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3 00:06
연재수 :
353 회
조회수 :
8,594
추천수 :
766
글자수 :
3,360,040

작성
24.04.14 01:06
조회
14
추천
1
글자
18쪽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DUMMY

*


“썬더울프.”


뇌정雷精.


전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팔뚝만한 크기의 늑대가 나타났다. 파지지직, 하고 주변의 공기를 태우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놈이었다.


참으로 그럴싸하게 생긴 작은 늑대는, 토미의 부름으로 인해 바깥으로 나온 녀석이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편의상 인공생명, 혹은 인공정령이라고 부를만한 존재이다.


모든 정령은 인공의 물건이기는 했지만.


강대한, 고강한. ‘대현자’ 급에 이르는 정령술사들은 그에 걸맞은 정령들을 다루고는 했다. 그런 경지의 이들이 다루는 정령들은, 수많은 학습을 거친 고도의 AI처럼 완벽한 움직임과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아마 복잡한 프로그래밍 작업이 들어간다면 실제로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 역시 가능은 할 테였다. 콘란드 대륙에 있는 모든 NPC들은 결국 데이터 더미이기는 했지만. 이 세계에서 다시 그러한 AI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플레이어가 NPC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그럴싸한 말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플레이어들 중에서, 고대高大 정령을 다루는 대현자급의 정령술사는 없었지만 말이다. 현재까지 플레이어들이 다다른 수준은. 굳이 따지자면 중급 정령에 머무를 뿐이었다.


레벨로 따지자면 300정도 되는 수준의 정령술사가 다루는 물건들이다. 중급이라고 해서 만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고. 수퍼 마스터, 혹은 슈페리얼 마스터가 다루는 급인만큼 전쟁에서 쓰인다면 어마어마한 화력을 뽐낼 수 있었다.


동급의 보스 몬스터라고 보면 정확했다. 전체적인 스펙Spec은 조금 떨어질 수 있었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세밀하게 조정을 하니만큼 훨씬 강력하게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정령의 구분은 정령술사들끼리, 하중고로 나누고, 그 뒤에 다시 기소중대로 나누었다.


하기, 혹은 하하기下下基급부터 시작해서 고대高大급까지.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거대한 형태의 정령이 되는 경향 또한 있었다. ‘대大’급의 정령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압축해서 소형화할 수 있었으나. 소급의 개체는 가진 바 힘으로 무작정 대형급의 신체를 가지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눈속임으로 잠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결국엔 MP로 이루어진 MP체體였으므로. 밀도가 옅어지고 부서지기 쉬운 꼴이 될 뿐이었다.


세부적으로 나누는 자들은 가장 아랫단계의 정령을 하하기, 하하소, 하하중, 하하대, 하기, 하소, 하중, 하대, 중기, 중소, 중중, 중대 따위로 나누었고. 조금 단순하게 구분하는 이들은 맨 아래 부분의 세 단계를 생략하여. 하기부터 시작해서 고대까지 이어지는 단계를 사용했다.


정령사, 정령술사들끼리 쓰이는 구분법이었고.


보통 다루고 있는 술사의 레벨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레벨이 낮은 정령사가 높은 급의 정령을 다루는 일 역시 가능은 했다. 그러나 정령 술식을 구성하고 짜낼 때. 외력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또 실사용 때 역시 많은 아티팩트 따위의 보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용을 해도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는 게 어려울 수 있었고.


정령술은 초상술 중에서도 굉장히 고도의 작업이었다. 특별하게 갈래가 갈라진 술식 체계였고. 기본적으로 원소술에 초상력적으로 인공 지능을 부여하는 고난이도 기술을 더한 것이다.


처음부터 정령술을 사용하는 자들은 굉장히 운이 좋은 부류들이었고. 정령술식이 담긴 아티팩트를 초반부에 얻었다거나, 혹은 뛰어난 스승에게 직접 사사를 받아 스킬을 거진 양도받듯 익혔다거나 하는 부류였다.


공략법을 보고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조차 일반적으로는 원소술을 익히고, 초상술사로서 조금 성장을 하다가 중수급이 되어서야 정령술을 익히는 게 보통이었다.


