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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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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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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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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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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회담장의 변變3

DUMMY

“큭.”


케이시가 잇새로 힘들다는 투의 소리를 냈다. 그리고, 독연기 근처에 있는 병사들이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때 아닌 소란이었고, 난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잘 단련된 병사들이 비틀거렸다.


공국 쪽의 초상술사, 메이지가 꺼내든 도구를 휘둘렀다. 허공에 지팡이를 휘두르는 동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시전’과 ‘시전’을 구분하는 주요한 액션이기도 했다. MP라는 건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기에.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그러한 제스쳐가 필요하다. 시전자 본인에게도 말이다.


머릿속으로 상상의 그림을 그려가며 스킬을 쓴다고 하더라도. 일단 기준점이 될만한 도안이 있어야지 않겠는가. 그런 제스쳐, 시동어들은 스킬을 사용하는 이에게 최초의 도안이 되어주는 행위들이었다.


여기서부터가 스킬의 시작이다, 라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공국 쪽의 메이지는 여인이었다. 흑발을 조금 길게 기르고 있었다. 견갑까지 내려오는 듯하다. 잘 묶어낸 머리칼이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군모는 실내에서 보통은 벗는다. 회담장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격식을 더 차리겠다는 의미로 써볼 수는 있겠다. 머리가 긴 여인이라는 특징을 두면 또 모자를 쓰는 게 틀린 일은 아니게 된다.


공국 쪽 메이지, 질드렌은 얇은 검은 막대기의 끝으로 사내의 시체가 있던 곳을 향했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오른편으로 몸을 약간 돌린 상태이다. 케이시는 왼편으로 몸을 조금쯤 돌린 상황이었고.


“보우하라, 검은 뱀이여.”


질드렌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지팡이 끄트머리에서 검은 에너지가 발출되었다.


검은 뱀, 이라는 건 어느 보스 몹의 이름과도 같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스킬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팔뚝만한 굵기의 검은 뱀이다. 실제 ‘뱀’과 같은 정확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뱀인지, 나뭇가지인지 헷갈리는 모양새이기도 했다. 마치 수묵화에서 난을 치듯이, 이리저리 꺾이는 느낌으로 검은 뱀이 움직였다. 속도는 아주 빨랐다. 저런 식의 기괴한 동선은 보통 번개 계열의 스킬 투사체에서 많이 보인다.


뇌전 계열의 스킬들의 속도보다는 느리다. 그럼에도,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뻗어나간 그 놈은 금세 독연에 닿았다.


시커멓고 매케한. 검고 또 보라색이니, 짙은 녹색이니 하는 색깔의 독연들이 있었다. 검은 뱀은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저 길다란 선형에 불과했지만, 그 대가리가 정확히 존재를 했는지. 독연 근처에 닿자 제 아가리를 벌리고 연기들을 무차별적으로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검은 뱀의 대가리는, 그리고 아가리는 아주 컸다. 제시의 상체만한 정도였다. 벌린 입의 너비와 높이가 말이다. 그리고 진공 청소기마냥 흡입력도 조금 있는 듯. 독연들이 빨려 들어간다.


케이시의 바람 줄기는 빗자루로 땅바닥에 떨어진 모래들을 한 구석에 곱게 몰아 넣듯. 푸른 줄기들이 움직여 독연의 공 하나를 만들고 있었고. 그 공에 채 다 들어가지 않는 독연들을 질드렌의 뱀이 빙빙 돌면서 집어삼켰다.


실제로 모든 사건이 벌어진 건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십 여 초 정도.


독연이 모조리 정리되었을 때, 1분 여 정도가 되었으리라.


그 때 로말린 역시 방어막 스킬을 풀었다. 내부에서 휘돌고 있는 MP의 파동이 거진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였다. 그가 일부러 풀지 않았어도, 아마 무지갯빛 보호막이 사라졌으리라. 강렬한 폭동이라고 느껴졌다. 로말린은. 파괴력이 상당했다. 대체 어떤 수작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시전자의 목숨과 몸뚱아리 전체를 담보로 비정상적인 위력을 얻은 것 같았다.


이 세계는 등가교환의 세계는 결코 아니었지만. 가치를 중요시했다. 값,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건 현실 세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판타지 세계라고 한다면, 현실 세계를 렌즈를 통해 왜곡시켜 놓은듯한. 요상한 세계였기 때문에. 가끔 그런 가치 교환의 황금률이 일그러지기도 한다.


