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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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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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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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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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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352. 기둥들은 하늘로 오르고

DUMMY

난도질은 깊고, 흉터가 진하게 남았다.


만 단위의 왕도 내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계속해서 포격이 이어지는 통에, 성벽 바깥 마을에 사는 시민들조차 사르삿을 떠나는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각지의 병사들은 사르삿으로 올라오고, 시민들은 바깥으로 내려가고.


포격에 더해 제어 기지에서 일어난 폭발은 그런 깊은 흉터에 더욱 강렬한 상흔을 덧대어 그렸고. 왕도의 시민들은 낮이 되었음에도 계속되는 포격과.

갑작스럽게 일어난 폭발 테러에 아직도 악몽 속에 있어야만 했다.


실드 내에서 벌어진 폭발이었기에, 외부의 충격을 막고 있었던 왕도의 초상술사들이 미처 대응하지도 못했다.


초상술은 일정한 구성식을 가지고. 효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늘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기력술사들보다 다양한 반응 속도 면에서 한참이나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제어 기지 건물은 어지간한 길드의 청사보다 높은 층고를 갖고 있었고, 두터운 석재로 벽면을 지은 탑이었다. 그 외부를 또한 두터운 사각 형의 담벽으로 감싸고 있었고. 시민들은 그 건물이 어떤 의미나 용도인지는 몰랐지만, 도시 내를 돌아다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건물이었으므로 익숙했을 것이다.


첨탑을 중심으로 일어난 폭발은 강렬한 MP적 파동을 일으켰고. 그대로 킬로미터 단위의 반경을 집어삼켰다.

도시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끔찍하다.


많은 시민들이 이미 왕도 내에서는 집을 버리고 대피소로 옮겨가 있었기에 그나마 사망자가 적기는 했다. ‘그나마’ 적은 것이지 죽은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대피소 근처가 폭발의 범위와 겹쳤기 때문에.


대피소를 덮는 보호막은 주로 위쪽을 막는 물건이었고. 말하자면 우산과 같은 방식으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측면으로 오는 폭발 역시 어느 정도 막기는 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초장거리 포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에너지가 상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처 반응할 수도 없는 수준의 강렬한 폭발이 측면에서 일어났고. 사자가 아가리를 쩌억 벌려, 작은 짐승을 물어가듯이. 고기를 베어물듯이. 오밀조밀 모여 있던 대피소의 시민들 일부가 폭발에 휩쓸렸다.


도시 내는 그렇잖아도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한 번 더 시끄러운 비명으로 장내를 채우게 된다.


위에서 떨어지는 포격이 조금 더 깊은 구덩이를 형성한다면. 도심에서 일어난 제어 기지의 폭발은, 깊이가 얕으나 지면에 있는 건물이며 사람을 모조리 휩쓸어갔다. 덕분에 범위가 조금 더 넓었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보고는 곧 왕궁으로 전해졌고. 왕실 내에서 포격에 대응하며 반격 용의 술식을 완성한 데미안 로헤스, 그리고 빌버 초우는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의 표정을 지으며 분노했다.


왕실에서는 곧 2차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왕도 내에서의 폭발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대피소 등지에 적용되고 있는 쉴드 스킬의 형태를 바꾸기 위해 애를 썼다. 보다 많은 MP가 소모되는 방식이지만. 주변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물리적 충격을 상쇄시키는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란 곧 더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버틸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정오가 지난 오후, 사르삿의 왕성 중심부에서 빛의 기둥이 백주의 대낮 위로 솟구쳤다.


어차피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점을 알기도 했고. 계속해서 공격을 당할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고의 방어는 곧 공격이라는 어느 선인의 말에 의거해서, 왕가 역시 반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초장거리에서 포격을 가하는 초상술은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최고의 난이도를 가지는 어려운 기술이었다. 어마어마한 MP가 들고.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의지력 역시 막대하다. 가장 안정적이며 기본적인 방법은, 오롯이 그 일만을 하기 위한 술식을 짜서. 그 술식을 고정적으로 발휘 가능한 거대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방대한 에너지를 감당할만큼 크기가 커야 하겠고. 복잡하며 많은 양인 술식을 짜넣을 만큼 또 충분히 넓어야 하니.