강력한 파괴력, 방대한 MP. 거기에 고지능까지 탑재한 정령을 다루는 건 그 자체로 상당한 난이도의 작업이기도 했고. 또 술사가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위력적인 스킬이기도 했다. 순수한 초상술사로서 정령사가 되는 이들은 많지 않았고. 보통 정령술만을 전문적으로 익힌다고 하면, 아티피서로서의 능력을 기르는 게 보통이었다.


쓸만한 좋은 아티팩트를 얻어서, 그것으로 자신의 부족한 스펙을 보조하며 싸우는 식이다.


토미 졸탄은, 정식으로 정령술사가 될 생각까진 없었다. 그저 보조기 정도.


그가 발현한 ‘썬더울프’라는 스킬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령술이 그러하듯 ‘레어급’의 스킬이었고. 정령의 급으로 나눈다면 ‘하소’ 급의 개체였다. 처음 만들어낸 것 치고는 준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령술사로서 스킬 숙련도가 낮더라도 다른 방면에서 익혀 온 스킬들이 완숙하고 강력하기에. 아마 초보 정령술사가 발현하는 것보다는 더 강한 위력의 공격기 따위를 쓸 수 있을 테였다.


정령은 일단 소환을 하고, 명령을 인식시켜 두면. 마치 골렘이 그러하듯 자동적으로 움직여 임무를 수행했다. 세세한 계산 따위를 전투 중에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는 점이 정령술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골렘 역시 고도로 발전시키면 정령과 비슷해질 수 있으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정령술보다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강대한 골렘술사는 정령술사와 거의 비슷한 일들을 할 수 있었는데. 초기의 골렘은 다소 둔하고, 또 정령처럼 다양한 사태에 대응하는 능력 역시 떨어진다.


토미는 정령술보다는 골렘술에 조금 더 공을 들여 능력을 키워왔었다. 일단 실전적인 근접 방어용 기술로 골렘이 더 쓸모가 많았던 탓이다. 정령술은 기본적으로 MP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가장 즉각적인 방식으로 사용자를 막아주는 능력이 떨어진다. 물론 정령술의 수준이 올라가면 별로 단점이랄 수도 없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토미가 사용하는 것은 모두 그리 높은 수준의 기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골렘의 경우에는, ‘사용자를 지키라’고 명령을 입력해두면, 위급할 때 제 몸뚱이를 던져서 직접적으로 방패의 역할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 직관적이고 간단하게 초상술사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어떤 식이든 모든 능력을 계발해내라고 토미를 재촉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비아는 진지하니까 말이다. 이시기르 부족이 죽느냐, 사느냐. 부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확실하게 믿을만하고, 또 와일드 카드라고 할 수 있는게 토미 졸탄의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검은 복면을 쓰고 있는 놈들은, 결국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줄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조직이 당연히 그렇겠지만, 무한한 재화와 자원을 가지고 있을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그럴싸한 힘을 보여주면서, 사막에 살아가는 각 부족의 호전적 마음을 일깨워서. 전투를 벌이도록 부추기는 게 놈들의 목적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마드리스’라고 밝힌, 지금은 이미 죽은 어느 복면 사내가 말해준 정보들이었다.


“그게 정령이야?”

“응. 이시기르 부족에는 정령사가 아직 없던가.”

“그렇지. 정령사는 커녕. 초상술사도 찾아보기가 힘든 게 사막이지.”


사막은 많은 물자와 자원이 부족하다. 특출난 초상술사 역시 그러하다. 정령술은 원소술과 복잡한 AI 생성술 따위를 동시에 익혀내야 하는 고급 기술이었고. 사막에서 특수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정령술의 계보가 있지 않은 이상 찾아보기는 어려울 테였다.


분명 사막 민족의 어느 마을에는 그런 계보가 있을 법도 한데. 이시기르 부족의 마을은 아닌 모양이었다.


“고생 많았다.”

“별 말씀을.”


리비아가 툭, 어깨를 치면서 이야기를 했다.


시간은 밤이었다.


