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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작품등록일 :
2018.04.09 10:17
최근연재일 :
2018.09.18 22:44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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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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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글자수 :
270,153

작성
18.04.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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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카페 언디파인드

DUMMY

— 한울아.


— 한울아, 한울아. 일어나렴.


엄마.


엄마, 엄마. 어디 있어요.


— 한울아. 거기 있어. 거기 그냥 있어야 해.


엄마, 나도 엄마한테 갈래. 나도 데려가.


— 안 돼. 엄마 찾으면 안 돼. 엄마 가는거 아냐. 엄마 거기 있어.


거짓말. 안 보여. 이미 갔잖아.


— 한울아 눈 떠. 눈 떠봐 한울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 봐, 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울은 뿌드득 이를 갈며 번쩍 눈을 떴다. 눈앞이 여전히 흐릿하고 시력이 쉬 돌아오지 않는다. 진입한건가?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캡슐의 커버를 밀어 젖혔다. 들어올 때와 같은 큐비클이었다.


‘정말 불친절한 진입기로군.’


눈을 깜박여 보았다. 진입이 성공한 것이라면, 아마 현실의 두 눈과 몸 전체에는 지금 날카로운 전극들이 빼곡히 박혀 있을 것이었다. 마치 고슴도치 같겠지. 다신 보고 싶지 않아. 한울은 진저리를 치며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신기하게도 옷은 입은 채였다.


‘어차피 옷까지 입혀서 진입시킬 거라면··· 캡슐이며 큐비클은 뭐하러 시뮬레이트하는지.’


어쨌거나.


생소한 진입기에 잠시 식겁했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 같았다. 캡슐도, 캡슐 밖도 진입소의 큐비클과 같은 모습이지만 이곳이 아까와는 다른 장소, 진입소에서 루프로 들어오는 정거장임은 확실했다.


한울은 큐비클을 나서며 숨을 훅 들이켰다. 마인드루프에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마인드루프 진입이 매력적인 경험인 것은 인정해야 했다. 잠깐이지만, 다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 정확히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가상과 실제를 구별할 수 없는,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 둘이 오롯이 같은 것이 되는 공간.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튜링 역 대합실로 들어섰다.


대합실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마인드루프 진입 작전 때마다 항상 들르는 곳이긴 하지만, 작전 중에는 대부분 진입 즉시 목표하는 용의자를 찾아 플랫폼루프의 주거-상가 밀집지역으로 이동해야 했으므로, 오늘처럼 누굴 기다리거나 하면서 튜링 역에서 시간을 때우기는 처음이었다.


튜링 역은 현실세계 진입과 복귀에 사용되는 진입소가 모여 있는 곳이지만, 다른 개인 마인드루프로의 이동을 위한 마인드트레인 열차가 운행되는 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열차편은 튜링 역 출발 편도 열차다.


마인드트레인을 타고 다른 개인 루프로 이동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스피릿은 비각성 상태로 전환, 현실 세계의 기억을 잊고 도착한 루프의 세계만을 유일한 세계로 인지하게 된다. 개인 루프 내에서의 각성 상태 유지 권한은 마인드테크 관계자나 사전 허가된 공무 목적의 방문자만으로 한정되는 데 반해, 플랫폼루프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스피릿의 각성 상태가 강제되고 있었다.


이 대합실이 스피릿으로 북적거릴 날이 올까.


장사인이 말했듯 합법사용자 20만, 불법 5만 합하여 총 25만명으로 중소도시급의 인구를 자랑하는 마인드루프지만, 절대 다수는 개인 루프에 바인드되어 루프가 제공하는 나름의 세계 안에 속한 스피릿들이므로 튜링 역에서 출발하는 마인드트레인 열차 사용은 드물었다.


마인드테크는 일반 공개 직전 법안 통과를 확신하고 튜링 역 및 플랫폼루프 확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일반 공개 후 레저나 유흥 목적의 1회성 사용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 플랫폼루프의 유동 인구도 튜링 역 주변의 전문상가나 위락시설 쪽 위주로 증가하긴 했지만, 튜링 역 마인드트레인의 수요는 늘지 않았다. 플랫폼루프에서 레저나 유흥을 즐기려고 진입한 사용자들이 개인 루프로 이동할 일은 없었고, 이동이 필요한 개인 루프 개설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경향에 따라 마인드테크의 사업 방향도 플랫폼루프에 한정된 레저나 휴양으로 이동하게 되어, 정작 큰 돈이 되는 의료/요양 목적의 개인 루프 사업은 조금씩 위축되고 있었다.


공허함이 느껴질 정도로 텅 빈 대합실에서 천정을 올려다보며 잠시 서 있다가, 한울은 대합실 한 켠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한울은 카페 이름만 보고도 여자가 이곳으로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카페 언디파인드입니다.」



*



커피를 한 잔 주문하여 테이크아웃 컵에 받아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이 울렸다.


