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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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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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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6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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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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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278. 마른 하늘에

DUMMY

*


쨍그랑.


”뭣.“


갑자기 유리창이 깨졌다. 그곳은 고용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관사였다. 2층 바깥쪽 방에서 쉬고 있던 어느 고용인, 사내 팔람은 침대에 뉘여 있던 머리를 급격하게 일으켰다.


”억.“


기립성 빈혈이 잠깐 찾아왔다. 띵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사태를 파악했다. 둔한 감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일단 그는 다친 데가 없었다. 방 안에는 혼자 있었다. 벽면에 붙어 있는 침대와, 반대쪽 벽면에 붙어 있는 침대. 그 사이에는 작은 탁상 따위가 있었고. 탁상 위에 있던 창문이 깨졌다. 쿠르르, 하고 바닥에 무언가 구른 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


그는 블랙 아웃이 되듯이 시커멓게 변했던 시야가 잠시 후 돌아오는 걸 느꼈고. 다시금 둘러본다.


편하게 쉴 수 있는 헐거운 셔츠와 바지 따위를 입고 쉬고 있던 중이다. 탁상 위가 유리조각으로 덮였다.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돌조각? 금방 눈에 띈다.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 바로 아래까지 굴러온 시커먼 돌덩이였다.


”이게 뭔···.“


누가 돌조각을 날리기라도 했는가. 더군다나 대각 방향으로 날카롭게 날아든 것이다. 그 기세가 조금만 더 빠르고 강했더라면, 왼쪽 침대에 누워있던 그에게까지 돌이나 유리조각이 미칠 뻔했다.


이건 누군가가 그를 해하기 위해 일부러 던진 게 아닌가, 싶었다. 팔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대한 부지를 소유한 대공가에는 상당한 수의 고용인들이 있었다. 거진 천에 가까운 수다. 그는 이제 대공가에서 일한지 3년차가 되고 있었고.


그만한 수의 이들이 번갈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고, 대략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온전히 쉬는 날이 있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자주 있는 휴일이 아니니만큼 이런 날 건드리는 이는 별로 없다. 고용인들의 세계에도 위계 질서라는 게 있고, 나름대로 빡빡한 규율이 있었지만. 어차피 다들 고되게 일을 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휴일을 맞아 관사에서 쉬고 있는 이를 괴롭히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팔람을 때린 것이 갑작스러운 소리와 소란이다.


그는 불가항력적으로 현실감을 얻으며, 반쯤 잠들던 정신을 일깨워야 했다.


”······.“


입을 떡, 벌렸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하소연을 할만한 동료도 없었고. 관사 내의 방은 2인 1실이었다. 둘이 지내기에 크게 모자람없는 방이었고, 고작 삼 년 차의 하급 고용인에게 이런 생활 환경이 주어진다는 게 참으로 쾌적한 근무 조건이다. 대공가에서 일하는 자들은 적어도 큰 불만이 없었다. 업무 강도와 봉급에 대해서 말이다.


대공가는 권세가였고,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귀족의 집안이었다. 주인인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에 대한 기묘한 소문은 종종 등골을 오싹하게도 하지만. 팔람같은 말단이 대공을 볼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할 일만 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될 뿐인데···.


피곤에 찌들어 몽롱하던 정신을 다시금 붙잡는다. 꿈인가, 뭐지. 팔람은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고 보면 잠결에 큰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는데···.


”···.“


바깥에서 무언가 소란스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는, 유리조각을 피해 조심스레 걸으며 깨진 창가에 다가가 바깥을 슬쩍 처다보았다.


······.


새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법 멀리 있었는데.


사람보다도 거대한 괴조怪鳥였다.


꿈인가?


팔람은 아직도 다 떼어내지 못한 눈곱을 만지며 생각했다.


*


푸드덕, 하고 최초의 횃짓을 몇 번 한 것이 전부였다.


썬더스가 제대로 날기 위해 한 일은 말이다.


그 이후의 움직임은 기이하다.


