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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누아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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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9.07 23:28
최근연재일 :
2023.09.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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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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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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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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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9. 콜트

DUMMY

*


호위조 인원들이 교대로 19층과 위 아래 층을 번갈아 자리를 옮기는 일은 흔한 것이었다. 회의는 나름대로 긴 시간 진행이 되었고, 한 사람이 회의실 바로 옆에서 긴장한 경계 상태를 유지하는 건 깨나 체력이 드는 일이었으니까.


회의실 내부의 간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여러 파벌의 조직원들이 왔고, 교대로 근무를 서듯 경계 순번을 정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영석이 움직이는 것 또한 그런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적당히 고개를 내리깔고 천천히, 주변의 움직임에 맞추어 걸었다. 그가 회의실 근처에 다다르기까지도 별다른 시선을 받지 않았다. 영석이 문 근처에 바로 설 때까지는 말이다. 마치 회의중인 집무실 내부로 들어가려는 듯한 제스처가 보이자 그제서야 주변에 있던 자들, 그리고 바로 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가드들이 그를 바라보고 다가오려 했다. ‘무슨 일이야?’라는 물음이기도 했다.


어차피 내부에 있는 자들은 신원이 확실한 자들이었고, 안쪽에 있는 간부의 지시에 따라서 심부름이라도 온 것일 수 있으니까.

크게 보자면 비령 그룹의 한 조직원들인 셈이었고,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가드들은 그에게 말을 걸려 했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파벌 간의 말단끼리는 기본적으로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상리였다. 문제가 생긴다면 간부끼리의 그것이었고, 말단 간에 섣불리 다툼이라도 벌였다가 격화된다면 그 뒷감당을 하기가 힘든 것이다.

지금 조직 내부의 각 파벌들은 예민한 상태로 대립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직접적으로 교전을 벌일만큼 여유가 있는 쪽은 아무 곳도 없었다.


영석의 연배를 대강 보고 존댓말을 한 것은 회의실의 오른쪽 문 근처에 서 있던 가드, 박병일의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각 조직간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다.


영석은 그를 온전히 처다보지 않고, 고개만 슬쩍 돌려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아, 비령 물산 박철우 이사님 호위입니다. 지시로 잠시 안에 두고 오신 물건 좀 확인하라고 하십니다.”

“안에 두고 온 물건?”

“그, 잠깐 쉬고 계신데 안쪽에 휴대폰이랑 연초랑 두고 오신 모양입니다. 시켜서 가져오라고 하시덥니다.”

“······그래요?”


병일은 미심쩍은 목소리와 기색으로 그를 처다보았고, 영석은 고개를 조금만 돌린 채 그에게 웃어 보이곤 문을 열었다. 슬그머니 문을 여는 그의 기색을 처다보는 다른 가드들이다.


김영석은 회의실 내부로 들어갔다.


김영석의 얼굴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간부들이었다. 말단 조직원들에게는 일부러라도 잘 알리지 않은 김영석의 얼굴이다. 그 스스로가 그렇게 했다. 최기욱네, 금융쪽과 제약사쪽 말단들은 최근 그를 덮치기 위해서 모였으므로 그의 얼굴쯤은 한 번씩 익혀두었을지 몰라도 평범하게 생긴 인상으로 존재감없이 다니는 그를 스쳐보고 알아채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는 특색 없는 얼굴이었다.


또 본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거지가 영향을 미쳤고, 죽었다고 하는 타 파벌의 간부가 멀쩡히 살아 걸어 돌아다니리라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영석은 어떤 의도를 가진 인간처럼 보이지 않게끔, 자연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열린 문틈으로 걸어 들어가 내부를 본다.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문은 아주 부드럽게 열렸으나, 시야의 한구석에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인 탓인지 내부에 있던 회의자들이 출입구 쪽을 처다보았다.


달칵.


문이 닫혔다.


영석의 키보다 깨나 큰 넓은 회의실의 문이다. 목재로 이루어져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이런 현대식의 건물에 아날로그나 클래시컬함의 느낌을 주려면 현대적 기술에 뒤지지 않는 소재의 고급스러움이나 장인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법이기에 그렇다.


