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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작품등록일 :
2018.04.09 10:17
최근연재일 :
2018.09.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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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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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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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0,153

작성
18.04.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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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3. 외계인에 관한 변명

DUMMY

「외계인이라고요?」


조금 전까지 존경어린 눈길로 날 쳐다보던 류미정의 얼굴에 허탈함이 차올랐다. 역전 광장 한가운데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가 좀 길어져 있다. 습관처럼 그림자 반대쪽을 올려다보았지만 역시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역 광장에만 오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이지도 않는 태양을 꼭 확인하게 된다.


그나저나, 좀 파격적인 가설이었나? 류미정이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나는 재빨리 부연설명에 들어갔다.


「그래. 신고 때 피해자의 진술을 백 퍼센트 신뢰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세 가지야. 첫째, 어떻게 윤시연의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가. 둘째, 점자 메시지는 누가, 어떻게 윤시연에게 전달했는가. 셋째, TANTAN 트럭은 어디에서 왔는가.」


류미정의 표정이 시큰둥한 것으로 바뀌었다. 무례하다는 주의를 주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한 번 노려보자 마지못한 표정으로 질문한다.


「그럼 범인은요? 범인을 찾아서 잡아 처 넣어야 사건이 해결되는 것 아닌가요?」 볼멘소리로 말하니 발음이 불명확해져 잘 들리지 않았다. 한 마디 해 줄까 하다가 참고 말을 이었다.


「사건의 해결이란 범인 검거를 포함, 모든 개별적인 것들의 인과 관계가 명확해졌을 때를 말하는 거야. 내가 말한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범인의 윤곽도 드러나게 될 거다.」


류미정이 한번 콧방귀를 뀌더니, 이번엔 비웃음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소녀에 대한 살해 위협이 아니라 외계인의 인간 포획인 건가요.」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말했다. 「외계인이란 말에 그렇게 냉소적인 이유가 뭐야? 생각해 보라구. 시간을 역전시키고,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보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트럭으로 교통사고를 낸다면 다른 세계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나, 응? 우리 도시에서 드문 일도 아니고 말이야.」


이 말에는 류미정이 눈을 동그랗게 뜰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 말에 어폐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드문 일이 아니라는 말은 과장이었다. 나는 유사 사건, 아니 유사하다기보다는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초자연현상이나 이에 관련된 범죄 케이스를 다수 알고 있었지만 이 도시의 것은 극히 적었다. 대부분 책이나 사건 자료로 읽은,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의 것이었다. 류미정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히 물고 늘어질만 한데,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보다 사실 지금 막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지금 외계인이란 말과 개념을 내가 사용한 것일까? 경찰 생활 하면서 외계인이란 말을 입밖에 내본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내가 추정한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외계인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이 세계 밖의 세계가, 외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왜 외계인이란 말이 내게는 낯설게, 류미정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것일까?


나는 혼란을 느끼며, 감정이 고양된 채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아. 열차를 타도 보통은 이 도시 안에서만 왔다갔다 할 뿐이지. 그러면서도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배워. 우리의 역사는 우리 도시보다 훨씬 큰 것을 이야기해. 우리의 세계 역시 그렇지 않겠나? 우리 도시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도시가 설명해 주는 것이 이상하지 않듯, 우리 세계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사건을 다른 세계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거지.」


가만, 우리? 류미정 경장이 어느 도시 출신이었는지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외계인이······ 그런 의미였어요? 그럼, 납치는 뭔데요?」


「다른 세계에서, 혹은 다른 세계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야.」


「하지만, 단순 납치가 아니라 죽이려고 하는 거잖아요.」


「때론, 버려지기 위해 필요한 존재도 있는 법이지.」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류미정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며 무너지는 그녀의 몸이 참 작다고 생각했다. 그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잡아냈지만, 깃털처럼 가벼워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뒤로 꺾어진 그녀의 하얀 목덜미 위에 내 그림자가 만든 그늘이 유독 서늘해 보였다.


보이지 않는 태양이 광장 한 가득 햇살을 토하며 뜨겁게 타올랐다.


*


다행히 근처에 도시의 시립병원이 있었다. 류미정을 응급실로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사병 걸릴 만큼 더운 날씨는 아닌데. 포도당 주사 하나 맞고, 좀 쉬면 괜찮을 겁니다. 의사의 말이 그닥 미덥진 않았지만, 미정의 잠든 얼굴에 약간 홍조가 돌아온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긴 했다.


병원 건물 구석 흡연장을 찾아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요즘 유행하는 가짜 담배 맛이 났다. 이걸 언제 샀지? 피우던 담배가 다 떨어진 기억도 없었다. 나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우지 못하고 꽁초를 비벼 끄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병원 내라 그런지 흡연장은 흡연장 같지 않게 깔끔했다. 마치 흡연장 사진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찌든 담배 냄새는 전혀 없이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만 느껴졌다. 쓰는 사람도 없고, 여기도 곧 없어지겠군. 나는 다시 한 대를 꺼내 피워 물고 그 밋밋한 맛을 느끼며, 미정의 아버지 류준을 떠올렸다.