한 번 허공에 떠오른 다음부터 마치 UFO가 움직이듯, 흔들림없이 위로 떠오르더니 직선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갈색 매를 움켜쥔 채 옮기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일반적인 손이 아니라, 기계적인 손이 말이다. 인형뽑기 기계가 상품을 운반하듯 흔들림없는 직선 운동이었다.


관성의 영향을 저 혼자만 피해가듯 구는 라이엔이었다.


그녀의 곁에서, 릿샤가 날고 있다. ‘날고’ 있다지만 고공 몇 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흔들림없이 나는 이인일조二人一鳥의 아래에 세 명의 사내가 있었고.


크허헝.


거친 울음이 아래에서 터져나왔다. 로어링Roaring이라는 표현을 붙일 법하다. 야수의 울부짖음이었다. 호아킨의 성대에서 나온 것인데, 이미 그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 발로 서서, 거창巨槍을 들고 달리던 와중에 사자의 꼴로 변화를 해버렸다. 능숙한 변신술사라는 말도 된다. 한 달음에 변신을 끝내버렸으니 말이다. 익숙한 폼Form으로의 변화는 지연 시간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였다.


변신술사로서 호아킨은 초상술사였고. 그만큼 다양한 움직임과 모양을 갖출 수 있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까다롭기 그지 없다. 초상술사를 상대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어떤 전략과 공격법을 들고 나타날 지 모르는 점이 있었다.


호아킨은 따지자면 더블 클래스다. 보통 더블이나 트리플, 이라고 하면. 주主가 되는 클래스에 못지 않게 다른 직군의 능력을 익혔을 때를 의미한다. 단순히 보조만을 위해 기초적 능력을 익힌 상태를 말하지는 않았다.


호아킨은 기력술사로서 마스터의 위位에 오른 인물이고. 변신술사로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력술로 고수급을 도달했고. 또 부술斧術로도 마찬가지였는데. 거대한 형태의 창은 도끼와도 유사한 사용법이었다. 도끼창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사자는 아가리에 창대를 씹듯 물고 달린다.


일행은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라이엔만이 속도를 조금 조절할 뿐이다. 일직선상에 걸리는 건 모조리 파괴하면서 앞으로 간다. 사실 대공가에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건 미친 일일지도 몰랐다. NPC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사회법의 제재를 잘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이 세계에서 악한 일이라고 한다면 도덕적인 패널티를 받기야 하겠다만. 제냐 일행에게는 일단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현실 세계라면 자신이 두 눈으로 확인한 정의를 위해서 이토록 급진적으로 굴 수 없었으리라. 잘못 되었을 때의 일을 생각해야 하니까. 그러나 게임이기에 조금 더 과감한 면이 있다.


산슈카의 대공은 귀족 중에서 가장 높은 이였고. 또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산슈카의 규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제냐를 비롯한 이들은 일단 달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저택 내의 여러 건물들 중에서, 대공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었다. 저택 부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곳이었고. 그곳까지 달려 운이 좋으면, 대공의 신병을 확보할 수도 있겠다.

아마 정상적인 법 절차에 의한 무력 시위라고 한다면 조금 더 절차가 복잡했을 테다. 대공이 정말 죄를 저질렀는가, 를 따져야 했을 테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막무가내식의 집행은 미친 짓이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을 것이며.


그런데 제냐 일행은, 확고한 심증과 개인의 확신만 있다면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처지들이었다. 애초에 이 생에 미련이 없는 인물들 아닌가. 플레이어, 여행자, 나그네라는 게 말이다.


대공 저의 중심으로 가는 데까지 많은 난관들이 있을 테였다. 플레이어들이 인터넷에 제공해 둔 대공가 저택 부지의 구조도는 완벽한 정보는 아니었다. 대략적인 구조도였고. 건물의 쓰임새는 적혀 있는 것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가는 길에 기사단의 병영 건물이 하나 있었다.


