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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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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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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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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287. 광자포같은

DUMMY

릿샤는 거리를 가늠한다.


사방에서 진형을 좁혀오는 적들의 거리. 그리고 앞에 있는 기사단 무리들과의 거리.


전방에 있는 기사 무리와 좁혀지는 속도가 조금 더, 아니 깨나 빨랐다.


그들을 추격하는 추적자들의 속도보다.


그들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말이다.


헌터즈 길드원들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전방에 진을 친 채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기사단 무리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일이 더 먼저였다. 그들을 추격하는 자들은 거리를 좁히려 애를 쓰지만 시간적으로 조금 늦었고.


앞에서 막아서는 저들만 비켜낸다면 문제 없다.


릿샤는 그리 생각하며, 녹림원으로부터 뽑아내고 있는 MP를 충분할 때까지 모았다. 일정 분량 이상은 되어야 한 번에 터뜨릴 수 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었다. 녹림원이라는 구슬 형의 아티팩트가 부서져서, 그 가루가 바깥으로 새어나오고 있는 것은. 아티팩트를 구성하는 진원진기를 뽑아내어, 릿샤의 통제 하에 MP들을 두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의지력 하에 완벽하게 통제되는 MP들이 늘어나면. 그 여타의 MP들은 주도적인 MP들의 흐름에 휩쓸려서 같은 동작을 취하게 된다. 강한 의지력이 있으면 적은 양의 MP로 더 많은 일을 빠르게 해낼 수 있었다.


100명의 병사가 휘하에 있다고 했을 때. 개중에서 확실하게 말을 듣는 숙련병이 20명이라고 할 때. 20명의 반응 속도와, 행동력이 더 강하면 강할수록 나머지 80명을 선도하는 일이 쉬워지지 않겠는가. 의지력이 강하다는 건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더 빠른 속도는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100개의 볼링 핀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 20개의 볼링 핀을 사용자의 마음대로 허공에 띄워 움직일 수 있다고 하면. 20개의 볼링 핀을 빠르게 움직이고 날려보낼수록 나머지 것들이 빠르게 흩어지고 쓰러질 테였다.


릿샤는 ‘선도’의 역할을 할 MP들이 충분량 모일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날아가고 있는 그들이 먼 거리를 주파하기 전에 준비는 완료가 되었다. 손에 쥐고 있는 흑각은 최근에 자주 사용하는 아티팩트였다.


이또한 거대한 보스몹의 소체小體를 사용해 만들어낸 물건이었는데. 상당히 성능이 좋았다. 보통 초상술사들은 아티팩트 자체에 특별한 스킬이 내장되어 있는 것보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술식 성능을 높여주는 부류를 훨씬 선호한다. 만일 초상술사가 아니라 아티피서라고 한다면 아이템 내에 대단한 스킬이 빌트인 되어 있는 경우를 좋아하겠지만.


흑각이 그런 부류였다. 스킬은 없어도 기본 성능이 훌륭한 경우. 릿샤와 궁합도 잘 맞았고. 그녀가 발휘하는 여러 계열의 스킬들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발현이 되곤 했다.


액티브 스킬이 내장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패시브 계열 스킬들의 술식은 아마 여러 종이 들어가 있을 테였다. 시장에 내다 판다면 아마 천금의 값어치가 있을지 몰랐다.


허공을 나는 워메이지.


릿샤 애드윈은 흑각으로, 녹림원 주변에 맴도는 녹빛의 가루들을 푹 찍었다. 그 대가리 부분으로 건드린 것이다. 연기와 같이 허공에 맴돌고 있던 가루가, 흑각의 머리에 붙는다.


릿샤가 시동어를 읊었다.


“번Burn."


간단한 시동어였고.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스킬의 방식이기도 했다. 스킬을 분해하여, MP로 바라보는 방식의 운용법이다. 애초에 그녀가 사용하는 여러 스킬들도 그렇잖은가. 본, 플래시, 블러드.

몇 개 파트로 나뉜 조립품 스킬들을 두고. 그것들을 적절히 조합해서 MP로 구성된 형태를 소환하고. 그 소환물을 다루며 여러 위력들을 선보이다가, 종래에는 MP체를 이루고 있는 에너지를 전소시켜 폭발을 일으키거나 한다.


사람이 내부의 칼로리를 태워 운동을 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모터가 연료를 불태워 돌아가는 일과도. 녹림원은 말하자면 거대한 열량을 가지고 있는 무엇이었다. 사람은 소화시킬 수 없으나. 릿샤가 다루는 스킬로는 충분히 소화를 시킬 수 있었다.


