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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봉이 님의 서재입니다.

백색의 황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수비니어
작품등록일 :
2015.04.16 22:49
최근연재일 :
2015.06.12 00:32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8,710
추천수 :
193
글자수 :
215,817

작성
15.05.18 12:21
조회
174
추천
4
글자
12쪽

(3)

DUMMY

레온은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예리엘은 이제 기억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었지만 세라피나를 향하는 관심은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신분을 숨겨야만 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신을 거부한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그녀가 자신을 피해 다닌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이 괜히 그녀에게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회의실에서 나가고 나니 깊은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그녀가 두고 간 서류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문이 살짝 열리고 ‘똑, 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아도 케일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특유의 말을 달리고 난 후에 나는 것 같은 바람 냄새가 났다.


“레온. 너 왜 그러는 거냐?”


“......”


“너답지 않게 뭘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넌 원래 상관없다 생각했으면 그냥 무시하잖아. 그리고 너 세라피나랑 사귀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야? 그냥 궁금해서 찾아본다고 하지 않았냐?”


“넌 언제 봤다고 ‘세라피나’야? 말 한 번 나눠보기라도 한 거야?”


레온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케일럽을 노려보았다. 다른 남자 사제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거슬렸다. 그녀가 예배집전을 보조할 때에도 여왕처럼 위엄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거슬렸다. 자신의 이런 집착과 소유욕은 스스로도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특히 카일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나서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항상 그녀의 검은 머리를 칭찬하는 브라이스에게 친절하게 웃어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속이 뒤집혔다. 그녀의 눈앞에서 브라이스를 빨리 치워버리고만 싶었다.


이런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냥 욕심이었다. 만일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를 욕심내서는 안 되었기에 이런 것은 사랑일 수 없었다. 한번 욕심을 부리고 그것에 사로잡히다 보면 아버지처럼 그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은 이처럼 추한 일면을 갖고 있는 피를 품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더욱 그녀를 밀어내기만 했다.


그런데 잊고자 하는 마음과는 달리 자꾸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녀를 찾기 전에는 그것만으로 만족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라피나를 훔쳐보는 다른 사내들의 시선이나,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으면 뭐든지 가지려하는 카일이 그녀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얘기하기도 복잡한 이런 심경과는 달리, 6년간 습관이나 된 것처럼 몸은 충실히 그녀를 찾아 헤맸다. 아침에 예배를 위해서 서쪽의 사제관을 나서면 어느새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그림자라도 찾고 있었다.


“훗... 내가 너 무서워서 어디 말이라도 한번 붙여볼 수 있겠냐? 크크큭... 카일이 그녀한테 달라붙을 때의 네 표정을 네가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네가 그런 표정이니 카일이 더 그러는 거는 알고 있냐?”


“시끄러워. 그만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류를 손에 들고 회의실을 나섰다. 뒤에 따라붙은 케일럽이 보좌관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변죽도 좋게 모두와 인사를 나눈 케일럽은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고 레온 혼자만 남을 때까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웠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쐬고 있던 케일럽은 레온을 힐끔 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과장되게 말을 했다.


“어! 세라피나다. 진짜... 예쁘니까 저렇게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지. 그녀가 철벽방어를 하고 있어서 그렇지 조금만 살가웠다면 다들 말 걸려고 달려들었을 텐데 말이야...”


케일럽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미간만 꿈틀거리는 레온을 힐끔 보며 또 덧붙여 말했다.


“어라? 세라피나가 아픈가 봐. 넘어질 것 같네. 어어? 카일이 손을 잡는데?”


레온은 그녀가 아픈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부터 케일럽을 쳐다보더니 카일이 손을 잡는다는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왔다. 그의 성난 발걸음이 그의 심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라피나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녀는 엘리사라는 사제와 함께 웃으며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옆에서 케일럽이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났지만 내색하면 더욱 말이 많아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무시해 버리고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만을 눈에 담았다.


“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봐라. 너 설마 정말 그 마녀랑 결혼이라도 할 거냐? 욕심과 허영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카트리나랑? 너 아르미티즈에 아무런 욕심도 미련도 없잖아. 그런데 그렇게 죽은 표정으로 앞으로 7, 80년을 살겠다고?”


“.......”


레온은 창가에서 돌아서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까 그녀가 두고 간 서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휙 뒤집어서 다른 서류로 덮어버렸다.


“난 네가 이렇게까지 욕심을 내는 것을 사람이든 물건이든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겠다고? 카일이 가져도 괜찮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녀는 아르미티즈와 관계없이 살아야 해.”


“그런데 카일 생각은 다른 것 같던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창가에 기대어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케일럽을 차가운 눈으로 가만히 응시하고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내뱉었다.


“그런 일은 없어. 이제 곧 카일도 약혼을 해야 하고 델로사를 떠나게 될 테니.”


“허... 참. 무서운 놈. 벌써 큰아버지께 말씀 드렸구나?”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해. 더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이구... 알았다 알았어.”


레온의 날카로운 경고에 케일럽은 어깨를 으쓱하며 뚱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온은 불을 끄고 집무실을 나왔다. 어느새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떠있었다. 달이 보이지 않아 별이 더욱 밝았다. 케일럽도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따라오고만 있었다.


