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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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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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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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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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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사절단의 여정

DUMMY

*


“크흠.”


헛기침을 하며 건물을 나서는 사내는 로말린, 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까무잡잡한 피부. 흑발과 흑안. 그러나 생김새 자체는 전형적인 백인종의 그것이었다.


로말린은 그저, 실제의 자신과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 캐릭터 외견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행한 것이었고.


“로말린.”


로말린보다 조금 더 앞서서 거리를 걷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롬왈드 하버츠’였다. 고운 머리칼은 은빛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이한 머리칼을 하고 있고, 어딘지 품격이 있는 사내는 로브를 둘러쓰고 있었다. 머리칼은 그 둘러쓴 로브의 뒤쪽으로 늘어져 있었고.


콧대가 높고 미형의 사내였다. 청년과 중년 사이에 있는 남자. ‘로말린’이 임시로 모시고 있는 사내이기도 했다. 3급 행정관, 대강 어느 파트에서건 ‘사무장’ 정도의 직책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말단은 아니고.


외근으로 팀Team이 꾸려졌을 때 리더를 맡을 수 있는 자리의 사내라는 뜻이었다.


제롬왈드는 행정, 외교 쪽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왕실의 관리였다. 그 또한 어느 백작가의 자제 출신이기도 했고. 아무튼 고결한 출신에, 그리 까탈스럽지는 않은 나으리였다.


로말린으로서는 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중세나, 혹은 고대까지도 가는 시대상을 삼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인간같지 않게 구는 것들 앞에서, 현대적 윤리관을 지닌 플레이어들이 발작을 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로말린 역시 그럴 셈이었다. 일단 왕실에 연이 닿아서 퀘스트를 이어나가고는 있으나.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때려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현실에서는 뭐, 어려울 지 모른다. 실제 입장과 일자리 따위가 걸려 있다면. 그러나 이곳은 고작해야 게임이 아닌가.


로말린의 뒤로, 제시 역시 걸어나왔다.


그들이 묵은 곳은 허름한 여행자용 숙박업소였다. 목재로 지어졌고, 2층짜리 단출한 가게였다. 사장의 음식 솜씨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얼마 전에 출발한 일행들은, 마차를 탄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산슈카의 남부에 위치한 어느 도시였다.


‘빌리아’라는 이름의 소도시였는데. 로말린과 제시 모두 처음 와보는 지역이었다.


두 사람, 플레이어 두 명이 모시고 있는 NPC는 제롬왈드 뿐은 아니었다.


일단은 벨베르 공화국에 사절로서 가고 있는 입장이었고, 두 명의 보좌관과 두 명의 무관武館이 더 있었다. 각 4급 행정관들이 보좌관으로 둘이었고. 왕실 기사단에서 차출된 한 명의 기력술사와 궁정 전술사단에서 나온 초상술사 한 명이었다.


왕실 기사단의 이명은 달리 없었고, 그저 기사단1, 2, 3과 개중에서도 엘리트로 가려 뽑은 ‘로얄 가드’들이 있었다. 반면 왕실에 속한 초상술사 집단은 두 종류였는데. 한 개는 ‘연구회’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궁정술사장이 수장으로 존재한다. 다른 하나, ‘전술사단’으로 취급받는 곳은 ‘붉은 독수리’라는 이명을 갖고 있었다.


연구회 소속이나 전술사단 소속이나, 어느 정도 인원이 겹치기도 하고, 혹은 서로의 업무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도 있는 관계이긴 하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특출나게 한 개 영역에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이들은 분명 있었다.


이번 사절단의 여정에 참여한 이가 그런 부류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파트밴’과 ‘케이시’라는 이름의 기사와 초상술사였다.


산슈카의 시간으로 한낮이었고. 미국 남부에 거주하고 있는 로말린과 제시의 경우에는 아침 나절이었다. 매일 일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쉬는 날이면 이렇게 한낮에 플레이를 할 수도 있었다. 보통 일이 끝나고 집구석에 들어와 플레이를 할 때면, 산슈카의 시간으로는 아침 이전의 새벽녘이다.


그 때부터 시작을 해서 오전 시간 정도를 플레이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는데. 쉬는 날은 시간대를 바꾸거나, 혹은 조금 더 플레이를 하곤 한다.


이미 퀘스트 여정 중에 올라탄 그들이기에. 로그아웃을 한 시점에서도 게임 내의 스토리는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로말린과 제시는 모두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부류였고. 로그아웃된 상태에서 임시AI가 주사위를 굴리듯 상황 대처를 한다고 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걱정이 될만한 위험도의 퀘스트라면 잘 받지 않기도 했고.


