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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작품등록일 :
2018.04.09 10:17
최근연재일 :
2018.09.18 22:44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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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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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0,153

작성
18.04.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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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두 의사

DUMMY

「정 선생, 정 선생. 정신 차려!」


현기준이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정인철을 깨웠다. 인철이 깨어나며 가장 처음 느낀 감각은 뺨의 얼얼함이었다. 이렇게 세게 때릴 필요는 없잖아? 현기준이 자신을 깨우며 뺨을 때릴 땐, 왠지 진심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기준은 「네가 나 깨울 땐 더 아프게 때리거든?」 이란 말로 가볍게 받아치곤 했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좀 살살 하자, 응?」


정인철이 침상에서 일어나 앉으며 툴툴거렸다. 현기준은 정인철의 안색을 한번 살피고 씨익 웃더니, 침상 머리맡의 계측기로 눈을 돌려 메트릭을 읽으며 차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2062년 11월 25일 16시 0분부터 11월 25일 18시 27분까지. 총 2시간 27분 진입 유지. 현재 심박수 132, 체온 36.8······. 뭐야, 심박수 좀 높은데? 안에서 뭐 하다 온 거야?」


「아 됐어. 내가 환자도 아닌데. 이번에도 고마웠다. 이만 가볼게.」


「정 선생. 좀 수상해. 도대체 진입해서 뭘 하길래 매번 디폴트에 빠지는 거야?」


정인철은 현기준의 말은 무시하고 그의 손에서 차트를 홱 낚아챘다. 그리고 입고 있던 수술복 위에 가운을 대충 걸치고 진입실에서 나왔다. 문을 닫으며 뒤돌아 보았을 때 양미간을 찡그린 기준이 소리쳐 묻는 것이 보였다. 「정말, 위험한 짓 하는 거 아니지?」


휴, 그나마 저 녀석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정인철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인철과 기준은 평범한 친구 사이였다. 물론 학부 시절에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경쟁 관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철이 신경외과로, 기준은 정신과로 진로가 갈라지면서 그 경쟁은 많은 부분 무의미해졌고 둘은 친구로서는 가까워졌고 학문적으로는 멀어졌다. 둘 사이의 관계가 그 반대로 - 학문적으로 가까워지고 친구로서는 멀어지는 - 전환되는 계기는 2년 전, 기준이 뜻밖의 선언을 하면서부터였다.


— ‘프로젝트 언디파인드’에 조인하기로 했어.


— 뭐? 그 프로젝트가 아직도 살아 있어? 요즘 뭐 하는데?


— 예전이랑 같지. 브레인스캐닝 및 역스캐닝 연구, 스캔기반 AI 스피릿 기술 개발 등등. 그리고······.


— 그리고?


— 마인드루프 응용 정신질환 치료.


— 뭐? 마인드루프라면 질색하는 놈이 웬일이래. 의학적 소신이 바뀐 거야?


— 뭐, 그런 건 아닌데······. 어쩔 수 없게 되어 버렸어.


— 무슨 일인데?


— 내 환자가······ AI 스피릿 같아. 마인드루프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



정인철이 황급히 나가 버린 후에도, 현기준은 잠시 동안 인철이 누워 있던 침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휴식이 필요했다. 류미정이 루프에 진입해 있던 7시간동안 한시도 쉬지 못했는데, 미정이 복귀하자마자 정인철이 자신의 개인 진입 모니터링을 부탁해 왔다. 마인드루프 치료 기술 연마를 위해 전공의들은 수시로 직접 진입을 하고, 이 때 동료의사들이 모니터링을 해 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루프 내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이 진입해 있는 사람의 브레인 손상, 또는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응급처치를 위해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류미정이 루프에 진입해 있는 동안은 주치의로서 그녀가 걱정되어 통 쉴 수가 없었다. 루프 진입 후 복귀할 때마다 기준에게 불평하고 하소연하는 ‘다른 인격’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현기준은 미정 앞에서는 물론, 동료 의료진에게도 고집스럽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기준의 의학적 소견으로는 그것은 절대 다른 ‘인격’은 아니었으니까.


— 다른 인격이 아니라, 성격의 발현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현기준은 이렇게 말하며 미정의 두 인격을 부정했지만, 왜 굳이 미정의 경우에만 마인드루프 치료와 함께 이 ‘다른 성격 발현’ 증상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약물이나 알코올로 인한 일시적인 성격 변화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즉 다중인격장애가 아니다. 미정의 경우 다중인격이 아닌 성격 변화임이 분명했지만, 그 원인이 불분명할 뿐이었다. 초기 조현병 치료시 투약했던 클로자핀은 백혈병 증상이 나타나자 즉시 투약을 중지했고, 투약 시에도 지금과 같은 급격한 성격 변화가 관찰되지는 않았었다.


‘마인드루프 치료가 문제였을까? 아냐. 마인드루프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어.’


