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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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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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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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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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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불 필요한 건물

DUMMY

***


저녁이지만 이제 해가 제법 길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핏빛으로 붉어졌다.

불길할 정도로 평안한 날씨다.


천선은 한 건물 옥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울이지만 시야가 훤히 트여 있는 풍경이다.

하긴, 당연한 노릇이겠지.

저 앞에 네모반듯한 건물은 관공서니까.


“천선 씨, 말씀하신 대로 알리바이 확인을 끝내놨습니다. 이대로 진행하면 누명을 씌울 수 있습니다.”


뒤에서는 유송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꼭 뭔가를 걱정하는 듯했다.


“잘했어요. 이제 척척 해내시네요.”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네, 계속 잘해주세요. 확실히 보조를 해주셔야 잡음이 안 생기니까.”


뭔가 일이 벌어질 예정이라는 뜻이겠지.

유송은 그 맺음새를 깔끔히 하기 위해 움직일 테고.


“꼭 이 일을 하셔야겠습니까?”


기어이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긴, 겁나겠지.

최근엔 잠잠했다지만, 속내에는 그 누구보다 폭급한 성정이 숨어 있었으니.


“왜요? 이미 끝난 얘기 아닌가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일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예, 그래도 상식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건 너무 무리한 일처럼 보입니다.”

“남들이 하지 못할 희생인데,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죠?”


의문을 표했다.

유송은 그 모습에 잠시 움찔했다.

지금이야 괜찮다지만, 나중에 녹호로 돌아왔을 때가 걱정이겠지.


“···이렇게 공개적인 일은 처음 아닙니까?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흠, 그 정도라면 일리 있는 말이에요.”

“그럼···.”

“그런데 충분히 생각한 일이에요.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여기.”


가늘게 지어 보인 눈웃음에 한기가 서린다.

정말로 저 건물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만큼은 진짜 선의로 하는 거니까.”


천선은 그 말을 끝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첩을 꺼낸다.

육포도 들어있는, 변신을 위한 준비물이었다.

그렇게 꺼낸 코팅지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장현묘.

도플갱어의 친아버지였다.

있는 그대로는 아니었고, 체격이 좋아지도록 보정을 한 모습이다.

꼭 몸을 쓸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제 시작할 테니까 정신 차리고 계세요.”


천선이 육포를 입에 넣었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변하는 몸.

부피가 늘어나진 않았지만, 근육이 선명하게 파여만 간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웬만한 20대는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후우···.”


현묘가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준비한 물건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등산 가방처럼 묵직한 것을 등에 메고, 시커멓고 커다란 천 옷을 그 위에 걸쳤다.

시커멓고 커다란 모습은 언뜻 귀신이나 저승사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차림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탁 트인 시야가 반겨준다.

꼭 눈앞에 있는 관공서로 길을 안내하는 듯했다.

현묘도 산책이라도 하듯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나 와봤지만, 역시 넓고 좋네요.”


주변을 확인하듯이 한 번 빙 둘러보고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단정한 외부처럼 내부 역시 깔끔했다.

개성보다는 정돈된 인상을 중요시하는 모양이다.

물론, 한 켠에는 색이 요란한 홍보 문구가 걸려 있지만.


그런 내부를 죽 지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보려는 건 아니었다.

구석에 있는 칸막이로 가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 용구함으로 쓰는 장소에, 노란 생수병 여럿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한 곳에 부어서 가는 것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른 모양이다.

현묘는 양동이에 생수병을 척척 집어넣었다.

그리고 통째로 집어 든 후, 화장실 밖으로 나섰다.


“···장현묘 선생님?”


막 나왔을 찰나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교육청엔 무슨 일이세요?”

“아, 볼일이 있어서요.”


교육청.

현묘가 온 이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신분이 교사인 만큼,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당사자에겐 불행이겠지만.


“지금 시간이면, 업무 때문에 잠시 나오신···. 잠깐, 오늘은 저녁 있는 날 아닌가요?”

“하하.”

“일찍 퇴근하시고 집에 계셔야지, 왜 교육청에 오셨어요? 급한 업무라도 있으셨나요?”


일주일에 하루,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그렇기에 귀가를 하는 게 당연했다.

업무가 있다면 평소 근무시간에 해결했을 테니, 오늘 여기 있는 건 이상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말이지.


“급한 업무라···. 예, 있죠. 물론, 개인적인 일이지만.”

“개인적인 일이요?”


현묘는 빙긋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음, 요새 학생들 때문에 문제는 없나요?”


그저 화제를 돌리기 위한 말일까?

갑자기 그런 소릴 내뱉었다.


“당연히 힘들죠. 애가 잘못해도 훈육을 못 하거든요.”

“그래요?”

“예,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고소라도 했다간 교사 생활 단절이 되는데···, 어휴.”

“정말 애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화제를 한 발 더 깊이 파고든다.

단순히 시선을 돌리기 위한 얘기라기엔 이상한 행동이다.

그럼 대화를 빨리 끝마쳐야 정상이니.


“뭐···, 솔직히 원망하는 마음은 들죠. 눈앞에서 사고를 치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요?”

“······.”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거 혼내는 게 제 일이잖아요? 진짜 문제는···. 아뇨, 여기서 할 말은 아니네요.”


상대가 먼저 대화를 끝내려고 했다.

장소가 교육청인 만큼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다만, 현묘가 오히려 나서서 붙잡기라도 하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학부모가 문제죠. 아이가 잘못했으면 교정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선생님.”

“괜찮아요. 듣고만 계세요.”


교육청 한가운데에서 하는 말.

대화하던 상대는 상당히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누군가가 듣거나 녹음한다면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의견일 뿐이죠. ‘사실상 자식을 짐승 새끼로 키우는 건 학부모다.’, ‘부모라는 존재가 교권을 침해하고 있다.’ 같은 건.”