지금 상황 역시 물흐르듯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미리 연을 터두었던 하급 궁내부 관리, 맥도웰의 권유로 갑작스럽게 받게 된 퀘스트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앞을 막는 것도 딱히 없었고. 여행을 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강도떼니, 몬스터니 하는 것들은 제시와 로말린이 나서기도 전에 보통 정리가 되었다. 왕실 전술사단, 붉은 독수리단 소속의 워메이지 케이시의 덕분이었다.


일행에 여자는 제시 혼자 뿐이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사내들이다. 그렇더라도 모두 젠틀한 편인 성격이었고, 제시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껄쩍지근한, 현실의 PTSD를 불러 올만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도시 외곽. 시골 지역처럼도 보이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바람이 불면 모래 바람, 먼지 따위가 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미국 남부의 소도시가 생각나기도 하는 광경이었다.


목제 건물의 입구에서 나서며, 작은 서너 개 계단을 내려오며. 제롬왈드가 앞장 섰고. 그 뒤에 로말린, 제시, 기사와 초상술사. 다른 두 행정관이 나왔다.


로말린은 제롬왈드가 부른 바에 따라 그를 처다보았다. 중후한 멋마저 있는 사내가 이야기를 했다.


“잘 잤는가. 컨디션은 괜찮나?”

“거뜬합니다. 제롬왈드 경은 잘 주무셨는지요.”


왕실의 기사나, 속한 초상술사. 혹은 나름대로 높은 위치를 가진 관리들을 부를 때는 ‘경’이라는 호칭이 적당했다. 수많은 이들 위에 서 있는 최고위급 인사들에게는 공公이라는 호칭이 적절했고.


“나야 뭐 늘상 같지. 그래도··· 자네들이 잘 자고 거뜬해야 우리같은 힘없는 행정관들이 안전한 것이니···. 오늘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없습니다.”


로말린은 그새 나름대로 배웠던, 격식을 차리는 말투로 제롬왈드에게 대답을 했다. 뒤따라 오던 이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날씨가 특별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무탈할 것 같군요.”


파트밴의 말이었다. 로말린이 그다지 작은 체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장한壯漢이었다. 체격이 무식하게 거대하다기보단, 길쭉하다는 인상을 받는 사내였다. 탄탄하게 근육으로 들어찬 몸이었고. 갑옷을 벗어도 벗은 것 같지 않은 위압감을 주곤 하는 인간이다.


호쾌한 성격에, 실상 외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로말린과 제시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양반이었다.


콘란드 대륙의 NPC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본따다가 만들어 두기라도 한 듯, 저마다의 특색들이 넘쳐났는데. 괜찮은 호인들을 모티브로 삼은 모양이었다. 함께 퀘스트를 풀어나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들 안색이 괜찮아 보이니 마음이 놓입니다. 출발하죠.”

“아, 예.”


로말린은 그리 말하며 조금 서둘러 움직였다. 보통 제롬왈드의 보조로 따라붙은 행정관들이나, 로말린 자신이 잡스러운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제시 역시 그런 위치였으나. 로말린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터라 굳이 손을 놀릴 이유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여관에서 나와, 야트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선 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여관의 옆에 매어둔 말과 마차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움직이려 로말린이 가는 셈이었다.


느긋한 일행이었고, 여정이었다. 로말린이 느끼는대로 말이다.


갑작스럽게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확률도 낮았고. 이 사절단의 행로를 알고 있을 듯한 적 NPC의 존재도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물론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절대 틈을 보여서는 안될만치 괴랄한 난이도를 가진 서바이벌 게임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은 위험스러워 보이는 요소가 조금도 없었다.


로말린 역시 몇 년 정도 이 게임을 플레이해오고 있는 베테랑이다. 제시와 함께. 고수급도 넘었고, 플레이어 레벨로만 100을 넘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NPC들 중에서도 그만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처럼 왕실 근처에서 일을 하게 될 때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


로말린과 제시는 대부분의 레벨을 전투 행위를 통해 올렸고, 베테랑 용병이라고 할만하다. 왕실 기사단이라고 하더라도 말단 정도는 될법한 실력이었다. 그런 솜씨를 전부 드러내 본 적은 없지만. 일행으로 동행하고 있는 다른 자들도 로말린과 제시가 그만한 소양을 가졌다는 정도는, 대강 알고 있었다.


외부인이며, 귀족의 신분을 가진 것도 아니라 사실 천대받아도 이상하지는 않은 환경이었는데. 가진 바 실력이 있어 그런지 몰라도 왕실 근처에서 알짱거려도, 제시와 로말린을 낮잡아 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일행들은 그런 점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을 존중해줄만큼 괜찮은 인격의 캐릭터들인 듯했고.


