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3 00:06
연재수 :
353 회
조회수 :
8,595
추천수 :
766
글자수 :
3,360,040

작성
24.04.19 02:30
조회
10
추천
1
글자
12쪽

273. 회담장의 변變

DUMMY

*


제시는 몸이 날랬다.


그녀는 회담장의 테이블을 밟는다. 간단한 다과 따위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찬물이 쏟아졌다. 회담이 길어지면서 어설프게 덥혀놓은 찻물은 식어빠진지 오래였다. 군부의 인사들과 변방에서 만나면서, 호화로운 대접을 바라는 것도 무리한 일이기는 하다.


제시의 구둣발이 나무 테이블을 찍었고, 곧 그녀가 날았다. 파트밴과 케이시는 달려들어오는 인형에 곧바로 대응하지는 못했다. 뒤켠에 있는 제롬왈드 비롯 행정관들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게 그들의 임무였다.


그리고 이게 제시와 로말린을 사절단에 끼워넣은 이유였고 말이다. 두 사람만으로는 완벽하게 보호하고, 외부의 습격자에게 대응하는 게 조금 어려울 수 있었다. 파트밴과 케이시만으로는 말이다.


한 명이 셋을 지키고 한 명이 달려나가 적의 공격을 요격하고 반격해야 하는데. 한 명의 손으로 세 사람을 온전하게 지키는 건 조금 부담스럽지 않는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케이시는 그럭저럭 쓸만한 전술사, 워메이지이기는 했지만. 불안 요소를 전부 지우기는 어려웠다.


기력술사 하나와 초상술사 하나가 행정관 일행을 보호하고. 그 외 인물을 투입해서, 적들을 안정적으로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사절단의 인선을 고른 관리는 생각을 했다. 맥도웰이 그런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제시와 로말린에게 의뢰를 한 것이고.


한 번,


테이블을 박찼고. 길게 뛰어서 마룻바닥을 한 번 더 박찼고.


상대는 문을 부술듯이 밀어 열면서 안쪽으로 뛰쳐 들어왔다. 제시는 그 순간에 이미 ‘초인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었다. 스킬의 이름이기도 했지만. 그냥 근접전 상황에서 발휘되는 시스템 보정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모든 전투 클래스 유저들에게는 시스템의 보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아무리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반사 신경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초인의 영역에 들어가서는 ‘보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메이저리거의 야구공보다 빠르게 뛰쳐나가고 날아다니는 와중에 어떻게 주변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공격을 할 수 있겠는가.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들어간 달인의 감각마냥. 제시는 느리게 감각되는 세상 속에서 주변을 본 뒤, 달려드는 인형의 인상착의를 확인한다.


잿빛의 옷을 입고 있는 사내였다. 천 옷. 동양풍의 옷처럼도 보인다. 특별히 국적이 드러나는 복색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복면을 쓰지도 않았고. 그저 맨 얼굴이다.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 붉은 홍채를 가진 게 아니라 안광이 기이하게 빛났다. 이상한 약물이라도 복용한 것 같은 얼굴이다.


밝은 금발의 소유자였다. 그 위로 두건을 쓰고 있었지만. 거칠게 달려들면서 두건이 흔들렸고. 그 사이에 머리칼이 보였다. 나이를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놈의 목표는 단순한 모양이었다. 일직선으로 곧장 안쪽까지 파고들려고 한다.


아마, 벨베르 쪽의 인사를 노리는 듯하다. 손에는 작은 한손검을 들고 있다. 제시 역시 그만한 크기의 검을 들고 있었다.


검이 빛났다.


그녀의 팔찌와, 발찌도 옷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빛을 잘 감추는 재질의 옷에 둘러싸여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소 두터운 천옷의 소매와 가죽띠 안쪽에서 붉은 빛을 내는 중이다.


제시는 아티피서로서의 능력이 가장 뛰어난 편이었다. 기력술이나 초상술 역시 조금씩은 다루지만. 그녀가 집중한 건 아티팩트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 쪽이다.


보통 초보자, 하수, 라고 불리는 레벨 3, 40 이하의 구간에서 플레이어들은 MP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된다. 거기서 초상술사나 기력술사로 갈라지게 되는게 보통인데. 성장형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이들은 아티피서로서 길을 걷기도 한다. 제시 역시 그러했다.


네 종의 고리들이 그녀의 사지 육신을 북돋아주었다. 고수급 기력술사와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수준의 힘을 준다. 검 역시도 아티팩트의 일종이었다.


잿빛 복장의 사내는 벨베르의 중등관, 필립에게로 곧장 달려들고.


그 사이에 제시가 멈춰서면서 검을 아래로 휘둘렀다. 백색으로 빛나는 한손 검이었다. 사내, 의문의 습격자는 자연스레 검을 치켜세워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다만 수준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 잘 봐줘도 고수 급은 닿지 못할 인물이었고. 제시는 한 번에 자신의 전력을 토해냈다. 몇 단계 아래의 능력자를 일도양단할 수준의 힘을 말이다.


