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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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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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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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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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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비슷한 아이디어

DUMMY

*


제냐와 최태현이 대공가에 몰래 잠입을 했음에도 들키지 않은 건 여러 개의 우연이 겹친 성과이기는 했다.


릿샤보다 확실히 윗급이라고 할 수 있는 초상술사가 마침 대공가에 거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제냐와 최태현보다 솜씨가 뛰어난 기사들을 만나지 않은 것도 있다.


대공가 내부에는 여러 개의 방호, 감지용의 결계가 쳐져 있었는데. 미로처럼 얽혀있는 장치들을 생각보다 많이 건드리지 않기도 했고.

그건 ‘루드’라는 인물을 따라, 대공가 내부 인원이 움직이는 경로로만 함께 걸어 움직인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왔던 길을 그대로 반복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것만이 안전한 루트라고 여겨지기도 했으니.


결국 아무런 소란도 소요도 없이, 대공가 내부에 침입을 해서 이야기를 듣고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바깥에 있던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다.


릿샤는 잠시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녀를 부르는 호출이 현실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큰 안건은 아니었으므로, 짧은 시간 내 처리를 하고 돌아왔다.


옹기종기, 작은 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헌터즈 길드의 관습처럼도 보였다. 이제와서 생각을 해보면 말이다. 그다지 즐거운 관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힐 마스터, 에드버그의 치유술로 완벽하게 나은 로웰 드버 또한 있었다.


“일단······. 대공가에 우리를 습격한 놈들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제냐가 말했다.


숨죽인 채 대공가 내부에 다녀온 이후. 아티팩트의 효과를 풀며 건넨 말이다.


릿샤 애드윈의 아티팩트는 어떤 점에서는, 걸작이라고 할만했다. 그녀는 디테일Detail을 굉장히 신경쓰는 부류의 인간이었으니까. 어찌할 수 없는 강박적 완벽주의라고 해도 좋았다. 일회용의 아티팩트에 스킬식式을 짜넣으면서, 복잡한 기능을 부여했다.

제냐와 최태현의 투명화와 기척 감추기는, 오로지 적에게만 해당하는 기능이었다. ‘제냐’와 ‘최태현’이 서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헌터즈 길드원, 그리고 로웰 드버의 MP 정보를 삽입하여 해당하는 인물들에게는 스킬의 효과가 통하지 않게끔 해두었다. 일일이 인물 설정을 하고 누구에게는 보이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바가 아닌데도. 릿샤는 전장에서 사용한다면 그게 맞지 않는가, 라고 여겨서 기능을 설정했다.


MP의, 희뿌연 막이 사라지는 것 정도로 보였다. 일행들의 눈에는 제냐나 최태현의 겉에서 말이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금테를 두른 보석 구슬의 형상이다. 투명화의 스킬을 만들어 준 1회용 아티팩트는. 제냐는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고, 금테가 박힌 근처로 보석에 균열이 일어났다. 효용을 다했다는 표식이었다.


파삭, 거리는 소리마저 들린 듯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을 하고서 제냐가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늦은 오후, 낮의 햇살이 창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슬슬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생각할 즈음이었다. 릿샤가 있는 서부 지역의 시간으로는 아침 나절이었고.


“거기서 지난 암살자들 중 한 놈의 모습을 봤고······.”


‘한 놈’이라는 건 게오르그 후딘을 일컫는다. 놈의 입으로 지난 암살이니, 제냐 킴이니, 하는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었으니 확실한 일이다.


“대공가의 주요한 인물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실무를 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작자는 볼 수 있었어요.

······.”


제냐는 말을 잠시 머뭇거리다 뱉는다.


“우리에 대한 신경은 그다지 쓰지 않는 걸로도 보이더군요. 대공가가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바로 앞에, 계속해서 죽이려고 했던 우리가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신경을 써야할 정도로.

‘벨베르 공화국’ 쪽으로 지난 밤에 우리를 덮쳤던 워메이지 하나가 파견된다고 하던데···.”


“벨베르라.”


