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30 02:56
연재수 :
358 회
조회수 :
9,055
추천수 :
771
글자수 :
3,405,694

작성
24.06.26 02:18
조회
7
추천
1
글자
25쪽

353. 간신히

DUMMY

*


달리고 있는 기병대의 선두를 맡고 있는 건 로버드 말리웨라는 사내였다.


전마戰馬에 올라탄 기사의 모습이 무척이나 늠름하다.


기병대의 규모는 약 이만 여 기騎.


어마어마한 수의 병사들이 제법 속력을 내면서 알사드슈트 령으로 향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모인 군대는 즉시 대공령을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약 삼만의 보병대가 있었으나. 일단 그들과 떨어지더라도 기병 전력은 먼저 대공을 압박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세르게이 알사드가 어떤 패를 감추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대군은 한 번 패한 뒤였고. 어떤 수작을 부리더라도 그만한 수의 대군을 단시간에 다시 운용하는 건 어려우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걸리는 점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 대공가의 특수 병력들. 기사와 초상술사들이었는데. 기병대에 속한 건 각 귀족 가문들에서 보내온 기사들과, 그 가문에 속한 여러 술사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을 했고.


또 대공의 엘리트 기사단을 염려해서 왕실의 로얄 가드들이 선두를 맡고 있었다.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기사가 이긴다. 정면 대결에서라고 한다면 말이다.


미리 초상술사가 깔아둔 판 위에 올라가는 형식이라면 기력술사는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하겠지만. 준비한 전장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맞부딪히는 정면 대결이라면 기력술사의 맹진은 늘 워메이지의 진을 뚫고 나아가리라.


특히 로얄 가드들의 경우에는 왕실에서 지급받은 무수한 아티팩트를 걸치고 있었고. 그네들이 아티피서와 같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무구들이었다.

아티팩트 자체에 내장된 에너지가 막대했고, 그만큼 운용하는데 값비싼 물건들이었지만. 왕국 최강의 기사들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기사들이 직접 걸치고 있는 무구들 역시 아티팩트 메이커들 여럿이 모여 만들어낸 일류의 작품들이었고. 또한 그네들이 타고 달리는 전투용 말의 마구들 역시 그러했다.


어지간한 워메이지들이 어느 정도의 방어진 따위를 펼치며 그들을 막아서서는, 멈출 수 없을 돌진이었다.


또한 분주하게 평야를 달리고 있는 기병대 속에 있는 워메이지들 또한 나름대로의 실력이 있는 이들이었고.


다그닥, 거리는 소리는 곧 함성이 되어 평야에 지진처럼 울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하는 불규칙한 굉음이 일대를 떨게 만든다.


이 만의 기병대는 정예였다. 그 날 만나서 편제를 갖춘 뒤 진격을 하는데 아무런 이탈이 없다는 게 그 증거였다.

각지에 있는 귀족들은 사태가 위급하다고 생각을 했고, 자신들의 가문에서 가장 정예한 병력들을 왕도로 보냈다. 왕가, 사슈나가 어렵다고 한다면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각 영지 인근을 지키는 치안 병력들이 줄어든 형국이었지만. 아직 왕국의 정규군은 그 본체를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때아닌 몬스터들의 침략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응할 바는 충분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맑은 하늘. 평야.

초원과 황야가 번갈아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들은 빠르게 달리다가,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느리게 달렸다가.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가를 반복했고.


알사드슈트 령까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부터 거대한 빛이 나타났다.


빛은 창공에 있었다.


가장 먼저 발견한 건. 가장 멀리 보고 또 높게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두, 로버드 말리웨였다. 그는 감각적으로도 예민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군사를 이끌고 있었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시국이었으므로.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상상력을 조금 넘는다.


금빛의 '선'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다.


