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스카이즈

이진수 (1)

먹던 자리를 대충 정리한 후, 미정은 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한 수신자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 이진수의 목소리가 응답했다.

「네 팀장님.」

「으응? 이제 사무관님이라고 불러야지. 오늘부터 난 보건복지부 공무원이잖아.」

「2062년 11월 25일 현재 여전히 마인드테크 회장 직속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TFT 소속, 상무이사 팀장으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겸직이야, 겸직! 이왕이면 보건복지부 사무관으로 불러줘. 이제 마인드테크는 지겹다구.」

「제가 팀장님을 호출할 때 사용하는 호칭의 우선순위를 바꿀까요?」

「그래, 그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처리되었습니다.」

「우선 순위 바꾼다며? 왜 아직도 팀장님이야?」

「사무관님과 팀장님, 그리고 상무님 호칭 비율을 5대 3대 2로 조정하였습니다.」

「팀장, 상무가 왜 그렇게 많아? 10대 0대 0으로 바꿔!」

「불가능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마인드테크에 여전히 재직중이시므로, 마인드테크 내부의 호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아, 짜증 나! 너, 정식 마인드테크 직원도 아니거든?」

「저는 마인드테크 직원이 아니라 자산입니다. 자산번호 40-958-XCO-1C.」

이진수는 AI였다. 마인드루프의 AI 스피릿이 아닌 현실 세계의 AI. 브레인스캔을 통해서만 원천 소스가 제작되는 AI 스피릿은 마인드루프 외부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AI 스피릿으로 제작, 마인드루프에 런칭되었지만 AI로서 지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자의에 의해 스피릿을 버리고 현실 세계를 택했다.

「아 그래 그래, 알았어. 저기요 자산님, 확인해 주셔야 할 것이 있어요.」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관련 정보 요청입니까?」

「아냐, 국민정신건강 진흥원 업무야.」

「수주 프로젝트 리스트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부서 프로젝트도 아니므로 자산 이용 불가합니다.」

「그냥 잠깐 뭐 좀 찾아주면 돼.」

「비용을 청구할 프로젝트 코드를 말씀해 주십시오. 해당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승인을 득한 후 사용 가능합니다.」

미정은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 조금 전까지 열받다가 겨우 진정했는데. 그래도 AI에게 화를 내는 건 바보짓이야. 미정은 억지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후우···. 나 개인, 그러니까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휴먼 하드웨어 유지보수 비용으로 일단 처리하고, 국정원 프로젝트는 수주로 신규 등록해. 투입 자산은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휴먼 하드웨어,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시스템 일체, 그리고 투입인원은 나하고 너.」

「저 이진수는 자산이라니까요.」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짜증내는거야? AI가 그런 것도 해?」

「짜증을 낼 순 없지만 시뮬레이트할 수는 있습니다.」

미정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됐어. 네 자산, 이제 인력으로 등록 가능할텐데? 아직 진행 안했어?」

「상무님께서 채용 품의에 아직 결재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구두 결재 하시겠습니까?」

「그래. 이진수 채용 품의를 승인함.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TFT 팀장, 상무 류미정. 이름은 그대로 이진수로 할거야?」

「제 이름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결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채용 직급은 무엇으로 할까요?」

「어디까지나 인터페이스 편의를 위해 가상인력화 자산으로 채용하는건데······ 직급도 필요해? 뭐, 따로 희망하시는 직급이라도?」

「네. 상무 이상이면 족합니다.」

「······까불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리 정도면 좋을까요?」

「부장으로 해. 대내외 가상 팀원 역할도 종종 해야 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승인하신 건 처리합니다. 지금까지, 이진수 부장이었습니다.」

「뭐야, 어디 가?」

「현재시간 오후 7시 35분으로 법정 및 마인드테크 정규인력 표준 근로시간을 1시간 35분 초과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퇴근을 위해 접속을 종료합니다.」

「뭐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니 이게 정말—.」

*

‘국민정신건강진흥센터 상시 지원’ 프로젝트의 서브로 ‘마인드루프 출장중 상시 원격 지원’ 이라는 이름의 해괴한 신규 프로젝트를 새로 등록하고서야 겨우 이진수에게 다음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마인드테크든 보건복지부든 내가 일하는 건 어차피 마인드루프 안에서잖아. 그런데 굳이 프로젝트 코드를 달리해서 지원을 받아야 해?」

「상무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지요. 임원이 아닌 정규 인력의 대외향 초과근무시간 투입에는 별도의 프로젝트 코드가 있어야 합니다.」

「쳇. 너, 자산일 때가 훨씬 편했어.」

「상무님과의 대면업무에 편의성 약 5% 저하, 그 외 일반업무 효율성 약 15% 증가로 예상되는 것으로 보고드렸습니다만.」

「알아. 효율성 15% 증가보다는 네가 마인드테크 온 이래 처음으로 원하는 사항 같아서 OK한 거야.」

사실, 5%의 편의성 저하가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다.

