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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누아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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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9.07 23:28
최근연재일 :
2023.09.16 18:43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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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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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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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11. 탕!

DUMMY

*


영석은 그대로 아침 나절에 방문한 폐건물을 빠져 나왔다. 달아나듯 나온 것이었고, 실제로 도망쳐야 했다.


아주 짧은 용건을 끝내고 나오자 속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는 그대로 달린다. 폐건물의 근처는 그저 공터였다. 모래로 이루어진 바닥이 있었고, 부지를 가르는 낡고 무너진 부분이 많은 담벼락을 너머 인근 도로로 향한다.


폐건물 주변의 상황 역시 건물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굳이 이 블럭 내부까지 발길을 걷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조직 폭력배들이 모이는 아지트답게, 주변에 또 은근한 소문 따위가 퍼져서 더욱이 길을 걷는 사람이 없을 지도 몰랐다. 들어오면서 두리번거렸는데, CCTV도 블럭 내부로 들어오는 입구 외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가 찾지 못한 곳에 카메라가 있을 지는 모른다.


미로, 까진 아니더라도 다소 복잡한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영석은 그대로 100M 주파를 하듯 단거리 주자처럼 뛴다. 검은 외투의 속에 몸통이 다소 두텁다. 윈드 브레이커 자켓 내부에 방탄 재킷을 입은 탓이었다. 이런 꼴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건 눈에 띄는 짓거리이긴 했다. 최근 시내에 많이 보이는 렌트용 전기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작은 배낭이 걸쳐져 있었다.


맨 몸보다는 확실히 처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그의 움직임은 어떤 맨 몸의 운동선수보다도 빠르고 폭발적이었다. 그는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운동 신경을 보이고 있다.


타다다, 하고 운동화의 밑창이 바닥을 박찼다. 빠른 박자로 제 몸을 밀어낸 영석의 발이다. 그는 곧바로 폐건물의 담벼락을 지나 눈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앞 쪽에 있는 다른 폐공장 부지 내부에 몸을 숨겼다. 담벼락 중 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곳이 있었다. 명치 즈음까지 오는 부서진 흔적을 도움닫기도 없이 한 번에 뛰어 넘었다. 그대로 몸을 숨기고 둘 정도 속으로 세자, 그가 일을 저지른 내부 건물에서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안쪽에 있던 사내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상가 건물은 제법 크기가 큰 곳이었고, 거대한 설비가 필요한 종류가 아니라면 공장으로도 쓸 수 있는 종류였다. 정문 한 개에서 튀어나오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날씨에 어울리는 복장도 아니었고, 서울 한복판 도심지역에 있을 법한 분위기나 표정들도 아니었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혹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꼴을 당한 인간들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사실 비슷했다. 영석은 죽은 줄로 알고 있는 존재였으며, 갑자기 눈 앞에서 그들의 보스를 죽였으니. 영석은 숨을 들이 마셨다. 그리고 옆으로 빠르게 몸을 돌려 움직이면서,


그대로 탄창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탕타타타타! 귀따가운 소리가 퍼졌다. 소음기를 끼고 있는데도 그렇다. 조금 길게 늘인 배럴 앞에 장착된 소음기는 어느 정도 발사음을 막아주지만 바로 들고 있는 입장에서는 제법 큰 소리였다.

도심 지역에서 이런 류의 소리가 연발로 퍼진다면 어떤 반향이 돌아올 지 모르겠다. 영석으로서는, 뭐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 번 정도는 저지를 일이었고, 마침 전호식의 일당이 모인다는 소식을 들어서 때가 맞아 들었던 것 뿐이다.


그는 죽다 살아난 인간이었다. 뒤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구하는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어야 하는 기관총, 소총 종류가 아니라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쓸 의향이 있었다.


서울 외곽지. 사람이 별로 없는 버려진 땅에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특작조의 일원들 중에서도 미리 총을 갖고 있는 자들이 일부 있었다. 그들을 경계해서 영석이 재빨리 움직인 것이기도 하다. 칼이나 삼단봉 따위, 손으로 들고 움직이는 냉병기라면 그것으로 그를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총이라고 하더라도 소형 탄이 엄한데 박히지만 않는다면 움직일 수 있는 그다. 피부 조직이 바뀐 것인지 이전보다 맷집이 강해졌다. 타격으로 그를 쓰러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맞는 순간에도 그 타격점을 흐트러뜨리면서 피해를 최소화 할 테니까. 그 정도의 운동신경이었고, 애초에 그의 앞에서 멀쩡히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사람이 주먹을 내지를 정도의 여유라면 그는 두 세 번 정도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었다.


