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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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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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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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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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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농지農地

DUMMY

*


지베르트 마샬은 계속해서 포를 쏘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공 휘하의 초상술 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그는, 결국 세르게이 알사드의 의지를 가장 충실하게 재연해낸 인간이었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지베르트 마샬Ziberht Mashall.


푸석한 피부와 움푹 들어간 눈매. 피곤에 절은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간밤에 시작한 짓거리를 다음 날 낮까지 붙잡고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되기는 할 테였다.


일반적인 초상술사였다면, 사실 버티지 못했을 고행이었다. 그보다 아랫급의 초상술사가 이 역할을 맡았더라면 두 세 명 정도는 필요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아티팩트와 에너지였고. 다소 거친 방식이기는 하지만 아티팩트의 성능을 따라 조작하는 것만이기는 했지만. 리모컨을 조작하는 정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워낙 방대한 에너지를 다루는 일이었어서. 상당한 고위의 술사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만일 에너지원을 따로 구비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지베르트 마샬같은 대大초상술사라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의 포격 이후에 정신을 잃거나, 신체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으리라.


개인이 감당할만한 수준의 공격 방식은 결코 아니었다.


“으으···.”


그가 신음 소리를 조금 내었다. 뒤에 있던 술사들 중 몇이 근처로 올라온다. 지베르트 마샬은 몇 계단 위의 단상에서. 마치 가구처럼 큰 크기의 아티팩트 앞에 손을 얹고 있었다.


허리 위 부근까지 넉넉하게 올라오는 사각형의 금속체였다. 금빛의 서기를 발하고 있는 아티팩트였고, 거대한 구조물은 아주 정밀하게 짜여져 있어 얼핏 보더라도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사각형, 육면체의 모양이며 내부 장치들이 겉으로 돌기마냥 튀어나와 있는 꼴이었다.


지베르트의 머릿결은 빛을 잃어간다.


금빛의 MP는 아티팩트를 다루고 있는 사내에게도 머무르지만. 빛에 감싸여 있다고 질質이 떨어져가는 모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홀로 컨트롤을 해온 것 자체가 지고한 위치에 있는 술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곁으로 조심스레 올라간 휘하의 술사들이 안색을 살핀다.


지베르트 마샬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피곤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거··· 바꾸지···.”

“예, 좋습니다.”


아래에서 올라온 이들 중에서 오른편에 있던 노인이 이야기를 했다. 지기, 라는 이름의 백인 남성이었다. 덥수룩한 흰 수염과 백발을 갖고 있다. 지베르트 마샬이 슈페리얼 마스터이기에 그의 휘하에 있는 사내였다. 플레이어 레벨을 따지자면 그도 200에 근접하는 경지를 이룬 사내이고. 일가를 이루어 휘하의 제자들을 두기 충분하고도 남는 지경이었다.


레벨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섬세한 아티팩트의 정밀 조작에 있어서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지베르트 마샬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아티팩트를 사용하면서, 계속해서 의지력이 소모된다. MP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네 가문의 약속’은 방대한 에너지를 다루는 초거대 아티팩트의 일종이었고. 초장거리 너머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물건이라. 그 힘을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리모컨을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의지력이 많이 쓰였다.


최저한의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면 아티팩트를 제대로 발동시킬 수도 없었다. 원래의 용법대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원래의 용법이 아니라 아티팩트를 억지로 다루고 있는 가운데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해킹해서, 하드웨어를 이상 작동 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덕분에 부담이 더 늘었고. 그래서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이 직접 아티팩트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의지력이 닳는다는 건, 스테미나가 닳는다는 것과 비슷하다. MP에 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상술의 위력과 정확도가 점점 떨어지는 셈이다.

같은 경지의 초상술사라고 한다면, 보통 연구직을 맡고 있는 술사들보단 워메이지의 의지력이 더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훈련으로 인해서 늘어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지독한’ 정도의 훈련이 아니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다.


