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용산 서울, 수면으로 떠오른 진실(1)
국방부 지하 자료실 - 2015년 6월 05일 19:00시
서울 용산구 삼각지 국방부 건물 지하 3층.
이곳에는 대한민국의 군사관련 자료를 가장 광범위하게 보관하고 있는 국방부 전사 자료실이 있다.
다른 구역과 달리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야 한다.
국방부 1층에서 지하로 향하는 2차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에 도착하자 “딩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마주 보인다.
20미터가 넘을 정도의 긴 복도의 끝에 보안장치가 된 강화문이 있고 그 강화문의 오른쪽에 한 병사가 책상에 앉아 있다.
김경원은 뚜벅뚜벅 그 문을 향해 걸어간다.
“충성!
오늘도 오셨습니까?”
김경원을 보자 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박 병장! 수고가 많다.
그래 저녁은 먹었나?”,
“예!”
“제대가 며칠 안 남았을 텐데
근무하나?”,
“예! 특명 받았습니다! 6월 15일,
이제 열흘 남았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갈 거야.
10시쯤~”,
“예! 알겠습니다.”
서울대에서 영문과 3학년을 다니다 입대한 박 병장은 20개월 전인 이병 때부터 제대를 열흘 남겨둔 지금까지 줄곧 자료실 당직병을 하고 있다.
김경원은 국방부 자료실을 가장 많이 찾아와 박 병장에게는 최고의 단골손님이다.
자료실 당직병사인 박 병장이 지문인식장치에 손을 올리자 김경원도 나란히 그 옆에 손을 올린다.
“스스슥!”
부드러운 소리가 강화문 안쪽에서부터 들린다.
50센티는 넘을 것 같은 육중한 강화문이 서서히 열린다.
90도 각도로 문이 완전히 열리자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자동으로 자료실 안은 입구에서부터 열을 맞춰 천장의 LED등에 불이 들어온다.
자료진열대의 ‘ㄱ ㄴ ㄷ ㄹ’ 한글 모음 순서대로 실내가 밝아진다.
“휴우우!”
자료실에 들어서며 김경원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이 국방부 지하 자료실을 출입하고 있는 국정원 김경원 과장은 이곳에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중고등학교시절 늦은 밤,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큰 도서실에 혼자 남아 앉아 있을 때 느꼈었던 그 편안함과 지식에 대한 포만감이 이곳에서도 느껴진다.
이곳은 김경원에게 그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을 이루게 하여 주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 되었다.
김경원은 11년 전 처음 이곳의 문을 넘어 들어왔을 때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소름이 돋고 작은 경련이 느껴진다.
그는 중위로 진급하면서 바로 서울대 파견근무명령을 받았었다.
서울대 파견근무는 서울대 대학원에 정식으로 입학을 하여 전쟁사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김경원이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부터 이곳 국방부 자료실이 바로 그의 도서관이 되었다.
이곳에는 인간의 모습 중 가장 추악한 얼굴인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이 있었다.
전쟁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천 년 동안 수십만, 아니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다 이루지 못하고 국가라는 명분아래 희생되게 하였다.
김경원은 자료실 구석으로 걸어가 자기 사무실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는 PC의 전원을 ON시키고 모니터 화면이 밝아지기를 기다린다.
강남 오피스텔 1908호 - 2015년 6월 5일 23:10시
문이 열리고 유태종은 환한 웃음을 띠며 김경원을 맞이한다.
“오늘도 육본 자료실에 들러서
오는 길이니?
김 박사!
공부 좀 살살하지?”
“오늘도 별다른 소식은 없지?
물부터 한 잔 줘라!”
자신을 맞아주는 유태종을 바라보며 김경원은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짓는다.
유태종이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거실로 들고 오자 김경원은 소파에 늘어지게 앉는다.
전국을 들었다 놓았던 영등포 조폭 살인사건은 사건이 발생한지 두 달이 지나도록 단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경찰청과 국정원, 심지어 청와대 경호실까지 대한민국의 전 수사 인력이 동원되었지만 그날이후 더 이상 이와 유사한 추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음으로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 것이다.
사건 발생 당일부터 가동한 - 국정원이 주관하는 - 합동대책회의에서는 영등포 조폭 살인사건이 남북정상회담과의 연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을 결론지었다.
그에 따라 향후 대책의 방향은 꼬리도 볼 수 없는 범인을 쫒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의 보안 경계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설정하였다.
국정원 유태종 과장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특별팀에 소속되어 보안, 경호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니가 이 시간에 온 거 보니까
지난 두 달동안의 성과가
있나본데...”,
“야~ 나 정말 공부 열심히 했다.
고 3 때보다 작년에
박사학위 준비 때보다 더...”
“난 지금도 미스테리야!
그렇게 공부 좋아하는 네가
서울대를 안 가고 육사에
들어온 게 말이야!
아~ 그리고 영등포 사건은
이제 물 건너 갔나봐!”
“그래~”,
“경찰청은 영등포경찰서 서장을
직위해제하고
수사대책본부를 두 배로 보강 한다
난리를 쳤지만
단서 한 개도 찾질 못했으니...”
“청와대나 타이거는?”,
“걔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지금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정상회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김경원은 생수병을 입에 물고 연거푸 목을 축인다.