“레온, 지금 잠깐 나갔다 올래?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거야.”


“아니. 됐어. 난 들어가서 할 일이 아직 남아있어.”


“재미없는 놈. 어서 따라와. 할 얘기도 있으니.”


케일럽이 레온의 등을 떠밀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레온 역시 어지러워진 마음이 진정되려면 바람을 좀 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냥 그를 따라나섰다.





케일럽이 이끈 곳은 시내에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마한 바였다. 약간 어둑하고 조용한 실내에는 그래도 귀족들이 드나드는 곳인지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실내 장식들이 과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었다.


많이 와 본 듯 익숙하게 가게 안 한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간 케일럽은 작은 방 네 개가 줄지어 있는 복도를 따라 걸어간 후 맨 끝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열 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벽을 둘러싸고 놓여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귀족들이 은밀한 만남을 갖거나 정치적 밀담을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로 보였다.


케일럽은 소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나 레온은 자리에 앉지 않고 한쪽 구석에 놓인 티 테이블 위의 꽃과 장식품들을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짙은 루비색의 와인과 치즈를 들고 들어왔다.


“넌 독한 술은 즐기지 않으니 와인이 좋겠지?”


“또 올 사람이라도 있는 거냐?”


“하하... 진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레온은 케일럽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나 지금 모르는 누군가를 만날 기분은 아니다. 난 그냥 나가봐야겠다.”


“조금만 기다려봐. 너한테 중요한 부탁을 할 게 있어서 그래.”


“내가 뭔지도 모를 부탁을 들어줄 만큼 한가해 보이나?”


“야야... 그렇게 냉정하게 굴지 말고 좀 앉아. 너한테는 전혀 무리한 부탁도 아니야. 그냥 책 한권 빌려달라는 것뿐이니까 그런 표정할 거 없어.”


“그런 부탁이면 하필이면 왜 나지?”


레온은 팔짱을 끼고 관찰하는 시선으로 케일럽을 날카롭게 응시하고는, 소파의 맞은편으로 가서 등을 기대고 긴 다리를 들어 꼬아 앉았다. 살짝 한쪽으로 기울어진 고개가 그를 상당히 거만해 보이게 만들었다. 케일럽은 그의 분위기에 조금 긴장되는 것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거야. 제국에서 모두 소실된 책이라 그런 거지. 몰락한 퀴노스가, 황가, 아르미티즈 아니면 그 책을 갖고 있을 만한 가문이 없어서 그래. 네가 후계자이니 당연히 접근할 수 있을 테고..”


“네가 구할 수 없는 책이라면 성국에서 지정한 금서인 것이로군. 공화파 관련 이론 서적이거나 고대마법 관련 책인 것이냐?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레온의 심문하는 듯한 감정 없는 차가운 말투에 케일럽은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고이지도 않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오르내리는 목울대가 그의 긴장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손바닥에 차오르고 있는 땀 때문에 손을 펴 허벅지를 쥐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에 눈 밑의 점이 인상적인 미녀가 온몸에 딱 달라붙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들어왔다.


레온은 그녀가 예를 취하기도 전에 힐끔 쳐다보고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누가 들어오라고 했지? 무례하군. 더 이상 이런 곳엔 있고 싶지 않군. 케일럽. 어서 일어서라. 지금 일어서지 않는다면 내일 당장 갈라고스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거야.”


“잠시 기다리세요. 아무런 기별 없이 들어온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공자님.”


붉은 머리의 여자는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런 자세를 취할 만큼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굴하게 굴만큼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것이냐?”


“예.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아까 제가 들어오기 전에 하신 말씀을 무례하지만 들었습니다. 아르니언 공자께서 부탁하신 책은 말씀하신 그 두 가지가 모두 관련된 책입니다.”


“네가 그 입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군.”


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였다. 그녀의 온 몸에서 다홍색 오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레온에게로 다가갔다. 레온은 바로 손 끝에 신성력을 날카로운 검 모양으로 응축시키고 그녀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성력을 갖고 있는 자가 그것을 숨기고 신전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법에다 반역죄까지도 씌울 수 있다. 보아하니 신전 교적에 올라있을 것 같지 않군. 그렇다면 즉결할 수도 있다.”


“저는 라일신을 믿지 않습니다. 이교도이지요. 그래도 이것이 신성력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진하게 웃으며 손끝으로 성력을 모았다. 손끝에 응축된 신성력은 붉은 장미 모양이었다.


작가의말

날씨가 덥네요 점점~ 환절기라

코감기가 걸려버렸는데 모든 분들 감기 조심~ 훌쩍.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5.05.18 17:46
    No. 1

    누굴까요? 물속에서 손을 놓친 여동생 머리가 붉은색이었던가요?
    아님 새로운 캐릭터일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수비니어
    작성일
    15.05.20 13:37
    No. 2

    일리아 머리도 붉은 색 맞아요~ ^^ 기억력 좋으시네요~! 저도 가물가물한데.. ^^*
    뉴페이스랍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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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 +1 15.04.26 247 5 14쪽
23 (5) +1 15.04.25 220 6 11쪽
22 (4) +2 15.04.24 11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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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 15.04.21 24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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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 +2 15.04.20 230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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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5) 15.04.17 26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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