로말린은 여관 앞 거리에서 빙 돌아 옆에 있는 마굿간으로 향했고. 거기에 있는 이두 마차를 정비해 끄집어내려 애를 썼다.


간밤에 결합을 해제해둔 상황이었고, 이제는 다시 출발해야 하니 마구의 끄트머리 부분과 마차를 엮어 다시금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마부의 역할은 행정관 중에서도 더욱 말단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 ‘메르’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로말린이. 고급스런 임무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사절단이었지만. 지나치게 수행 인원이 많아지고 행렬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시선을 살 수가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유능한 행정관과 용병인 로말린이 잡부의 역할을 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 일을 위해서 고용된 자들도 아니었기에. 제롬왈드를 비롯해서 다른 인물들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고, 준비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대도 재촉하지 않는 편이었다.


화창한 하늘, 낮, 거리.


아침 나절에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거리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팔을 걷어붙이고 일터로 나가는 사내들의 행렬이 드문드문 있었고. 아낙들은 집안일을 위해, 혹은 또 그네들 나름의 사무나 사업을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산책을 위해 길을 나서는 노인이나, 놀기 위해 뛰쳐나온 아이들도 있었고.


소도시 빌리아는 나름의 정취가 있는 곳이었다.


여러모로 ‘현실성’을 강조하고, 플레이어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고 있는 게임이기는 했지만. 배설 활동에 대해서는 굳이 강요하지 않기는 했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들은 이 중세, 혹은 고대 시대를 모티브로 한 세상에서 배변을 하느라 고생하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점들만 게임에서처럼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면, 잠시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싶은 고즈넉한 마을들이었다. 그들이 머무른 소도시는.


소도시의 중심가로 가면 물론 그럴싸한 석조 건물이니,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외곽지는 그냥 시골 동네가 아닐까 싶은 느낌이 있었다.


NPC들의 표정에서 보여지듯, 그들은 크게 걱정 없이 하루를 영위하고 있었고. 그건 작금의 산슈카 국왕이 나름대로 평화기를 유지할만한 역량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했다.


로말린과 제시는 게임 내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것들을 보고 느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 표정, 말, 그들의 행동.

또 교류하고 서로 엮이고, 심지어 감정을 주고받았다. 상대의 것은 물론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되어 나오는 AI의 반응에 불과했지만. 현실적으로 느낄만치 그럴싸하다는 점에서 사실 별 차이는 없었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 소설이나 작품 따위를 감상하듯한 수준의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 세계를 만든 이는 누구일까. 제시는 늘 NPC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고민을 해보곤 했다. 게임사 태Tae라고 불리는 곳은 아직까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개발진이나 운영진의 얼굴이 매스 미디어에 노출된 적도 한 번도 없는 곳이었다.


의문에 휩싸인 집단이었고, 대강의 소문으로 다국적 초거대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는 정도만 사실처럼 떠돈다.


확실히 어떤 천재성이 있던, 소규모 집단으로 이만한 스케일의 게임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테니. 제시 역시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미 삶의 저변에 그 상품이나 서비스들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대 기업이라면, 그럴싸하다. 거기에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전무前無한 능력을 지닌 천재들의 집단이 더해진다면. 이런 게임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제시는 혼자서 사람들, 아니 NPC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뒤에 서 있던 초상술사, 케이시가 그녀의 제스쳐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제시는 특이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여겼다. 간혹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무슨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건 없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말린이 말들을 능숙하게 이끌며 거리의 구석에서 나왔다. 여관의 뒤켠, 마굿간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골목이었다.


두 마리의 늠름한 말들이 이끄는 작은 마차에는 보통 행정관 셋과 초상술사 케이시, 혹은 제시가 탄다. 케이시가 탈 때에는 제시가 밖에 있고. 제시가 탈 때에는 케이시가 밖에 있는 식이었다.

사실 제시로서는 그다지 필요 없는 배려였는데. 나름대로 신사적이라는 케이시가 여인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주장한 바였다. 사실 이중에서 근접전을 따진다면 왕립 기사단의 기사인 파트밴과, 로말린에 이어서 세 번째로 강한 게 그녀였는데도 말이다.


안에는 네 명이 타고. 바깥, 마부석에 보통 로말린이나 행정관 한 명이 번갈아 타고.


마차의 주변으로 파트밴과 함께 한 명이 말을 몰며 이동하는 형식이었다. 파트밴은 오래도록 함께해 온 자신의 애마를 데리고 왔고. 제시와 케이시가 번갈아가며 타고 있는 말도 그리 나쁘지 않은 종류였다. 어쨌건 왕궁의 마굿간에서 나온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히히힝.


말은 기분좋게 울었다. 컨디션이 제법 괜찮은 모양.


