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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456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1 17:35
조회
364
추천
5
글자
11쪽

第 二 章 인연(因緣) -5

DUMMY

-5-


그날도 김중선은

오전 중엔 평상에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다가

미시(未時) 무렵 출출함을 느끼고

거의 매일 찾다시피 하는

장터의 주막으로 갔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김중선과 말을 트고 대화를 하는 주모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김중선이 의원을 열고 육 개월 가까이

점심 끼니를 매번

이곳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를 맞이하는 주모의 환한 얼굴은

그리 이상한 풍경도 아니었다.


김중선은 국밥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주막집 평상에 앉아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날은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어서

그의 주변은

각지에서 흘러들어 온 장돌뱅이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돼지의 내장과 뼈로 국물을 낸

걸쭉한 국밥이 그의 앞에 당도하고

막 한 숟갈을 입에 가져갈 즈음,


마당의 평상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장터의 분위기에 들떠 있던

다섯 살가량의 사내아이가

날카로운 비명 한 줄기를 내지르며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지던 아이의 머리가

평상의 모서리에 세게 부딪히면서

어디 안 좋은 곳을 다쳤는지

작디작은 이마에서

새빨간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쓰러진 아이는 주모의 손자였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피붙이의 급박한 재앙에

분주히 국밥 그릇을 나르던 주모가

놀라 소리를 지르며

소반을 내던지고 아이에게 달려왔다.


할머니 품에 안겨 혼절해 있는 아이는

이미 눈의 흰자위가 돌아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주모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아이의 몸을 마구 흔들었고,

주모의 처연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어린아이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재앙 주위로

주막의 손님들을 비롯한

장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흔들지 마시오. 잠깐 봅시다.”


수십 명의 사람이 황급히 몰려들었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애만 태우고 있던 그 순간,


뒤쪽에서 낮고 힘 있는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침착한 눈빛을 한

김중선이 서 있었고,

비키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서둘러 길을 열어 주었다.


김중선은

울부짖는 주모에게서 아이를 받아

상태를 살펴보았다.


김중선은 침착하게

아이의 목 근처 맥을 짚어 보고

눈과 귀, 입 주위를 차분하게 살펴보더니

느닷없이

한 손으로 아이의 다리 하나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려서

아이의 등을 세차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김중선의 오른손이

아이의 등을 다섯 번 정도 내려쳤을까?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작고 단단한 것이 토해져 나오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토사물의 상태로 보아

아이의 목을 막고 있던 것은

빈대떡 조각으로 보였다.


기도를 막고 있던 단단한 것이

겨우 몸 밖으로 빠져나오자

아이는 몇 번 컥컥거리다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김중선은 아이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

바로 옆 평상에 바른 자세로 앉혀 놓고

목 주위를 주무르면서

아이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도록

몸 구석구석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숨쉬기를 매우 힘들어하던 아이가

서서히 호흡을 회복하면서

잠시 후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미약하게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그제야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는지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김중선은

이제 되었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주모의 손을 잡아끌어

아이를 안아 주게 했다.


주모는 아직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다시 살아난 손자가

자신의 품에 안겨 힘차게 울기 시작하자

대견하다는 듯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번의 눈물은

비탄의 눈물이 아니라

안도감이 가져다준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이가 할머니 품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울음을 그치자

김중선은 다시 아이를 받아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아이의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이

찢어진 자리에서

처음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중선은

우선 자신의 소맷자락을 찢어서

상처 부위를 강하게 누르며 지혈하고,

허리춤에 찬 약주머니에서

고약 하나를 꺼내

어느 정도 피가 멎은

아이의 상처에 붙이고는,

주모에게 깨끗한 무명천을 청해

아이의 머리를 단단히 묶어 매었다.


모든 응급처치가 끝나자,

피도 멎고 아픔도 어느 정도 가셨는지

아이는 김중선의 얼굴을 보며

생긋 웃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김중선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무척이나 따뜻한 목소리로

자상하게 말했다.


“운이 좋구나, 꼬마야.”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 보게 되자

주모를 비롯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어린 생명 하나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사실에

다 같이 어울려 기뻐하였다.

어떤 이는 감격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이든 사고든 간에

어린아이가 화를 당하면

그저 운이 없음을 탓하며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장터의 민초들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하고 감동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중선은 따뜻한 물 한 그릇을 청해

아이에게 천천히 마시게 하더니

다시금 평상에 눕히고

품속에서 침통을 꺼내

손과 발 주변에 침을 놓았다.


아이는

김중선이 꺼내 든 생경한 물건을 보고

잠시 두려워했지만,

‘아프지 않다’는 그의 말에 안도하면서

편안하게 누워 침을 맞았다.


침을 맞은 후,

따뜻한 죽을 한 사발 맛있게 비운 아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맑은 얼굴로 다시 주변을 뛰어다녔다.


급박했던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이 모든 치료가 끝나기까지

약 일각(一刻)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긴장하며 애태우고 있던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손자를 살려 준 김중선에게

주모는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가

뜨다 만 국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린 생명 하나를

생사의 기로에서 건져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생색 한 번 내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식은 국밥을 먹고 있는 김중선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경외’에서 ‘존경’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


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다 비운 김중선이

값을 치르려고 주모에게 다가서자

주모가 황급히 사양하며 말했다.


“나리,

이 무슨 황망하고 해괴한 경우랍니까?

제 목숨보다 소중한 손주를

살려 주신 분에게

그까짓 국밥 한 그릇 값을 받으라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푸짐하게 한 상 차려 올리겠으니

술이나 한잔 더 하시고 가세요.