그가 기이한 변화를 겪은 뒤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분은 운동 신경도 있었지만, 그 근육의 활동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었다. 마치 오래도록 무술을 수련해 온 인간처럼 그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체 능력을 활용하고 있다.


초인약을 위한 실패작이었던 Fa시리즈가 가장 크게 변화를 꾀한 곳은 그의 뇌일지도 모른다.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뒤에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되기는 했다. 그는 최기욱과 민형석을 잡는 등 일을 벌이고 나서는 늘 대식가 이상의 식사를 했다.


보통 사람의 이상으로 움직이는 일에는 상당한 칼로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탕, 타타타, 하고 자동 권총으로 마치 연사를 하듯 빠르게 갈긴 영석이었다. 그의 감각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득하게 발달되어 있었다. 빠르게 옆으로 한 두 걸음 지나가면서 스쳐 보인 장면이 그에게는 느린 화면, 혹은 멈춘 것으로 보였다.


그 시각에 반응해서 조준을 하고 탄알을 갈겨댄다. 정확한 사격이었고, 고작 골목 하나와 공터 한 두 개 정도를 사이에 둔 거리에서 권총탄이 상대의 급소 부위에 박혀 들어갔다.


끄아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누군가 주저 앉거나, 혹은 소리 없이 쓰러졌다. 그 옆에 있던 놈들 중 스쳐 맞은 놈들이 가장 시끄러웠다. 직접적으로 급소를 맞은 사내들은 그대로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 채 쓰러져 죽었으니까 말이다.


수십 명. 많다면 백여 명 정도.


영석은 튀어나올 이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권총탄은 두둑히 챙겨왔다. 사이좋게 한 발씩 나눠 먹는다면 모두 처리 가능한 탄알이었다. 19발들이로 10개 정도였다. 당장 그가 집 안에 숨겨 두었던 보유량을 모두 들고 왔다. 아마 이 일이 끝나고 나서는 따로 구입해야 할 것이다.


직접 알고 있는 무기상을 찾아도 좋았고, 부동산업자인 김만수를 찾아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다. 전직 조직원이었던 김만수는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아직 완전히 그 연을 다 놓지는 않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를 요긴하게 도와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조력자였다.


비령 물산에 그의 수하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와서 그들을 찾는 것도 염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죽은 보스가 돌아가봤자 시끄러워지기만 할 테다. 어느 정도 주변 파벌에서 그의 죽음을 빌미로 흡수를 했을 지도 모르고.

그는 비령 물산의 이사로서, 조직의 간부로서의 목적 의식은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비령 그룹 자체의 파괴를 원하는 그와 같이 갈만한 자들이 그룹 내부에는 달리 없으리라.


타타타탕! 시끄러운 탄알 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미친 놈들은 소음기도 쓰지 않고 그대로 탄창을 소비하는 모양이었다. 권총탄 정도인지, 그가 몸을 숨기고 있는 콘크리트 담벽 사이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도탄이 튀어 그에게 박히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그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운동 능력이다. 최대한 발휘해서 집단전에 임해야 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저들에게 깔려 죽는 게 가장 멍청한 짓이었다. 영석은 한 달음에 한쪽 벽면에서 다른 쪽 벽면으로 이동했다. 대각선 방향으로 그대로 쭉 뛰었다.


한 순간에 몇 미터씩 박차고 날아가듯 뛴다. 그의 몸은 지나치게 가벼워 마치 맹수가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모습같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담벼락 앞에 선 그는 이번에도 발을 박찼다.


그대로 흙바닥을 뛴 그가 흰 콘크리트 담벽을 발로 짚는다. 최소한의 마찰이 사라지기 전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힘을 주면 추락을 지연시키거나, 운이 좋다면 조금 더 위로 뛰어오를 수도 있었다.