질량감이 느껴지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 곧 어마어마한 에너지이다. 물리 법칙에 위배되는 이야기이지만. 초상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탄환은 그런 기묘한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저 멀리, 구름과 비슷한 높이에서 날아들고 있는 금빛의 선이 곧 아래로 찌르듯 떨어지려 한다.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빛의 기둥과 비슷한 것이었다.


로버드는 공교롭게도 자신이 본 적이 있는 형체라는 걸 알았다.


비록 멀리에서였지만 잊을 수 있는 꼴은 아니다. 왕도, 사르삿을 강타하던 포격이었다.


왕궁에서 가장 큰 건물만한 느낌의 아주 굵은 선이었다.


그것은 직선으로 창공을, 새마냥 가르다가 천천히 굽어졌다.


곧 곡선을 그리면서 점차 '다가온'다는 것이 이루 말하기 힘든 재앙이었다.


거대한 건물이 자신을 덮쳐오는 모양새처럼, 로버드 말리웨는 느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와중에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빛의 파동을 느꼈고.


놀랍게도 그는 그 순간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서 전군을 향해 비명처럼 지시를 내렸다.


“전군 선회!”


그가 말머리를 먼저 왼쪽으로 비틀었다. 폭급한 손길이었지만 그의 말, 아가일은 주인의 동요를 충분히 인지했고. 지금이 ‘급박한’ 상황이라는 걸 이해했다. 이 만 여의 대군을 이끌던 지휘관의 말이 돌아가자. 주변에 있던 부관들도 곧 비명처럼 지시를 내렸고.


위에서부터 무언가가 쏟아지고 있다, 는 걸 깨달았으나 병사들은 일단 지시를 따르는 일에만 집중을 해냈다.


직사각형 모양. 혹은 아주 뭉툭한 쐐기꼴. 윗부분만 슬쩍 튀어나온 진형으로 질주하던 이들은 급하게 방향을 틀었고. 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운동성으로, 전군의 방향이 바뀌었다.


각 영주들이 보내온 기력술사들의 대부분이 지금의 선두 그룹. 기병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개들 중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며,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코미어 백작’으로부터 온 초상술사가 눈을 부릅뜨며 주변의 술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근거리에서의 전음 스킬은 약간의 도구와 스킬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힘이었다. 초상술사들에게. 어마어마한 수의 기병대 속에는 초상술사들이 각개 조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실시간 통신을 하고 있다.


2만 여의 병사들에게 전달되는 라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로버드 말리웨에게서 내려오는 지휘 계통의 통신 라인. 다른 하나가 각지에서 온 초상술사들이 평등하게 유지하고 있는 통신선이다.

로버드 말리웨의 전언은 물리적으로 부관들과, 휘하 지휘관들, 또 그 아래의 선임병들에 의해 전달되며. 통신 아티팩트를 통해서도 삽시간에 진형의 후방까지 전달이 된다.


로버드의 말과 다른 라인으로 초상술사들이 비명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미어 백작가의 가장 유능한 초상술사. 흑발을 뒤로 땋은 중년의 워메이지가 급하게 이야기한다.


[“전군 상부에 있는 MP 에너지체에서 떨어질 수 있도록 쉴드와 가용한 이동 지원 기술 모두 사용하십시오-!”]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에는 음이 튀고, 찢어지는 톤의 소리가 났다. 그렇게 말을 하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사내는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보조용의 아티팩트들을 움켜쥐며 기동시켰다.

아티피서가 아티팩트를 쓰는 것과, 일반적인 초상술사가 쓰는 건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최초의 몇 회에 한해서는 초상술사가 쓰는 종류가 더 위력이 높을 때가 많았다.


제한 없이, 반영구적으로 계속해서 기능을 발휘 가능한 종류의 아티팩트와. 내장된 에너지 따위가 있어 제한된 횟수 위력 발휘가 가능한 아티팩트의 차이였고. 후자의 경우에는 제작하는데 많은 돈이 들기도 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능숙하게, 옷자락 속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사내는 그것만으로도 전장에 익숙한 자였다. 기마술이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다. 워메이지로서 여러 전쟁터 바닥을 구른 전력이 있는 이였기에 다양한 상황에 곧바로 대처가 가능한 점도 있다.