비련시 온라인에서 베테랑 플레이어가 되어간다는 건, 노숙과 여정에 익숙해진다는 말과도 같다. 말을 다루는 일 쯤이야. 이제는 현실에서 비슷한 일을 해도 어렵잖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워이.”


로말린이 말들을 다스리려 군소리를 내면서 다가왔고. 다그닥거리는 말들이 거리에 사람들이 가는 방향대로 섰다.

행정관들이 문을 열었고, 제롬왈드가 열린 문으로 먼저 들어섰다.


제롬왈드를 보필하는 하급 행정관, 사내 둘이 들어갔고. 케이시가 먼저 손짓을 했다.


제시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마차로 올라탄다.


탁,


하며 마차가 닫혔다.


로말린이 마차를 끌고 오는 사이, 어느새 움직인 파트밴이 있었다. 그 역시 마굿간으로 가서, 자신의 애마와 케이시, 제시가 번갈아 타는 놈을 데려왔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한계이다보니. 파트밴도 로말린의 움직임에 맞추어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바였다.


원래 왕실 기사단원 즈음되면, 종자가 붙는다. 이렇게 하나하나 자신의 일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엘리트 초능력자라는 건, 그만큼 할 일이 많은 위치라는 뜻도 되었다. 나라의 안위를 위하여 여기저기 파견을 나가는 일은, 왕실 기사단원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처럼 기밀을 요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왕실의 기사를 쓰지 않을 테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기사 중에 가장 뛰어난 위치에 다다른 단원들이라 할 지라도 제 할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해야만 했다. 그게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언제던 말이다. 설령, 왕이라고 할 지라도 넘어질 때가 있을 수 있는 법이었고.


파트밴은 가볍게 웃으면서 데려온 자신의 갈색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고, 자연스럽게 말이 움직이는 걸 멈추지도 않고 그 위에 올라탔다. 닳을대로 닳은 등자는 외견은 너덜거렸으나 실상은 아주 튼튼하다.


파트밴의 말은 주인이 올라타는 것이 아주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러운 템포로 느리게 걸었고.


케이시도 파트밴이 끌고 온 말을 받아서 조금 고투苦鬪를 벌이다 그 위에 올라탄다. 마차를 먼저 끌고 온 로말린이 자연스럽게 일단의 마부 역을 맡았다. 조금 여행이 길어진다면, 나중에는 안쪽에 있는 하급 행정관 하나와 자리를 교대하거나 한다. 아침 나절이었다. 소도시, 빌리아를 떠나서 주욱 내려가는 여정길이다.


케이시가 건네준 아티팩트 중에, 먼 거리를 관찰하는 종류도 있었다. 일반적인 망원경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소지하기가 용이하고 가벼웠다. MP를 배터리 삼아서 움직이는 것이고, 내부의 부품들은 조금 더 간소화되어 있는 물건이다.


마부석의 구석에 끼워진 채인 망원경을 마부가 바라보며 먼 거리를 관찰하면서. 일행을 이끈다. 케이시도 마차 내부에 있던, 말 위에 타고 있던 틈틈이 감지술을 발휘하고 있었고.


궁정 전술사단, ‘붉은 독수리단’의 일원인 워메이지라면 플레이어 레벨로 보더라도 고수급은 확실히 넘는다. 일국의 최고수들이 모이는 자리에 섰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초상술 연구회, 쪽의 인원들이라면 전투력으로 그 레벨이 곧바로 환산되지는 않았으나. 케이시는 나름대로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근접술의 경우에는 그가 확실치 쳐지는 면이 있으나.


원거리의 다수를 상대로는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위력을 보일 수 있는 사내이기도 했다.


“으랴.”


로말린은 능숙하게 나무로 된 마부석에 앉았다. 길다란 앉을 자리였다. 비좁게 앉는다면 사내 네 명도 더 앉을 수 있을만한 긴 의자이다. 안쪽도 제법 공간이 있어서 편하리라. 왕실에서 내어준 물건이다보니.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락함도 생각한 물건들이었다 전부.


몰래 다녀오는 사절단이라 화려한 문양, 혹은 왕실의 것임을 티내는 표식은 전혀 있을 수 없었지만.


로말린이 마부석에 앉아 끌고 온 녀석들의 고삐를 조정했다. 마편으로 가볍게 궁둥짝을 두드리지 않아도, 머리가 좋은 왕실의 말들은 안전한 속도로 움직였다. 다그닥거리는 말굽의 소리가 듣기 좋은 박자로 울렸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알아서 마차의 가는 길을 보고 피했다.


멀리, 마을 외곽. 빌리아의 끝 지점 즈음을 가늠하며 보면서 로말린은 평화롭다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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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14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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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24.04.24 1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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