아티팩트에게는 아티팩트 용의 위장이 따로 있는 법이다. 릿샤가 만들어낸 가상의 위장은 완성이 되었다.


흑각은 그 대가리를 앞으로 뻗쳤고.


릿샤가 시동어를 외자 에너지들은 일제히 발산을 시작했다. 착탄지를 찾아서 가는 것이다.


거대한 에너지의 파동, 처럼 보였다. 레이저포, 광자포 따위의 모습과도 같았다.


릿샤의 가슴팍 앞 6, 70cm정도 거리에 둥둥 떠있던 녹림원이 출발지였다. 그로부터 시작한 녹백색의 광선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흑각으로 도착지 방향을 짚으며 시동어를 왼 순간에.


굵기는, 녹림원보다도 더욱 컸다. 주먹만한 구슬이었으나 광자포의 지름은 릿샤의 팔뚝만한 정도는 된다.


‘광자’포라고 비유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에너지포가 상대방의 진형에 닿았다.


거리를 재고 있던 대공가의 기사들은 대경하며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상당한 거리를, 총알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닿은 에너지포다. 1초가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탄환도 몇 초 정도가 필요한 거리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지금 릿샤가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기사들의 인식 문제도 있었다. 그녀가 벌이는 일이, 전방을 향한 투사체 공격이라는 걸 짐작했더라면 미리 흩어졌으리라.


날아오고 있는 작은 워메이지 하나가 꼬물거리는데. 이런 것이 갑자기, 이만한 속도로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워메이지라고 불리는 이들이 사용하는 공격 중에서, 아득하게 빠른 편에 속했다.


릿샤가 쏘아낸 녹백색 광자포가 대공가의 지면을 훑었다. 시선은 아니었으나, 빛이 닿자 그 근처는 화염에 휩싸인 것처럼 사라졌다. 지독한 고열의 화염이 더듬고 간 것처럼. 흔적도 없이 타고 사라진다.


미처 피하지 못한 어느 기사의 옆구리도 마찬가지였다.


”끅.“


기사 한 명은, 잿더미로 인해서 더러워진 옷차림으로 전장에 나섰다가. 나름대로 기력술을 돌려 방비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체 일부를 유실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피는 도리어 흘러나오지도 않는다. 지독한 고열이 레이저의 정체였는데. 마치 장난감의 일부를 떼어낸 것마냥 사람의 몸뚱이가 사라지고. 그 단면 역시 고열로 인해 타들어가고, 피조차 멎었다.


릿샤는 흑각의 방향을 틀었다. 오른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고 있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말이다. 옆으로 틀자 그만큼, 레이저의 각도가 틀어졌다. 릿샤의 입장에서는 작은 크기의 변화였지만. 이제 수 백 여 미터까지 다가가는 장소에서는, 훨씬 거대한 횡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좌측으로 피한 이들이 횡액을 맞았다. 릿샤의 광선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전능자의 팔마냥, 그 근처를 그으며 지나갔다.


좌측으로 튄 자들중 반절 이상이 광선에 당하고 말았다. 본디 이런 연이어 발사되는 투사체라고 한다면, 유속流速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유속이 느리다고 한다면 발원지에서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착탄지에 다다르는 시간이 길기에 피할 시간이 제법 있게 되는데.


이 광선같은 공격은 기사의 회피 기동으로도 채 피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속도는 곧 힘이고. 그 속도를 위해서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녹림원이 품을 수 있는 가용 에너지. 유저블 파워의 한계치는 110,037pt정도였다. 그러나 에센셜 파워를 모조리 녹여서 유저블 파워로 치환하면, 치환하는 술사의 역량과 스킬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단 릿샤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500,000pt정도로 올라가게 된다.


50만 포인트는 릿샤 애드윈이 가용한 모든 MP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초상술사는 일단 마스터 마기아가 되면서 칭호와 스킬들을 얻게 되는데. 그건 다른 분야의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드 마스터를 달게 되면, 기력술의 숙련도가 크게 오르고 ‘기’를 다루는 운용 능력에 보정이 더해진다.


그런 변화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초상술사는 정신력 스탯 위주의 성장을 추구한다. 릿샤는 물리 스탯과의 밸런스 잡힌 성장을 하려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MP의 한계치를 최대한 높이고, 의지력을 강화하여 보다 거대한 스킬 사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 초상술사들이 바라는 점이었다.