그러나 그런 용도의 아티팩트 물체는 없더라도. 임시로 대신할만한 연산자들. 그리고 제어력을 발휘할 인물들이 왕실에 있었다. 곧 왕궁에 있는 모든 초상술사들이 하나가 되어 방어용의 술식과 공격용의 술식을 나누어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왕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무수한 아티팩트와, 초상전戰 전용의 물자들이 쓰인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방식의 사용도 아니었고. 이전에 릿샤 애드윈이 쓴 것과 비슷한 식이었다. 아티팩트의 구조를 MP라는 에너지로만 분류해보면 일반 사용이 가능한 유저블 파워와, 구성체를 이루는 에센셜 파워가 있었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질료까지 불태워서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이 아닌 아티팩트였고, 본디 MP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건들이었기에. 더욱 화끈한 변환이 가능했다. 유구한 역사의 아티팩트를 소모품처럼 다루는 방식이었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덕분에 다급하게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었음에도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훌륭한 방어를 해낼 수 있었다.


사르삿의 역사, 산슈카의 자산. 그런 것들이 불쏘시개처럼 쓰이며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세르게이 알사드의 경우와는 다른 입장이었다. 왕실은. 알사드 대공은 그런 식의 거대한 에너지를 다루도록 애초에 만들어진 제국기 특급의 아티팩트를 활용하는 것이었고. 사르삿 왕가의 술사들은 그보다 훨씬 하위의 물건들을 통째로 태우듯 소모하는 중이어서, 복구할 수 없는 사용이었다.


어쨌든 하늘로 치솟은 빛의 기둥은 거대한 힘을 품은 투사체였다. 그 말단이 본체였고. 빛의 기둥은 한 개의 탄환이 움직이며 그리는 긴 궤적의 형상에 불과했다.


고도를 높여 까마득한 자리에까지 닿은 투사체는 곧 대기를 가르며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이 있는 곳. 왕도를 계속해서 저격하고 있는, 공격자가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천공에 그림처럼 꼬리로 궤적을 남기며 날아가는 빛의 선이었다. 중간 즈음에서는 그 반대 방향으로부터 오는 대공의 공격이 있었다. 금빛의 섬광은 왕실 근처에 직격했고. 왕성의 쉴드는 충격을 막아낸다. 그러나 왕궁에 있는 아티팩트들의 재고도 한계는 있었고. 그것을 다루고 있는 술사들의 체력과 정신력 역시 마찬가지로 정해진 양이 있다.


출렁이는 왕궁의 푸른 보호막과 같이, 내부에 있는 술사들 역시 큰 충격을 받으면서 몇 명이 쓰러지기도 한다.


공격용 술식을 담당하는 술사들의 부담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고. 왕도로 오는 공격을 순조롭게 막아내고. 백주의 낮에도 눈에 띌 정도로 강렬한 흰 빛의 선이 이제 반격을 위해 날았고.

그 여정의 끝에 곧 다다랐다.


말을 타고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가야 하는 거리였는데, 순식간에 초상력의 탄환은 그 거리를 지나 닿는다.


수 시간을 수 분 정도로 줄이는 속도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의 심판마냥 움직이는 빛의 탄환.


그것이 곧 대공가의 저택 부지 위를 강타했다.


왕성에서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술사들은 곧 산슈카에서 가장 엄선된 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일류라고 할만한 자들 중에서도 다시 가려 뽑힌 자들 말이다. 그런 이들이 하는 일이었고. 일단 대공령, 알사드슈트에 존재하는 시민들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초장거리 포격이었으나 아주 정밀하게 운용되고 있었고. 거대한 에너지를 홀로 다루고 있는 대공가의 사정과 달리 여러 명의 연산과 제어력이 함께 쓰이고 있었다. 대공의 공격에 비해서 아주 약간 퇴색되는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말못하게 강력한 공격이었고. 곧 산슈카의 저력이자 총의라고 할 수 있는 빛의 공격이, 도낏날처럼 저택 부지 위 상공을 때린다.