잘 만들어진 문이었다. 부드럽게 닫혔고. 달칵 거리는 아주 작은 소음은 내부에서 시끄럽게 떠들듯 회의하는 말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출입구쪽에 머물렀다가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고, 몇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내의 인상을 잘못 본 것인지 헷갈려 하면서 눈을 비볐다. 개중에는 이형석 역시 있었는데, 그는 최근 연속해서 들은 어떤 이야기탓인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정말 사실처럼 느껴져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건 김영석 아닌가?


아무리 봐도 죽은 비령 물산의 간부처럼 보였다. 언뜻 평범해보이는 인상을 가졌던 그다. 가까이서 보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았고. 김영석은 용의주도한 인간이고 외부에 쓸 데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는 작자였으니.


그러나 그가 알고는 있는 얼굴이고 만난 적도 있다.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자세히 또 찬찬히 살펴보자 자신의 의심이 점점 더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형석은 종래에 얼굴을 구겨버렸다.

말도 안 되지만, 아무리 봐도 똑같다. 쌍둥이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을 지경인데 그렇게 편리하게 비령 그룹 내에 김영석의 쌍둥이가 있기야 하겠나.


만일 김영석이라는 놈이 꾀를 내어서, 자신과 비슷한 놈을 가져다가 성형 수술이라도 시킨 뒤에 똑같이 만들어 미끼로 쓰려고 했다면 차라리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이형석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눈길을 떼지 못하고 표정 관리에 실패했고, 제일 앞장서서 이야기를 진행하던 주관자가 그런 꼴을 보이자 그만 회의장의 다른 간부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금 뒤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김영석이 있었다.


철컥.


하고 김영석은 회의실 내부의 문을 잠갔다.


그의 키보다 높았지만 간신히 손을 올려 뻗어 뒤꿈치를 들자 닿았다. 상부에 잠금 장치가 있었고, 양문을 전부 잠근 뒤 손잡이에 있는 버튼으로도 문을 잠갔다.


‘뭐야?!’ ‘어이!’


바깥에서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잠기자 가드들이 소리를 냈다. 희미한 말소리였다. 영석의 행동은 명백한 이상이었고, 눈치가 빠른 자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뒤 그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1, 2초 정도. 김영석이 뜸을 들인 시간은 그 정도였다. 김영석의 기이한 분위기에 참지 못한 자들이 바깥에 있는 가드들을 호출하려 소리를 친다거나, 핸드폰을 들어 직접 문을 부수고 들어오라며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다.


영석은 마지막 이야기를 전했다.


“날 좋다, 이 씹새끼들아.”


참으로 화창한 오후였다.


*


가장 먼저는, 비도를 날렸다.


툭, 하고 소매를 치듯이 팔을 털자 그 내부에서 검은 나이프 한자루가 삐져나왔다. 실 따위에 허술하게 매여있었던 것인데, 강하게 팔을 털면 끊어질 정도로 딱 절묘하게 묶어두었던 놈이다. 왼 팔에 하나, 오른 팔에 하나를 묶었다. 나머지는 재킷 내부 안감 쪽에 꼬매 두었다.


그가 훅, 하고 팔을 휘둘렀다.


손아귀에 잡힌 검은 색의 단도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일직선으로 곧게 향했다. 그가 노리는 쪽은 비령 그룹의 정리를 총괄하고 있는 이형석을 향해서였다.


단도는 총알보다는 아니었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다름없는 속도로 그 명치 부근에 가닿았다.


쿡, 하고 찔리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곧바로 다음에 검은 나이프는 손잡이까지 그 속에 박혀 들어가면서, 심장을 찢고 피를 냈다.


울컥, 하는 피가 이형석의 입매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그대로 격통에 반쯤은 정신을 잃었다. 총탄에 맞은 것보다 더 좋지 못한 꼴이었다. 탄환보다 거대한 나이프는 거대한 상처를 내고 내부를 헤집었다.

“어···” 하고 비명을 누군가가 지르려던 찰나였다. 김영석은 다시금 나이프를 툭, 꺼내들어 상석 부근에 위치한 간부의 머리를 꿰뚫는다.


사람이 죽는 꼴은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김영석은 뒷춤에 꽂아 두었던 호위용의 권총을 꺼내들었다. 양복 자켓은 속주머니가 아주 많았다. 탄창 하나를 꺼내들어 철커덕, 꽂았다.