대공가의 삼색 기사단은 부지 내에 숙소를 두고 있었다. 훈련을 위한 장소는 저택 부지 바깥이나, 영지 밖에 있기도 했지만. 쉬기 위해 머무르는 곳은 안쪽에 있다.


흑색, 적색, 청색의 늑대단 중 적색, 붉은 늑대단의 건물이 그들이 지나가는 방향이었다.


굳이 기사단 건물을 건드리고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한다면 먼저 공격을 뿌리는 것 역시 할만한 일이다.


대공 저에 쳐들어왔다는 말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대공가 내부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적으로 간주를 한다. 저항할 힘조차 없는 민간의 고용인이라면 모르겠지만. 기사단이라면 확고한 적이다.


가장 걸리는 부분은 아무래도, 전술사단이다. 워메이지들의 조직.


기동력, 원거리 공격력 등 여러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어쨌든 계획은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것이었다. 퇴로로 향할 때는 라이엔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사용할 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다루는 갈색 매, 썬더스의 비행 속도이다.


‘매’는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날개를 활짝 폈다. 고공 3, 4 미터 정도 위에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정도였다. 썬더스가 발을 쭉, 내리고 잠깐만 아래로 출렁이면 곧바로 사람을 낚아챌 수 있을만하다.


일반적인 새라면 정상적으로 비행이 가능한 고도는 아니었다. 지면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기류를 타야 하니까. 비정상적인 기류가 지면 바로 위에 강력하게 흐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이고.


지금 썬더스는 평범한 메커니즘이나 날갯짓, 대류의 움직임으로 날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것 역시 사용하고는 있었으나. 썬더스 바깥으로 반경 수 미터 정도의 구球형의 보호막이 쳐져 있었다. 눈으로 잘 보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라이엔이 조금 더 MP를 드러낸다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거진 투명에 가까운 막이 있었고, 그 내부는 그녀와 썬더스의 MP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자체로 양력을 발생시키며 매를 띄우고, 움직이는 중이다. UFO처럼 움직이고 있다, 고 비유를 하고 있지만. 사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UFO나 다름없는 메커니즘이기도 했다. 현대 과학으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완전한 비행 말이다. 관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처럼, 허공 위를 미끄러지는 움직임이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하다.


MP로 인한 것이며. 이 세계에는 초월적인 힘이 존재한다. 초상력. 지구 상의 상식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에너지. 그것이 콘란드 대륙을 판타지 월드로 만드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고수급, 중에서도 레벨이 높은 편이다. 라이엔은. 아직 200에 도달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300을 넘어가는 이들은, 랭커 급이라고 보통 판단을 했다. 그 시점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줄어들기에 말이다. 200대 후반도 준 랭커에 가깝기는 하다.


보통 ‘고수급’이라고 편하게 말하는 것은 100이상부터 250까지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200이상의 숫자는 100이상의 숫자에 비하자면 한 줌보다도 더 적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현격하게 줄어든다. 이 게임은 모두가 고수급이 되고, 모두가 최고 레벨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둔 종류는 아니었다.


‘가능하냐’라고 묻는다면 물론 게임이기에 가능은 하다. 어떤 자질이나 특성을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길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플레이 스타일을 창안해내고. 또 일정 이상의 시간과 노력, 집중력. 어떤 희생적 대가를 치러야만 레벨을 높일 수 있었다.


적당히, 요행으로는 결코 고레벨이 될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러하겠지만. 비련시 온라인의 경우에는 조금 더 엄정하다.


그녀가 가파르게 레벨을 높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도 있었겠지만. 헌터즈 길드에 속해서 갖가지 기행을 함께했던 이유가 있다. 고레벨 구간에서 막히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이 그 레벨대의 플레이어들에게 요구하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탓이었다.