중부 대륙. 산슈카나 그 근처 인접국이나 지역에서 밤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리얼 타임Real Time으로는 다섯 시간이 더 빨라서 한밤이거나 혹은 새벽이다.

그리고 다시, 토미가 있는 영국 아일랜드 지방의 시간으로 환산을 해보면 저녁 무렵이 되고. 중부 대륙, 산슈카 지방의 시간으로 직접 계산을 하자면. 산슈카 인근의 시간보다 아일랜드의 시간이 세 시간 정도 느렸다.


이 정도 시간이 사실 토미가 접속하기 괜찮은 시간대였다.


파지지직.


이미 불러냈던 썬더 울프. 허공에 떠 있는 노란 빛의 번개 늑대가 요란스럽게 빛을 내며 재롱을 피웠다. 마치 허공에 발판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리비아는 그것을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밤이라 더욱 더 잘 보인다.


그들이 있는 곳은 하룬 부족 인근에 있는 작은 쉼터였다. ‘쉼터’라고 한다만 그럴싸한 시설물이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그저 하룬 부족의 영역 내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가 근처에 있었고. 또 다시 오아시스 근처에 있는 바위 동굴 어귀였다.


하룬 부족들은 멀리 사냥을 간다거나, 정찰 따위의 일로 마을을 떠났다가. 밤이 되도록 마을에 닿지 못하면 이런 쉼터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마을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하룬 부족의 사람들이 없었고. 대신 토미와 리비아가 장소를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하룬 족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은 건 아니었다. 이처럼 바깥에서 밤을 보낼만한 날이 아닐 테였다. 오늘 낮에 막 전쟁이 있었던 참이니까.


멜기스-하룬 부족간의 전쟁이었다.


각 부족에서 수 백 정도의 전사들이 나왔고, 가히 천 단위의 사내들이 뒤엉켜서 칼부림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관이라고 한다면 공감 능력이라거나, 여러가지 감각이 비틀려 있는 인간일 테였다.


토미의 경우에는 플레이어이니까. 모자이크 처리가 된 장면들로 그 모든 광경들을 보았기에 덜한 것이었지. 리비아를 비롯해서 NPC들이 목격한 전쟁의 참상은 날 것 그대로였으리라.


NPC는 정밀하게 구현화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어떤 외상을 입을까에 대해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NPC들의 표정은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표현하는 ‘감정’은 실제 인간인 플레이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전쟁의 모습’을 플레이어는 모자이크 처리된 모습으로만 본다.

그러나 ‘실물’을 보고 경험한 NPC의 표정은 모자이크 처리 되지 않는다. 모니터 너머로 투영되는 영상을 보는 것처럼. NPC들의 생생한 감정적 표현은, 간접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닿게 된다. 그 정도가 비련의 시나리오가, ‘실재’를 표현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선정적인 것, 끔찍한 것들.

세상에도 물론 그런 장면들이 존재한다. 세상에 악이 없다, 고 말하는 바보같은 인간은 없지 않겠는가. 살인마, 강간범, 전쟁, 사기, 절도, 정치범이니 경제사범이니. 온갖 종류의 죄악들은 언제나 판을 치고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 세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충분하게 알려주는 건 중요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노려 잔인하게 살해하는 범인들의 존재와 그들의 잔인성에 대해서 교육을 시켜주는 것도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었다.


도리어 그런 존재가 ‘없다’라고 말을 하는 작자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잔인한 부류가 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적의 존재를 알려주고 경계심을 심어주고, 제대로 대비를 할 수 있게끔 적절한 알림을 주는 게 차라리 나을 테였고.


지나치게, 현실적인 가능성보다 더욱 더 과하게 어떤 안좋은 것들을 표현하여 누군가의 심령을 어지럽게 만든다거나. 혹은 반대로 현실과 달리 지나치게 해맑은 세상만을 그려내서 세상의 위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만든다거나.

둘 모두 잘못된 ‘표현’이었고. 예술이던, 혹은 어떤 뉴스News의 정보 전달이 되던. 실패한 종류이기도 했다. 실수일 수도 있고, 악의적인 누락이나 과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제대로 된 사실과 진실, 현실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비련의 시나리오는 플레이어들에게 현실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했다. 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민낯을 들이대어 트라우마를 안기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생각한 절충안이 이와 같은 표현법이다.