비련시 온라인은 판타지 게임 중에서는 제법 밸런스를 잘 잡은 편이었다. 무슨 일이든 희생과 대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킬의 위력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에너지를, 적절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는 게 아니라. 단시간에 얻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근거가 필요했다. 목숨을 희생시키는 류의 스킬들은, 초상술 중에서도 흑법黑法이나 흑술로 불리는 종류였다. 치유술을 백술, 백법이라고 부르는 것과 반대였다.


인간의 혼백은 그 자체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스킬의 사용을 위해 소모재로 쓰여서는 결코 안되는 것들이었지만. 흑법들은 그런 부분까지 건드려 에너지로 환산시킨다. 인간의 가치를 낮잡아 보는 인간들이라면 좋아서 환장할만한 교환이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흑법, 흑술들은 시전자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낸다. 플레이어적으로 말을 하자면, HP를 소모시켜 MP의 위력을 더한다고 어설프게 비유할 수 있으리라.

게임 내 메커니즘으로 보자면 조금 더 복잡한 거긴 했지만. 아주 지독한 병에 걸리면 플레이어 역시 고생을 하듯이. 흑술을 잘못 사용하면 플레이어 역시 후유증을 앓게 되어 있었다. HP가 일시적으로 감퇴했다가 휴식을 취하면 차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영구적인 HP의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혹은 그 외의 기능적 제약들을 가질 수도 있었고. 갑자기 시력이 멀어버린다던가. 잘 키워둔 스텟이 날아가버린다던가.


벨베르-산슈카 간의 회담을 방해한 암살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모해버렸다.


제시가 가볍게 제압한 것을 보면, 결코 고수급은 아닌 인물이었는데.


아마 로말린이 없었다면 이 회담장이 통째로 사라졌으리라. 무지갯빛 방어막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방어용 스킬 중에서 최상위의 것이었는데. 폭발의 여파를 감당하고 나니 거진 힘이 다해버렸다. 로말린이 아티피서-초상술사의 더블 클래스이며 상당한 고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지나간 것이다. 아마 케이시로는 부족했으리라. 그 역시 뛰어난 워메이지이기는 하지만. 시전 속도가 보다 느렸다. 보통 NPC들은 비슷한 레벨이라고 한다면 플레이어들보다 실제 전투적 스펙Spec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로서 가지고 있는 혜택들이 여러 종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NPC들은 플레이어들처럼 공략본을 보고 플레이하지도 못하고, 다종의 아이템을 얻는 경우도 많지 않다. 칭호, 스킬, 스텟, 아이템, 많은 부분에서 뒤쳐지게 되는 셈이다.


케이시도 플레이어 레벨 기준으로 보았을 때, 고수급의 초상술사인 듯은 했지만. 대처 능력에 있어서는 로말린이 압도적이다.


아마 기력술사인 파트밴 경이 몸을 날려서, 사라진 암살자의 폭발 스킬을 몸으로 막아내었다면 피해가 최소화 되었을 지는 모르겠다. 대신 파트밴 경의 목숨은 확실하게 사라졌겠다.


제시와 로말린은 맡은 바 임무를, 맡긴 바 이상으로 훌륭하게 해낸 셈이었다. 원래는 클리어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퀘스트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이미 베테랑 용병으로서 전투력을 갖춘 이후에, 산슈카의 왕실에 들어가서 정치 플레이를 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제시와 로말린 콤비가 거쳐온 전투 클래스로서의 단련된 경험이 없었다면 이겨낼 수 없었으리라. 여기가 게임 오버 지점이었겠지.


그들의 힘만으로도 조금 부족했고. 어쨌든 벨베르 측과, 산슈카 측의 능력자들 역시 적절하게 도움을 주었다.


독연은 케이시가 바람의 힘을 강하게 움직여서, 손톱만한 구슬로 응축시켜버렸다. 벨베르 측의 초상술사, 질드렌이 없애버린 독연은 그대로 사라진 셈인 모양이었고.


케이시는 구슬만해진 독연을 손 안으로 가져오더니, 손바닥으로 움켜쥐어 사라지게끔 했다. 따로 해독, 해주, 상쇄 스킬을 쓴 것이다. 폭발에 이은 독안개라는 건 상당히 위험한 공격이 맞았지만. 상대에게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상성이 좋지 못했다.