순식간의 손놀림으로 권총의 조준선이 정확히 앉아서 어벙한 표정을 짓고있는 간부들의 머리 부근을 노린다. 권총이 앞을 바라보고, 연사는 아니되 극한의 속사로 정확한 사격을 시작하기 직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씨발, 뭐야 저 새끼!” “으아아아!” “가드, 야 씨발 밖에 애들 뭐 하는 거야!”


몇 마디 말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미 영석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고 총알 하나는 날아 그 옆머리에 맞았다.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던 인간의 측두부였다. 그대로 부수고 지나간 탄환은 끔찍한 흔적을 주변에 남겼고, 조직의 간부들은 다시금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났다.


간부들 중 회의실에 총을 가지고 들어온 작자들이 있었다. 공업사 쪽의 3인자 즈음 되는 오하균도 개중 하나였고, 그는 떨리는 손을 붙들면서 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들어 영석을 겨눴다.

영석은 차분하게 여러 발을 조준 사격했고,


탕, 탕, 탕,


하고 연이어서 터져 나오는 총성으로 꼭 그와 같은 수의 사람들이 죽었다.


오하균 역시 영석의 눈에 띄어 그대로 사격했다. 탕! 심장에 정확히 탄환을 맞은 그는 숨 넘어가는 작은 소리와 함께 절명했다. 손쉬운 일이었다. 이들의 목숨을 없애는 건 말이다. 영석은 계속해서 탄알집이 바닥날 때까지 갈겼다. 탕탕탕! 쾅!


그가 쏘는 총성 사이로 바깥에서 총격이 터져나왔다. 그대로 회의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탄환은 실내 바닥이나 벽면 따위를 맞고 파고 들어간다. 영석은 바로 옆으로 뛰듯이 몸을 옮겼다. 곧이어, 쾅! 하고 몇 놈이 커다란 나무 문을 부수면서 들어왔다. 잠금 장치에 총을 갈긴듯 열려버린 문의 몇 개 장치가 후두둑 하며 그 잔해를 떨군다.


탕!


영석은 자신의 시선에서 오른쪽으로 뛰었었다. 회의실의 넓고 긴 문이 열리는 동작 범위 바깥까지 순식간에 빠져 나갔고, 마치 최길서의 집무실에서 그러했듯 벽면에 딱 달라붙어 사각을 만든 뒤 들어오는 놈들을 침착하게 조준 사격했다.


한 발이라도 놓치면 결국 살아서 그에게 총격이 쏟아질 상황이었다. 타타탕! 연속해서 갈기는 총격은 모조리 성공했고, 쏟아지듯 들어오던 놈들은 그대로 총격에 몸의 중요 장기 어느 부분인가가 갈려나가며 바닥에 쓰러진다. 회의실 내부에 무기를 들고 있던 놈들 위주로 먼저 처리했다.


탕! 하고 어떤 놈이 총을 쐈다. 감추고 있던 작자가 영석을 겨누고 쏜 모양인데, 회의실 내부 크기가 깨나 넓고 영석이 그 끝 벽면에 붙어 있어서인지 한 번에 맞추지 못하고 빗나갔다. 영석은 쏴대던 권총을 한 번 옆으로 틀어 탕! 하고 갈겼다.


슥 고개를 돌려 잠시 시선을 준 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조준에 필요한 시각 정보는 모두 얻을 수 있었다.


확장 탄창이 모조리 끝나기 전에, 영석은 자켓 내부의 주머니로부터 탄창을 더듬어 확인했다. 하나하나 세어가며 서른 발을 모두 쏴댔을 즈음에, 그는 마지막 한 발을 탕! 쏜 뒤 그대로 탄창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품 안에서 예비 탄창을 꺼내들어 결합시키는 데 눈 몇 번 깜짝일 시간 정도가 지났다.


다행히, 가드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문 앞에 시체 더미가 다시 쌓여 충분히 갈아낄만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영석은 다시 한 번 문 쪽을 노려보며 회의실 내부로 들어오는 가드들을 쏘다가, 한 발은 다시 팔을 쭉 뻗고 옆으로 돌려 간부 중 한 놈의 머리를 터뜨린 뒤에야 다시금 호위조를 상대했다.