지베르트 마샬은 MP가 바닥이 난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피로도가 컸다. 계속해서 집중을 하며 뇌를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뇌도 육신의 다른 기관들과 같이. 한 번씩은 쉬어주어야 한다. 사람이 애를 써서 특별히 더 쓸 수 있는 종류의 기관이라면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기, 라는 정정한 노인이 아티팩트의 앞에 섰다. 그가 같은 단상의 위치에 오르자 지베르트는 천천히 그 제어권을 노인에게 넘겼다.


선 채로 MP를 조작했고. 마치 가느다란 실조각을 받아들듯이 지기가 능숙하게 그의 조종을 이어받았다.


비유를 하자면 그와 같은 행위였다. 지베르트 마샬은 그리고 뒤로 내려간다. 지기와 함께 올라온 이는 그의 아랫단에 서서 이번에는 노인이 하는 양을 지켜본다. 지베르트 마샬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술사였으므로. 조작의 한계 역시 더욱 빨리 올 것이었고. 교대를 하며 계속해서 쉬어주는 것이 차라리 나은 방법이었다.


지베르트 마샬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며 아래로 내려온다. 터벅거리며 내려와 휘하의 다른 술사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와 부축하려는 것을 손짓으로 물렸다.


당장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는 그대로 지하 연구실의 한 구석으로 가서, 네모낳고 긴 나무 상자 위에 곱게 쓰러졌다.


풀썩, 하고 누웠고. 지하실은 불을 아주 환하게 켜두지는 않았다. 저 멀리 아티팩트를 다루는 장소에서 먼 곳이라면 그 불빛도 닿지 않고.

지베르트 마샬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었고. 지금의 상황이 급박하지만. 단 십 분이라도 뇌를 쉬어주는 게 차라리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선택이라 여겼다.

그는 눈을 감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주변에 있는 술사들을 믿지 못한다면 그런 피로감 속에서도 차마 단숨에 잠들지는 못했으리라.


지베르트 마샬의 뒤를 이어받은 노인은 치렁한 로브를 걸치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네 가문의 약속’을 다루었다. 주름진 손끝에서 MP가 퍼져나갔고. 다른 주인을 맞이한 고대의 아티팩트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힘을 감추지 않는다.


노인은 지베르트 마샬이 계속해서 운용하던 에너지를 이어받아, 왕성을 저격해서 때리기 시작했다.


*


“어이!”


로버드 말리웨의 뒤켠에 있던 부관들이 거세게 소리를 질렀다. 또한 이어서 전음 스킬을 담은 아티팩트로 멈추라는 등의 지시를 전했다. 천천히 기병대의 속도가 줄어들어갔고.


이내 그리 긴 거리를 가지 않고서 대군이 유연하게 멈춰섰다.


헥, -헥.


지친 듯한 소리를 내고 있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말들 역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병대의 사내들은 스스로도 물을 마셨고. 또한 자신들을 태우고 달리는 말의 목을 축이는 걸 잊지 않았다. 말 전용의 수통을 안장에 달아두고 다니는 것이 제식 군장의 일부였다.


로버드 말리웨는 거대한 대공령을 빙, 돌아서 거진 북쪽에 가까운 성벽면 근처에 와 있었다.


한 번에 그 영지를 돈 것도 아니었고. 지도 상에서 그들이 거쳐 온 경로를 그려보자면, 무슨 탭댄스를 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궤적을 볼 테였다.

기병단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하기에는 상당히 기이한 행동이었지만.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이 영지 가까이로 다가가려고만 하면 계속해서 거대한 포격이 날아왔기에.


영지에서의 포격의 움직임을 파악한 기병단의 술사들이 그렇게 움직이라는 식의 조언을 했다. MP로 이루어진 거대한 포격은 실제의 포탄과 같이, 착탄 지점을 미리 설정해두고 날리는 식이었다.

물론 스킬이었으므로 기이하고 다양한 갖가지 기능들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염두에 두었다.


포격이 발사된 이후에 궤도가 바뀔 수 있으리라는 것도 생각을 했으나.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가벼운 스킬을 다룰 때처럼 손쉽게 방향 전환을 하지는 못하리라고 보았다.

최초의 포격 궤도에서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저 먼 거리에서 포격이 이루어질 때 이쪽의 동선을 미리 알지 못하도록 최대한 복잡하게 움직이는 게 가장 괜찮은 방법이리라 여겼다.