워메이지가 되었건 어쨌건. 초상술사는 ‘준비하는 자’이니까. 여러가지 결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과 준비된 자원이 있을 때 얼마만한 대단위 스킬을 발휘할 수 있는가가 메이지의 역량의 잣대가 된다.

대규모 전투에 있어서도. 아군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한 방을 얼마나 크게 먹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능력치일 테였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처럼. 한 가지 장점을 특화시키는 것 역시 팀워크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릿샤도 초상술사였고. 어찌되었건 MP량과 그것을 다룰 의지력을 가장 중점적으로 성장해왔다. 그 덕에 많은 레벨이 오르고, 스펙이 충실해지는 동안 그 성장치의 대부분은 MP에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녀가 사용 가능한 MP는 300,000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스킬들이 그녀를 보조했다.


그녀가 500,000pt의 MP를 다룬다는 건, 통솔력이 없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군대를 지휘하고자 하는 얼치기 지휘관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여러 보정 스킬들이 일시적으로 그녀를 돕고 있었고. 또 사용하는 스킬 자체가 지독하게 단순한 종류였기에 가능했다.


그저 주변에 있는 MP들을 떠밀듯이 진격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다른 MP들에게 영향을 받아 나머지 MP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복잡하게 짜놓은 술식은 터져나가는 녹림원의 에센셜 파워를 전부 다 사용하는 종류가 아니었다. 이미 깨어져버린 기름통에서, 연료가 될만한 기름은 줄줄 새고 있었고. 릿샤는 그것을 낭비하듯 여기저기에 흩뿌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아마 그녀보다도 수준이 훨씬 높은 고강한 마기아라고 한다면. 십 만 단위가 아니라 백 만에 가까운 유저블 파워를 얻어낼 수도 있을 테였다. 녹림원을 이루고 있는 MP를 하나도 남김없이 사용한다면, 그럴 수 있으리라.


반절 이상은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낭비시키면서. 그녀는 그 포인트의 MP를 전부 쏟아낸다. 오로지 전방으로. 빠른 유속을 가진 광선 모양의 에너지포를 만들어서.


막대한 열량을 품고 있었고. 거대한 빛을 발한다. 한낮이었지만 주변의 워메이지들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기력술사들도, 병사들도. 그리고 멀리까지 도망치면서 소란을 피하려 했던 일반적인 고용인들마저도. MP의 파동이 강력해서, 주변에 미처 피하지 못했던 일반인들조차 그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장엄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으리라. 허공을 찢는 녹백색의 빛줄기는.


지면을 갈아엎고 있었고, 그 열기가 미친 근처의 잔디밭에는 불이 붙었다. 제냐 일행을 정면에서 막아서려고 했던 기사단은 삼색 늑대단 중에서 붉은 늑대단이었다. 릿샤가 들어오는 길에 스킬을 날려 병영을 완파시켰던 일당이다.


태세를 정비하고 돌아와, 흉흉한 표정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작자들이었는데. 릿샤의 스킬이 지나치게 괴랄했다. 기력술사로서 갖게 되는 방어력도 통하지를 않았고. 닿으면 죽게 되는 죽음의 괴광선 따위를 쏘아내는 워메이지를 상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었다. 릿샤의 역량보다 더 뛰어난 기력술사가 있었다면, 일시적으로 본인의 기력을 전부 방어로 돌려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된 공격을 쏘아내고 있는 워메이지를 상대로. 정면에서 비키지 않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수준 차가 어느 정도 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초상술사를 가장 깔끔하게 잡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그 자가 준비를 마치기 전에 때리는 방법 뿐이다. 아니면 애초에 스킬 준비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좁혀 근접전으로 끌고 들어가거나.


막아서는 붉은 늑대단은 상황도, 타이밍도 썩 좋지 않았다.


릿샤는 고속으로 이동하면서 흑각을 이리저리로 흔들었다. 마치 전능자의 지팡이를 흉내내는 것처럼. 그 지팡이 움직임에 따라서 광선이 흔들렸고. 아무리 빠르게 달리는 기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의 범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상하좌우, 또 입체적으로 내달리면서 피하는 기사들이었는데.


릿샤는 집요하게 그들을 쫓으며 광선의 머리를 돌린다. 선회하는 빛줄기는 대공가의 지면에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고.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를 잡고 도화지에 그려대는 것처럼 엉망인 도형이 생겨난다. 웃을 수 없는 점은. 그 닿은 자리가 패이면서 근처로 불길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였다.