“저는 이만 가보면···.”

“아이는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바라기 마련이에요. 교권이 붕괴한다면, 사실상 학생들이 제일 불행하죠. 기댈 곳을 잃었으니까요.”

“······.”

“그저 무시되는 것뿐이에요. 방치됐다는 위기감은 표현하기 힘들잖아요. 더군다나 아이라는 미숙한 존재라면 더욱더.”


도플갱어가 말했다.

교권의 붕괴는 학생권의 붕괴라고.

교사를 보호하지 않거나 위협하는 일은 학생을 학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죠. 학생만 인권이 있냐고, 교사는 사람도 아니냐고. 선택지가 되면 안 되는 일을 그렇게 둔 거예요.”

“그건···.”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을 대치하는 순간, 하나는 확실해졌네요. 이제 이 나라에서 아이는 무조건 불행하게 자라게 됐어요. 의지할 어른이 없거나 문제 많은 요즘 애들 취급을 받거나, 두 가지 다 끔찍한 불행이거든요.”


입을 닫고 듣고 있던 교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양동이로 시선이 향했다.

화장실에서 볼 법한 물건에 생수병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것도 깨끗한 물이 아닌, 누리끼리한 액체가 담겨 있는.


“장 선생님, 그건 뭐죠?”


현묘가 물음을 받거나 잔잔하게 웃어 보인다.

그 미소는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꼭 얼굴 위에 살가죽을 뒤집어씌워 놓은 듯이.


“죗값이요. 학부모님들이 마련해주셨어요.”

“···예?”


그 말과 함께, 검은 소매가 한 쪽 벽을 가리켰다.

이내 숨겨진 주먹이 꽉 쥐어졌다.

시뻘건 불빛이 튀어나온 것도 이때였다.


화아아아아악···!


화염, 그것도 일직선으로 나가는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서, 선생님···!”

“빨리 도망치세요. 다른 분들 데리고.”


현묘가 벽을 불태우면서 한 마디 건넸다.

쓸데없는 말이기도 했다.

방금 지른 비명에 많은 사람이 방에서 나왔고 또, 고함치기 시작했으니까.


“꺄아아아아악···!”

“부, 불이야···!”

“다들 대피하세요···!”


사방에서 소란이 일었다.

불을 보자마자 사방에서 튀어 나가는 탓이다.

물론, 몇몇 사람은 소화기를 들고 뛰어오기도 했다.


“당신도 나와요, 제가 불을···!”

“가세요. 이거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거든요.”


하지만 현묘는 태연했다.

양동이 안에 든 생수병 하나를 저 멀리 텅 하고 던졌다.

그다음, 보란 듯이 손을 뻗어 주먹을 쥐었다.


화아아아아악···!


시뻘건 불길이 생수병을 향해 질주했다.

얇은 플라스틱이 저 겁화로부터 누리끼리한 액체를 막아줄 리 없었다.

당연히 녹아내렸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순간, 새하얀 빛이 눈 아프게 퍼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빛이 지나간 자리.

열기가 후끈 밀려들었고, 후폭풍이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순식간에 공간은 ‘뜨겁다’라는 감각을 아로새기기 시작했다.


“가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게 무슨···!”

“뭐, 그렇게 용감하시다면야.”


현묘가 지옥처럼 타들어 가는 배경 앞에 서 있었다.

혼자서 뜨겁지도 않은지, 시꺼먼 옷을 입고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서 팔을 뻗으면서.


“···으아아아아악!”


용감히 나설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당장 비명을 지르면서 바깥으로 도망쳤다.

손에 쥔 소화기 따위, 당장 던져 버릴 뿐이었다.


현묘는 굳이 그 등에 대고 불을 쏘아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양동이에 든 생수병을 휙휙 집어던졌다.

마치 나중에 수류탄처럼 터지라는 듯이.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난장판을 쳐대니, 소란이 없을 수 없었다.


왜애애애애애애앵···!


화재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 위층에서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터였다.

비명과 사이렌을 확인하러 나올 테고, 곧 대피하려고 움직이겠지.


“무슨 일이야···!”

“다들 건물에서 나오세요! 도망가야 해요···!”

“소화기! 소화기 어디 있어?!”


현묘가 계단을 올라가는 사이, 예상됐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당황하고, 누군가는 대피시키고 또, 누군가는 소화기를 찾는다.

각자가 본인이 쌓아온 인품을 내보였다.


하지만 기름을 먹은 화염은 쉽사리 꺼질 리 없는 법이지.

모두 도망을 치는 것이 최선이다.

틈틈이 생수병을 던지는 사람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이쪽으로 대피하셔야 합니다···!”


그러다 요란하게 내려오는 한 무리가 보인다.

어떤 한 명은 유독 창백하지만 이를 악물고 움직이고 있다.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꼭 중요한 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


현묘는 잠시 이를 살피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다음, 가타부타 말도 없이 손을 뻗었다.


화아아아아악···!


선명한 붉은 빛이 그 사람들을 앞으로 쏘아졌다.


“으아아아아악···!”

“뭐야···!”

“도대체 이건···!”


모든 사람이 기겁하며 현묘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테러리스트가 눈앞에서 위협을 해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너는 가면 안 되죠.”


작가의말

웬만하면 이번주 내로 비축분을 다 풀려고 했는데 힘들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기도 하고, 퇴고는 또 안 했거든요.

다음주까지 해보겠습니다.


p.s.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본 작가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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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복수 24.04.06 14 0 12쪽
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8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83 83화. 외모라는 컨텐츠 24.03.30 14 0 12쪽
82 82화. 오소서, 주 예수여 24.03.28 10 0 14쪽
81 81화. 요한묵시록 24.03.27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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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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