한 번뿐인 코인Coin으로 진행되는 게임인지라. 서바이벌 게임에서 구태여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던지라. 대개의 플레이어들은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 좋아하니까 말이다. 굳이 게임 오버가 될만한 위험을 지고 강한 몬스터들을, 제약을 걸고서 잡기 원하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비련시 온라인은 전투직 플레이어들에게 그런 모험을 요구한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자신의 게임 상 목숨을 도외시하고 어려운 길로 가는 인간들에게만 길이 보이게끔 되어 있었다.


그 ‘어려운 길’은 곧 확신이 있는 플레이어의 결단, 컨트롤 솜씨, 뭐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면 넘을만한 산이 될 테였고. 아닌 경우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막힌 길로 보일 테였다.

제작 계열의 플레이어라면 더욱 더 어려운 위업을 장공인으로서 이루어내길 바랄 테였고. 정치 계열이던, 상업 계열이던 마찬가지이다.


고수급 너머는 평범한 방식으로 넘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넘는’ 행위 자체는. 플레이어에게 초보, 중수급에서의 플레이를 얼마나 본인이 성실하게 해내왔느냐, 묻는 물음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빠른 레벨업을 선택하고, 필요한 스펙들을 채우지 못했다면 결국 갈 곳이 없게 되는 법이었다.


탄탄하게 스킬 숙련도, 레벨을 올리고. 갖가지 칭호들을 얻고. 또 질좋은 아이템들을 파밍Farming하고. 그 스킬과 아이템, 칭호에 따른 스펙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게임 내 컨트롤 실력을 기르고.

그와 같은 과정을 반복해가다 보면, 고수급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는 ‘위업’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장애물을 넘을 수 있게 되는 법이었다.


편법, 까지는 아니어도. 이후의 일을 생각치 않고 레벨만을 키워온 이들은 결국 그 앞에 턱, 걸려 넘어지게끔 되어 있었다.


라이엔은 원래 라이트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였지만. 헌터즈 길드를 만나면서 하드 게이머처럼 변하고 말았다. 게임을 즐기는 시간 자체는 다른 랭커급들에 비해서 아주 낮을 테였다. 혹은 다른 하드 게이머에 비해서.

길드원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고강도의, 어려운 과제들을 클리어하고. 또 그것을 반복함으로 인해서 남다른 성장속도를 보여주고, 컨트롤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 내부에서 썬더스를 다루는 일은, 일을 할 때와도 조금 비슷하다고 라이엔은 느낀다. 그녀가 특별히 기계 정비공으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관련된 부서에서 일을 하다보니 복잡한 기계 장치를 직접 다뤄야 할 때도 있었다.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그녀 나름대로 감각을 살려서 손을 써야 하는 일들이다.


가끔은 따분하게도 느껴지는 회사의 수많은 업무들도. 나름대로 예술성을 부여하자면 부여할 수 있을만한 일들이었다. 보고서 작성이니, 서류 정리니. 온갖 사람들에게 컨펌을 받거나 의견 조율을 위해서 뛰어다니는 일들이니. 하나하나 라이엔 핑, 아니 아윈 핑 나름의 남다름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말이다.


업무에 자기만의 개성을 부여하거나, 손길을 집어넣는 건 전체 조직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구성원일 수 있겠지만. 전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별 문제는 없어지는 법이다. 중요한 건 ‘업무’에 자신의 개성을 녹이는 것이지. 개성으로 업무 내용 자체를 망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요지는 라이엔은 썬더스를 다루는 일을 잘하고, 또 좋아했다. 자신에게 그런 감각적인 면이 있다는 걸 비련시 온라인 내에서 플레이를 하며 끊임없이 알아가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매는 정밀 기동으로 계속해서 날고 있다.


매의 아래에 사자는 쭉, 쭉 전진을 하는 중이었다.


괴물 사자였다. 결코 평범한 크기는 아니었고. 그 앞에 선다면 ‘집채만하다’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과한 과장도 아니다. 거진 사실에 가깝다.