꾸우우웅,


하고 지진이 난 것 같은 굉음과 진동이 알사드슈트 령을 뒤흔들었다.


대공가의 저택에도 거진 왕성에 준하는 쉴드가 존재했다. 본디 일개 귀족의 거처에 그만한 방호 체계가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대공은 자신의 거처에 그런 시스템을 마련해두었고. 막대한 재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택 부지 내에 초상술사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산슈카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지만 알사드슈트 역시 대도시라고 부를만한 규모의 장소였고. 그 중심부에 어지간한 마을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대공의 처소이다.


마을을 감싸는 방어막이 반투명한 색깔로 허공에 드러났고. 빛의 망치에 부딪히며 출렁거렸고, 스파크마저 튀었다.


본디 대공가의 자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지어진 쉴드였다. 그것 하나를 짓기 위해서 무수한 초상술용의 촉매와 인력이 들어갔으리라. 전략 물자라고 할만한 것이 거대한 짐마차를 가득 채우는 수준의 단위로 부어졌겠고.


대공은 그만한 자산을, 산슈카 외곽의 암흑가를 형성해 운용하고. 또 인접한 국가의 각지에도 비슷한 일을 벌여 충당하고 있었다. 산슈카에서 가장 핵심적인 행정 처리를 하는 이들을 휘하로 두고 있고. 중앙 정부의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대공이었고. 그에 더해 지독하게 교묘하고 치밀한,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 환경을.


국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온갖, 모든 물품을 거래하면서 산슈카 인근 세계의 치안 수준 하락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그였다. 물론 중앙 정부에 기록되지 않는 범죄들이었기에. 왕실, 중앙의 입장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말이다.


소리낼 곳 없는 약자들을 무수하게 죽이고, 범하고, 납치한 뒤 팔아 넘겼다. 개중에서 쓸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잘 속인 뒤 자신의 수하로 길러냈고.

그런 작업을 수십 여 년간 하고. 산슈카만이 아니라 각국에 속이 검은 자들과 내통하면서 각국의 주요 자원 따위를 갉아먹기도 하고,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 모든 일에 있어서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이라는 이름은 전면에 나온 적조차도 없고. 그저 신원 미상의 권력자로서 행동하며 모든 일을 조종하고 조정했다.


세르게이라는 사이코패스의 조정 행위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인물이나 상황은 소수에 불과했고. 그 상태로 한 세대가 다 지나도록 시간을 보낸 뒤에, 이렇게 한 번에 저력을 모아 터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왕실에서 보낸 의의 심판과도 같은 공격은 가로막혔다. 그러나 대공가의 쉴드 역시 무한하지는 않았다.

대공가 내에 있는 초상술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가문에서 확보한 여러 개의 아티팩트나 촉매들 따위를 소모하며 쉴드를 보강하고 있었다. 왕실에 비해서는 물론 아득하게 나은 처지였다. 일단 무자비한 공격에 필요한 MP는 고대의 병기로부터 수급하고 있었으니까. 산슈카 왕실이 자원을 쓰는 방식에 비하자면 한없이 절약적인 형태였고. 더 오래 버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반격을 당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대공은 그 때부터 확연하게, 저택 부지 내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왕실이 너무 빨리 반응을 했다. 대공은 ‘흔적’을 흘린 적이 조금도 없는데 말이다. 추론을 할만한 근거를 준 적도 없었고.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벨케임 사슈나 7세와는 깊은 연을 맺어왔다. 그 자신의 연기가 틀렸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죽은 아비조차 속이고 가문의 후계자로서 명맥을 이었는데.


특히나 사람이 좋고, 어지간하면 타인을 신뢰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인물이었다. 벨케임 7세는 말이다. 그래서 세르게이 알사드는 더더욱 그의 곁에 있을 때 ‘인간적인 면모’를 흉내냈고. 그 깊은 연기는 오랜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여 세르게이 알사드라는 인물의 가상적 인격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거기에 벨케임 7세가 통치를 하는데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공식적인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개인적인 무엇을 추구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대공가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기사단과 병력, 문관들을 파견해서 왕실의 행정과 다양한 일 처리를 돕게끔 하고 있었으니.