영석은 운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운동 신경과 순간적인 감각과 판단 반응이 지독하게 빨랐다. 그는 사람의 키를 넘는 담벼락의 위에 아주 손쉽게 손을 두었고, 그대로 휙 하고 제 몸을 끌어 올렸다. 그저 야트막한 장애물을 넘는 모습처럼 보였다.


춤을 추듯이 벽 하나를 쉽게 짚어 넘는다. 한 쪽 손이 먼저 그를 끌어올렸고 반대 팔도 짚은 뒤 하체를 끌어올려 로프 위를 넘어 링으로 들어가는 프로 레슬러처럼 지나가 바닥에 내려 앉았다.


탓, 하는 작은 소음이 났고 골목에 마침 들어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폐공장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특작조원들이다. 그들은 미쳐 있었고, 갑자기 보스를 살해한 사이코를 찾기 위해서 눈알이 돈 표정들로 뛰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받은 몇 발의 총격 역시 그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냉정함을 가진 이들이기에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석은 달렸다. 바닥에 내려앉고 그가 최고 속력에 도달해 달리기까지 채 숨 몇 번 고를 시간 조차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짧은 골목을 주파한 그는 다시 한 번 담벼락을 넘는다.

아까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제 몸을 휙 담벼락 위로 올렸다.


처음 전호식을 죽인 상가 건물에서 바라보자면 앞으로 나와 왼쪽 대각선에 있는 부지의 건물이었다. 주변 건물들의 형태는 대강 비슷비슷했다. 근방에 사람의 인기척이 있는 건물은 없다. 영석은 담벼락 위에 올라갔다. 그 좁은 폭 위에 운동화의 발을 두었고, 탕! 뒤에서 총 소리가 들렸다.

특작조가 그를 겨냥하고 위로 사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석은 지나치게 빨랐고, 도심지에서 불안정한 사선을 갖고 그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나름대로 사격 연습 따위가 특작조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에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다년간 그것을 위해 애를 써 온 특수부대들이나 묘기와 같은 적중률이 가능하다.


영석은 그런 특수 부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그는 고양이처럼 달린다.

발을 옆으로 대어 보면 신발의 아래와 위가 모두 튀어 나오는 수준의 좁은 콘크리트 블록 위다. 그 사이를 발꿈치를 떼어 세우며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은 가히 초인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어느 무협 영화에 등장하는 로프 액션의 주연 배우처럼 그가 날듯이 뛰었고, 지상과 거의 다름 없는 속력으로 좁은 담벼락 위를 질주한 그는 그 끄트머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긴 점프를 해냈다. 그대로 그 앞 건물의 부지 안 쪽으로 구르듯 들어갔다. 뒤따르는 이들이 있었고, 영석은 그대로 문이 열려 있는 2층짜리 폐공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열심히 뛰어온 것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도망처處였다. 영석의 모습이 그 안쪽으로 사라졌고, 힘겹게 따라온 몇 명의 특작조원들이 주변을 수색하다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선다.


나무판자 따위를 덧대어서 바람을 막고 있는 폐건물이었는데 정작 현관이 크게 뻥 뚫려 있었다. 2층짜리 건물은 들어가자마자 콘크리트 맨바닥이 드러나 있는 꼴이었고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공장 설비, 철제의 물건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대로 주욱 직진을 하면 2층으로 올라가는 철조 계단이 있다. 철조 계단의 위에 2층은 1층의 절반 정도를 덮는 크기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바닥이다. 아침의 햇빛이 들이닥치는 와중에도 2층 쪽은 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편이었다. 그 그늘 사이에 숨어 있던 영석은 그대로 아슬아슬한 거리를 재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영석의 귀에는 깨나 들리지만 소음기를 달았다고 격발음이 멀리까지 퍼지지는 않았다. 공장 안 쪽으로 의심스럽다는 듯 발길을 들였던 특작조원 두 명이 심장 부근에 총알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백발백중의 솜씨로 맞은 것이었고, 그대로 마네킹이 쓰러지듯 저항없이 바닥과 안면을 마주했다.


쿵! 하고 쓰러진 두 사내의 주변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려 피가 흘러나왔다. 권총탄은 인간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영석은 그대로 내부에 숨어서 잠시간 더 기다렸다. 2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외부로 통하는 문이 있다.

2층 발코니로 이어지고, 외측에 설치된 철제 계단이 다시 공장 뒤쪽의 공터, 테라스와 연결되어 있다.