「반가워.」


「그래···요. 얼굴 보기 힘들군요.」


「나는 그쪽 이미 봤는데.」


「엇, 어디에 있는 겁니까?」


「주문받은 아가씨 눈으로.」


주문을 받았던 점원이 갑자기 달려와 한울의 앞에 앉더니 생긋 웃었다. 심드렁하게 주문받을 때와는 다르게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아까는 시뮬레이트였나.


「이런 짓 하지 말아요. 무단 컨테이너 변경은—.」


「불법이 아니지. 아직은.」 점원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마인드루프 내 컨테이너(시뮬레이트되는 몸을 말한다) 외양 임의 변경 및 다른 시뮬레이트 나 스피릿과의 컨테이너 교환 제한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 곧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바보들이야. 왜 할 수 있는 걸 못하게 하려고만 하지.」


「쓸데 없는 기능이니까. 마인드루프 내에서 신원 확인도 어렵고. 당하는 AI스피릿 입장도 생각하셔야지.」


「어머나, AI 권익 운동가야 당신?」


「그건 아닌데, AI 스피릿으로 숨어든 양아치 잡느라 골치 썩은 적이 있어서.」


「실망이네. 마인드만 괜찮았으면 반할 뻔 했는데.」


「나 역시. 지금 그 컨테이너,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으응. 맘에 들어? 카페 알바 스타일 해본 건데.」


「응. 몸 주인한테 전해줘. 내 스타일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앞에 앉은 점원은 꽤 괜찮은 스타일의 미인이었다. 속눈썹 짙은 약간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혹적이었다. 발랄해 보이는 알바 옷차림에 비해 말투나 행동거지는 그리 어려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해야 하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이었다— 인간이라면 그렇단 얘기다. 실제로는, 컨테이너 디자이너에 의해 잘 프로그램된 생체 이미지일 뿐이다.


점원이 한울을 한 번 흘겨보더니 말했다. 「가 볼까 그럼. 시간은 얼마나 있어?」


「무슨 시간?」


「나랑 데이트할 시간. 맘에 든다며.」


이번엔 고개를 까딱하며 또 생긋 웃는다.


가슴이 약간 뛰는 것 같았다가, 이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복지부 안내데스크에서 미친 놈 취급을 받고, 장사인에게 뜬금 없는 전배 소식을 듣고, 살인기계같은 미확인 진입장치에 식겁한데다, 이번엔 컨테이너 바꿔 가며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여자 파트너까지······. 오늘 하루의 짜증이 갑자기 한꺼번에 치밀었다.


「이것 보세요 미스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나 일하러 온 거야.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정색을 하고 한 마디 쏘아붙였더니, 여자가 잠시 움찔했다.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더니 조그많게 중얼거린다.


「알았어, 잘생긴 아저씨. 성질은 별로네.」


「······ 일단 자초지종이나 들어 봅시다. 원장은 남은 설명을 그쪽한테 들으라던데.」 한울은 조금 머쓱해져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원장님하고는 통화했어. 해줄 말은 다 해줬던데 뭘. 오늘부터 나랑 일하면 돼.」


「이봐요. 나는 이미 파트너가 있어요. 그리고 아마추어랑은 일 안해.」


「응? 아니야. 진흥원 실무 팀원은 그쪽이랑 나랑 둘 뿐인걸.」


「특수인지범죄 강력수사팀이 전부 이쪽으로 온다던데?」


「풉. 그걸 믿어? 뻥이야. 원장님 희망사항이지. 정직원은 원장님이랑 나랑 둘 뿐이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한울은 입을 벌리고 잠깐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소심하게도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그럼 나는?」


「아저씨는 임시직. 진흥원 요청으로 경찰에서 파견나온 복지부 임시 직원이지. 아, 혹시 경찰 뱃지 벌써 버린 건 아니지? 듣자하니 그쪽한테 5급 어쩌구 저쩌구 허풍 떤 것 같던데.」


「······.」


「됐지? 그럼 출발하자구.」 점원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 그 몸으로 가시려구? 카페 알바 스타일로?」


허탈한 마음에 한울은 한껏 빈정거리며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녀가 카운터로 걸어가던 몸을 돌리고 한울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 몸이 어때서? 마인드루프 전문 경찰이라더니 눈썰미 하고는.」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완전히 한울 쪽으로 돌아서 카페 로고가 그려진 앞치마를 벗어 차곡차곡 접더니 손에 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소개할게. 보건복지부 국민정신건강진흥원 소속, 사무관 류미정이야. 이 컨테이너는 내 거고. 참고로 5급이지. 오. 급.」


플랫폼루프의 시뮬레이션이 만들어낸 오후 햇살이 그녀의 등 뒤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카페 실내를 눈부시게 채웠다.


멋진 여자와 어울리는 멋진 광경이었다 — 하나도 진짜 같지 않을 정도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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