벨케임 왕의 입장에서는 왕정에 오랜 세월 충직하게 도움을 주는, 말 없는 충신이라고 생각할만 했으리라.


사이코패스가 연기를 한다고 해서 늘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아주 뛰어난 연기를 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인 벨케임 왕으로서는, 딱히 문제점을 찾지는 못했다. 아마 세르게이 알사드가 조금만 긴장감을 풀고 느슨하게 굴었다면, 벨케임 왕 역시 머저리는 아니었으므로 그의 인격에 대해서 의심을 했었으리라.


세르게이 알사드가 사슈나 가와 함께 명맥을 이어 온 사대고가의 수장이라는 점 역시 함부로 그를 의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겠고.

어설픈 의심으로 세르게이 알사드를 쳐내기에는, 정치적으로 그는 너무도 중요하며 완벽한 자리에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말이다.


세르게이 알사드는 자신이 그런 자리에 오를 후계의 명맥인 것에 대해 감탄을 했고.

자신의 악업을 위해 십분 활용을 했다.


잘 되고 있었다.


벨케임 왕은 그렇게 멍청하게, 아주 잠시만 더 바보같이 굴고 있었으면 별 문제 없었으리라.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헛바람이 든 것인지.


갑자기 요드먼 백작이 움직이며 대공가를 급습했다.


쿠데타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급진적인 움직임이었고, 당연히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 역시 당황을 했다.

그를 따르고 있는 휘하의 여타 많은 인물들 역시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당황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처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고.

세르게이는 군사를 일으켜서 시간을 벌었다. 여태까지 모아 온 충실한 군사들은, 대공령의 근처 평야에서 물리적으로 전멸할 정도로 충직하게 전투에 임했다. 병사들이 그만한 충성도를 가지게 된 데에는 아주 긴 세월 여러 형태의 세뇌 행위를 일삼은 탓이 있었지만.


아무튼 세르게이 알사드는 깔끔하게 대군을 포기하는 전략을 세웠고. 그 시간 내에 포격으로 왕성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단지 얼마간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또 달리 왕도의 술사들이 아주 기민하게 대처를 했고. 결국 지금에까지 이어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공격용의 술식을 만들어 대공령을 때리리라는 것은 상상을 벗어나는 반응이었고.


도미노를 밀어 넘어뜨리듯이. 대공은 또 다른 여러 곳에서 공작 행위를 벌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더라도 써먹었을 방법이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왕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준비해두었던 폭탄은 여러 개였다. 마침 시간이 되었고. 불안한 분위기, 위기감 속에서 사르삿에서 몇 군데 폭발이 더 일어났다.


멀린이나, 제레샤와 같은 수장급의 인사들이 과감하게 움직이며 수도 곳곳에 설치를 해두었던 폭발물들이었다.


최근에 와서, 대공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모든 전투 병력들을 뒤가 구린 일에 투입하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평범한 대공’인 척을 해야 했던 지난 날 동안에는, 어느 정도 전투 병력을 분리해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지금. 모든 특수 병력들이 손을 더럽혀도 딱히 상관이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눈치를 볼 상대가 없는, 전쟁이었으니까.


검은 늑대단의 수장도, 붉은 늑대단의 부단장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전술사단의 뛰어난 베테랑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사르삿 시에서 제어 기지가 터져나간 것처럼. 여러 군데 MP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미 수도의 상황은 쉴드를 전방위적 충격에 대비하게끔 바꾸었고. 대피소 안으로 왕도 내의 모든 시민들이 들어가 있던 상황이라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왕성의 병력들이 사용 가능한 총 MP 자원의 일부를 소모시키는 용도로서는 훌륭한 전략이었다.


결국 공격과 방어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대공가가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기는 했다.


그리 생각하며 저택 내의 세르게이 알사드는 잔뜩 찡그리고 붉혔던 얼굴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한창 내전과 포격이 일어나고 있는 날의 낮의 일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 와중에 푸짐한 점심 식사까지 즐겼고, 그의 휘하에서 일하고 있는 부하들 역시 똑같이 식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물론 모든 인원이 동시에 쉴 수는 없었지만.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배를 채울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온다는 계산에서 하는 짓이었다.


