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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누아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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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9.07 23:28
최근연재일 :
2023.09.16 18:4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739
추천수 :
15
글자수 :
241,626

작성
23.09.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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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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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22. (完) 파스타

DUMMY

“후우우우우우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김영석은 동남아의 어느 호텔 베란다에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었고, 그대로 어둔 밤하늘 아래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철써억, 철썩. 하고 달의 인력에 따라 움직이는 조류가 마음을 달래는 것도 같다. 일정한 박자로 소음을 내며 움직이는 게 어둔 가운데도 어렴풋이 보인다.


달빛은 그럭저럭 밝았고, 별마저 보였다. 휴양지로 유명한 도심 지역까지는 아니었고,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는 혼자 호텔에서 쉬고 있었다.


고된 일상이었다.


그가 결국 대부분의 일을 끝마쳤고, 비령 그룹은 손쉽게 몰락했다. 이미 지휘부를 잃어 우왕좌왕하던 조직에 치명적인 비밀이 밝혀져 검경의 압박 수사가 들어왔으니 그것들을 지킬 힘이 없었으리라.

곧 관련된 사업체는 양지에서의 것만 남기고, 그 뒷부분의 비리들은 깔끔하게 파탄이 났다.


결국 어떤 기업이 도산한 이후 그 사업체를 사들여 시작한 것들이라, 비령 그룹이 이름을 내걸고 하던 건전한 사업들은 이름을 바꾸어서 다른 투자자의 손에 넘어가 기능하게 되었다.


다만 그 사이에 얽혀져 있던 모든 조직원들이 횡액을 당했다. 비령 그룹과 은밀하게 손을 잡고 있던 각계의 유력자들 역시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들이 발뺌하기 어려울 정도의 증거들이 있었으므로, 검경은 뒤가 구린 이들의 약점을 확실히 잡아두고 차례대로 검거하기에 이른다.


유종진 회장이 관여하던 양화 그룹에 대한 것을 영석이 상세하게 모아두지는 못했으나, 결국 다른 불법적 사업과 범죄와 얽혀 있었을 것이기에 그가 죽이지 않았더라도 사회적으로 파탄이 났지 않았을까, 싶다.


거미줄처럼 서로가 서로를 묶고 있는 공생 관계들이었으니, 다른 부분이 무너지면 결국 다른 쪽의 짐을 지고 있던 기둥도 자연스럽게 몰락하는 것이다.


비령 물산을 차지하고 있던 그의 옛부하들은 그의 말을 잘 들었는지,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은 일찍이 손을 털고 적당한 재산을 들고 멀리 간 모양이다. 어디서 저들끼리 모여 건전한 사업이라도 시작했다는 투의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이상 깊이 듣지는 않았다.


어차피 한 번 끊어졌던 인연이고, 다 큰 사내놈들이니 알아서 할 테다.


영석의 충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비령 그룹의 연을 끊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던 놈들은 다른 계열사들이 폭삭 망하며 범죄 관련자들이 잡혀 들어갈 때 같이 끌려갔다.


그것 또한 그들의 일이리라.


자연스럽게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지나치게 날뛰었던 것이 부담스러웠다. 영석은 만수를 통해 도피처를 얻었고,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도피용의 여러 자금이나 위조 신분 따위를 사용해 해외로 도망친 게 지금이다.


몇 달 사이의 일들이었지만 아주 먼 일처럼도 느껴진다. 그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던 탓이다.


영석은 베란다에 서서 경치를 구경하다가, 문득 자신의 손을 꾸욱 쥐어보았다. 체조직의 변화가 있는 건지, 평범한 충격으로는 타박상을 잘 입지도 않았다. 호텔 관리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베란다의 석재 난간을 쥐어 계속 힘을 줘보자 드득, 하고 그 돌이 갈려 떨어진다.

조금만 더 하면 돌을 부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력한 근력과 초월적인 운동 신경을 얻었지만 극도로 미세한 조작이 가능한 예민함 역시 얻었기에 힘을 잘못 다룰 일도 없었다. 앞을 빤히 처다본다.