호아킨이 이야기했다. 호아킨이나 릿샤의 경우에는, 이곳저곳 여행을 한 경력이 깨나 있었다. 산슈카의 인접국이라고 한다면 가보지 못한 곳도 아니다. 산슈카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나라였다.


묵직한 몸뚱이를 가진 사내는 마룻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식의 가부좌가 익숙하다. 호아킨 팍스, 는 몸이 유연하다. 그리고 다양한 잡종의 문화를 습득한 자이기도 하다. 현실의 호아킨 역시 다양한 무예를 익혔고, 개중에는 동양권의 것도 있었다. 검도라거나, 유도라거나, 택견이라거나.


호아킨은 운동 신경만큼은 타고난 사내였다. 그렇기에, 다양한 폼Form으로 변신술을 하면서도 전투력의 저하 없이 강력함만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고. 보통 자신의 몸에 대한 제어가 제대로 안되는 인간은, 몸의 형태가 변했을 때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거기에서 나아가 전투 상황에서 싸운다는 건 훨씬 고난이도의 작업이 되고.


호아킨은 늑대원숭이로도, 사자나 곰으로도, 그리고 거대한 매로도 변하며 자유자재로 싸웠다. 자신의 몸뚱이가 어떤 형태이던간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선천적인 감각이 있는 셈이다.


총을 다루는 군인이었지만. 그런 식의 무예는 물론 쓸모가 있었다. 심지어 실제 전장에서도 말이다. 결국 총을 쏘고 조작하는 일은 사람의 몸이 아닌가. 전략 수행을 위해서 위치 이동을 하는 걸음걸이도 제 발로 해야 한다.


호아킨은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내였고. 전쟁터에서도 살아 돌아왔다.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지금은 게임 속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스릴을 맛보며 정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봉인이라도 당했던 것마냥 꺼내기 어려웠던 기억들을. 유사한 경험들을 통해서 조금씩 상기하며,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아킨에게 있어서 비련의 시나리오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무언가였다. 사람이 아마 마음을 먹기 나름일 테였다. 무엇을 도구로 사용하던. 그것을 쓰고 있는 시간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도 인생도 모습을 달리한다.

사람의 운명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충분히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진실이리라.


민머리의 사내가 말한다.


“전에 릿샤와 가본 적이 있지.”


그렇잖나, 하는 표정으로 호아킨이 릿샤를 바라보았다. 릿샤는 말없이 고갯짓으로 긍정한다.


“공화국이면, 우리가 아는 그런 형태입니까?”


제냐가 묻는다.


호아킨이 조금 생각을 해보며 말을 하고.


“음··· 시대가 다르니 다르지. 하지만 산슈카 왕국같은 동시대의 왕정체제 나라들과는, 분위기가 이질적이긴 할 걸세.

거긴 왕의 명령보다는 짜여진 규율과 체계가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 아무튼 좋은 곳이야. 산슈카보다도 더. 어떤 의미에서는.”


초보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퀘스트를 얻고, 자신만의 육성로路를 개척하기에는 확실히 좋은 곳이었다. 몬스터도度라는 수치가 있다고 한다면, 산슈카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가진 곳이니까 말이다.


나라 전역에 퍼져 있는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산슈카보다 적고, 마경魔境이라 불릴만큼 통제되지 않는 구역이 더 적었고. 또한 몬스터들의 평균적인 레벨 역시 낮았다. 그건 우연히, 운이 좋게 그런 땅 위에 나라를 세운 탓도 있었고. 수많은 토벌전으로 개척을 해낸 부분도 있어 가능한 점이다.


결국 더 많은 몬스터, 강력한 것들을 레이드해야 하는 고수급 이상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딱히 얻을 게 없는 땅이었다.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퀘스트를 얻고, 경험치를 수급하는 이들이라면 기회의 땅일 수 있었겠지만.


몬스터들의 분포도, 리젠(Regen;eration)이 이루어지는 속도, 전체적인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 그런 것들을 고려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인가, 아닌가가 정해진다.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의 몬스터도를 갖고 있는 문화권이라고 한다면.