간부들은 순식간에 삼 분의 일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애초에 그리 많은 수가 들어온 것도 아니었으므로 말이다. 고작해야 스물 세 명이었고, 일고 여덞 명 정도가 시체가 되어 널브러졌다.

곧 나머지 탄창은 전부 문 앞에 적들의 시체로 바리케이트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발이 걸려서 넘어질 정도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끔 자연스럽게 둔덕이 생겼고 그가 딱 붙은 벽면에서 조금 떨어져 옆을 바라보자, 복도 쪽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놈이 보이기에 마침 쏴서 죽였다.


탕!


복도 쪽에 서서 회의실 내부를 바라보고 영석을 노리려고 꾀를 쓰던 놈은, 그대로 그의 모습이 보여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 다음 그가 느낀 것은 어둠이었고, 곧바로 목숨을 잃는다.


“으아아아!”


조직원들은 눈 앞에서 사람이 죽으면 보통 괴성을 내지른다.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라면 단순한 비명이라기보다 적을 죽이기 위한 기합의 의미도 조금 들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 역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기에, 몸이 굳는 게 어쩔 수 없다.


불안감은 그들의 움직임을 난폭하게 만든다.

훈련된 특수 부대의 병사들이 아니었기에, 그들 하나하나의 명중률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김영석에게는 좋은 먹잇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19층에 머물러 있던 가드들이 반 수 이상 빠져나갔다. 회의실이 있는 해당 층에는 IT계열사에 속한 조직원들 보다는 각 계파에서 끌고 온 호위조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회의실 근처에서 벌어진 소란으로 각지에 대기하고 있던 IT사의 경비조 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는 20층과 18층에 있던 자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영석은 금세 예비 탄창을 다 써간다고 느꼈다. 오십 여 발에 달하는 탄알은 한 번도 목숨을 앗아가지 못한 적이 없었다. 모조리 상대의 장기를 찢는데 사용된 탄환이었고, 그는 천천히 사격을 계속하면서 집무실의 문 근처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복도 너머의 시야가 조금씩 트였다. 문쪽으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집무실로 나갔을 때 오른 쪽에 서 있는 놈들이 다가오는 게 보이는 것이다.

그들이 조준하기 전에 먼저 쏴 맞추면서 문의 근처로 다가선다. 마지막 순간에는 몸을 훅 날려 시체 더미 아래에 다가섰다. 그리고 슬쩍 훑어 본 시야로 떨어진 총 몇 개를 손가락에 한 번에 걸어 뒤로 빼며 움직였다. 탕!


하고 마지막 총알을 소비했다. 영석은 그대로 뒤로 자세를 눕히며 다이빙을 하듯 훅 뛰었다. 타탕! 하고 바깥에서 응전하는 사격이 방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그가 몸을 아래로 굽혔기에 허공을 가르는 탄알들이었다. 쿠당탕, 하고 카펫 위에 들이박은 영석은 그대로 손가락에 건 권총 두 정을 손아귀에 쥐었다. 오른 손에 든 것을 한 발 날린다.


탕!


하고 총알이 격발되었다. 왼 손에 있는 것도 마침 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가드의 머리를 날리는데 써보았다. 탕!

다행히 두 정 모두 총알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게 아쉽고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일반적인 콜트 권총이었고, 손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으로 보아하니 10여 발 정도 각 정에 남아있는게 느껴졌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다. 딱 이 모델의 무게감을 알고 있던 게 아니었으니 일반적인 권총의 무게에 따른 추정치에 불과하다.


탕, 타탕, 탕, 타탕!


영석은 신나게 총을 갈겨댔고, 개중 꼭 한 발은 간부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백 덤블링으로 일어나며 거리를 뒤로 벌렸다. 회의실의 벽면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차 바깥은 보이지 않는 사각이 된다.

다행히 회의실의 벽면은 최신식 빌딩답게 아주 튼튼하고 그럴싸한 자재로 지어져 있었다. 총알이 벽면은 관통하지 못했다.


“막아, 막아, 씨발, 쏴! 개새끼들아!”


살아남은 간부 중 익숙한 얼굴 하나가 발악을 했다. 제약사 쪽의 2인자 즈음 되는 놈이었다. 민형석이 죽은 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모양이었다. 영석은 왼 손에 든 권총을 자신의 든 오른팔 아래로 슬쩍 방향을 바꾸어 동시에 두 정을 쐈다. 탕! 마치 합창을 하듯 정확한 박자로 겹친 소리에, 말단 가드와 간부가 함께 죽었다.