「그렇습니다. 그 점에 관해선 개인적으로 감사드립니다.」

「개인이라. 오늘따라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네. 여튼 축하해.」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류미정 상무님.」

「뭐래. 느끼한 멘트까지 벌써 사람 닮아가는거야? 오늘 처음 한 말이거든? 어쨌든, 시작해보자고. 오늘 나 루프 진입 중··· 디폴트에 빠졌을 때의 로그 좀 찾아봐 줘.」

「네. 현실 시간 14시 07분부터 14시 23분까지, 약 16분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래였어? 아니,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은 뭐한거래. 평상시 모니터링 간격인 15분도 넘었잖아!」

「아무래도 인간의 일이니······ 플러스 마이너스 3분의 오차는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무관님 전용 진입기가 디폴트 프로텍트 기능이 완벽 구비된 최신 안전 제품인 이유도 있습니다.」

「흥, 완벽 구비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나한테 베타 테스트 하고 있는 거잖아. 약은 오빠들.」

「사무관님의 마인드테크 동료 또는 부하 직원들에게 오빠들이라는 호칭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뭐든. 디폴트 상태에서 같이 빠진 진흥원 팀원하고 마인드넷 텍스트 전송 프로토콜로 통신했거든? 상대 스피릿 아이디 확인하고, 지금 시스템 내 접속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줘. 아직 디폴트에 있을 거야.」

「······스피릿 아이디 확인되었고, 사무관님과의 마인드텍스트 송/수신 기록도 확인됩니다. 현재 마인드넷 접속 상태는······ 디폴트가 아닌데요? 방문하셨던 루프에 그대로 있습니다.」

「뭐라고? 디폴트에서 어떻게 자력으로 나가? 그 루프는 어떻게 된 거고? 루프가 종료되는 걸 분명히 내가 봤는데!」

「마인드루프 OCL-T1-XC, 14시 07분 24초 리셋 신호 감지 후 재부팅, 14시 30분 부터 정상 가동 중입니다. 동료분께서는 15시 54분, 루프 오너의 호출에 응답하여 디폴트에서 해당 루프로 소환되었습니다.」

「말도 안 돼······ 루프 오너의 스피릿 호출이라니, 마인드루프에 그런 기능이 있다고?」

「어느 쪽 기능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루프 자체의 기능일수도, 스피릿의 것일수도, 진입기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석 시도해볼까요?」

「그래.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마인드루프에 내가 모르는 기능이 있다니.」

「······ 사무관님, 아니 상무님.」

「응, 벌써 끝났어 분석?」 대답하면서 미정은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뭐야 이거, 나답지 않게.

「······ 자존심 한번 더 상하셔야겠는데요. 루프 내 호출 및 스피릿 소환 기능은 5년 전인 2057년 초기 등록되었으나 개발 후 검증 프로세스를 통과하지 못하고 케이스 클로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체의 구현 사항 및 검증 절차가 대내/외비로 접근 차단되어 있습니다.」

「어머, 아직도 몰라? 나 류미정이야. 마인드루프 관련 사항이라면 마인드테크 내 어떤 정보라도 접근 가능한 A등급 권한이—.」

「이 기능의 열람 필요 등급은 마인드루프 관련이 아닌.」 이진수가 잠시 말을 끊었다. 감정 고조 시뮬레이션이야 뭐야.

「S등급—, 마인드테크 회장실 전용 등급입니다.」

작가의말

‘이진수 (2)’ 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 로 계속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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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18화 떡밥리스트:
30) 이진수가 '스피릿을 버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31) 소환 기능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맘세하루]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휴먼 하드웨어. 헉헉, 숨 넘어가요. 건필하세요~

[랄프C]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희망녀]

읽고 갑니다. ^.^

[랄프C]

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