코끼리도 단신으로 물어 뜯어 죽일 수 있을법한 크기의 사자였다. 그 뒤에 올라타서 질주를 즐기는 건 아주 쉬워 보인다. 아무리 거구의 사내라고 하더라도. 한 번 쫙, 몸을 펼치면서 허공에 몸을 날릴 때마다 보폭이 굉장했다. 거대한 몸을 가진 사자이다보니. 한 번의 도약으로 수 미터는 훨씬 넘는 거리를 가뿐하게 달려댔다.


사자의 옆에는 최태현과 제냐가 있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를 옆에 차고. 최태현은 숏소드 하나를 들고 있었다. 등에는 백룡각궁이 있다.


제냐의 활이 태현의 것보다는 조금 더 크고 길었다. 달리면서 쏘아내기에는 불편한 종류이다. 백룡각궁이라고 그 상아빛의 활대가 결코 다루기 쉬운 건 아니었지만. 가능은 했다. 태현은 보우 마스터였고. 콘란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궁술사들 중에서 아주 소수의 경지에 다다른 이였다.


기마 위에서 온갖 곡예 사격을 해대곤 하던 몽골의 기마병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솜씨는 결코 아니다. 스스로 말을 뛰어넘는 속도로 질주를 할 수도 있었고. 인마일체의 경지를 어거지로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최태현이던 제냐던. 어쨌건 무기를 다루는 기력술사들은 보법을 필수적으로 익히게 되어 있다. 풋워크와 무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니 말이다.


중국의 초인 문학에서, 혹은 전설에서. 경신법輕身法이란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을 의미했고. 보법步法은 말 그대로 풋워크를 의미했다. 발 기술, 움직이는 것에 관련한 걸음법 말이다.


MP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고수급 언저리의 기력술사들은 두 종류 모두를 콘란드 대륙 내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MP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잡아 끌거나, 멈추거나 밀면. 관성에 대한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을 수 있었고. 중력이 적게 적용되는 듯한 동선을 보일 수도 있다.


한 번 몸을 구부렸다가 튕겨나갈 때마다 사자의 질주에 결코 못지 않은 거리를 내달리면서. 두 사내가 무섭게 질주를 한다. 기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제냐와 최태현을 막을 수 있으리라. 릿샤는 녹빛의 바람 줄기를 제 몸 근처에 휘감으면서 자유 비행을 하고 있었다.


저택 부지 내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그러나 워낙 단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고. 소식이 전달되는 것보다 침입자의 이동이 더 빨랐기에 곧바로 제재가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


기사단의 숙소 건물이 그들의 앞에 보일 때 즈음, 제냐가 방향을 틀었다. 오른쪽으로 길게 돌아가려는 것이다. 굳이 기사들과 마주칠 이유는 없으니.


그러나 조용히 지나가자는 건 또 아니었다. 릿샤는 날고 있는 자세 그대로 무언가를 준비했다. 바닥과 수평이 되게 날고 있는 그녀였는데, 몸을 조금쯤 세우면서 손에 들고 있는 흑각을 움직였다.


그녀가 돌담과 대공가의 결계를 부수기 위해 소환했었던 ‘구부러진 팔’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에너지’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팔은 5개였다. 1개는 MP체를 이루고 있는 에너지가 조금 닳아 있었다. 검은 팔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환체이기도 했고. 동시에 거대한 MP,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배터리이기도 했다.


연료통에 있는 연료를 소모시켜 한 번에 폭발을 일으키거나 고온의 열을 발생시키거나 할 수 있었다. 열 한개는 대공가의 벽을 날려버릴 때 모조리 써버렸고. 다섯 개 하고 반 정도가 남았다.


그 정도면, 견제의 용도로는 충분했다.


대공가의 결계는 상당히 강력했다. 상당히라는 말이 최선의 표현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릿샤가 사르삿 왕성에 직접 침입을 해본 건 아니었지만. 아마 비교하자면 사르삿 왕실에 걸려있을 방어 결계와 비슷할 지도 몰랐다.