예측가능한 뻔한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면 결국 포격을 맞을 위험이 있었고. 기병단은 그런 규모의 초상술적 공격을 여러 번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들은 목표지를 바로 앞에 두고 의미 없는 탭댄스를 추는 미치광이들처럼 굴 수 밖에 없었고. 그게 살기 위한 길이었다.


포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드문드문 이루어졌다. 대공령에 진입하려는 기병단과 왕실 양측을 견제하려다보니 생긴 틈인 듯했다.


기병단에 합류하고 있는 왕실의 초상술사는. 애초에 이루어지고 있었던 포격에 비해선 훨씬 빠른 스킬 텀Term이라고 경악을 했지만 말이다.

기병단을 덮쳤었던 최초의 포격 이후에는. ‘네 가문의 약속’을 이용한 초장거리 공격에도 변화가 있던 탓이다. 한 발 한 발의 출력을 줄이는 대신 발사 간격을 줄일 수 있었고. 종래에 비해서는 약화된 공격이었지만 훨씬 빠르게 두 장소를 계속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버드 말리웨는 초상술사들의 조언에 충실히 따라 기병 전력이 탈진하지 않게끔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가장 괴상한 궤적을 따라 이동을 계속했고.


평범하게 달려서 닿았을 경우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려 알사드슈트의 북측면에 닿을 수가 있었다.


포격은 얼마 전부터 멎은 상황이었고. 진열을 가다듬은 뒤 달리면 도시의 성벽에 머잖아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말을 타고 이동하느라. 로버드의 마음속 표현을 빌리자면 특히 지랄맞은 탭댄스를 추느라. 피로감이 조금 누적된 상황이었다.


말을 타고 이동할 때 고생을 하는 건 사람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러나 타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는 있었다. 능숙치 않은 이들은 말을 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곤 했다. 기병단의 군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단련된 장한들이었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묘기나 훈련이라도 하듯 이상한 기마행行을 한 뒤 숨을 고를만한 피로를 느끼기는 한다.


북측면에는 넓은 크기의 농사지地가 펼쳐져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런 류의 전쟁은 당연히 익숙치 않을 이들의 땅이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밭을 모조리 짓밟으며 질주를 해야했다.

marc-hastenteufel-dx3sBvEX4zA-unsplash.jpg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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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360. 북문 24.07.05 9 1 14쪽
» 359. 농지農地 24.07.05 9 1 11쪽
359 358. 구멍 24.07.03 9 1 10쪽
358 357. 평행行 24.06.30 12 1 20쪽
357 356. 교점 24.06.29 9 1 19쪽
356 355. 좌담의 결론 24.06.28 9 1 25쪽
355 354. 좌담坐談 24.06.26 10 1 11쪽
354 353. 간신히 24.06.26 9 1 25쪽
353 352. 기둥들은 하늘로 오르고 24.06.23 14 1 23쪽
352 351. 주룡走龍 24.06.19 13 1 15쪽
351 350. 상황 24.06.19 14 1 18쪽
350 349. 합류 24.06.18 14 1 22쪽
349 348. 재로그인 24.06.09 13 1 15쪽
348 347. 고심 24.06.09 10 1 13쪽
347 346. 왕도의 사정 24.06.06 13 1 11쪽
346 345. 왕도王都, 아침 24.06.06 8 1 11쪽
345 344. 마늘에 미치다 24.06.06 13 1 18쪽
344 343. 잠깐, 잠 24.06.06 8 1 13쪽
343 342. 로멜리아는 24.06.06 9 1 17쪽
342 341. 제어기지 24.06.06 9 1 13쪽
341 340. 광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24.06.03 12 1 20쪽
340 339. 요드먼. 돌격 24.06.03 11 1 17쪽
339 338. 말리 24.06.03 11 1 12쪽
338 337. 쉴더Shielder 24.06.02 10 1 12쪽
337 336. 폭격 세례 24.06.01 14 1 14쪽
336 335. 전장의 한복판, 제냐 24.06.01 10 1 16쪽
335 334. 아무도 없었다. 24.06.01 9 1 12쪽
334 333. 제어 기지 24.06.01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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