녹림원에서 뽑아내는 MP가 빠른 속도로 바닥나고 있었다. 마스터 마기아가 사용해도 좋을만한 아티팩트를 희생시키는 방안은, 제법 쓸만했다. 릿샤는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템 하나를 완벽하게 소모하는 방식을 쓴 걸 말이다.


돈과 목숨은 바꿀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많은 재물을 희생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테였다. 릿샤만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바르샤 애드윈도 마찬가지이리라. 다행히 그녀의 아이템 박스에는. 그리고 사르삿에 있는 개인용 은행의 금고에는 아직도 다 쓰지 않은 아이템들이 많이 있었다.


말인즉슨 곧 그만한 수의 보스 몬스터들을 토벌해왔다는 증명이었다. 한 순간에 쏟아내려고 쌓아온 자원이었고. 써먹을 때의 쾌감 역시 분명 존재했다.


”크아아아아아!“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 멀게 들렸다. 헌터즈 길드원들을 쫓아오던 추적자들의 기세도 조금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릿샤만이 아니라 근처에서 날고 있던 라이엔, 그 아래에 달려있던 태현도 느끼는 바였다. 슬슬 사정거리에 닿아가 원거리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대공가의 술사들도 스킬 발동을 멈추는 느낌이었다.


섣불리 시선을 끌었다가 지금 발동하고 있는 스킬에 얻어맞을까봐서, 였다. 아마도.


릿샤는 대공가의 한쪽 지역에 불구덩이를 계속해서 키워나갔다. 정원사들, 고용인들이 아름답게 가꾸어놓았던 정원은 빠르게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온 곳이 서북쪽 방향에 있는 담장 근처였다.


다른 일반병들은 화염이 넘실거리고 광선이 지면을 부수어대는 광경에 속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거리를 벌렸고. 그 근처에 있던 기사들만이 매케한 연기를 참으며 살아나기 위해 달렸다.


이십 여 명 정도는 있던 기사들 중 살아서 불구덩이를 빠져나온 건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 릿샤는 짧은 순간, 붉은 늑대단의 기사들을 반파시켜 없애버렸고.


길드원들은 릿샤가 만들어낸 불구덩이의 측면을 빠르게 지나갔다.


호아킨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면을 달리면서, 불길의 영향이 그에게도 조금 미쳤기에. 쉴드Shield 계열의 스킬을 발동시킨 것이다. 릿샤가 특제로 만들어주었던 장신구였다. 이빨 위에 씌우는 물건이었는데, 사자가 되더라도 그 악세서리는 남아 있었다. 사자의 거대한 이빨 끄트머리에 날리는 식으로 말이다.


입 안의 감각으로 더듬어 아티팩트를 깨뜨렸고. 보석은 곧 터져나가며 MP화가 일어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목구멍으로 보석의 가루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청색의 보석이 깨져나가면서 비슷한 색깔의 막이 구형으로 쳐져 사자를 보호했다.


사자의 위에 바짝 엎드려 탄 제냐 역시도 함께 보호를 받았고. 불길 속을 헤치며, 붉은 날개를 등에 박은 채로. 호아킨은 빠르게 정원을 질주했다.


릿샤와 라이엔은 고도를 조금 더 높여서 화마火魔를 피했고.


릿샤는 이미 화염 구덩이가 되어버린 지역을 지나면서, 남아 있는 녹림원의 MP를 반대 방향으로 투사시켰다.


흑각을 빙글, 돌렸다. 멈추기도 어려운 힘이었다. 말했듯 그녀의 컨트롤은 세세하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막대한 MP를 다루기 위해 다른 요소를 전부 포기했고. 전방으로 빠르게, 강력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일에만 모든 의지력을 쏟아붓고 있었으니까.


멈출 수 없는 공격 에너지이고. 라이엔 쪽으로 잘못 빙글 돌았다가는. 아군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라이엔이 없는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서, 허공에서 릿샤는 뒤로 날며 쫓아오는 적들을 때렸다.


대공가의 병력들, 일반 병사들과의 거리는 이미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부랴부랴 달려와봐야, 명마라도 타고 전력 질주를 하지 않는 이상 따라잡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보다 나은 속도로 날아오거나, 뛰어오던 기사와 메이지들이 있었다. 릿샤는 대공가의 워메이지와 기사들을 향해서 녹백색의 빛을 뿌린다. 그녀가 반회전하여 좌중을 휩쓸듯이 에너지포를 다루자.