위로 올라오자 마자 영석은 계단 근처에 있던 문을 철컥이며 확인했었고,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시간을 끌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타다다, 하고 사람이 달리는 발소리가 났다. 건물 안쪽에서 듣기엔 다소 작은 소리였지만 영석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고, 심지어 그 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의 자세나 체형 체격까지 알아챌 수 있었다.


아주 손 쉬운 일이었다. 타이밍에 맞추어서,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타탕!


다시 한 번 연사에 가까운 2연발 점사가 나갔다. 그 사이의 틈이 거의 없기에 연발로 느껴지지만 실상은 영석이 빠른 시간 안에 방아쇠를 두 번 당기는 것이었다. 자동권총의 연발 속도의 한계에 가까운 빠르기로 총알이 날아갔고, 폐공장의 정문으로 들어오려던 몇 명이 다시 가슴팍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씨발, 저기다! 쏴!”


특작조원들은, 거의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자신들은 조직 폭력배였고, 그들이 하고 있는 생활은 영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화려한 싸움도 전투도 아니었고, 그들이 겪는 일상은 아비규환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한쪽을 압도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죽을 듯한 상황 속에서 공포를 억누르면서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게 결국 실전에서의 대부분이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명백히 이상한 것이었다.


차라리 귀신을 직접 보는 것이 덜 무서우리라. 한 명의 사내가 갑자기 그들의 아지트에 처들어와 보스를 쏴 죽였고, 그대로 말도 안되는 속도로 날아 도망치더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알을 쏴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듯 그들에게 이건 영화가 아니라 실제였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분노, 당황스러움이나 특작조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 따위가 혼재되어 그들은 약간의 현실감이 날아간 상태로 달려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122명의 특작조원들 중 상급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몇 명의 리더격의 인물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령 그룹, 개중 엔터에 들어오는 많은 외부 의뢰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인간들이고, 전문성이 없는 범죄 조직의 양아치에 불과했으나 많은 실전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재능을 나름대로 발견한 자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멀쩡히 사회에서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면 어느 종류이든 운동 선수라도 할 수 있었을 재능들일텐데. 그들은 총을 들고 칼을 휘두르면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고 더러운 돈을 받는다.

비령 그룹의 조직원들은, 그런 인간들로만 수 천 단위가 있었다. 영석은 그런 집단이 존재하는 게 세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퍼 히어로도 아니었고, 영웅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사리 분별은 가능했다. 치가 떨리는 비열함에 대한 증오도 있었고. 여러가지 이유들이 그의 내면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그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비현실 속에서 가장 바라마지 않던 일을 행할 뿐이었다. 비령 그룹의 몰락은, 그에게 있어서 어떤 사명감처럼도 느껴진다.


그 속에서 내부의 온갖 더러움을 다 겪었던 그이기에 느끼는 의무이다.


탕!


한 발을 더 쏘았다. 그리고 넉넉하게 탄창을 일단 갈았다. 19발들이를 모두 소모해서 갈 필요는 없었다. 위급한 순간에 한 발이라도 부족했다가 생사가 갈릴 수도 있었으니.


한 발 더 쏜 것은, 때마침 한 명의 인기척이 더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목구멍을 관통당한 건장한 사내 한 명은 그대로 비명도 없이 엎어졌다. 타다다! 하고 발로 시끄럽게 무언가를 차듯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영석의 귀는 시력이 아주 좋지 않은 사람의 눈이나 거의 비슷한 정확도를 자랑한다. 철제 난간을 통해 2층으로 달려 올라오고 있는 놈들이 몇 놈 있었다. 총성이 울리고, 근처에 자기네들 조원이 죽은 것을 본 조직원들이 건물을 둘러싸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대로 빠르게 달렸다. 2층 난간, 발코니로 향하는 문쪽으로였다.


2층 구조는 전부 철제였다. 그 역시 약간의 발소리를 소음으로 내면서 문에 바짝 다가간다. 그가 살짝 귀를 기울였다. 달려 올라오는 놈들의 타이밍을 재고 있다. 한 대여섯 명 정도가 한 꺼번에 올라오는 듯하다. 그는 바깥으로 열리는 문을 빵, 차듯이 열었다.