초상술사가 단지 마기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워메이지가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사선의 수가 참 많다. 데스크Desk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실전 경험이 없다면 눈 먼 칼이나 화살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레벨과 체급이 있다면 상쇄될 수 있는 말이기는 했다만.


각진 턱을 가진 중년의 사내는 긴 은줄로 이어진 여러 개의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의 소켓Socket에는 알이 굵은 보석류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각기 다른 색깔로 빛나고 있는 보석들이다. 세밀한 느낌보다는 다소 투박한 풍으로 다듬어진 돌들이었다.


펜던트의 은줄은 여러 개가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손아귀에 잡힌 것 중에서 몇 개의 보석들이 빛이 났고. 곧 그와 동시에 허공에 입자처럼 흩뿌려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런 가루로 이루어진 보석처럼 말이다; 반짝거리는 입자들만을 남기며 사라지는 보석은. 원랴 MP로 가득 채워져 있는 구조체였고.

그 형태가 붕괴하면서 만들어지는 막대한 양의 MP를 고스란히, ‘술사’에게 제공을 했다. 사내는 몇 개의 보석들을 희생시켜서 거대한 초상술을 사용했다.


각기 적게는 수 천에서 만 단위의 MP들이 내재된 보석들이었다. 마스터 마기아의 수준을 넘보는 것이 사내였다.


그가 손아귀에 쥐었던 보석들이 사라지자 중얼거리며 시동어를 읊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기병대들이 달리고 있는 진형 이곳저곳에서 그 위력이 발휘되었다. 먼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 사내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 수백 여 미터의 원진이 펼쳐졌다.


허공에 나타난 부드러운 색감의 연두빛 진은 마치 연기와도 같았고. 빛의 가루로 이루어진 것도 같았다. 바람에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날아가지는 않았고. 곧 원형의 진이 기병대를 감싼다.


사내를 기점으로 수백 여 미터라고 하더라도. 이만 여의 기병대 전체를 감쌀 수는 없었다. 곧 사내가 만들어내는 진은 보여지는 연출에 불과했다. 그 진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체적으로, 또 공통적으로. MP로 인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 기병대의 군사들. 그리고 열심히 뛰고 있는 말들은. 곧 자신의 몸에 걸리는 부하, 압력이 줄어들고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바람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뒤에서 불어주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걸음이 모두 가벼워졌다.


전체적으로 아주 약간의 이동 속도 상승만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군대로 보자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멀리서 보자면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달리고 있는 기병대의 진형이 일순 빨라진다.


코미어 백작가의 초상술사가 만들어낸 일은 그 뿐은 아니었고. 곧 몇 개의 보석을 박살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색깔의 원형진이 기병대의 머리 위에 생겨났다.


평범하게 말을 달리고 있는 기병대원들은 갑자기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상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롯이, 군대를 이끌고 있는 로버드의 명령을 하달받아 그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장에서 병사들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그네들은 나름대로 산슈카 각지의 영지에서 온, 뛰어난 정예병들이었다. 훈련을 잘 받았고. 일반병들의 경우에도, 초인 병력들과 어떻게 합을 맞춰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초상술사건 아티피서건 기력술사이건. 일반적인 상식을 부숴버리는 일을 아주 평범하게 해내곤 한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건, 일반적인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눈 앞을 어지럽히는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그저 하달된 명령에 따르는 것이 훌륭한 병사이다. 이 시대의 전쟁터에 있어서 말이다.


초상술사들이 무슨 스킬을 사용했겠거니. 혹은 적진 어딘가에서 이상한 기술을 썼겠거니. 그렇게 정신을 다잡으며 기병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만 여 명 중에서 정식 기사단, 혹은 기력술사라 할만한 이들이 2-3천 정도였다. 나머지는 모두 잘 훈련받은 정예 기병들이다.