현기준은 마인드루프 회의론자였지만, 프로젝트 언디파인드에 합류하고 나서는 그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비약물 치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약물의 효능에 육박, 혹은 그 이상이었다. 특히 조현병, 정신분열증의 증상 개선에 있어서는 경이롭다고까지 할만한 임상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고통을 겪는 환자 앞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선입견 때문에 예상되는 효과가 명백한 치료방법을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준을 포함, 누구도 현재 미정이 겪고 있는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기준은 이 부작용 - 다중인격이든 성격변화든 - 에 대해 학계에 오픈하고 공개적인 논의를 할 수 없었다. 공공 프로젝트로 출발했던 프로젝트 언디파인드를 마인드테크가 인수, 민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마인드루프 시스템의 결함으로 귀결될 것을 우려한 회사측에서 공개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마인드테크 경영진은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외의 마인드루프 요법 임상사례에 대한 기준의 접근을 아예 차단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마인드루프의 결함이 아님을 임상사례연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고립된 상태로는······ 지속적인 치료가 불가능해.’


현기준이 프로젝트 합류를 결정한 것은 오로지 류미정이란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브레인스캔이니 AI 스피릿이니, 프로젝트 자체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서 딱히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프로젝트가 치료의 진척을 방해하는 굴레가 되어 버리니 환자의 치료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의사로서 열패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를 떠나 평범한 정신과 의사와 단지 좀 유별난 환자로서 류미정을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해 주고, 해 나가고 싶었다.


‘후우······ 안 될 일이지.’


불가능한 일이다. 류미정은 프로젝트 언디파인드의 시작이자 끝이다. 프로젝트의 본체, 자산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류미정의 정신 치료에는 소극적이라고 해도, 프로젝트 언디파인드와 마인드루프 간 연결고리의 가치를 고려하면 마인드테크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었다. 차라리 류미정의 치료만 프로젝트 외부로 따로 떼어 진행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성과가 썩 좋지 않고 프로젝트 참여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기준으로서는 마인드테크에 선제안할만한 입장은 못 되었다.


‘프로젝트 팀원으로서는······ 인철이라면 더 잘 해낼텐데.’


후, 한숨을 쉬어 김이 서린 안경을 재빨리 가운 자락으로 닦아 고쳐 쓰면서 기준은 조금 전에 문을 박차고 나간 정인철을 떠올렸다. 인철은 의대 시절부터 학문적으로 성공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학생이었다. 전공의가 되면서부터는 더욱 성과에 집착했다. 실제로 그의 전공인 뇌손상, 감각체계 복원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고, 그것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2~3년은 일찍 신경외과 임상조교수가 되었다. 그렇지만 내 환자 류미정을 신경외과 닥터 정인철에게 맡길 수 있을까?


‘안 될 일이야. 류미정 차트를 보자마자 머리 열고 뇌수술부터 하려고 들걸.’


그리고 미정의 두 인격 — 미정의 주장대로라면 — 중의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의사요 탁월한 써전이지만, 정신과적 마음 치료에 관해서는 무지했고, 스스로도 그 쪽으로는 가치를 두지 않았다. 정신과를 선택한 현기준에게 왜 그런 따분하고 피곤한 데로 가려고 하냐며 ‘네가 신경외과로 가면 너나 나나 인생이 좀 더 재밌어질 텐데.’ 라고 무례한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렇게 외과요법을 신뢰하고 있는 녀석이 요즘은 어쩐 일로 마인드루프 진입이 잦은지 의아했다. 물론, 한 실명 환자의 시각 복원 수술을 맡았고, 그 복원 수술시 사용되는 의료기기가 마인드루프 일부 기능을 응용한 브레인 대체 모듈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다. 획기적인 발명이었던 만큼 첫 수술이 성공적이어야만 했고, 그래서 최고의 브레인 써전인 정인철이 제일 먼저 컨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정인철 역시 당연히 이 제안을 수락했고 환자 맞춤 브레인 대체 모듈도 순조롭게 제작되었지만 웬일인지 집도를 맡은 정인철이 수술 일정을 계속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서울의 소속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대전의 정신건강센터로 옮기고 스스로도 마인드루프 응용 수술요법 연구를 핑계로 파견근무를 자처, 짐을 싸들고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정인철이 기준에게 자신의 마인드루프 진입 모니터링을 부탁한 것은.


— 잘 부탁한다. 마인드루프 박사님.


— 생뚱맞게 갑자기 웬 마인드루프? 이런 과 아니었잖아?


— 얘기했잖아. 이번 브레인 대체 시각 복원 수술, 최초의 마인드루프 응용 의료기기를 사용한다고.


— 집도의가 장치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마인드루프에 꼭 들어가야 해?


— 의사로서 환자 몸에 들어가는 장치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알고 있어야지. 안 그래?


— 맞는 말이긴 하지만 루프에 진입한다고 마인드루프 시스템의 동작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루프 안에 들어가는 사람, 루프 오너의 심리를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 어 그래. 그런 쪽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 정말이야? 정신과 쪽으로 관심이 생겼단 말이야? 이거 뜻밖이고 황송한데.


— 정확히 말하면 내가 관심이 생겼다기 보다는······ 환자 때문이긴 한데.


— 환자가 왜?


— 뭐, 마인드루프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까.


— 마인드테크 직원이라며. 자기 일을 좋아하나보지.


— 그게 아니라······.


— 뭔데 그래.


— 보이는 것 같더라구, 눈이. 루프 안에선.


작가의말

17화 ‘저쪽의 나' 에서 현기준의 환자 류미정의 사연을 만나보세요. ’>‘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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