보다 세밀하게 사람들의 거주 구역이 만들어져 다양한 교류가 가능할 테였다. 또한 말이다.


지역간 교류가 쉽다는 말은, 교역에 드는 돈이 그만큼 적다는 말도 되었고. 물류와 인적 자원의 유통이 원활하다는 뜻은, 균등하게 각 지역들이 발전하기 쉽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화국 또한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곳이었고, 무수한 상인들이 있는 땅이다. 상도商道를 걷고자 한다면 벨베르 공화국 또한 나쁜 선택지가 아니었다. 시작점으로서 말이다. 산슈카에서도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NPC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벨베르 공화국이 보다 나으리라.


이슈칼과 안단, 화신 사막 역시 모두 각자의 플레이할만한 장점들이 있는 구역들이다.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 결정에 따라 지역이 바뀌게 되고. 플레이어마다의 이야기가 달라지게 되리라.


‘이야기’라는 건 하나의 줄에 꿰여진 여러 개의 구슬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어떤 첫 장면을 꿰느냐에 따라서, 큰 줄기 전체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소리이다.


제냐 일행은, 산슈카에서 시작을 했거나. 혹은 산슈카에서 주로 플레이를 했던 이들이며. 다른 지방에서 로그인을 하고, 플레이를 시작했던 이들은 또 그들만의 서사가 진행되게 되리라.


“상인, 정치인, ···뭐 그런 부류들의 플레이어들이 좋아하는 곳이라네. 사람간에 얽힌 이야기를 보고자 한다면 벨베르로 가는 게 산슈카보다는 더 낫긴 하지···.

조금 다른 경치를 원한다면 화신 사막도 괜찮고···. 거긴 너무 인프라infra(structure)가 부족하기는 한데···. 또 나름대로 재미가 있기도 하고···.”


호아킨이 주절주절, 상식같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제냐와 최태현은 고민을 한다.


어쨌든 퀘스트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 어디로 움직일까, 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건 제냐 킴의 몫이었다.


퀘스트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제냐 킴이었고. 다른 인원들은 본질적으로 게스트Guest의 입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다른 이들도 퀘스트 로그를 받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문장들은 제냐의 인터페이스 창window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제냐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퀘스트 로그를 계속 켜서 확인하는 중이다. 뭔가 달라진 구석이 없는가, 찾으면서.


“···게오르그 후딘.”


제냐가 입을 열었다. 불쑥, 튀어나온 고유명사에 다른 이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릿샤는 머리 회전이 아주 빠르다. 그리고, 추리력도 남달랐고. 단지 생각이 빨라서만은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해서 가끔 떠올리고는 했다.


“그 놈의 이름이야?”


릿샤의 물음에 제냐가 고갤 끄덕거린다.


“한 놈이 빠져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대공가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가···. 납치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제냐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서는 아니었다.


제법 대담한 수이기도 했고, 곧바로 그에 대해서 가능성 여부를 머릿속으로 따져보느라 눈동자가 커졌다. 가장 먼저 답을 내놓은 건 역시 릿샤 애드윈이다.


“음··· 괜찮은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를 알아?”

“···어···.”


제냐가 옆자리에 앉은 태현을 바라보았다. 둘이 같이 목격한 장면들이 지금 이야기의 단서가 되니까 말이다.


루드, 라는 이름의 행정관 뒤를 쫓았다가 목격한 상황이었다. 루드가 들고 온 서류를 넘길 때, 제냐와 태현 역시 얼추 내용을 살폈다. 루드는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가져 온 문서에 잘못된 부분이 없는가 훑어보기도 했고. 루드의 곧바로 뒤에 서 있던 그들 역시 빠르게 내용을 더듬어 보았었다.


“아마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것 같던데···.”

“새벽이라.”