웅웅거리며 팔찌와 발찌가 울었고. 그 소리는 주변에 있던 이들이 들을 정도였다. 마치 강력한 모터가 돌아가듯, 고리들이 울며 제시에게 힘을 주었고. 그녀는 번개처럼 움직여 팔을 내리그었다.


양손으로 잡은 짧은 한손검은, MP로 이루어진 칼날이 덧씌워져 있었다. 어느새 말이다.


상대 역시 나름의 능력자이기는 한듯. 마주 올려치는 검날에 기력의 칼날이 묻어 있었다. 아마 기력술사의 일종이 아닐까 싶었다. 암살자는 근접 전투 능력이 출중해야 하므로. 보통 기력술사들이 많이 포진된 직군이었다. ‘직군’이라고 할만한 일은 아니기는 했지만. 이 야만의 시대에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작자들이다.


사내의 안광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고. 사람의 것이 아닌듯 빛난다. 올려치는 검날은, 제시의 것에 닿자 물러졌다.


실제로 물러진 건 아니지만. 물러진 것처럼 베여나가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엿보인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사내’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와중에 이성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제시의 팔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칼에서 연장된 MP의 칼날이 길게 이어졌다. 한손검 정도의 길이였지만, 실제로 베어내는 궤적은 그 배가 넘었다.


곧 칼 너머에 있는 사내의 몸에 닿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제시가 뽑아내는 MP의 칼날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일렁거림. 그리고 능력자들이 감각하는 MP의 감지력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의 범위는.

투명한 칼날을 상대로 싸우는 건 생각보다 까다롭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제시가 때에 맞추어서 칼의 길이를 미세 조정 할 수 있다면 더욱이.


제시의 MP가 사정없이 쏟아져나왔고. 그녀의 MP를 연료 삼아 머금은 아티팩트들이 제 능력을 온전하게 토해냈다.


칼날은 일도양단으로, 사내의 검과 함께 전면부를 베어버렸다.


NPC들은 베인 자국에서 내장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지는 걸 봤겠지만.


제시나 로말린은 그저 흰 빛의 입자가 흩어지는 걸 보았을 뿐이다.


순식간이었다.


카득, 그리고 촤악!


두텁게 제련된 칼날이 정련된 기력과 함께 베여나갔다. 칼날이 베였으니, 그보다 못한 힘으로 보호받던 습격자의 몸뚱이는 더욱 쉽게 잘렸다.


완벽한 일도양단은 아니었고. 그저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몸의 전면부를 크게 베어냈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처참한 상처를 입고서, 습격자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제시는 그대로 칼날로 베고, 옆으로 뛰었다.


그녀가 끼고 있는 팔찌와 발찌는 고수급 기력술사들의 능력을 거진 완벽하게 재현해주는 물품이었다. 외부에서의 인력이나 척력으로 기이한 동선을 보일 수 있는 것마저 그러했다. 아래로 강하게 베어낸 관성이 있었으나. 그것을 제어하고 순식간에 옆으로 비켰고.


앞에 장애물이 사라진 사내는, 뛰어오던 기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사내의 속에 들었던 것들이 회담장의 바닥을 더럽혔다.


깔끔한 마무리였고.


주변에 넓게 시립해 있던 병사들은 제각기 무기를 뽑아든 채로, 상황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필립 경은 입을 조금 벌리고 있었고. 그건 행정관들이나, 케이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트밴 경은 그리 놀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제시나 로말린의 평소 움직임을 보고, 상당한 수준의 무술을 익혔구나, 알아챈 바가 있었다. 파트밴 역시 뛰어난 수준의 무예가였으니 말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사람 하나가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반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속에든 것을 모조리 쏟아내면서 떨어졌다.


철퍽, 하는 소리가 회담장 안을 울렸다. 파트밴은 뒤에 있는 제롬왈드를 제 몸으로 철저하게 지키면서, 조금쯤 움직였다. 발을 딛으며 사내가 쓰러진 쪽을 본다.


그가 제시에게 말했다.


“···죽었나?”


죽었나, 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죽은 인간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만한 상처를 갖고도 일어날 수 있다면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으리라.

가끔 대기적大奇蹟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킬이 사용되면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기는 하지만. 전설로 취급해야 하는 종류였다. 플레이어들이 볼 수 있는 스킬 입수 난이도에서도, 전설Legend급으로 분류된다. 그런 치유 스킬들은.