놀라운 일이었다. 왕성에 걸려 있는 결계는 최고의 실력가들이 모여서 만든 것도 있지만. 오랜 세월 보수 작업을 거치고, 또 계속해서 스킬에 스킬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그만한 세월에 견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릿샤를 비롯한 이들은 짐작하지 못하지만. 유물로 인한 힘이 컸다. 대공이 아무리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무수한 실력자들을 끌어모아 팀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리였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알사드 대공은 누구보다 산슈카의 역사와 전통을 싫어하면서. 그로부터 오는 유물과 잠들어 있는 막대한 힘에는 가장 관심이 깊은 자였으니 말이다. 왕실보다도 대공이 나은 점은 그것 뿐이라 할 수 있었다. 세력간 힘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산슈카 왕실의 경우에는 오히려 대공보다도 더 유물들에 대해 관심이 적고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왕실로서도 예전의 유적, 유물 아티팩트에 대해서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용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무수한 연구 개발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차라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현대의 초상공학을 발전시키는 게 낫다고 여긴 탓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고, 현대의 각국들은 계속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초상학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은 통찰력이 있는 편이었다. 악인이지만 말이다. 산슈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역사가 과연 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도리어 유일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이 나라가 가진 옛 역사적 유물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현대에 발전하고 있는 기술사적 걸음들을 모조리 앞지를 수 있다고.


산슈카 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통찰력이었다. 누구보다도 산슈카를 혐오하면서, 또 인정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찌 보면 말이다.


과거의 유물들을 사용 가능하게 만들어도 그 효용에 대해서는 실제로 일깨우기 전에 확신할 수 없는 바이기에 산슈카의 역대 왕실에서 그 유물들에 대한 연구가 게을렀던 이유 또한 있었다.


대공은 미치광이처럼 옛 역사들과 문헌들을 탐독하고 파고들었고 말이다.


릿샤는 강력한 결계를 파손시키고 남은 팔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멀리, 기사단의 병영 건물을 돌아 지나가는 와중에 릿샤가 조금 떨어져 나왔다. 그리 많이 분리된 건 아니었다. 날고 있는 와중에 살짝 방향을 틀었을 뿐이다.


그리고 기사단 병영 건물쪽을 향해서, 흑각을 휘둘렀다. 간단한 제스쳐이며, 이미 술식을 완성시켰던 검은 팔의 형체들이 다시금 나타났다.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소리는 별달리 크게 내고 있지 않지만.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능력자인 일행의 감각에는 공기가 일렁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날 정도다.


그 에너지를 폭발력으로 바꾸자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그녀의 주변에서만 맴도는 팔인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공격의 사정거리는 있긴 하지만. 팔을, 명령을 듣는 사역물이나 소환체로 쓰지 않고 투척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 번에 내부에 든 에너지를 모조리 탕진하는 방식인데. 지금은 그런 방식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


모두 한낮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대공가 저택의 부지를 거닐고 있던 고용인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갑작스럽게 들어온 괴인들의 모습에 도망을 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제냐 일행이 굳이 신경쓰거나, 잡아두지는 않았다. 전투 능력을 가진 이들만 상대하기도 바빴던 탓이다.


릿샤는 빙글, 선회를 하여서 일행의 옆으로 떨어져 나와 검은 팔들을 날려보낸다. 그녀가 흑각을 휘두른 시점에, 릿샤의 주변에 둥둥 떠다니고 있던 검은 색의 팔들이 날아갔다.


쏘아진 화살마냥, 혹은 로켓마냥 말이다. 뒤에 추진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대공가의 방어 결계에 닿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곧바로 공격 대상이 앞에 있었고. 또 결계가 워낙 강력했기에 코 앞에서 막혀서 지지부진했지만. 투사체가 되어 먼 거리를 나는 검은 팔들은 거칠 것이 없이 원활하게 비행을 한다.


3-400여 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저택 부지 내는 가로 세로로 수 키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였고. 작은 마을이나 도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크기이다. 그만한 크기의 저택가를 내부에 두고, 그 바깥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니 알사드슈트는 대도시라고 할만하다.