두두두, 하고 이미 귀따가운 총성에 얼얼한 귀가 먼 소리만을 듣게 될 때 즈음 19층에 본래 있던 가드들 중 대부분이 정리된 모양이었다. 다른 층에서 밀려 들어오는 놈들이 새롭게 자리를 메운다.


영석은 다시금 거리를 좁히며 시체 더미에 다가가, 권총을 즉석에서 구해다 계속 쏘고 그 시신으로 이루어진 엄폐물로 총알을 피하는 등의 짓거리를 반복했다.


약 이, 삼 분 정도가 지나기 전에 회의실 내부에는 살아남은 인간이 없었다. 시체 더미가 사람의 시야를 온전히 가릴만치, 그러니까 영석이 쪼그려 앉은 체격을 완벽히 가릴만한 높이가 되자 일은 점차 쉬워졌다. 복도에 조직원들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영석은 아예 문 근처에서 빙빙 돌면서 바깥에 있는 놈들을 천천히 잡아 먹었다. 여러 정의 권총을 바깥 쪽으로 흩뿌린 뒤에 갈아 끼면서 눈에 들어오는 자들을 쏴대는 것이다.


좋은 자리를 잡고 사각을 점유한 영석을 잡을만한 인간이 별로 없었다. 가드들은, 곧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만한 간부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 비령 그룹의 본사 건물을 침입한 암살자를 죽이기 위해 총을 쏴대며 달려든다.


영석은 한참을 지루하게 총격전을 벌였고, 스친 총상 하나 입지 않은 채로 19층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


“······.”


잠시 기다리며 누군가 다가오는지 살폈다. 인기척도, 총성도, 비명 따위도 이제는 없었다. 조용한 시체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19층의 한 켠 복도는 널브러진 시체들과 그 잔해들로 가득했다. 복도를 이루는 깔끔한 느낌의 복도 바닥이 온통 진득한 피나 체액이 뒤덮고 있었다.


그리,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영석은 툭툭, 손에 든 권총을 털어내면서 탄알집을 살폈다. 두, 세 발 남은 것을 양 손에 끼고 있었다. 그는 사용하지 않은 권총들을 골라내어 천천히 탄알집을 꺼냈고, 몇 개 남지 않은 탄알집에 끼워넣기 시작했다.


총알을 골라 가득 찬 탄알집 두 세개를 넉넉히 만들어두고서, 영석은 자신이 날렸던 비도까지 회수해 19층을 벗어났다.


*


더 이상 연락이 들리지 않았다.


IT본사에는 아직 IT사 계열의, 이형석을 따르던 경비조원들이 남아 있었다. 각층에 남아 있던 자들 중 대부분이 19층으로 향했고, 반 수 이상이 소란을 듣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간에 무전이나 핸드폰 따위로 계속해서 오던 연락이 멎었다. 사태가 진정이 된 것인지, 혹은 아닌지.


그들이 따르는 조장이나 혹은 이형석의 직접적인 연락이 없자 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고, 천천히 빌딩 내부를 수색하며 걸었다.


김영석은 19층을 벗어나 아래로 향했다. 그가 없애고자 했던 인간들은 대개 처치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가장 윗대가리라 할 수 있는 자들의 목을 베었다. 실제로 벤 건 아니고 뭐, 총알을 사용해 목숨을 날린 것 뿐이지만. 아무튼 그리고 나서 그 다음 간부진들이라 할 수 있는 중진들을 모조리 처치했다.


비령 그룹이 당장 제 기능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거대한 집단은 유지하기 위한 머리와 손발, 또 혈관을 도는 피들이 있어야만 했다. 말단 조직원들과 사원들은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집단의 향방을 결정하는 수뇌부가 부재한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머리의 상실은 곧 집단이 연합하고 있던 기본적인 연결 고리의 부재를 뜻한다. 그들이 한 조직이어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설파하는 것이 머리의 역할이었으니 말이다.

비령 그룹은 아마 각 계파별로 찢어질 확률이 높았다. 서로 간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고, 한 개의 거대한 조직이었던 시절이 아니라 보다 예전 중소 규모의 범죄 조직이었던 시대로 회귀할 것이다.


