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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봉이 님의 서재입니다.

백색의 황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수비니어
작품등록일 :
2015.04.16 22:49
최근연재일 :
2015.06.12 00:32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8,722
추천수 :
193
글자수 :
215,817

작성
15.05.11 22:44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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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7)

DUMMY

또다. 이 넓은 신전에서 또 마주쳤다. 환영 연회가 있던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일부러 기다렸다가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하루에 두세 번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그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눈이 마주친 적이 반 이상이었다. 너무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가 지나치게 눈에 띄는 외모라 그런 것인지, 어떤 날은 눈을 돌릴 때마다 금색의 뒷통수가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피해 다니는 것도, 금색 머리만 보면 저절로 눈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것도 짜증이 났다. 신경을 끊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불쑥 불쑥 나오는 이런 태도 때문에 오히려 더 예민해져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오늘도 논문 자료를 찾느라 도서관에 들렀다. 책을 찾으며 책장 사이를 살펴보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황급히 돌아서는데 누군가가 이름을 불렀다.


“챈튼 사제!”


정면에서 다가온 그는 얼마 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카일러스 앰브로스 사제였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말을 건네 왔다.


“이거 많이 무거워 보이시네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세라피나는 카일러스에게 말을 하고 있음에도 뒤쪽이 신경 쓰였다. ‘탁!’하고 소리 나게 책을 덮는 소리가 났다. 시어스 루텐... 그 금발의 이름이었다. 다른 여사제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루텐 남작가의 차남이라고 했다.


뚜벅, 뚜벅... 그의 걸음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자신에게 아는 척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세라피나의 옆을 스쳐가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저 옆을 지나쳐 갔을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 세라피나라고 불러도 되죠?”


“예?”


“후후... 일주일 동안 노력했는데 이름 정도는 허락해 주세요.”


아직 가까이에 있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오길래 눈을 앰브로스 사제에게로 돌렸다.


“아, 죄송해요. 제가 그런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부담스러워요.”


“그래요... 그럼 조금 더 친해질 때까지 기다릴게요. 다음에도 거절하신다면 정말 상처받을 것 같아요. 대신에 저번에 제가 안내하기로 한 약속은 기억하시죠? 그건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카일러스가 실망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하자 그녀는 곤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것도 거절하실 셈인가요?”


“죄송해요.”


“하아... 정말... 알았어요. 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


“......”


“좋아요. 그럼 이 책들은 들어드릴게요. 집무실로 옮기면 되잖아요. 어차피 저도 거기 가야하니 이정도 도움쯤은 받아도 되잖아요.”


“후후... 네.”


세라피나는 도와주겠다고 사정을 하는 것 같은 그가 조금은 우스워졌다. 그래서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 웃음에 카일러스도 환한 웃음을 보였다.


“와아... 그렇게 웃으니까 정말 예쁘잖아요. 항상 차가운 표정만 짓지 말고 그렇게 웃고 다녀요. 챈튼 사제는 꾸민 듯한 미소 말고는 잘 보여주질 않으니 어떨 때 보면 사람이 아니라 인형 같기도 해요.”


카일러스의 말에 세라피나는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꾸민 미소를 보이고 말았다.


“자, 이제 가죠. 가서 할 일도 많이 남았어요.”


“어휴... 또 그러시네...”


카일은 바로 옆 책장이 있는 통로에서 팔짱을 끼고 책장에 기대어 서있는 레온과 눈을 맞추고는 빙긋이 웃어보였다. 세라피나가 그런 그를 보지 못하도록 그녀의 시야를 막으면서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레온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지나갔으면서 바로 옆 통로에서 자신이 세라피나와 나눈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크게 웃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걸어가면서 세라피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있잖아요. 우리가 도서관에서 너무 떠들었나 봐요. 어떤 사제가 노려보던 걸요.”


“아. 그렇구나. 어서 가요.”


뒤쪽에서 보고 있을 레온을 생각하자 카일은 또 즐거워졌다.





카일과 세라피나는 의전 제례 관리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의전 제례 관리부는 신전 내부의 핵심 조직으로 신전 내외의 각종 행사 준비와 제례, 예배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중심 조직인 만큼 가문을 잇지 않고 신전에 계속 남아있을 사제들로 신전에 처음 들어오는 순간부터 구성원이 결정이 되었다. 각 교단 산하의 보좌관실과 함께 신전 내에서 최고 권력기구였다.


전에는 에피로스와 라퀴노스 두 분파가 따로 영향력을 가진 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나 지금은 라퀴노스측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거의 에피로스의 결정대로 따라오고만 있었다. 라퀴노스를 이끌고 있는 뎀스터가 워낙 온건한 가문이었기에 퀴노스가가 몰락한 이후로는 전혀 구심점의 역할을 해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세라피나는 에피로스측의 사제로 신전에 들어온 것이었다. 주교의 자리까지 오르려면 강력한 신성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지만 대제사장이나 다른 주교들의 지지 역시 필요했다.


세라피나는 일단 주교의 자리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 후 자신의 진짜 오러의 색을 드러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공석인 카르펜을 대행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신전 내부에서 아르미티즈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리날디 가문의 지지가 필요했다.