굳건하게 선 높은 성벽 바깥으로 다시 거주민들이 있으며 넓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비율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조금 낮은 편이었지만. 주변에 마땅한 사냥 스팟Spot도 별로 없었고. 이곳에서 여태까지 적절한 퀘스트를 얻어내지 못한 탓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알사드슈트에서 파생될, 연계 퀘스트라면 모두 계속 깨나가다 보면 대공의 이야기에 닿게 되어 있었다. 대공, 세르게이 알사드는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았고. 잘 고용하지도 않았다. 핵심적인 부분에 신원이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만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일을 잘 해내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알사드 대공에게 간절했던 건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부하였다. 지금 대공 아래에 있는 작자들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푸른 늑대단이던, 붉은 늑대단이던 마찬가지이다.

붉은 늑대단은 푸른, 청색에 비해서는 전체적인 실력이 조금 떨어진다. 약간, 혹은 근소한 차이로 쳐진다는 말이지 아주 격이 다른 건 아니었다. 그말은 곧 삼색 늑대 기사단은 모두 최상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집단이란 말이다.


무수한 기사들이 한 두 번에 공격으로 몰살 당하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 작자들은 몸 내부에 돌고 있는 기력이 이미 강력해서. 아주 약간의 반응만으로도 자신의 힘을 바깥에 꺼내놓을 수 있었다. 기사들을 향한 암살이 쉽지 않은 이유다.


기력술사들을 죽이려면, 조금도 눈치를 채지 못한 상황에서 완벽한 기습을 가해야만 했다. 혹은 독이나 저주술 따위를 사용하던가 말이다. 무저항 상태에서 독물을 받아들이면, 기력술사던 초상술사던 어쩔 수 없었다. 고강한 치유 능력자가 오지 않는 이상에는.


능력자들은 병마에도 어느 정도 강한 내성을 갖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면역인 것도 아니었다. 플레이어 기준으로 레벨 500이 넘는 이들은, ‘절대자’와 같은 이미지로 이 세계에 군림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인 이상, 혹은 사람인 이상 빈틈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까마득한 하위의 사람들이 올려다 봤을 때, ‘마치 신과 같은’ 느낌이 난다는 것뿐이지. 진실로 신과 같은 이는 없었다.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인 이상은 말이다.


나름대로 불의의 일격이기도 했고. 병영 내에서 소란이 이미 일어났을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했으리라, 판단했다. 릿샤를 비롯한 일행들은.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났다. 검은 팔들이 날아갈 때 말이다. 릿샤는 공격을 날려놓고, 계속 일행들의 뒤를 따라 날아가고 있다. 먼 거리에 있는 건물들이었다. 흔히 ‘학교’ 따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듯한. 몇 층짜리 길다란, 직사각형 건물이 ㅁ자 모양으로 모여 있는 곳이다. 개중에서 한쪽의 벽면에 가 닿았다.


수 백 여 미터의 거리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팔이 닿았다. 그것들은 기괴한 움직임을 허공에서 보였고, 빨랐고.

제각기 들고 있는 검이니 방패 형상의 물건들을 목조로 지어진 저택 건물의 벽면에 가져다 댔다.


강렬한 에너지는 지나가면서 모든 것을 파괴했다.


“터져라.”


릿샤는 간단하게 말로써 명령했다. 릿샤의 말이 의미를 갖는 건. 그녀의 통제 하에 있는 MP들일 경우다. 그녀에게 부하가 있다면 만약 말을 들었으리라. MP와 술사의 관계는 언제나 지휘관과 휘하 병력들의 관계로 대변된다.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자연계의 SP를 모아다가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이었다.


‘구부러진 팔’이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만들어 낸 검은 팔 형상의 MP체들은, 건물에 닿으면서 터져나갔다.


콰아앙-!


먼 폭음이 들려왔다.


일단 4층 높이의 직사각형 건물, 숙소 건물 중 하나가 깔끔하게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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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8. 마른 하늘에 24.04.21 9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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