멀리에서 비명이 터져나왔고. 워메이지들이 황급히 이동기의 컨트롤을 멈추고 방어용 스킬을 외워 공격을 막아섰다.


쾅, 콰쾅. 하는 연이은 폭음이 이어졌고.


기사들 중에서 실력이 높은 자들이 많았는지. 그들은 한 군데에 모이면서 합격진 따위를 펼치듯 굴었다. 놀랍게도 워메이지들이 펼쳐낸 방어막에 준하는 MP를 만드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릿샤의 공격이 지나갔음에도 기사들의 몸이 상하지 않았다. 녹림원을 이용한 공격은 거리가 멀수록 위력이 다소, 약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보다 먼 거리에 강력한 공격력을 투사하는 건 그만큼 많은 MP가 소모되는 일이었고.


그녀가 현재 다룰 수 있는 MP는 제한적이었으니. 스킬의 장점이 늘어날수록 다른 방면에서의 단점이 강화되는 식이다. 가까운 자리에서 모든 에너지를 폭발시킨다면, 달리 말해 가장 큰 위력을 얻을 수 있었다. 단순무식한 폭발력을.


여러가지 이유로 조금 약해졌고, 기세가 줄어든 릿샤의 공격을 막아서면서 대공가의 병력들은 섣불리 그 뒤를 쫓지 못했다. 릿샤는 녹림원을 잘게 부숴 만들어낸 에너지가 모조리 소멸될 때까지 계속해서 광선을 쏘아냈다. 자연스럽게 일행의 가장 뒤편에 자리를 잡았고. 뒤로 가는 방향 비행기 시트에 앉은 고객마냥.


허공에 앉은 채로 계속해서 제 몸을 날려보냈다. 최소한의 인지 능력은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말이다. 아래에는 호아킨이 실드와 붉은 날개 스킬을 가동한 채 질주하고 있었고. 위에는 라이엔이 매의 주변을 자신의 MP로 감싼 채 날고 있었으니까.


두 일행의 위치와 속도, 방향만 알아도 릿샤 자신의 길을 알 수 있었다. 이동술 스킬을 시야도 없는 채로 조작하면서. 동시에 녹림원을 깨트려 발사하는 광선을 계속해서 컨트롤하면서.


릿샤는 담장에 뚫어두었던 구멍에 도착할 때까지 견제를 계속했다.


알사드 대공으로서는 피를 토할만큼 화가 나는 일이겠지만.


일행은 훌륭하게, 대공가를 박살내고서 조금의 피해도 없이 도망가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포션과 여러 소모용 아이템들을 날려먹기는 했지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적敵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면.


대공이 화를 내면 낼수록, 제냐 일행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여태까지 짜증스러웠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불구덩이를 지나서는 일 분이 채 되지 않아서. 그들은 순식간에 대공가의 담벼락 한곳으로 귀환을 했고.


여전히 뚫려 있는 방어막 결계의 틈새를 이용해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 근처에서 대공가의 병력, 일반병들이 갑옷을 입고 버티고 있었지만. 호아킨이 노호성을 지르며 주변을 휩쓸자 그대로 밀려나고, 쓰러졌다.

평범한 괴물 사자도 아니었고. MP를 머금은 스킬을 토해내는 사자였다. 기력술을 깨닫지 못한 일반적인 병력들이 버티어내기엔 지나치게 무서운 적이기는 하다.


그들은 그렇게 알사드슈트의 시내로까지 나섰고.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질주를 이어나갔다.


곧 대공령 전역에서 비상 명령이 선포되고 주둔하고 있던 병력들이 전부 움직이면서 침입자들을 잡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침입자들의 속도가 더 빨랐던 터라, 잡을 수는 없었다.


사르삿이나 산슈카에서는 간혹 보는 모습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이동기 따위의 여러 스킬들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도심 내를 질주하는 것 말이다.

사람이 아주 많은 대도시에서 그런 짓거리를 벌이다가 사고를 일으키면 상당한 패널티가 가해진다. 그러다가 연약한 NPC와 부딪혀 상대방의 목숨을 잃게라도 하면. 그에 준하는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아주 솜씨가 좋은, 자신이 있는 몇 명이 그렇게 호쾌한 질주를 벌일 뿐이다. 혹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건물들의 위나, 공중로를 이용해서.


이따금씩 컨트롤 솜씨에 자신이 있는 플레이어들이 도심 지역을 질주한다.