유력한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직접 할 만한 놈들이 적어질 수록 비령 그룹 자체에 대한 투자도 적어질 것이고. 그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 역시 각 분야 별로 찢어질 확률이 다분히 높았다.


비령 그룹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이나 크기 때문에 함부로, 한 번에 치기가 어려웠던 경찰 등 공권력의 조직들도 이제는 조금 더 건드리기가 쉬울 테다.


거기에 몇 건의 내부 고발을 더한다면 비령 그룹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를 도와줬던 비령 물산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남은 생애는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할 테였다. 다같이 모여서 건전한 사업이나 벌이고 땀흘려 일하고 돈을 벌던지, 해야겠지.

어차피 몸 쓰는 일에는 자신있는 놈들로만 채워진 조직이니 알아서 잘 할 것이다.


IT사 본사는 고요했다.


내부의 소음이 멎었다.


시끄럽던 무전과 휴대폰 속의 연락도 멈추었고.


각자 조를 이루어서 조심스럽게 근처를 수색하는 IT사 계열의 남은 조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무장은 대개는 실탄을 넣은 권총이나 사시미칼, 삼단 철봉 따위였다.


빌딩 건물 내부에서의 일은 다행히도, 외부로까지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고층 빌딩과 빌딩 사이에 간극이 상당히 크기도 했고. 지을 때 이런 일이 있을까 해서 방음을 다소 고려한 설계가 일시적인 차단 효과를 보였다.


저벅, 거리며 김영석은 아무도 없는 빌딩 내부를 걷는다.


그가 천천히 내려간다. 정문으로 돌파해서 나가는 건 아무래도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가드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을 듯한 모습이었다.


빌딩 고층, 상부 내밀한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몰라도 정문 현관에서 총을 쏘거나 사람을 죽였다가는 도심지를 지나는 사람들이 곧바로 보고 신고를 할 테였고.

물론 수습을 위한 작자들은 와야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그를 도와준 비령 물산쪽 부하들을 같이 잡아 넘길 생각은 없었다.


17층, 16층, 15층.


그는 저벅거리며 걸어 내려갔다. 엘레베이터를 쓰는 건 시끄러운 일이었다. 아마 그 주변을 주시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곧장 보일 테니까.


문이 열리는 순간 상대방과의 교전이 시작될 수도 있는, 좁은 공간에 자신을 밀어넣는 건 아무래도 어리석은 짓거리였다.


영석은 천천히 계단을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층 즈음에 다다랐다. 비상구 옆을 지나는데, 사람들의 말소리나 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일이 끝나기 전에 17층의 대기실에서 비령 물산의 부하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일반 사원과 비령 그룹과는 관계 없는 민간인들이 자리를 피한 때였고, 곧 움직이고 있는 자들은 전부 비령의 전투조라고 봐도 좋으리라.


영석은 덜컥, 하고 문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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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콜트 +2 23.09.15 22 1 22쪽
19 18. 지지支持 23.09.15 23 1 29쪽
18 17. 조직 내 간부 총회 23.09.14 19 1 16쪽
17 16. 도주 23.09.14 19 0 16쪽
16 15. 파리지옥 23.09.14 22 0 15쪽
15 14. 손님 왔습니다. 23.09.13 24 0 20쪽
14 13. 짧은 재회 23.09.13 29 0 24쪽
13 12. 제인 메리어트 23.09.13 29 0 27쪽
12 11. 탕! 23.09.12 30 0 33쪽
11 10. 빠른 퇴장 23.09.11 38 0 25쪽
10 9. 스티브 블레어 23.09.11 30 0 26쪽
9 8. 김도건 23.09.10 36 0 31쪽
8 7. 민형석 23.09.09 38 0 30쪽
7 6. 떨어지다 23.09.09 36 0 25쪽
6 5. 회복 23.09.09 36 0 23쪽
5 4. 숨 좀 쉬자 23.09.09 32 1 22쪽
4 3. 초인 23.09.08 42 1 30쪽
3 2. 오발 23.09.07 37 1 20쪽
2 1. 기억 23.09.07 44 2 28쪽
1 0. Prologue. 23.09.07 8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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