토미 졸탄은 지독한 하루를 보낸 친우, NPC, 가상의 존재, 작품 속 인물인 리비아 이시기르스를 본다.

비슷한 나잇대의 인물이다. 사막에서 거친 삶을 살아온 캐릭터였고. 나잇대에 비해 과도한 책임감을 어깨에 얹은 채 걸어온 자이기도 했다. 토미 역시 그런 삶을 살았을까. 스스로 말하기에는 뭣한 이야기였다.

누군가 토미에게, 그의 인생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는


‘별 일 없었어’


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아마 대부분의, 질고라는 걸 겪어본 인간들은 그리 대답을 하리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만치 녹록하고, 가벼운 시간들이 아니었으니까. 생선 가시라도 목에 턱, 하고 걸린 것마냥 말이 멈추게 되겠지.


감정의 격류는 늘 말이나 표현과 함께 오는 것이기 때문에.


토미가 뭐 특별한 불행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불행이라고 한다면. 뭐 아마 평범한 정도의 불행만을 겪고 살아 왔으리라. 그러나 단 하나 뿐인 삶이었고, 한 명의 경험이었다. 자신의 키를 넘는 장애물이라면. 다른 이에게는 ‘별 것 아니어’ 보여도 죽을만치 고통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아무튼.


토미는 인간적으로 리비아 이시기르스에게 연민이나 동질감, 우정을 느꼈다. 그건 정신병은 아니리라. 애초에 이런 식으로 게임을 즐기라고 비련시 온라인의 제작자들이 만들어둔 것 아니겠는가.


그건 잘 만들어진 소설 작품. 드라마, 영화, 연극. 뭐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내부에 있는 인물에게 어떤 친밀감을 느끼는 것과 결과적으로 같은 일이었다. 그런 정도의 일일 뿐이다.


그 인물 너머,


작품 너머.


책을 쓰고, 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둔. 그런 작자, 만든 이의 정서가 거기에 담겨 있지 않은가. 만든 이 스스로의 인격을 담았든, 혹은 세상에 있는 다른 자의 인격을 모방하여 거기에 담았든.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이야기 말이다.


토미는 어둔 밤.


동굴 어귀에 걸터 앉아, 번개 늑대의 정령을 부른 채로. 리비아 이시기르스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까무잡잡한 얼굴. 거친 피부. 생채기가 좀 많이 늘어난 것도 같고. 푸석한 더벅머리. 푸른 안광이 서린 눈빛이 토미를 처다보고 있었다. 전사의 얼굴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같은 나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마저 있을 정도로. 저 NPC는 고된 삶을 겪었다. 오늘 낮에는, 더욱 지독한 지옥을 굳건한 정신력으로 또 한 번 버티어 냈고.


실제의 삶에서 토미는 이만한 지옥도를 과연 볼 일이 있는가.

그가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느 교전 지역에 가지 않는다면 아마 없을 테였다. 삶의 현장에서, 이런 질고를 느낄 때가 있을까.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비유라고 한다면. 뭐 가끔은 있을 지도 모른다. 선진국에 사는 인간이라고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선진국. 살기 좋고, 비유하자면 꿀단지가 옆에 있는 듯한 나라이기에. 더욱 도적들이 많이 몰리는 공간이었고. 더욱 더 극렬하게 난리를 피우는 그런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같은 작자들의 곁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면이 있었다. 물질적인 삶의 질이 곧 행복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누구와 같이 걸어가느냐. 어떤 정신적 행복을 잡느냐, 가 중요할 테다.


지금 살고 있는 토미의 삶이 지옥도인 건 아니었다. 가끔 힘든 날도 있다. 모두가 그렇듯 평범한 정도로.

자살을 생각해볼 정도로는 말이다. 선진국에서는 으레 그러지 않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어떤 나라에서는, 자살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극렬한 고통 속에서 타의에 의해 죽어가는 생명들이 많았고. 삶이란 아이러니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토미는 늘 생각을 했다.


