 명 모두는 자신들과 2,3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려달라고 울고 있는 사람이 조석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연실색하여 얼굴들이 하얘진다.
전근호 중좌를 포함한 다섯 사람 모두는 - 더 깊고 끔찍한 공포감에 - 다리를 ‘덜덜덜’ 떨며 앞으로 걸어가질 못한다.
연막탄에서 쏟아져 나온 연기가 조금씩 걷히고 ‘1110’ 숫자가 보인다.
‘1110’ 숫자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그 숫자 옆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 앞에 있어야할 호위총국 요원들은 바닥에 쓰러졌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남한 국정원 요원의 옷을 입은 남자만이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의 호흡은 안정되어 보인다.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탕! 탕! 탕!”
1110호 앞에서 서 있는 HE를 향해 호위사령부 요원 중 누군가가 권총을 발사한다.
그 빗발치는 총알 사이를 뚫고 순식간에 HE는 그들에게 달려든다.
호위사령부 요원 다섯 명 사이 공간으로 들어간 HE는 오른손으로 첫 번째 요원의 목을 찌르고 동시에 두 번째 요원의 갈비뼈를 가른다.
“탕! 탕!”
두 사람이 피를 쏟으며 쓰러지고 HE는 둘을 총알받이 삼아 세 명에게 접근한다.
이미 벌집이 된 두 요원의 머리 위로 HE가 솟아오르며 회전하듯 발길질을 하자 세 번째, 네 번째 요원의 머리가 180도 돌아간다.
“탕!”
마지막 다섯 번째 요원인 전근호 중좌가 도약하여 발길질을 하고 착지하는 HE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의 총탄이 HE의 옆구리를 관통하고 그와 동시에 HE의 왼손 끝이 전근호 중좌의 목울대를 깊이 찌르고 나온다.
북한 인민군내 최고의 요원들이 모아놓은 호위사령부 호위 1 국 제 9 조, 제 9 조의 조장으로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아들 김정은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무한신뢰를 받아 온 전근호 중좌가 허수아비처럼 앞으로 고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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