코미어 백작가의 초상술사가 만들어낸 흰 빛의 원형진이 한 겹 더 생겨나 그들의 머리를 덮는다. 움직이고 있는 기병대원들의 머리 위에 고정이라도 된 듯,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꼴이었다.


흰 빛의 원형진은 애초의 연두빛 진과 달리, 크기를 계속해서 키워나갔다.

연두색의 진은 제 몸을 깎아먹듯, 조금씩 그 말단이 사라져가며 기운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연두빛의 진의 위력은 계속해서 기병대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고. 고작 십 여초만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기병대의 선회에 확실하고 큰 도움이 되었다.


흰 빛의 진은 일단 이 만 여의 기병대 머리 위를 전부 뒤덮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초상술사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펜던트 다발에 있는 다른 보석류를 감싸쥐었다. 손아귀 안에 보석이 들어가고, 그가 MP를 운용하자. 원래 그렇게 쓰이도록 만들어진 보석들이 하나둘씩 부서져 나가며 MP를 토해냈다.


보석은 고체화된 결정이 아니라 원래 불안정한 에너지 덩어리일 뿐이었다는 듯, 그의 손길에 따라 뭉친 밀가루가 풀어지듯. 마치 그렇게 바스라지면서 그대로 내부의 힘을 사내에게 전달했다.


사내는 흰 빛의 진과 연두빛의 진. 두 개의 원반 모양의 거대한 형상을 더욱 키우면서 초상술의 기세를 드높였다. 전군, 기마병단의 속도와 활력이 점차 빨라지고 거세졌다.


*


다른 방면에 있는 초상술사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로버드 말리웨와 함께 왕실에서 파견을 온, 붉은 독수리단의 일원. 왕실 전술사단의 워메이지 ‘쳄버 모쿠가’는 세시앙인이다. 극동아시아인, 황인종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모발과 홍채 모두 검다.


로버드 말리웨의 근처, 기사단의 부관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로브자락을 뒤로 흐트러뜨리고 있는 사내였다. 그 역시 부기사단장이 눈치채듯 위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에너지체를 알아보았다.


경악스러운 심정이었다. 그는. 30대 정도의 나이대였고, 또 왕실의 전술사단으로 고용될만큼 천재적인 그였지만. 단순하고 거대한 에너지 앞에서는 할 수 있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 기병단 내에 있는 워메이지가 자신 말고 몇 명이나 있는지.


그들의 수준과, 가지고 다룰 MP의 총량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계산해보았다. 그 총량이 과연 스킬로 현현했을 때, 과연 다가오고 있는 저 빛의 기둥과 맞닿았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물리학자와 같은 이론과 수식의 그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슬아슬하다. 혹은 모른다.


이 군단은 그래도, 귀족과 왕실이 회심의 수라고 생각하며 보낸 하나의 쐐기였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의 옆구리를 찌를, 일격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수手이기에 방어 또한 나름대로 갖췄을 것이다.

귀족들이 보내온 초상술사들이 과연 초상전을 할 때 사용할 물자들을 얼만큼 가져왔을까, 가 관건이었다.


초상술사의 위력은 단순히 그 개인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초상술사의 이명異名이 ‘준비하는 자’이듯이. 그네들이 얼만큼 단단히 방비를 했는가가 전장에서 그들의 능력치가 된다. 금화를 땅바닥에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전장에서 이길 수 있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달리 말해 금화를 쓸어담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모든 전쟁이 이익으로 끝나는 법은 없었지만. 제법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아티피서들처럼 균일한 능력을 보일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아티팩트를 가져와서 쏟아내는 초상술사의 위력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강력하다. 그들의 준비성을 믿어야 했다. 그렇다면, 뭐 어찌어찌 막아내고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두 번 정도는 말이다.


그네들의 사정에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하는가?