릿샤가 툭, 손가락을 튕겼다. 내일 새벽이라. 마침 내일은 근무가 없는 날이기는 했다. 최근에 야근이 많았던지라. 연구원의 수명 보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는 직장이다. 그녀는 아직 ‘박사’ 위位도 받지 못한 나부랭이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연구소에서 봤을 때 그리 입지가 좁지도 않았다. 바르샤 애드윈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 탓이다.


아직 내지 않았고, 또 완성되지 않은 논문은 이미 교수진들 사이에서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중이었다. 물리학의 기초 이론에 접근하는 아이디어가 특이했고, 그녀만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내용들이다.

어리게 보이며, 또 예쁜 외모를 가진 천재적인 여성이라는 게 그리 환영받을만한 존재는 아니기는 하다. 바르샤처럼 성격이 모난 편이라면 더욱 그럴진대. 아무튼 요즘에는 그럭저럭,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또 잘 하고 있는 중이기는 했다.


바르샤, 아니 릿샤는 괜찮은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보통 한낮에 비련시 온라인에 접속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는 했는데. 가끔 쉬는 날 정도라면.


“내일이라면 나도 괜찮을 것 같아.”


“내일 새벽 말이오?”


로웰 드버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청년, 이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그는 눈밑이 퀭하다. 최근에 릿샤에게 들들 볶이면서 아티팩트 훈련에 여념이 없는 탓이다.


릿샤가 접속하지 않았을 때에도 홀로 그녀가 준 아티팩트를 가지고, 열심히 애를 썼다. 최근 MP가 탈탈 털리는 경험을 많이하다보니 피곤해보이는 안색이다. MP 포션을 주기적으로 섭취했음에도 말이다.


MP는 정신에 관한 힘이었다. MP를 다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의식을 집중해야 했고. MP가 고갈될 때 느껴지는 고통, 통증은 신경적인 부류다.

주로 머리 근처에서 이상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고.


MP고갈이 반복되다보면 포션으로 아무리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띵-한, 후유증 따위가 조금씩 잔여물로 남게 된다. HP역시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0근처까지 떨어지게 된다면. 캐릭터 신체의 면역력이나, 전체적인 기능이 다소 저하될 수도 있었다.


이 게임은 늘 플레이어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한다. 쓸데없는 현실감을 더하고 있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전투를 치르더라도, 최대한 HP가 떨어지지 않도록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이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연전連戰을 치러낸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보여지는 것 이상의 전투 센스, 컨트롤 실력이 있는 이들만이 계속해서 싸움을 반복하며 게임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어떤 자이길래······.”


로웰 드버가 물었다. 제냐는 목덜미를 긁적인다.


“음. 릿샤보다는 조금 낮지만··· 그래도 고수급 이상의 뛰어난 워메이지···고. 아, 인상 착의는 대충 이런 식입니다.”


제냐는 드로잉Drawing 스킬을 사용했다. MP를 이용해 형상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그가 오른손바닥을 위로 들어올리며 펼쳤다. 제냐의 손에서 몇 줄기 빛줄기가 뻗어나오더니, 곧 허공 한 점에 머무른다.


빛이 선으로 이루어진 도형을 만들어내더니, 곧 변화하여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기본적인 스킬이었다. 비쥬얼만 나타내고 있었고. 어떤 기능도 없다. 그러나 MP를 다루어 정밀한 그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컨트롤에 관한 역량을 요구한다.


별 것 없는 스킬이었으나 적어도 중수급 이상의 초상술사들이 사용 가능한 기술이다. 푸른 빛의 선과, 작은 입자처럼 점이 찍혀 면을 채운 3D 형상이 방의 허공에 나타났다. 실제 얼굴만한 크기였다. 제냐가 조정을 하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방의 중간으로 머리 형상이 움직인다.


긴 머리칼. 채도와 명도의 변화로 표현한 머리칼의 색깔. 눈빛. 조금 느끼하게 생긴 사내의 얼굴이었다. 40대는 넘긴듯한 중년의 모습이다. 홀로그램처럼 둥둥, 떠 있는 머리 형상은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아 방에 있는 이들이 전부 그 낯을 확인했다.