— 구형사, 저놈 좀 잡아줘. 나, 난······ 저놈을 잡아야 해. 저놈이 내 딸을 죽였어······.


— 선배님, 선배님! 정신 차리세요!


복부에 총을 두 발이나 맞고 피를 쏟으며 류준은 내 품 안에서 허우적댔다. 내가 류준을 겨우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범인이 류준에게 총을 쏘고 멀리 달아나버린 후였다. 골목 저 멀리 희미하게 그자의 뒷모습이 언뜻 보인 듯도 했지만, 쫒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배에서 바가지로 퍼내듯 피를 흘리는 류준을 들쳐 업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 선배님! 조금만, 거기 조금만 막고 계세요. 병원, 병원에 가야 합니다!


— 안돼. 구형사, 저놈을······. 아흑, 내 딸을···.


정신없이 뛰다 보니 류준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나는 그를 내려 놓고 한쪽 팔로 고개를 받쳐 들었다.


— 선배님? 선배님? 눈 좀 떠 봐요!


— 구형사, 미정이, 미정이를 좀······ 부탁하네. 내가 주제넘게··· 아빠 노릇도 못 하고······.


— 선배님,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아녜요. 미진이한테도, 미정이한테도 좋은 아빠셨어요.


— 아냐, 아냐······. 난 미정이 아빠가 아냐······ 미정인, 내 딸이 아냐. 불쌍한 자식······. 미정일, 미정일 부탁하네. 미안해. 자네도, 미정이도······.


이 말을 마지막으로 류준은 숨이 끊어졌다. 딸을 죽인 살인범을 잡기 위해 쏟아 부은 그의 인생 마지막 5년은 그렇게 무위로 돌아갔다. 나는 신음속에 유언처럼 남긴 그의 두 유지를 모두 떠안았다. 살인범을 잡는 것, 류미정을 맡는 것.


사실 내가 류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류준은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유독 류미정에게만. 좋은 아빠는 고사하고, 류준은 류미정에게 가혹했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굳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식을 부정해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자기 딸이 아니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류미정은, 열 여덟살에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살해당한 언니 류미진과 일란성 쌍둥이였다.


— 애들이 좀 일찍 나왔어. 탯줄을 자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온통 피투성이라 정신도 없고 너무 작아서 첫애밖에 안 보이더라구. 자르려고 가위를 댔는데, 간호사가 질겁을 하면서 막는거야. 내가 둘째 애 모가지에다 가위를 대고 있었던 거지. 하마터면 그놈 숨통을 내 손으로 끊을 뻔 했어.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씁쓸하게 웃음을 씹었다. 그런 그를 옆에서 쳐다보니 온몸에 냉기가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 그때부터 이상하게 정이 안 가. 내가 한때 얘를 죽이려고 했다,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는 거야. 걔 아빠가 될 엄두가 안 나더라고.


난 말없이 바닥에 침을 뱉았다. 그를 혐오하지는 않았지만, 속이 뒤틀려옴을 느꼈다. 그가 낯설었다. 인간같지 않은, 다른 세계의 인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외계인. 그때 바로 그 단어를 떠올렸었다.


그게 그의, 외계인의 방식이었을까. 류준은 철저히 류미정을 첫째딸 류미진의 그림자로 키웠다. 마치 딸 하나와 그애에게 선물한 인형 하나처럼. 그에게 있어 류미진은 사랑, 육아, 교육 등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쏟는 모든 감정과 행위의 기준이었고 최종 결과여야만 했다. 류미정은 류미진에게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기 위한 제반 과정의 테스트베드일 뿐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미정은 아버지로부터의 이런 감질나는 사랑에 만족하고 고마워했다. 안쓰러울만큼 자기 아버지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사랑했다. 류준은 이 때문에 미정을 더욱 더 질색했다.


— 난 걔를 미워하는 게 아냐. 무서워하는 거지.


류준은 그렇게, 변명처럼 말했었다. 변명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작가의말

34화에서, 한울은 중요한 단서를 잡아냅니다!

근데 그게 잘못 걸린 전화에서라구요.....? ‘>’ 클릭하여 확인!

선작 고정! 아리까리하면 1회부터 정주행! (시간 얼마 안 걸려요 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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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루프아티스트 - 33. 외계인에 관한 변명 +2 18.04.28 58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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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진수 (1) +5 18.04.19 538 6 9쪽
17 저쪽의 나 +6 18.04.18 524 7 9쪽
16 두 의사 +5 18.04.18 554 7 11쪽
15 금기(禁忌) +5 18.04.17 559 8 8쪽
14 함정 +5 18.04.17 507 6 7쪽
13 시뮬레이트 +5 18.04.16 548 7 8쪽
12 루프 오너 +3 18.04.16 505 8 9쪽
11 병실 +5 18.04.13 574 8 8쪽
10 디폴트 +3 18.04.13 526 7 8쪽
9 연인들 +4 18.04.12 612 9 10쪽
8 모든 것이 하얗게 +3 18.04.12 550 8 7쪽
7 시간 오류 +3 18.04.11 585 7 10쪽
6 카페 언디파인드 +1 18.04.11 579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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