쳄버 모쿠가는 아주 짧은 순간 생각을 했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언가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었다. 품속에 있는 다양한 장치들은 하나같이 연결되어 있다.


그가 로브를 벗어두면, 그 내부에 아주 복잡한 금줄로 사슬 조끼 따위를 만들어서 입고 있는 꼴이 나온다. 그 사슬 조끼에는 여러 개의 보석들이, 그물에 매달린 물고기들처럼 걸려 있었고. 움직일 때 불편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착용감을 생각해서 만들어낸 디자인이었기에 지나치게 각지거나 튀어나와 있지는 않았다. 납작하게 잘 세공되어 있었고, 그것을 감싸는 테두리가 부드러운 곡률로 이루어져 있다. 몸뚱이가 배길만한 위치에는 달리 없었고.


쳄버가 자신의 품 속 손아귀로 MP를 흘려보냈다. 손끝에서 흘러나가는 흰 빛의 MP는 곧바로 금줄을 타고 이동을 했고. 마치 현대의 전류가 전선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이지만. 인간의 인지로 보자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을만큼 빠르게 금줄을 타고 MP가 흘렀다.


보석들이 공명을 했고, 하나같이 웅웅거리며 떨린다. 그리고 곧 사라지기 시작했다. 코미어 백작가의 초상술사 사내가 사용을 한 것과 비슷한 꼴이었다.


연기처럼, 가루처럼 부서져 사라지는 보석들은 그 자체로도 귀중한 값어치를 가진다. 그리고 초상학적으로는 조금 더 비싼 값어치를 지니는데. 왕실의 워메이지인 그는 나름대로 두둑한 봉급을 받는 처지였고. 이런 일에 자원해서 나선다면 국고의 자원을 조금 사용할 수 있었다.


지원을 받는 걸 모조리 비장의 비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이, 워메이지라면 올바른 생각이다. 아무리 준비를 하고 또 준비를 해도 모자른 것이 실전에서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빛의 기둥은 실제 빛은 아니었다. 상공에서 내려오는 저것 말이다. 마치 거대한 건물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으나, 아주 높은 하늘에서 기병단을 노리고 떨어지는데, 약간의 텀이 있었다.


그 빛의 기둥이 다가오기까지 달리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눈치를 챈 점도 있었고.


아무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챔버 모쿠가는 보석들을 아낌없이 떨어냈다. 순차적으로 사라지는 보석들은 그 자체로 막대한 MP를 전술사戰術士에게 부여했다. 그 MP를 그대로 쓰면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보통 다른 종류의 아티팩트를 동시에 쓰는 경우가 많았다.


1명의 워메이지가 다룰 수 있는 MP의 양은 한정적이었고. 그건 ‘의지력’이라는 이름의 능력으로 보통 표현을 한다. 그 수치는 플레이어들도 달리 볼 수는 없었지만. 실전에서의 감으로 대강 자신의 의지력 한계를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의지력을 넘는 양의 MP를 한 번에 다루려고 하면 할수록, 스킬의 모양새가 엉성해지고 손실되는 MP의 양 또한 많아진다. 제대로 제어를 할 수 없게 되니, ‘제어력’이라는 이름도 알맞는다.

그럼으로, ‘제어’를 돕는 아티팩트 회로가 다시 필요해진다. 배터리의 역할을 하는 아티팩트 하나와, ‘제어’의 기능을 발휘하는 아티팩트 하나. 두 종을 동시에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일일 테였다.


아주 뛰어난, 또 초인적인 재능과 자질을 갖고 있는 워메이지라고 한다면 일순 쏟아지는 거대한 양의 MP를 어떻게든 다루어서, 나름의 현상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여러 아티팩트의 합을 맞춰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제대로 된 연산값을 만들어내려면, 배터리와 함께 CPU 역할을 할 기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아무튼 사라지고 있는 보석들 중 절반은 그런 식의 MP 제어를 위한 고도의 아티팩트였고. 나머지 절반은 고도의 술식은 들어있지 않지만 단지 배터리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녀석들이었다.