제시는 방사형으로, 앞으로 입자를 뿌리며 죽어간 인간의 옆에서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 태연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사태에 비하면 지독하게 평온하다. 케이시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제시를 조금 달리 보기도 했다. 가녀린 여인인 줄 알았는데. 그녀가 보여준 무위武威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눈으로 좇기조차 어려운 속도의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이 얼어붙어 있는 와중에, 이미 죽어서 넘어져 있는 인간의 시체에서 빛이 났다.


‘빛’은 위험하다.


플레이어들에게 상식처럼 번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리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겠고. 단지 직관적으로, 유저들이 알기 쉽도록 지어진 세계였다. 에너지가 발생할 떄는, 빛이나 열, 소리 따위가 동반되게 되어 있었다. 단순히 빛만 터뜨리는 섬광 계열의 스킬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 괴랄한 생존 난이도를 가진 게임에서 그리 무른 생각을 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고. 살아남은 게이머 중 한 명인 로말린은 그래서 반사적으로 대응을 했다.


케이시 역시 어느새 꺼내 든 짧막한 나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와중이었다.


그러나 눈 깜빡할 사이에 시체에서 터져나오는 빛은 점점 부풀어올라갔고, 광채를 내뿜는다. 폭발의 전조라고 로말린은 인식했고.


다행스레 흰 빛이 회담장을 물들이는 것보다 로말린이 다급하게 외치는 한 두 마디가 더 빨랐다.


“무지갯빛 보호막!”


로말린은 더블 클래스였다. 아티피서로서 어느 정도 중, 근거리 전투가 가능했고. 동시에 마스터 급의 초상술사이기도 했다. 그 말은, 자기류流의 스킬군을 형성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색깔별로 표현 가능한 스킬군이 그것이었다. 무지갯빛은, 그가 발현 가능한 칠채색 빛깔을 전부 사용하는 최상위 클래스의 수식어다. 같은 쉴드Shield라고 해도 무지갯빛 보호막은 위력이 더욱 강하다.


그만큼 MP가 뭉텅, 깎이기는 하지만 뒤를 잴 일이 아니었다. 로말린은 저 폭발이야말로 회담장에 온 진짜 위협이라고 여겼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시가 또 문제였다. 제대로 폭발력을 막아내지 않으면 그녀가 게임 오버될 수도 있다.


같이 즐기는 게임이었고. 아마, 높은 확률로 제시가 게임 오버되면 로말린도 점점 게임을 멀리하게 될 테였다. 혼자하는 게임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플레이할 테지만. 로말린은 제시와 함께 비련시 온라인을 깨고 싶었다. 그냥, 어릴 적부터 늘 함께 놀았던 습관 같은 거였다.

정신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고. 그냥 그게 재미있었으니까. 제시라는 인간과 노는 게.


흑색의 오브Orb가 빛을 발했다. 제 색깔에 잘 맞는 어두운 빛깔이었다. 구체가 빛을 토했고. 로말린의 언령言令에 따라 스킬이 발현된다. 사실 말 자체에는 힘이 없다. 말로써 움직이고 있는 로말린의 정신이, MP를 다룬다. 그가 수도 없이 상상해서 자동 반사처럼 나타난 머릿속 이미지가 현실화 되었다.


로말린의 뻗은 손과 오브에서 빛이 터졌고,


그 다음 순간 죽어 나자빠진 습격자의 몸 주변에 원형의 막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랫단이 사라져버린 불완전한 구였다.

amy-shamblen-SYfH2bqf1yk-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9 1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13 1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11 1 26쪽
290 289. 사막민民의 회의 24.04.30 13 1 19쪽
289 288. 궁리 24.04.26 13 1 14쪽
288 287. 광자포같은 24.04.25 13 1 25쪽
287 286. Forest orb 24.04.25 13 1 18쪽
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14 1 25쪽
285 284. ㅌㅌ 24.04.24 14 1 17쪽
284 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24.04.24 12 1 21쪽
283 282. 매달린 사내의 시점 24.04.23 12 1 13쪽
282 281. 기사A의 시점 24.04.22 12 1 13쪽
281 280. 방호 결계 24.04.21 16 1 15쪽
280 279. 날벼락 24.04.21 11 1 17쪽
279 278. 마른 하늘에 24.04.21 9 1 28쪽
278 277. 월담 24.04.19 15 1 16쪽
277 276. 담벼락 앞에서 24.04.19 10 1 16쪽
276 275. 회담장의 변變3 24.04.19 13 1 12쪽
275 274. 회담장의 변變2 24.04.19 11 1 12쪽
» 273. 회담장의 변變 24.04.19 11 1 12쪽
273 272. 방해 24.04.17 13 1 14쪽
272 271. 회담會談 24.04.17 12 1 30쪽
271 270. 다시 한 번, 24.04.17 13 1 11쪽
270 269. 비척거리며 기다 24.04.17 11 1 10쪽
269 268. 견제 24.04.16 12 1 26쪽
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5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2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2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1 1 3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