결국 대공가가 지니고 있는 전투 계획의 핵심은 제국기 특급, 고대의 아티팩트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왕성을 때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덕분에 상당한 수의 왕실 초인 병력들을 잡아둘 수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이곳저곳에 포탄을 남발하듯 날려도 좋으리라. 그의 휘하에도 쭉정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엄선된 실력자들이 잔뜩 있었고. 여차할 때 상대의 초인 전력을 막을만한 저력은 되었다.


결국 어느정도 비등한 싸움이었다.

누가 먼저 빈틈을 확실하게 찌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다. 그런 대치에서는.

본디 세르게이의 계산으로서는. 왕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비수를 몇 개나 준비해 두었으므로. 정면 대결에서 비등할 정도의 전력이라면 미리 기습을 가해서 왕도를 몇 번이나 무너뜨리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에 예상과 달리 상황은 점차 정정당당한 힘겨루기와 같이 바뀌고 있었다. 그런 식이라면 결국 자신의 의도나 예상에서 벗어나서.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으로 가고 만다. 현실에서 절대적인 가능성이라는 건 없는 법이었지만. 그래도 허를 찌른다면 충분히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르게이 알사드는 대공령 주변에 흩어 놓은 특작 부대의 군사들을 통해 대공령 인근의 동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값비싼 아티팩트를 여기저기에 풀어놓고 풍족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알사드슈트 령을 중심으로 한 인근 황야, 평야 지대의 정보를 실시간에 가까운, 수 분 단위로 받아듣고 있었고.


수도 사르삿과, 또 다소 먼 거리에 있는 산슈카 내의 정황들을 수십 여 분이나 수 시간 단위로 전해듣고 있었다.


통신용의 아티팩트 하나가 국내 전역을 커버Cover할 수 없는 점이 있었고. 또 장거리 통신 스킬을 발휘하기 위해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각 포인트의 수하들이 정보를 건네받아 다시 발신할 때마다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덕분이었다.


초장거리 통신 스킬은 초상술 중에서도 나름대로 난이도가 높은 스킬이었고. ‘거리’에 따라서 스킬의 규모가 달라지므로. 대단위 스킬에 해당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자원과 신속한 유용성을 따져서 가장 적합한 거리의 통신 스킬을 단위 별로 맞춘 다음에. 여러 개의 스킬을 잇는 식으로 정보 통신망을 구축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통신 스킬’이었기 때문에. 초상술사들을 여러 명 단위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의 대귀족이나 왕실 등이 아니라면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타국에 그런 통신망을 두는 경우도 물론 더러 있었지만. ‘스킬’이라는 건 의외로 흔적이 꽤 남는 일이었으므로. 완벽하게 타국의 시선을 피해 움직이는 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덕분에 불완전한 통신망이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이다.


장거리 통신 스킬을 가능케 하려면 중계 지점에서의 본격적인 스킬 발현이 필요하니. 또 그것을 ‘유용한’ 정도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술식진과 촉매들이 필요해지고. 곧 ‘기지 시설’이 어떤 방식으로든 생겨나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 역시 아주 제한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휘하에 두고 있는 귀족가의 영지 근처에 비밀스런 소형 기지를 설치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은밀함’을 추구하다보면 항상 전방위의 통신이 가능한 기지라는 건 만들 수 없었고. 이따금 필요할 때만 기동하는 식이었는데. 물론 지금은 이미 일이 벌어진 뒤의 시국이었으므로 은밀성보다는 항상성을 중시하고 있었다.