어마무지한 양의 재화가 사라졌고. 그건 또 어마무시한 정도의 힘이 되어 쳄버의 손에 의해 움직였다. 그는 단순하게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기병단의 앞쪽에 있는 그였고.


짧은 머리의 그 사내가 전력으로 MP를 다루며 ‘쉴드’를 영창해낸다.


십 수 음절의 시동어를 빠르게 읊었고. 숙련된 워메이지답게 순식간에 거대한 쉴드 한 겹이 그의 머리를 중심으로 해서, 커져나갔다.


기병단을 덮어야 하기 때문에 원형의 쉴드의 중심이 곧 그가 되지는 않았고. 그에게서 시작되어 만들졌으나 각기 튀어나오는 길이가 달라, 거대한 기병단의 진을 온전히 덮는 원형판이 될 수 있었다.


만들어진 원형판은 금빛을 띄고 있었다.


멀리 하늘에서 다가오는, 금빛의 섬광. 거대한 에너지체와의 충돌을 대비하는 힘이었고.


코미어 백작가의 초상술사나, 쳄버 모쿠가뿐만이 아니라 다른 초상술사들 역시, 각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비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금화가 땅에 쏟아졌다.


전쟁 따위에서, 값비싼 소모 물자를 사용할 때 비유처럼 쓰는 말이었다. 그리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실제 값을 따진다면. 이만한 대군에 확실한 영향을 줄 수 있으려면, 어느 영지의 예산이 생각나는 비용이 쓰였을 지도 모른다.


아주 거대한 영지, 대도시의 수준은 아니겠지만.


두 초상술사의 반응에 이어 여러 개의 쉴드가 떠올랐고. 또 기병단의 속도를 도와주는 이동술 계열의 스킬들이 터져나왔다. 로버드 말리웨를 비롯해서 기력술사들 역시 자신들 나름의 스킬을 사용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간단하게 발동 가능한, 아티팩트들이었다. 그 자신과 주변에 있는 기병단의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물건들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땅이 울린다.


거대한 진을 형성하고 있는 기병대가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고.


평야를 달리면서 먼지로 안개를 만들어 피워 올린다.


저 멀리 알사드슈트 영지의 외곽이 언뜻 보이는 것도 같았다.


왼쪽으로 급격히 틀어서 움직이는 기병단의 뒤쪽을, 느즈막히 도착하는 거대한 빛의 궤적의 첨단이. 때린다.


마치 망치처럼 말이다.


다행히 망치를 받아줄 빛으로 이루어진 쉴드가 펼쳐져 있었기에,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병단이 전멸하는 일만은 없었다.


천공을 가르고 도착한 금빛의 에너지포砲는 쉴드를 때렸고.


거대한 굉음, 진동이 달리고 있는 기병단의 위에서 울려 퍼졌다.


훈련받은 전마와 기병대들은 그 진동에 갑작스럽게 진열이 흐트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훈련이 부족한 이나 말이었다고 한다면. 그대로 패닉을 일으키며 나뒹굴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었다.


쉴드는 여러 겹이었고, 그것들 모두가 박살이 났지만.


다행히 최초의 에너지포 한 발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다.


멀리에 있는 알사드 대공은, 한 발의 일격이 막힌 것에 짜증을 내면서 다시금 지베르트 경에게 명령을 내린다.


‘네 가문의 약속’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용할만한 무기였고, 이 반란을 통해서 산슈카를 뒤엎고.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정확한 용량을 지켜서 무리하게 쓰지 않으려 했으나.


전황이 그에게 계속 붏리하게 돌아가니. 과열, 무리한 과용도 상관하지 않고 아티팩트를 다루게끔 하기 시작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아티팩트는 원래의 용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곧 어마어마한 MP를 토해내면서 이제까지와 다른 공격을 시도하려 지하실에서 울어댔다.