넓은 장방형의 회의실은 황제와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의원들의 회의를 위한 공간이었다. 회의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그곳에서 윈스턴 아르미티즈, 유스터스 리날디 그리고 황제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아있었고,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책상을 두고 사관이 열심히 그들의 대화를 적고 있었다.


윈스턴은 그런 방의 분위기에 분노가 치솟았으나 내색할 수가 없었다. 일반 알현실이 아닌 회의실에서 리날디의 가주와 자신을 대면하고자 한 황제의 의도가 너무 명백했다. 꼭 쥔 두 손을 테이블 아래에 숨겨 두고 완전히 감출 수 없는 분노를 내비치며 엘레노어를 바로 보았다.


“폐하. 카르펜의 반지는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그것을 핑계로 이리 미루고만 계십니까?”


“공! 무슨 소리요? 카르펜의 반지가 아무 때나 만들고 싶다고 하여 만들 수 있는 줄 아시오? 고대 마법이 걸려있는 반지가 아닌가. 그런 것이 지금 가능하다고 보는가?”


“폐하께서 결정만 내리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


엘레노어는 높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검지손가락으로 팔걸이의 손잡이를 톡, 톡, 톡 두드리며 윈스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리날디의 가주인 유스터스가 빙긋 웃으며 윈스턴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공. 공은 지금 위험한 발언을 하신 걸 알고는 계십니까? 아무리 속이 타신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은 구분을 하셔야지요. 카르파께서 마법이라니요. 마법은 초대황제께서 이단으로 규정하시고 처결하셨었습니다. 모두 그 때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무슨 망발이십니까?”


흑발에 차가워 보이는 검은 눈을 가진 20대 후반의 유스터스는 황가의 방계 가문인 리날디의 가주였다. 리날디 가는 전통적으로 황가의 세력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는 원로원의 수장이자 제국의 공작 가문이었다. 그는 불과 3년 전 전대 리날디의 가주인 그의 아버지로부터 작위 승계를 받은 후 아무런 잡음 없이 원로원과 가문을 이끌고 있었다. 또한 황제와는 이종사촌 간으로 황제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스터스가 차가운 뱀과도 같이 교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윈스턴은 유스터스가 아닌 관망하는 듯한 자세의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면 카르펜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대로 제국을 이끄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이 얼마나 더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카르펜의 반지가 성력 제어의 불안정함을 잡아주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후궁 마마께서도 문제없이 제전을 이끄실 수 있지 않습니까?”


현재는 카르펜의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매해 아르미티즈 가문의 아니카 아르미티즈가 다른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제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가 성력이 약해서 혼자서는 제전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제 사제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카르펜 추대의식의 실패로 그녀는 이제 카르펜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의식은 최고제사장과 대제사장, 주교들만이 참석하여 이루어지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 지금 평사제들의 지지마저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카르파는 그 이후로 새로운 카르펜 추대 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있었고, 역대 카르펜이 모두 황후였지만 종교법상으로는 반드시 황후일 필요가 없는 그 자리에 다른 여성 지도자를 내세울 속셈인 것도 같았다. 더 이상 성력이 약한 아니카를 제전에 참여시킨다면 일반 신도들에게도 추대 실패의 사실이 알려질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아르미티즈의 종교적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제국 최고 권력자의 가문인 아르미티즈 출신이건만 신은 그의 곁을 아니카에게 내주지 않았다. 정치에 있어서 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아르미티즈였지만 신전 내부에서는 절대로 카르파의 권위에 도전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었다. 신전 내부 모든 조직들의 수장이 황제에게로 돌아선 붉은 뎀스터, 녹색의 리날디로 채워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종교적으로 카르파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며 신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사라진 카르펜의 반지를 어서 찾게. 설마 나한테 금지된 술법이라도 써서 만들어내라는 말은 아닐 테고.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열심히 찾는 수밖에.”


엘레노어는 말을 마치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윈스턴은 그런 엘레노어를 허탈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카르펜이 죽고 나서 벌써 6년째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카르펜의 반지가 모조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카르파는 그저 크게 웃으면서 ‘이거 이블린에게 크게 당했군.’ 하고 말 한마디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열심히 찾으라는 말만 남기곤 회의실을 나갔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카르펜의 자리도, 거의 장악했다 생각했던 의회도, 포섭이 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원로회도... 결국 지금에 와서 보면 모든 것이 황제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비난은 자신이 받고, 황제는 뒤에서 과실만 따먹었다.


작가의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네요~~ ㅎㅎ

다음부터 새로운 챕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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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5.05.11 24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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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 +1 15.05.06 221 5 10쪽
29 (4) +1 15.05.04 212 5 14쪽
28 (3) +1 15.05.01 233 5 12쪽
27 (2) +2 15.04.29 216 5 13쪽
26 붉은 빛의 세라피나 (1) +1 15.04.29 210 7 13쪽
25 (7) +3 15.04.27 251 5 21쪽
24 (6) +1 15.04.26 248 5 14쪽
23 (5) +1 15.04.25 220 6 11쪽
22 (4) +2 15.04.24 11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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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 15.04.21 248 5 12쪽
19 침몰, 그리고 탈출 (1) +2 15.04.20 246 7 12쪽
18 (7) +2 15.04.20 230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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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5) 15.04.17 265 5 11쪽
15 (4) 15.04.17 219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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