보통이라면 보일 리 없는 어둠 속의 바다이지만 그의 눈에는 조금 더 훤하게, 그 모습이 또 세세하게 보인다.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그 약물의 힘은 그를 바꾸어놓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비령 그룹을 무너뜨리는 것이 새로운 삶을 찾은 그의 목적이었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서 그는 목적성의 부재에 서 있었다.


약물의 부작용, 이라고 할만한 일이었다. 단순히 보자면 그는 초인적인 힘과 생명력을 얻은 것이었지만 다른 사례도 없는 이 변화가 어디로 그의 몸을 이끌어갈 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장기 하나가 뒤틀리거나 뇌의 악질적인 변화가 생겨나 죽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던 영석은 피식, 혼자 웃고 말았다.


이전까지와 그다지 다름 없었다.


이런 물약으로 인해 변화되었을 때도, 그 이전도 삶이란 건 원래 그런 법이었다. 누구나 언제 죽을 지 모른다. 삶 속에 불안정한 하루를 이어가기에 그 시간이라는 게 소중한 법이었고, 양심이라는 놈을 똑바로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영석은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동남아였는데, 제법 바람이 쌀쌀한 면이 있었다. 오늘 날씨가 유달리 그런 모양이다. 낮에는 한창 비가 왔었는데. 덥고 습기가 높아 돌아다니기도 싫었지만 해가 지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하다.


베란다의 커텐과 창을 모두 닫고, 불 켜진 침대에 그는 드러누웠다.


얼마간 TV를 보던 그는 문득 룸서비스를 시킨 것이 기억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준비가 안되었다면 직접 로비 근처의 식당이나 혹은 호텔 근처의 편의점이라도 들르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나섰다.


그가 방문을 닫고 복도를 걷는데, 금세 저 멀리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알림음임 들렸다. 보통이라면 듣지 못할 미세한 소리였음에도 그 작은 소리들이 모여서 그에게 마치 눈으로 보듯한 장면들을 그려주었다.


마른 체구의 종업원 하나가 여러 짐들을 옮겨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뭔가 물건이 잔뜩 든 듯한 더플백 류를 들고 있고, 다른 손으로 음식 따위를 옮기는 수레를 밀면서 온다. 저기에 그가 시킨 파스타와 오렌지 쥬스가 있는가, 고민하던 영석은 잠시 그를 처다보다가 슬쩍 다가갔다.


나이가 어린듯해 보이는 종업원은 영 보기 불안할 정도로 위험하게 걷다가, 끝내 그의 근처에서 균형을 잃어 넘어지려 했다.


한쪽에 들고 있는 더플백의 무게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나가는지, 순간 균형을 잃으면서 쏠리고 자세가 틀어져 그대로 수레까지 넘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젠장.’


까지 생각을 하면서 영석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자기가 시킨 파스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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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完) 파스타 23.09.16 17 1 7쪽
22 21. 테이크 아웃 23.09.16 19 1 24쪽
21 20. 퇴장 23.09.16 17 1 16쪽
20 19. 콜트 +2 23.09.15 21 1 22쪽
19 18. 지지支持 23.09.15 22 1 29쪽
18 17. 조직 내 간부 총회 23.09.14 19 1 16쪽
17 16. 도주 23.09.14 19 0 16쪽
16 15. 파리지옥 23.09.14 22 0 15쪽
15 14. 손님 왔습니다. 23.09.13 24 0 20쪽
14 13. 짧은 재회 23.09.13 29 0 24쪽
13 12. 제인 메리어트 23.09.13 29 0 27쪽
12 11. 탕! 23.09.12 30 0 33쪽
11 10. 빠른 퇴장 23.09.11 38 0 25쪽
10 9. 스티브 블레어 23.09.11 30 0 26쪽
9 8. 김도건 23.09.10 36 0 31쪽
8 7. 민형석 23.09.09 38 0 30쪽
7 6. 떨어지다 23.09.09 36 0 25쪽
6 5. 회복 23.09.09 36 0 23쪽
5 4. 숨 좀 쉬자 23.09.09 32 1 22쪽
4 3. 초인 23.09.08 42 1 30쪽
3 2. 오발 23.09.07 36 1 20쪽
2 1. 기억 23.09.07 43 2 28쪽
1 0. Prologue. 23.09.07 8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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