쾅! 하고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바깥 구조물에 문이 부닥친다. 그 사이에 사람이 있어 기절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느닷없이 열린 문에, 뛰어 올라오던 놈들이 멈칫했고 들고 있던 총을 겨눠들었을 뿐이다. 타탕! 조심성이 없는 인간은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영석은 바깥의 경치를 보았다.


아침 나절에 벌이기에는 제법 하드한 일과였다. 보통이라면 브런치를 즐길 시간이리라. 직장인이었다면 조금 후에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 시간을 가질 테였고.


이 짓거리를 하고 밥이 넘어가기를 바라면서, 영석은 햇살이 비치는 한적한 거리의 구조를 살핀다. 잘하면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고, 타탕, 하면서 시끄럽게 귀를 때리는 총성이 멎는 순간을 틈타서 앞으로 날았다.


휙, 하고 몸을 날리는 그의 몸동작은 메뚜기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순식간에 철제 베란다의 바닥을 한 번 딛고, 그 난간에 다음 발을 댄 그는 탄력적으로 뛰었다. 대퇴부가 가장 고생이 심하다.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을 참으면서 그는 멀리 뛴다. 그대로 2층에서 십 수 미터 정도는 나는 듯하다.


영석은 자신의 몸의 한계를 체험했다. 놀랍게도,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뒤로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정도의 여유가 났다.


몸의 움직임보다 정신의 변화가 더 극적이다. 그는 순간 집중을 했고, 멈춰버린 세계로 감각되는 장면 속에서 난간을 타고 올라오던 머저리 다섯 명의 머리에 차례대로 총알을 선사했다. 탕, 타탕! 세 발 쯤 갈기자 슬슬 자세를 바꾸어야 했다. 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그 거리를 뛰었다가 바닥에 처박으면 그라고 해도 어딘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영석은 재빨리 몸을 돌려 낙법을 취했다. 십 여 미터를 뛴 것처럼 아주 긴 거리를 데굴데굴 구르면서 충격을 최소화했고, 앞구르기와 옆구르기를 합쳐 대각선 방향으로 멀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는 튕겨 나가듯 뛰어 올라 관성 그대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골목으로 향했다. 몇 개의 공장 부지가 골목을 형성하고 있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그의 뒤에 총격이 있었지만, 명중률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골목의 내측으로 딱 달라 붙었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사선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돌벽에 맞아 튕기기가 일쑤였다. 몇 호흡 되지 않아 짧은 골목을 벗어난 그가 다시금 십자로 교차하는 다음 골목에 들어섰다. 그는 바로 방향을 바꾸어 왼쪽으로 틀었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그의 고개 뒤로 정장을 입은 조직원들이 보였다.


“여깄다!” “쏴!”


권총을 지닌 놈이 한 명 있었던 모양이다. 일대는 백여 명의 사내들이 흩어져서 뒤지고 있는 판국이었다. 골목을 돌다 언제 놈들을 마주쳐도 이상하지는 않다.

영석의 도주로를 파악하는 건 특작조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빠르게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금 그의 위치를 잡아 몰려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영석은 일단 자신과 마주친 운 없는 놈들에게 총탄을 먹여주고,


타타탕!


그리고 왼쪽으로 마저 빠져나갔다. 권총을 지닌 놈은 심장을 맞췄고, 시끄럽게 떠들던 놈들은 적당히 어깨와 대퇴부 즈음을 쏴서 멈춰두었다. 총탄은 한 발이라도 신체에 들어오면 그대로 쇼크를 일으키고 행동이 정지된다.

전쟁 중에 아드레날린 따위가 분비되어서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한 두 발로도 행동 불능이 되는 게 정상적이었다.

특작조원들은 일반론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는 인간들은 아니었다. 방탄 조끼도 없이 양복 차림이던 작자들이라, 쉽게 쓰러졌다.


영석은 좁은 골목을 달리다가, 그 끝 즈음에 다다랐을 때 자신을 반기며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았다. 타이밍이 또 마침 좋게 꺾어지는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련의 무리다. 그는 가까운 거리라면, 총을 쓰는 것보다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대로 날아서 운동화의 밑창을, 우루루 나타난 여러 명 중 가장 앞에 있는 놈의 인중 부근에 박아넣었다.