그런 모습이라고, 알사드슈트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생각을 했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설마 대공령을 침입한 미치광이 유저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알사드슈트는 몇 명의 침략자에게 유린을 당했고. 그 침략자들에게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상처 없이 무사히 도시의 외벽까지 넘을 수 있었다.


릿샤와 라이엔의 경우에는 그대로 외벽보다 고도를 높여서 탈출하면 되었고. 호아킨도 MP의 소모를 감수하고. 붉은 날개를 최고조로 가동시켜서 자신의 몸을 띄웠다.

제냐로서는 사자의 등 뒤에 타서. 예전의 기분이 더욱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예전, 코미어인가 어쩌고인가 하는 거대 고양이의 등 뒤에 타서도 비슷하게 굴었다. 당시에는 피스 시였는지, 어딘가에의 외벽을 넘었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런 스릴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련시 온라인을 즐기고, 접속을 다시금 한다. 현실에서 놀이공원을 가려면 또 체력을 소모해야하고, 돈을 써야지 않는가.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최첨단 하드웨어를 같이 구비하는 게 아니라면, 그럭저럭 살만한 가격대의 소프트웨어였다. 아마 원가에서 그리 큰 가격을 받지 않고 팔아먹는 것 같았다. 인게임에서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치장용 아이템들이 조금 있었기에. 캐릭터 비쥬얼을 꾸미면서 놀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런 부분에서 돈을 얻어냈고.


보통 이만한 대규모 작품이라고 한다면 제작비가 어마어마했을 테니까.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값으로 게임의 가격이 설정되기 마련이었는데. 여타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값으로. 도리어 더 싼 가격으로 팔렸기에, 이토록 빠르게 많은 유저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거대한 담벽을 넘으면서 제냐는 그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하늘이 파랗다. 구름은 하얗고.

햇빛은 쨍쨍.


어린아이같은 감상이지만. 그 외에 달리 필요한 게 없는 완벽한 날씨이기도 했다.


거대한 외벽. 산슈카에 존재하는 비과학적인 수준의 거대한 장벽들은, 옛 시대의 유물이며 유적지이기도 했다. 사실 그또한 아티팩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알사드 대공은 외벽에 있는 장치를 가동하지는 않았다.


아마 대공 저에 있는 보호막과 같은 걸 발동시켰다면 제냐 일행이 도망가는 걸 조금 더 늦출 수 있을 테였고. 아마 잡을 수도 있었겠는데. 굳이 그러진 않는다. 그런 아티팩트 기동에는 또 막대한 자원이 드는 탓도 있었고.


알사드 대공은 아직 자신의 계획이 끝났다고 여기지 않고 있었음에 말이다. 벌써부터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사르삿, 산슈카, 데슈칸, 피스 시 따위의 대도시에 있는 거대한 장벽들은 제국기나 혹은 그 이전에 지어져 있는 고대의 유적들이었는데.


그것의 강력한 에너지를 이용하고 또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시켜 아티팩트로서 사용하는 일은 알사드 대공이 감추고 있는 가장 주요한 패라고 할 수 있었다. 왕실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는데. 긴 기간 알사드 대공이 초상술사들을 갈아넣어서 완성을 했다.


그의 대계는 여전히 실행 중이었고.


최악의 최악.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 알사드슈트를 거점지로 각국의 군대를 맞이해야 할 때, 발동시킬 셈이기도 했다. 그러기 전에 능력을 전부 선보이는 건 어리석은 짓거리였다.


대공은 지독한 분노를 느끼면서, 릿샤에 의해 지붕이 반쯤 날아가버린, 자신의 저택 내부에서 이를 갈았고.


제냐 일행은 그대로 이동기를 유지하면서 알사드슈트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무지, 아무도 알지 못할만한 곳에 가서야 간단하게 야영지를 차리고 로그 아웃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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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296. 제냐의 경우 24.05.02 8 0 21쪽
296 295. 세이드 소마 24.05.02 5 0 17쪽
295 294. 이슈칼의 경우(2) 24.05.02 5 0 16쪽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6 0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7 0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6 0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5 0 26쪽
290 289. 사막민民의 회의 24.04.30 6 0 19쪽
289 288. 궁리 24.04.26 8 0 14쪽
» 287. 광자포같은 24.04.25 8 0 25쪽
287 286. Forest orb 24.04.25 7 0 18쪽
286 285. 도망을 잘 친다는 건 24.04.24 6 0 25쪽
285 284. ㅌㅌ 24.04.24 9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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