대공이 유지하고 있는 탐색-정보망에 진격하고 있는 왕실파의 귀족군이 들어왔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은, 아직 평야에서 쉼을 가지는 수 만의 군세를 처리하지 못했음에도. 다른 방면에서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프린스 알사드는 모든 일을 늘 완벽하게 계획했다. 게으른 대공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지만. 사실 진짜 그의 성질을 고려한 별명을 짓자면 Mr.Perfect같은 이름이 차라리 어울릴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알사드 대공의 좋은 준비성이 도리어 독이 될 때도 있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르게이 알사드는 어찌되었건 자신의 전략적 기지이자 본부本部를 대공령의 저택 부지로 일찍이 계획하고 꾸며왔다. 해당하는 장소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어 현재의 자리를 만들었기에,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차라리 그가 다른 지역 어디로든 도망을 치고. 숨은 상태에서 병력을 움직여 판도를 조정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른다.

대공은 지금 위치한 곳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였고. 빤히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 채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고의 전법은 결국 상대가 알아차리지조차 못했을 때 암습을 하고, 목숨을 취하는 방식이라 믿는 그였는데. 미쳐버린 천재인 그가 아주 긴 세월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계획은 크게 어긋났고.


덕분에 미리 준비한 자신의 노력이 스스로의 목을 옥죄는 아이러니한 꼴이 조금 있었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은 일단, 진격하는 왕실파의 기병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왕도로의 공격들은 결국 계속해서 막히고 있었고. 그 위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시도들이었다. 걸출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상대가 워낙 잘 막아내고 있으니. 알사드 대공은 자신이 쥔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줄 길이 없었다.


휘하에 적을 두고 있는 여러 병사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위용과 강대함이 중요했다. 그런 퍼포먼스가 없고서는 온전하게 대공을 따르진 않을 무리들이었으니.


이미 ‘때’를 위해서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린 이후였지만. 세르게이 알사드를 진정으로 따르고 있는 무리들의 행동은 늦다. 실제 알사드 대공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본 조직의 인원들이 아니라 외부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는데.


평야에서 수 만 단위의 대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다면 아마 따를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대공이 ‘네 가문의 약속’을 움직이고 있는 지베르트 마샬에게 언질을 보냈고.

대공가에서 지속적으로 솟구치던 거대한 빛의 탄환의 다음 발사체는, 멀리 있는 사르삿이 아닌 근처의 기병대를 향해서 움직이게 되었다.


대공의 명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사드슈트 령의 상공으로 금빛의 서기瑞氣를 뽐내는 빛의 기둥이 하나 솟구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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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354. 좌담坐談 24.06.26 6 1 11쪽
354 353. 간신히 24.06.26 5 1 25쪽
» 352. 기둥들은 하늘로 오르고 24.06.23 12 1 23쪽
352 351. 주룡走龍 24.06.19 12 1 15쪽
351 350. 상황 24.06.19 13 1 18쪽
350 349. 합류 24.06.18 12 1 22쪽
349 348. 재로그인 24.06.09 12 1 15쪽
348 347. 고심 24.06.09 10 1 13쪽
347 346. 왕도의 사정 24.06.06 13 1 11쪽
346 345. 왕도王都, 아침 24.06.06 8 1 11쪽
345 344. 마늘에 미치다 24.06.06 10 1 18쪽
344 343. 잠깐, 잠 24.06.06 8 1 13쪽
343 342. 로멜리아는 24.06.06 8 1 17쪽
342 341. 제어기지 24.06.06 9 1 13쪽
341 340. 광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24.06.03 11 1 20쪽
340 339. 요드먼. 돌격 24.06.03 11 1 17쪽
339 338. 말리 24.06.03 11 1 12쪽
338 337. 쉴더Shielder 24.06.02 9 1 12쪽
337 336. 폭격 세례 24.06.01 14 1 14쪽
336 335. 전장의 한복판, 제냐 24.06.01 9 1 16쪽
335 334. 아무도 없었다. 24.06.01 9 1 12쪽
334 333. 제어 기지 24.06.01 9 1 11쪽
333 332. 집중 24.05.31 7 1 12쪽
332 331. 무수한 게임 오버Game Over 24.05.31 9 1 15쪽
331 330. 착탄 24.05.30 12 1 22쪽
330 329. 계획, 본격적(2) 24.05.29 9 1 22쪽
329 328. 계획, 본격적 24.05.29 9 1 12쪽
328 327. 작업, 한창 24.05.28 1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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