그대로 얼굴 뼈가 함몰되어서 수술실에 가야 할듯한 충격을 받았고, 뒤로 넘어간다. 그는 묘기를 부리듯 공중에서 멈춰 선 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발을 놀려 다른 놈의 어깨 즈음을 밟았다. 애초에 체공 시간이 말도 안되게 길고 또 멀리 뛰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공중을 나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의 동선이었고, 적절하게 밟을 거리가 주어진다면 실제로 그는 그런 묘기가 가능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파편들을 보고 멈춘 사진 속을 감상하듯 할 수 있는 동체 시력과 인간을 넘은 반응 속도, 다양한 각부의 근력이다. 김영수는 열댓명은 되어 보이는 듯한 사내들을 상대로 아주 편하게 움직였다.


손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를 잡지 못한다면 근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사람을 밟고 스턴트를 하듯 올라간 그는 관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많은 인간을 패는 방법을 궁리한다. 어깨를 강하게 박차면서 한 번 더 뛰었다. 높이 뛰기 위함은 아니었고 밑에 밟힌 인간을 밀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쿵, 하는 충격을 받은 한 사내는 자신의 어깨 위에 돌덩이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어깨 뼈가 금이 가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잠시 허공에 두 발을 띄고 서 있는 영석은 다른 인간의 면상을 밟았다. 어지럽게 움직이며 입체적인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의 위였지만, 그는 천천히 그 가운데 밟을만한 구석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콱! 하는, 사람의 얼굴 근처에선 나면 안될 듯한 소리와 함께 오른 발로 탭댄스를 추듯 조직원 하나의 얼굴을 짓밟았다. 운동화의 밑창은 제법 단단한 재질로 진한 감촉과 감상을 그에게 선사했다. 김상원이라는 이름의 조직원이었고, 키가 크고 어깨가 단단했다. 덕분에 튀어나와서 영석이 가장 먼저 밟는 얼굴이 되었다.


밑창으로 얼굴을 갈듯 즈려 밟았고, 그대로 똑같이 밀어 뛴다. 그는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겨 다른 쪽에 있는 놈의 어깨를 밟았고, 이제 그 탭댄스가 끝이 나야 한다고 느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을 쓰러뜨렸지만 아직 남아 있는 놈들이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멀리서 다른 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게 들린다.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조직원들끼리 연락용 무전기 따위라도 있는 것인지 나름대로 일사분란한 모습이다. 저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놈들에게 총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영석의 날렵한 움직임에 그들은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했다. 허공을 베는 것은 물론이고, 밀집한 터라 자기들끼리 베어 피를 볼까봐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영석은 마저 어깨를 밟았고, 그대로 오른쪽 옆, 뒤쪽에 있는 놈의 얼굴을 발의 앞코로 차버렸다. 찍어 차듯이 임팩트를 주어 입가를 쳤고, 지나치게 강렬한 충격으로 전방에 있는 모든 치아가 한 번에 나가버렸다. 그런 발차기의 디딤발이 된 사내도 어깨가 정상은 아니었다. 균형을 잃는 듯이 자세가 무너졌지만 영석으로서 위기는 아니었다.


호쾌하게 앞으로 뻗어 나가는 아랫단 차기를 한 뒤에, 그대로 허공에서 180도를 빙글 돌아 땅바닥에 떨어진다. 그 아래에는 마침 사람이 있었고,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복부 즈음을 즈려 밟으면서 내려앉았다. 컥! 하고 숨이 터져 나오는 듯한 비명이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영석은 떨어지면서 권총의 잠금 장치를 걸고 바지의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양 손이 자유롭다면 할 수 있는 게 참 많았다.