치료비랑 약값은 일단 이걸 받으세요.

지금까지 판 오늘 매상 전부입니다.

혹시 모자라면

얼마 남았는지 알려 주셔요.

이따 파장할 때까지 열심히 더 팔아서

댁으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주모가

허리춤에서 엽전 열 닢 정도를 꺼내어

김중선의 손에 쥐여 주자,


김중선은

주모에게 받은 돈을

정중하게 되돌려주면서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아이들의 치료비나 약값은

받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의원이 된 후로

죽을 때까지 반드시 지키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의원으로서의 도리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 쓰지 마세요.

의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국밥 값이나 받으세요.”


김중선의 신념이 느껴지는 대답에

주모는 감동을 받았는지

그의 손을 꼭 잡고서

허리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의 표정도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요즘 세상에

저런 경이로운 행동을 한단 말인가.


김중선은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많은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얼른 국밥 값을 치르고

돌아가려 서둘렀다.


눈물을 흘리고 있던 주모가

몸을 돌리려는 김중선의 손을

다시금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안 됩니다.


나리의 높고 깊은 뜻을

저 같은 천한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야 없겠지만,

저한테도 도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디 제 식대로 은혜라도 갚게 해 주세요.

기어코 값을 받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제일 맛나고 좋은 음식에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비록 장터에서 국밥이나 말고

술이나 파는 미천한 재주지만,

그래도 이 거리에선

제법 인정받는 솜씨랍니다.


이것만큼은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주모의 단호한 말에

김중선은 잠시 난감한 눈빛을 보였으나

이것만큼은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들겠다고 느꼈다.


“알겠소. 술은 먹고 가리다.

다만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적당히 차리세요. 적당히.”


김중선이 마지못해 허락하며

다시 자리에 앉자

주모는 기쁘게 웃으며

음식을 장만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주막의 손님들 중 보부상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구의 사내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주가 담긴 술병을 들고

김중선에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나리,

나이도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제가 등짐을 지고

조선 팔도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 봤지만,


나리처럼 신묘한 기술을 지니신 분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거기에 덕망까지 있으시니······


제가 존경의 표시로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십쇼.”


난생처음 보는 장돌뱅이 사내가

술을 권하자

김중선은 무척 당황했으나,

사내의 진지한 눈빛을

무시할 수도 없는 터라

매우 쑥스러워하며

어색하게 사내의 잔을 받았다.


장돌뱅이 사내가 첫 단추를 끼우자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다가와

너도나도 김중선에게 술을 권했다.


신이 난 주모가

상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하게

음식을 내오자

김중선을 둘러싼 주변은

순식간에 흥겹고 즐거운 잔치로 변했다.


처음엔 자신을 둘러싼 생경한 분위기에

매우 어색해하던 김중선도

술 몇 잔이 들어가고

자신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호의가 계속되자,


기분이 무척 좋아졌는지

흥에 겨워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사고를 계기로

예정에 없이 벌어진

그날의 잔치는

파장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이날의 첫 치료를 계기로

김중선은 드디어

홍주 땅의 민초들 틈으로

녹아들게 되었고,

의원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1 ys******..
    작성일
    23.07.26 17:56
    No. 1

    오랜만에 차분하고 몰입도 높은 작가님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건필하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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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第 二 章 인연(因緣) -21 20.11.11 303 2 14쪽
35 第 二 章 인연(因緣) -20 20.11.11 299 4 4쪽
34 第 二 章 인연(因緣) -19 20.11.11 298 4 11쪽
33 第 二 章 인연(因緣) -18 20.11.11 339 4 8쪽
32 第 二 章 인연(因緣) -17 20.11.11 314 3 9쪽
31 第 二 章 인연(因緣) -16 20.11.11 312 3 4쪽
30 第 二 章 인연(因緣) -15 20.11.11 324 4 2쪽
29 第 二 章 인연(因緣) -14 20.11.11 316 2 6쪽
28 第 二 章 인연(因緣) -13 20.11.11 324 3 3쪽
27 第 二 章 인연(因緣) -12 20.11.11 344 5 14쪽
26 第 二 章 인연(因緣) -11 20.11.11 338 4 10쪽
25 第 二 章 인연(因緣) -10 20.11.11 355 3 10쪽
24 第 二 章 인연(因緣) -9 20.11.11 360 4 10쪽
23 第 二 章 인연(因緣) -8 20.11.11 353 4 8쪽
22 第 二 章 인연(因緣) -7 20.11.11 348 6 5쪽
21 第 二 章 인연(因緣) -6 20.11.11 350 4 3쪽
» 第 二 章 인연(因緣) -5 +1 20.11.11 365 5 11쪽
19 第 二 章 인연(因緣) -4 20.11.11 373 4 5쪽
18 第 二 章 인연(因緣) -3 20.11.11 366 5 3쪽
17 第 二 章 인연(因緣) -2 20.11.11 367 4 7쪽
16 第 二 章 인연(因緣) -1 20.11.11 383 4 11쪽
15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9) 20.11.10 380 6 3쪽
14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8) 20.11.10 383 5 7쪽
13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7) 20.11.10 385 6 8쪽
12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6) 20.11.10 399 6 4쪽
11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5) 20.11.10 398 6 2쪽
10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4) 20.11.10 401 7 3쪽
9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3) 20.11.10 410 6 5쪽
8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2) 20.11.10 446 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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