또한 산슈카 각지에 있는 고대의 건축물들 역시, 그에 호응하듯 떨며 빛을 냈고.


지방에 흩어져 있는 여러 귀족들도 덕분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사태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턴 자작가를 비롯해서, 여러 가문의 핵심 전력들이 왕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충성을 맹세한 대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르삿을 향한 더욱 먼 변방에서의 군대들이 출발을 했고.


각 근처 영지의 사정 정도는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던 모든 귀족들도 결국 결정을 해야만 할 때가 오고 말았다.


미리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에게 회유되거나, 세뇌되거나. 어떻게든 그의 편으로 들어가버리고 만 작자들 역시 고심을 하다가 정해진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각 귀족들이 최소한의 자위를 위한 병력을 제외한 군대들을 중앙으로 옮긴다.


왕실 정규군에 속한 이들은 그래도 주둔지역을 지키고 있었고 말이다.


이 세계, 이 땅은 오롯이 인간들만의 땅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몬스터들이 그래도 들끓고 있었고. 마경이라 불리는 땅에서는 여차하면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을 언제나 암시하듯. 보스 몬스터와 수많은 개체의 몹들이 눈을 빛내고 있다.


최소한의 군대는 치안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래도 옳은 일이었다. 물론 사태가 심각해진다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머지 부대들도 움직이겠지만 말이다.


그 떄가 되면 주변국으로부터의 지원 역시 불가피할지 모른다.


가장 좋은 일은, 평상시의 치안과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선에서, 가용한 병력만을 움직여 괴랄한 일을 벌이는 내란자를 진압하는 것이었다.


대공과 벨케임 왕의 생각은 서로 엇갈리고 있었고.


한낮.


전쟁을 끝내고 한참을 쉬던 근처 평야의 어느 플레이어들도 다시금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헌터즈 길드원들을 이름이다.


*

jorge-tung-1pZJqQlgpsY-unsplash.jpg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심심해서 24.01.01 69 0 -
358 357. 평행行 NEW 19시간 전 6 1 20쪽
357 356. 교점 24.06.29 5 1 19쪽
356 355. 좌담의 결론 24.06.28 6 1 25쪽
355 354. 좌담坐談 24.06.26 9 1 11쪽
» 353. 간신히 24.06.26 8 1 25쪽
353 352. 기둥들은 하늘로 오르고 24.06.23 14 1 23쪽
352 351. 주룡走龍 24.06.19 13 1 15쪽
351 350. 상황 24.06.19 13 1 18쪽
350 349. 합류 24.06.18 14 1 22쪽
349 348. 재로그인 24.06.09 13 1 15쪽
348 347. 고심 24.06.09 10 1 13쪽
347 346. 왕도의 사정 24.06.06 13 1 11쪽
346 345. 왕도王都, 아침 24.06.06 8 1 11쪽
345 344. 마늘에 미치다 24.06.06 13 1 18쪽
344 343. 잠깐, 잠 24.06.06 8 1 13쪽
343 342. 로멜리아는 24.06.06 9 1 17쪽
342 341. 제어기지 24.06.06 9 1 13쪽
341 340. 광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24.06.03 11 1 20쪽
340 339. 요드먼. 돌격 24.06.03 11 1 17쪽
339 338. 말리 24.06.03 11 1 12쪽
338 337. 쉴더Shielder 24.06.02 10 1 12쪽
337 336. 폭격 세례 24.06.01 14 1 14쪽
336 335. 전장의 한복판, 제냐 24.06.01 9 1 16쪽
335 334. 아무도 없었다. 24.06.01 9 1 12쪽
334 333. 제어 기지 24.06.01 9 1 11쪽
333 332. 집중 24.05.31 7 1 12쪽
332 331. 무수한 게임 오버Game Over 24.05.31 9 1 15쪽
331 330. 착탄 24.05.30 12 1 22쪽
330 329. 계획, 본격적(2) 24.05.29 9 1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