영석은 그대로 선 자리에서 다섯 명 정도의 인간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하나같이 황망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표정들은 아니었다. 김영석이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그 역시 일반적으로 싸움에는 도가 튼 인물이었고, 나름대로 수라장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거쳐 온 인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상식에도 한참이나 벗어난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친 운동을 한 셈이었지만 호흡은 조금도 가빠지는 것이 없었다. 도리어 지독하게 안정적이었지. 심폐지구력이나 근지구력, 단 번에 힘을 집중시키는 임팩트의 파워풀함까지 무엇 하나 떨어지는 것 없는 신체였다. 원래 인간의 내구성이나 근력이 이렇게 발휘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어쩌면 폐기되었어야 할 Fa-1123은 진정한 초인약에 가까운 과학적 업적, 시대의 대발견이었는 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주먹을 맞은 상대는 그렇게 느꼈다. 땅 위에 양 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떨어져 내린 영석의 앞에는 거구의 덩치 친구가 있었다. 인상이 험악했고, 누가 보아도 조폭이 아닐까 싶은 수준의 외견이었다. 민머리에 더러운 눈빛, 거구의 몸집을 하고 있었다. 영석은 그대로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만화에서처럼 움푹 들어가는 주먹이었고, 그대로 하악下顎이 함몰되어 버렸다. 뇌진탕이 일어난 것은 동시였다. 사내는 주저앉았고, 그 다음 사람이 영석을 맞이해야 했다. 너클을 끼고 있지는 않았다. 품 속에는 갖고 있었다. 눈 앞에 남은 네 명 정도를 상대하는 데는 숨 몇 번 고를 정도의 시간과 맨 손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영석은 그대로 달려 들어서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마른 놈을 감싸 안았다. 부드러운 포옹은 아니었다. 그대로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놈들 틈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목덜미 부근을 팔로 감싸면서 뒤로 빠지는 것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는 영석을 당해내는 놈이 없었다.


조금 거리를 벌리고 남은 놈들이 칼을 들고는 있었지만 섣불리 휘두르지 못했다. 다시 반대 쪽으로 빠져나오면서 영석은 그대로 팔뚝에 힘을 주어 경동맥을 압박했고, 상대는 완벽하게 걸린 조르기 자세에 혈류가 막혀 블랙 아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아찔한 경험이었고, 키가 크고 말랐던 차분한 인상의 사내 하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영석은 얼마 남지 않은 놈들에게 다가갔다.


한 놈은 툭, 쳐서 턱을 갈긴다. 칼을 들고 다가오는 놈을 빤히 바라보다가 기절하는 놈의 몸을 휘, 돌려 그 팔뚝을 내어주었다. 상대가 휘두른 나이프에 그가 턱을 쳐서 기절시킨 마른 인상의 사내의 상완이 깊게 베여버렸다. 예상치 못한 피와 손맛에 상대방이 움찔할 때, 영석이 그대로 앞에 있는 사내의 등을 뻥, 차버렸다.


마치 날아가듯이 앞으로 밀린 사내의 기절체는 그대로 칼을 들고 있는 놈의 몸을 덮치면서 넘어졌다. 수십 키로그램은 족히 되는 방해물에 사내는 그만 균형을 잃고 같이 뒤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그 사이에 영석은 옆으로 돌아 뛰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바닥은 평범한 부지의 골목길, 포장 도로가 아니었다. 사람이 여기저기 널브러지고 서로 겹쳐서 깔려 있는 입체적인 바닥이었지. 그게 조직원들이 영석에게 섣불리 다가와 칼을 맞추지 못한 이유도 되었다. “끄윽······.”하고 영석이 바닥 대신 그들의 몸 어딘가를 밟을 때마다 신음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영석은 자신이 밀어버려 넘어지는 두 명이 완벽하게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 남은 놈의 곁에 다가가 그의 칼을 피하고 그대로 목을 졸라 기절시킬 수 있었다.


“씹, 잡아!”


하는 먼 소리가 조금 가까워졌을 때, 영석은 마지막으로 넘어뜨렸던 놈 중 기절하지 않았던 녀석의 면상을 즈려 밟으며 그대로 넋을 잃게 만들어주었다. 강한 내려 찍기는 체중이 실리는 것이었고, 비정상적인 근력으로 행해지는 일이라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간신히 죽지는 않고 정신을 잃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마 이곳저곳이 골절상이나 타박상 등 상당한 충격을 입었을 것 같았고, 영석은 넘어진 조직원들의 무더기 속에서 그나마 눈빛이 멀쩡해 보이는 놈 한 둘을 더 즈려 밟으면서 뛰었다. 이제야 고작 십 수 명 정도, 잘해야 스무 명 정도를 넘어뜨렸을 것이다. 백여 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골목 멀리에서 그를 쫓는 놈들이 더 다가온다.


십자선 모양의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인간들이 밀려 들어온다. 폐공장 지대인 블록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 영석이 서 있는 전방의 도로만이 비어 있었다. 일단 영석은 그쪽으로 뛰었다.