가장 보편적이며 광범위한 활용이 가능한 부류의 초상술사는 원소술사다. 케이시는 바람을 주로 다루는 풍술사였고. 그에게 있어 대기를 타고 움직이는 기체류는 가장 다루기 쉬운 종류의 도구다. 간혹은, 전장에서 그가 독을 사용해 상대에게 퍼뜨릴 때도 많았고. 그런만큼 익숙하며 파훼법도 잘 알고 있었다.


소란은 일단, 끝났다.


더 이상은 공격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씨팔. 본대에 상황 전달하고 지원 요청해. 어디서 놈이 들어온 건지 현장 파악해, 빨리.”


필립은 잠시 소강 상태에 이르고, 정신이 들자 거친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부하들을 움직이게끔 했다.

제시에게는 욕설 부분이 묵음으로 들렸다. 완벽한 묵음은 아니었기에 대강 어떤 욕을 한 건지 추론할 수는 있었지만.

로말린은 따로 게임 설정을 건드려 욕설도 가감없이 듣게끔 해두었다. 욕설과 같은 부분은 절대적으로 제한되는 건 아니었고. 플레이어들이 원한다면 하거나, 들을 수 있었다.

미성년들 중에서도 17세 이하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게임을 추구하는 플레이어 무리들은 세팅값을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했다. 어떻게 인터페이스를 맞추어야 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완벽한 현실감을 표현하고 있는 게임이기는 했지만. 정말 현실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있는 제약들은 있었다.


또 지나치게 현실과 똑같은 게임은 현실과 게임 속을 헷갈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도드라진 게임성이 권장되는 편이기도 했고.


세팅된 제스쳐를 취하거나 명령어를 뱉으면 나타나는 인터페이스 창들도 그런 종류였다. 몬스터를 잡거나 했을 때 전리품이 파란색 정육면체 박스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도 게임성을 강조하는 부분들이고.


제롬왈드는 벙찐 표정으로, 파트밴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버츠 경.”

“그게 뭔···.”


파트밴의 매몰찬 대답에 제롬왈드는 잘생긴 얼굴로 멍청한 표정을 조금 더 지어보였다.


어쨌건.


그들을 적대시하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회담장에 이런 폭발 테러를 일으키게 할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인간이.


좋든 싫든, 제롬왈드의 뇌리에 게으른 대공이라는 별명이 스쳐지나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거론하던 인물이었음으로.


“······.”


필립은 멍청한 표정의 제롬왈드를 보고, 다시 말을 건넸다.


“······회담장을 옮겨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실까요.”

“어······.”


제롬왈드는 대답을 못했지만, 어쨌건 사절단과 충분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자 하는 필립의 의지는 강고했다.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났던 최초의 비명은, ‘암살자’로 보인 사내가 회담장 내부에 들어오기 전 한 여인이 길거리에서 강하게 밀쳐지는 바람에 났던 소리라고, 밝혀졌다.

여인은 자신을 밀친 누군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길바닥에 나자빠질 정도로 거세게 밀렸고.


그 말은 시신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암살자 외에도, 다른 이들이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제롬왈드는 등골이 오싹했으나.


일단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마쳐야 하는 게 그의 사명이었다.


벨베르의 분위기와 동태를 살피고 오라. 군부의 입장과 함께 말이다. 필립은 그 임무의 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기는 했다.


로말린과 제시 역시, 제롬왈드를 따라 이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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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2 0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3 0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6 0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2 0 20쪽
302 301. 눈알 24.05.05 7 0 15쪽
301 300. 나무 위의 사색 24.05.04 8 0 28쪽
300 299. 걸음(2) 24.05.04 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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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296. 제냐의 경우 24.05.02 8 0 21쪽
296 295. 세이드 소마 24.05.02 5 0 17쪽
295 294. 이슈칼의 경우(2) 24.05.02 5 0 16쪽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6 0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7 0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6 0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5 0 26쪽
290 289. 사막민民의 회의 24.04.30 6 0 19쪽
289 288. 궁리 24.04.26 8 0 14쪽
288 287. 광자포같은 24.04.25 8 0 25쪽
287 286. Forest orb 24.04.25 7 0 18쪽
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6 0 25쪽
285 284. ㅌㅌ 24.04.24 9 0 17쪽
284 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24.04.24 5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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