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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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쿨리 투이 역으로 가는 마인드트레인 열차 안에서도 미정은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아니 접근할 수 없는 마인드루프의 숨겨진 기능. 기밀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구겨진 자존심도 자존심이었지만 그 비밀의 사연과 실체가 궁금해서 더욱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아 뭐지? 별 기능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왜 숨겼을까?」
— 오픈해서 정식 기능이 되기에는 코드가 너무 허접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검증도 통과 못했고 말이죠.
이진수가 마인드메시지를 보내왔다. 열차를 타기 전,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마인드 메시징 시스템에 접속해 두라고 일러 두었다. 미정은 재빨리 답신 문장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 그런 걸 왜 회장실에서 관리해? 그리고 쪽팔리면 얼마나 대단하게 쪽팔린다고 S급으로 떡하니—.
— 그것도 그렇네요. 게다가 5년 전 해당 팀의 연구개발 능력치는 마인드테크 역사상 최고였어요.
— 정말? 내가 와 있는 지금보다도 높아?
— 상무님은 임원이니, 아무리 개발 사기캐라도 개발팀 능력치에 합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팀도 다르고요.
— 그러게. 우리 팀은 내가 몸바쳐서 마인드루프 베타테스터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야. 젠장.
— 그나저나, 뭘 그리 궁금해하십니까? 기능 자체는 복잡하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어렵지 않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 기능 자체야 그럴 테지만······. 보안 등급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이상하잖아. 회장실에서 직접 잠가버렸다는 것도 그렇고. 개발팀에서도 몰랐다면 심각한 일이야. 내부긴 하지만, 마인드루프가 기술적으로 통제가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니까.
— 이거, 제가 한번 까 볼까요? 품위 떨어질까봐 해킹은 잘 안하긴 합니다만.
— 어머, 가능해? 마인드테크 보안팀 수준, 만만치 않을 텐데.
— 뭐 그렇습니다만······. 제가 오기 전에 런칭된 오래된 보안 시스템인데다, 어쨌거나 그분들은 인간이시니.
— 어련하시겠어. 그럼 한번 시도해보고, 완료되면 알려줘.
— 알겠습니다. 그 전에, 구두 결재가 불가능하니 마인드메시지로라도 승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시죠? 발각되면 모든 책임은...
— 알았어, 내가 책임질거야. 긴급 기능명세 항목 열람을 위한 S급 보안 임시 적용 조치를 승인함. 상무 류미정. 아 참, 일부러 들통나게 건성으로 하는 거 아니지? 응? 야, 야!
승인을 받자마자 이진수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끊어버렸는지, 더 이상은 송신도 수신도 되지 않았다. 차창 밖을 보니 열차는 벌써 오쿨리 투이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열차에서 내려 전광판을 힐끗 보니 지난 번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다. 날짜도 역시 같은 날이었다.
‘오늘 하루가 반복되고 있군. 루프가 재부팅된 게 확실해.’
루프 오너의 하루 역시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을까?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루프가 종료되었으니, 사고 피해자 중 한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 사망자가 루프 오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끔찍한 사고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일까? 미정은 풀리지 않은 의혹을 안은 채로 오쿨리 투이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왔다.
‘일단 사고 장소부터 가 볼까. 어쨌든 그 사고가 발단이 된 것은 확실하니.’
버스와 트럭이 충돌했던 사고 현장은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 듯 깨끗했다. 미정은 버스 앞문을 뜯어냈던 자신의 오른손을 들고 주먹을 쥐락펴락 해 보았다. 큰 실수를 했다. 혹시나 그 장면을 보았을 주위의 모든 스피릿과 시뮬레이트들에게 ‘안녕? 나는 현실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원더우먼 류미정이야.’라고 광고를 한 꼴이었다.
인간 스피릿, 그리고 그와 동일하게 만들어진 AI 스피릿은 비현실적이거나 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 그들 루프의 제한된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목도하면 종종 다른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다른 세계는 쉽게 신성시되며, 그 신성한 세계로의 이주를 꿈꾸는 경우마저도 발생한다. 마인드루프 용어로 말하자면 각성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인 욕망을 적절히 통제해줄 수 있는 종교가 루프 내에서 자연발생하지 않는다면.
종교가 발생하고, 그것을 통한다면 각성이 자기파괴적은 아닐 수 있어도 어쨌든 그 욕망은 남는다. 그래서 이렇든 저렇든 루프 내 스피릿의 각성은 위험하다, 막아야 한다, 는 것이 마인드테크의 ‘단순한’ 루프 운영 지침이다.
‘위험하다기보단 관리하기 힘들다겠지. 그래도, 우리 이부장님처럼 긍정적인 케이스도 있는데 말이야. 무조건 막고 통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알고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데. 게다가 한 세계는 커스터마이징까지 가능하고.’
그렇지만, 미정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인드루프 서비스와 현실은 달랐다. 마인드루프 운영 초기 줄지어 일어났던 루프 내 자살을 어떻게 막을래— 하고 들이받으면 할 말이 없었다.
‘그 끔찍한 사고 와중에 그 장면을 본 스피릿은 없겠지? 게다가 얼마 못 가 루프가 종료되어 버렸잖아.’
만에 하나 목격자가 있고, 그 사실을 운영팀이 알게 된다면 큰일이다.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프로젝트 언디파인드 TFT 팀장 자리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 회사 내 미정의 적들은 언제라도 미정의 정신병력을 트집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들이었다.
「아, 몰라 몰라. 아빠나 무한 아저씨, 누구라도 한 분은 도와주시겠지.」
이렇게 혼잣말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우울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하늘나라에서’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아랫입술만 세게 깨물고 말았다.
광장에 나와 보니, 루프는 지난 번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 광장을 막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오쿨리 투이 역 근방이었다.
마인드트레인 역사 및 일정 반경 내에서는 개인 루프가 아닌 플랫폼루프가 시뮬레이션을 담당한다. 때문에 시뮬레이션 대상이 오너와 같은 루프 내 스피릿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정이 루프 방문자 스피릿임에도 선명한 풍경 안에서 생기있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 근방의 풍경은 지난 번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아 일하기 싫어······. 여기서 이 예쁜 풍경이나 계속 쳐다보고 있었으면 좋겠네. 이 지역을 벗어나면 오너를 만나지 않는 이상 바로 시뮬레이션이 풀릴 텐데.’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구한울이 이 루프에 다시 접속해 있는 것만 확인되었을 뿐, 루프 내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그를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앞뒤 안 가리고 재진입을 한 ‘저쪽의 나’가 새삼 원망스러워지고 있었다.
- 작가의말
‘빙의(憑依) (1)‘ 편으로 이어집니다! ‘>’ 클릭하여 류미정의 둔갑술(?)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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