제냐가 손을 가볍게 감싸면서 주먹을 쥐었다. 곧, 투명한 끈이 허공에 있는 머리 형상과 제냐의 손바닥을 연결시켜 주고 있었기라도 한 듯. 형체가 사라졌다.


“대공가 근처에서 잠복을 하고 있다가···. 대공령 바깥에서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하고 제냐의 말에 최태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에 있는 인원들은 모두 전투에 능한 부류였다. 라이엔이나 로웰 드버의 경우에는 다소의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자들은 솔로 플레이로 전투 컨텐츠를 십분 즐길 수 있는 인원들이다. 적절하게 조를 나누어서, 게오르그 후딘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자와.


또 대공령 바깥의 적당한 포인트Point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덮칠 인원을 구분하는 게 나으리라.


대공령 내부에서 뛰어난 솜씨의 워메이지를 납치하는 건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밤, 그들이 암습을 당했을 때 암살자들이 소란스러운 전투를 숨기지 못했던 것처럼.


제냐 일행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그만한 초상술사와 싸우면서 조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는 입장이었고. 명분 따위를 내세우면서 겁박을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힘도, 명분도 저 쪽에게 우위가 있다고 한다면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당하는 셈이었다. 적어도 언제나 명분은 이쪽에 있어야만 한다.


게오르그 후딘,


이라고 불렸던 남자를 납치하는 일은 분명 급진적 방법이기는 했으나.

그로부터 대공가의 소식들을 소상하게 알아낼 수 있다면. 결국 좋은 재료가 될 테였다. 산슈카에 있는 다른 권력자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킬만한 교섭 재료 말이다.


그리턴이나 로멜리아가 그들의 편에 서서 싸워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상황이 나아지는 바가 없었다.

상대는 대공이었고, 사대고가의 일원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고강한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귀족이고. 그 휘하에 있는 부하들의 수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다.


자칫 잘못하여 그들이 하는 일이, ‘정통파 귀족’들에 대한 반역으로 비춰진다면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제냐 일행은 산슈카의 전복을 노리고 있는 미치광이 반역자를 찾아 저지해야 하는 것인데.


헌터즈 길드라는 외부인 집단이 산슈카에 반역을 한다는 식의 상황이 되어버리면. 꼼짝없이 외통수다. 달리 반항할 구석도 없고. 움직임이 묶여있는 동안 ‘반역자’는 활개치며 제 계획을 모두 끝내놓으리라.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대공저에 침입을 해서 대공을 납치하고픈 심정이었지만. 여태까지 상대해왔던 암살자들이나 여러 계략들에 비추어 생각을 해보았을 때. 그만큼 노회하고 악독한 자가 자신의 신변을 위해 남다른 수를 개발해 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저 보이는대로 기회로구나, 하며 대공을 덮쳤다가. 그대로 게임 오버의 순간이 될 지도 모른다.


“움직임을 좇는 건 내가 하는 게 나을까.”


라이엔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갈색 매를 타고 날아간다면, 확실히 누구보다도 기동력이 좋으리라. 그러나 릿샤는 고개를 저었다.


대략적인 일의 방향성이 정해지면 세부 계획과 인원들의 배치를 짜는 일은 릿샤 애드윈이 주로 하고 있었다. 다른 자들이라고 머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계획에 모두 참여하고 시간이 된다면···.”


릿샤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길드원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로웰 드버 역시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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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11 1 26쪽
290 289. 사막민民의 회의 24.04.30 13 1 19쪽
289 288. 궁리 24.04.26 13 1 14쪽
288 287. 광자포같은 24.04.25 13 1 25쪽
287 286. Forest orb 24.04.25 13 1 18쪽
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14 1 25쪽
285 284. ㅌㅌ 24.04.24 15 1 17쪽
284 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24.04.24 12 1 21쪽
283 282. 매달린 사내의 시점 24.04.23 13 1 13쪽
282 281. 기사A의 시점 24.04.22 12 1 13쪽
281 280. 방호 결계 24.04.21 16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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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278. 마른 하늘에 24.04.21 9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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