“지금도 육본에서 오는 길이야?”,
“그래! 찾았어!”,
“정말!”
유태종은 또 다시 소파에 몸을 늘어트린 김경원에게 바짝 다가앉는다.
김경원은 가방을 열더니 주섬주섬 몇 가지 서류를 뒤지다 A4 용지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려 놓는다 .
“본명 이태우,
1972년 9월생 본적,
서울시 도봉구 학력,
서울대 영문과 2년.
휴학 후
1993년 2월 논산 훈련소 입소,
퇴소시 육군 제 1 훈련소 소장상 수상,
특전사 11 여단 배속,
1994년 7월 훈련 중 사망,
훈련 중 익사사고로
사체는 찾지 못함.”
김경원이 A4 용지에 적혀있는 자료를 순서대로 읽고 있는 동안 유태종은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72년생이라면...
‘백두 작전’ 당시에
스물세 살에 불과한데...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경원아!
이 건 아니야!
니가 뭔가 잘못 짚었나보다.”
“물론! 말이 안 되지!
불과 나이 스물 셋에 상병밖에 안되는데
북파작전에 동원될 수가 없지!
상식적으로는...
훈련소 소장상을 받을 만큼 훈련성적이
뛰어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파공작에...
아니 그것도 일반 작전이 아닌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고,
미국 CIA까지 참여한 작전에
입대한 지 1년밖에 안된 육군 상병이
참여할 수는 없지!
태종아!
그럼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거꾸로?
역으로 상황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잔 말이지?”
“그렇지!
현재 시점부터 반대로
하나하나 짚어가 보자.”
김경원은 다시 가방을 열고 큼지막한 대학노트를 꺼낸다.
대학노트의 중간쯤을 펼치고 비어있는 페이지의 정 중앙에 영어 알파벳 두자를 적는다.
첫 글자는 ‘H’이고 다음 글자는 ‘E’이다.
‘HE'
그는 누구인가?
옆에 앉아 김경원의 행동을 지켜보던 유태종이 장난삼아 손가락으로 'H'자 옆에 'S'자를 그리자 김경원은 ’피식‘하고 웃는다.
“이 이태우가 사라진
그 한 명이라는 근거는?”
“니 94년에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김일성이 죽었고 핵 위기인가해서
전 세계가 시끄러웠었잖아.”
“그리고..
그 해 6월에 강화도에서
무장공비 소탕했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난 적이 있어.
해병대가 소탕했는데 재미있는 건
임진강 맞은편에 있는
1 사단에서 일어난 일이야.”
“그래!
내가 임관해서 첫 야전지가
1 사단이라서 잘 알지.”
“94년 6월 13일,
1사단 7연대 작전일지에 초병이
민간인 다섯 명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해병대가 무장공비를 소탕한 같은 날이야.
네 명은 양호한데
그 중 한 명이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고 나와 있어.”
“그런데...”
“며칠 전, 그 부대에 근무했던 초병을 만났지.”,
“그래서...”
“그 초병 말이...
다른 네 사람은 나이가 삼십 전후인데
머리에 부상당한 그 한 명은
자기 나이 또래밖에는
안보였다는 거야!
너무 어린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거야!”
김경원의 얘기를 듣던 중 유태종은 갑자기 갈증이 생기는지 생수병을 들이킨다.
“94년 7월, 8월 두 달 동안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조사해 보니
모두 7건에 8명이야.
그 8명중에 유일하게
이태우만이 사체가 없다는 거지.”
“그럼? 그 때 죽은 거 아냐?”
“그렇다면...
기무사 보고서는 다르게 쓰였겠지.
다섯 명 귀환,
그러나 한 명은 복귀 중 사망이라고...
문제는 공식보고서에는
귀환자가 네 명이라는 거야!
무슨 이유에선지 한 명을
고의로 누락시킨 거지!”
“그러면 그 이태우는 살아있다!”
“내 결론은 그래!
그가 돌아온 거야!”
그러면서 김경원은 소파에 늘어트린 몸을 반듯이 세우더니 테이블에 있는 매직펜을 들어 잡지에 글자를 적어나간다.
‘HE = 이태우 = ?’
국정원 제 1국 #4 회의실.
지난번보다 두 사람이 늘어난 여덟 명이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다.
스크린에는 큰 글씨가 비추어져 있다.
‘HE = 이태우 = ?’
“지금까지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 HE는
이태우가 분명합니다.”
“HE는 94년 6월 이후
대한민국에서 사라졌습니다.
HE에 대한 인적사항은
화면에 보시는 것처럼
군 입대전의 사진과 이력들입니다.”
스크린은 화면이 바뀌어 이태우의 대학과 고등학교시절 사진이 슬라이드 되어 지나간다.
“영등포경찰서 고동민입니다.
제가 질문을...”
“허실장!
이 회의에 민간인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
청와대 경호실 김상득 실장이 영등포경찰서라는 말에 잔뜩 인상을 찌프린다.
“지금은 이 것 저 것
따질 때가 아닙니다!
고 반장!
계속하세요!”
고동민이 말이 이어가려하자 깎아지른 머리에 현역 군인의 냄새가 물씬 나는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북한 보위사령부 제 1 국 소속의 김태석 대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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