“사막에서의 삶도 참.”

“쉽지 않지.”


토미의 말에 리비아가 답했다. 푸른 안광은 저 멀리, 그의 머리 위에 빛나는 별들로 시선을 돌렸다. 동굴 어귀에 앉은 그들은, 안쪽에 등燈을 하나 둔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고요한 사막의 밤. 별들이 그들의 머리 맡을 수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친구와 함께 볼만큼, 절경이었다. 좋은 광경이라는 건 곧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 친구. 로그아웃한 현실에서의 인연들마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놓쳐버린 인연들도 삶에선 있었다. 그들에 관한 슬픔의 소회가 가슴 한 켠에 머물러서, 토미를 슬프게 하는지도 몰랐다. 구구절절히, 부러 내뱉을만큼 대단한 사연들은 아니었고.


“후우우우우.”


파지지지지.


한 번 시험삼아서 소환을 해 본 뇌전의 정령이었다. 길게 한숨을 쉬며 밤 하늘을 바라본다. 그런 고즈넉함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썬더 울프가 방전을 하며 소릴 낸다. 번쩍거리는 작은 빛이 시야 낮은 부근에서 맴돌았다.


토미는 곧 정령을 자유롭게 뛰놀게끔 만들었고. 녀석은 기계적인 늑대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강아지나, 개과의 동물처럼 밤의 사막 모래 위를 뛰어 다녔다.


강렬한 빛과 에너지, 전류로 이루어진 물체였던 터라. 사막의 모래에 닿자 소리를 내며 모래가 튀어오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볼래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뭐, 모든 판타지는 현실에 대한 비유이니만큼. 또 애써서 보고자 한다면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토미는 오늘 하루의 마무리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게임 속의 일에 불과하다.


책 속. 홀로 읽은 소설과 그로 인한 상념과도 같은 것이다. 토미의 마음 속에만 있지만. 정명한 진실이었다.


전투의 소회, 혹은 트라우마를 떨어내듯 이렇게 밤하늘 별을 좀 바라보다가. 로그 오프를 하고. 피곤한 눈을 감은 채 정말로 잠에 드는 게 앞으로의 일정이었다.


토미는 대강 동굴 끄트머리, 바위 언저리에 걸터앉은 채로 그렇게 한참 서 있었다.


늑대가 ‘아우우’하고 우는 흉내마저 냈다.


*

khamkeo-vilaysing-rpVQJbZMw8o-unsplash (1).jpg


작가의말

소설을 적다보면

오랜 감정이 다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감수성을 챙겨야 하는

그런 때도 분명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9 1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13 1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11 1 26쪽
290 289. 사막민民의 회의 24.04.30 13 1 19쪽
289 288. 궁리 24.04.26 13 1 14쪽
288 287. 광자포같은 24.04.25 13 1 25쪽
287 286. Forest orb 24.04.25 13 1 18쪽
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14 1 25쪽
285 284. ㅌㅌ 24.04.24 14 1 17쪽
284 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24.04.24 12 1 21쪽
283 282. 매달린 사내의 시점 24.04.23 12 1 13쪽
282 281. 기사A의 시점 24.04.22 12 1 13쪽
281 280. 방호 결계 24.04.21 16 1 15쪽
280 279. 날벼락 24.04.21 11 1 17쪽
279 278. 마른 하늘에 24.04.21 9 1 28쪽
278 277. 월담 24.04.19 15 1 16쪽
277 276. 담벼락 앞에서 24.04.19 10 1 16쪽
276 275. 회담장의 변變3 24.04.19 13 1 12쪽
275 274. 회담장의 변變2 24.04.19 11 1 12쪽
274 273. 회담장의 변變 24.04.19 10 1 12쪽
273 272. 방해 24.04.17 13 1 14쪽
272 271. 회담會談 24.04.17 12 1 30쪽
271 270. 다시 한 번, 24.04.17 13 1 11쪽
270 269. 비척거리며 기다 24.04.17 11 1 10쪽
269 268. 견제 24.04.16 12 1 26쪽
»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5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2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2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1 1 3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