탕, 타탕! 하고 뒤에서 시끄러운 총격 소리가 들렸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총을 갈겨대다간 이제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리라. 영석은 그대로 빈 골목을 주파했고, 방탄 조끼나 등의 컴팩트한 배낭에 여러 장구류를 넣어놨음에도 다람쥐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 자취를 감추었다.


순식간에 먼 골목 바깥으로 방향을 틀어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가까스로 같은 특작조원들이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곳에 다다른 조직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씨팔!” 강한 욕을 내뱉으면서 화를 내는 인간들은, 어쩌면 두려움에 대한 다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화를 내야만 그들을 농락하고 죽인 괴물같은 인간을, 잡을 수 있고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여겨질 지 몰랐다. 그들 스스로도 말이다.


영화같은 일, 은 연출된 장면에서나 보여지기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들이었다. 때론 비정하고 잔혹한 일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심각하게 현실에서 일어나고는 하지만, 어떤 종류의 상상이냐에 따라서 다른 점들이 많았다.

개중에서도 ‘액션’ 따위의 장르가 된다면 그건 현실에서 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백 여 명의 특작조원들이 있는 조직의 아지트에서 두 눈으로 목격했고, 그들은 적의 얼굴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수십 여 명의 조원들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죽은 놈도 있었고 산 놈도 있었지만, 엉망으로 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똑같이 공유했다.


보스, 전호식과 비서 김서령을 제외하면 특작조에서 가장 입김이 세다고 할 수 있는 김철형, 이 두려운 눈빛을 감추면서 입을 열었다.


“······씨바 애들 시켜서 저 새끼 뒤 쫓게 하고, 나머지는 누운 놈들 시체 처리한다. 4567조가 흩어지지 말고 모여서 쫓고 나머지 뒷정리한다. ······움직여.”


사오육칠 조, 라고 발음한 이들의 수는 약 3, 40여 명 정도였다. 122명 총원의 특작조는 11개 조로 편성되어 있었고, 조마다 그 수가 달랐다. 1조의 조장이라 할 수 있는 김철형이 특작조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인간이었고, 조직에서 받는 급여 역시 제일 높았다.


비상 상황이었고, 그나마 명령을 제대로 내리는 김철형에 의해서 일단 그들은 움직였다. 폐건물 지역에 그들 조직이 점거하고 있는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조금만 더 멀어져서 시내 근처가 나오면 봉변이었다.


나중에 조직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도 몰랐고, 아니 그 이전에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김철형은 그의 상관을 잃었다. 비령 그룹에 원한이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난동을 부린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을 겪은 그였고, 그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최근 비령 그룹의 금융사와 제약사의 사장이 모조리 목숨을 잃은 것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조직원들이 흥분과 두려움, 놀람 속에서 진정시키지 못한 심장을 간신히 추스르고 일단 움직였다.

영화 속에서 히어로로 등장하는 주연 배우들과 멋있게 결투를 하는 악역들 역시 영화 속의 인물들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런 적들 역시 목숨을 잃기를 두려워하며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에 불과했다. 김철형은 당장 진통제나 마약류를 꽂아 넣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시달렸다. 트라우마가 될 것 같은 장면들과 기억이었고, 당장 잊고 싶었지만 해야 하는 일이 떠오르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은 아지트로 돌아가고, 조직원들의 시체 따위를 정리하고 조직에 연락을 해야 했다. 비령 엔터에는 그래도 인력이 많이 있었다. 다른 조직원들을 부르고 뒷정리를 최대한 하고, 그리고 그룹의 본사 쪽에 연락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그가 비령 엔터테인먼트의 2인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중간 간부 정도는 되었다.


살아남은 다른 임원진들과도 얘기를 해보아야 할 테였다. 그는 눈 앞이 깜깜하다고 느꼈고,


탕!


그리고 어디선가 들린 총성에 정말로 다시는 어둠밖에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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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1권 분량이 차가는데 아직 죽지 못한 악역들이 너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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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 (完) 파스타 23.09.16 15 1 7쪽
22 21. 테이크 아웃 23.09.16 16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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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 콜트 +2 23.09.15 20 1 22쪽
19 18. 지지支持 23.09.15 19 1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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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짧은 재회 23.09.13 28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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