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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그마의 서재

소녀 남편을 키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아라나린
작품등록일 :
2016.06.03 11:34
최근연재일 :
2016.11.14 15:4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6,063
추천수 :
181
글자수 :
161,891

작성
16.06.13 14:57
조회
671
추천
12
글자
11쪽

5

DUMMY

후작부인 필리아 브노아. 그녀는 브노아 후작의 충성스러운 가신들 중 하나인 폴로 자작의 여식이었다. 유력한 고위 귀족의 영애도 아닌 그녀가 후처자리이긴 하지만 브노아 후작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소녀의 어머니, 미엘라와 종종 왕래하던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상심한 후작을 보다 못한 가신들이 2년째 되는 해에 필리아를 천거했고 이를 후작이 승낙한 것이었다. 그리고 4년 후, 그녀는 브노아 후작가의 후계자를 낳았다.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


그런 필리아를 아델린은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전생에 아델린은 필리아도, 그녀가 낳은 다리안도 어머니와 제 자리를 뺏어간 사람들로 여기며 오로지 아버지의 애정만 갈구했었다. 그들이 있기에 자신과 어머니가 잊힌 거라고 생각했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지.’


어째서 전부 남 탓으로 돌리고 사람들을 미워했을까? 있지도 않은 가해자를 만들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 마냥 행세했다. 그건 아버지인 브노아 후작의 아델린을 향한 행태와 똑같았다. 닮을 게 없어서 그런 걸 닮았었냐고 전생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며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문 앞에 다다른 한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기다리고 있던 한나는 정중하게 노크한 뒤 화려한 목재 문을 열었다.


“어서 오렴.”


옛날 백작위까지 지냈던 가문의 영애답게 우아한 여성이 아델린을 반갑게 맞이했다.

필리아는 아델린의 예상대로 신부수업의 일정을 의논코자 한다며 하녀를 시켜 그녀를 불렀다. 같은 저택에 살면서도 후작이 없으면 볼 일이 없었던 그들은 차분하고 필리아의 침실과 연결된 고풍스러운 느낌의 개인 응접실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아델린이 꾸벅 인사하고 의자에 앉자 필리아의 시녀가 차를 따랐다. 향기로운 냄새만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잘 지냈니?”


어색한 침묵이 필리아로 인해 깨졌다. 아델린은 맞은편의 귀부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는 전생에 호긴 백작가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금발에 갈색 눈을 가진 화려한 미녀였던 아델린의 어머니와 달리 옅은 갈색 머리에 금색 눈을 가진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인 필리아는 그 색감만큼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한때는 그녀를 친어머니로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난 뒤부터 아델린은 필리아를 가증스럽게 여겼었다.


‘가식이라고 생각했더랬지.’


전처의 자식에게도 상냥한 부인이라고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부자연스러운 그녀의 태도가 그걸 증명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을 조금 살아봤다고, 그땐 그냥 지나쳤던 게 훤히 보였다. 혹여 자신이 민감하게 받아들일까봐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며 바짝 마른 목을 축이는 모습이라든지, 긴장한 탓에 미세하게 떨리는 손 따위가 말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금안을 보며 아델린이 일부러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지냈어요. 어머니는요?”


덜그럭.


찻잔과 받침이 부딪쳐 소리가 났다. 당황으로 인해 필리아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고, 갑작스런 소음에 아델린도 움찔했다. 언제나 귀족 예법에 맞게 조용히 움직이던 필리아답지 않았다. 자기가 대답한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 나야 잘 지냈단다.”


필리아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아델린이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하니 놀라버렸다. 아니, 놀란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다시...... 불러주는 거니?’


나를 어머니라고, 어릴 때처럼 그렇게 여겨주는 거니?

너무 바랐기 때문에 환청이 들린 걸까? 필리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리안에게 얘기 많이 들었단다. 그 아이가 누나자랑을 하며 얼마나 기뻐하던지....... 정말 고맙구나.”

“별 말씀을요. 제가 리안에게 미안하죠. 동생인데 늘 피하기만 해서....... 어머니께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철없게 굴었었죠?”

“아니야, 아니다, 아가. 다 내가 잘못해서.......”


필리아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내가 어리석어서 너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었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쟤가 어머니가 엄마가 아니래요! 나빠! 혼내줘요!’


아델린이 4살 되던 해, 또래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2살 많은 공작가의 영애를 초대한 그날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필리아는 자신에 차 있었다. 미엘라를 좋아했던 만큼, 그녀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여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필리아는 아이에게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친어머니 행세를 했었다. 영원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다. 언젠가 아델린이 커서 모든 걸 납득할 수 있게 되면 알려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미엘라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으며 아이와 대면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호칭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워하며 미안해했었는지....... 그리고 친모는 아니라도 자신이 얼마나 아델린을 사랑하는지도 차분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모든 게 틀어졌다.

서로를 소개 시키고, 어쩐지 서로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을 편하게 놀라며 따로 떼어놓았다. 그리고 공작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아델린이 잔뜩 심통이 나서 저에게 달려왔다.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던 건지 공작영애가 아델린에게 새어머니인데도 사이가 좋아 보인다며 비아냥(아델린 말로는)거렸던 모양이다. 그때 필리아는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니 혼내주라는 아이의 편도, 바른대로 얘기한 영애의 편도. 그녀의 망설임에 아이는 뭔가를 느꼈는지 곧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 ......쟤가 말한 게 맞아? 어, 어머니가 내 엄마가 아니야?’


또래에 비해 영특했던 아델린은 필리아가 미처 변명도 하기 전에 진실에 다다랐다. 필리아가 뒤늦게 아니라고 해봤지만, 아델린은 믿지 않았고 결국 필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의 말이 옳다고 시인했다. 아델린이 충격을 받고 울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부터 그녀는 다시는 필리아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함께한 자리에서도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니 필리아는 아델린에게 더더욱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자책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말해 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차라리 아델린이 물어왔을 때 거짓말을 할 걸 그랬다며 가슴을 쳤었다. 얼마 안 가 탄로 날 거짓이지만, 그래도 몇 년 만이라도 진짜 모녀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함께 한 시간이 길었다면 진실이 밝혀졌을 때 정 때문이라도 외면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이건 다 치졸한 변명이었다. 그저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아델린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흑흑.......”

“어머니.......”


필리아가 복잡한 감정에 울음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아델린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델린은 몰랐었다. 필리아가 이렇게 아파했을 줄은....... 전생에도, 새 삶을 시작하면서도 그녀의 감정은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딸답게 잘 처신하자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자신이 오해했던 건 미안했지만 기실 필리아의 감정은 어쨌든 아무 상관없었던 거다. 그것이 더 미안해서 아델린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상처 준 이들이 더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걱정되기도 했다. 만약 있다면 무슨 낯으로 봐야 할지.......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지금처럼 솔직하게 사과하면 되지 않을까. 아델린은 필리아의 손을 꼭 잡으면서 진심을 담아 말했고 필리아는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더욱 흐느껴 울었다. 어쩐지 구도가 바뀐 듯 했으나 가해자가 아델린인 셈이니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제가 잘 할 게요. 그러니 이제 그만 우시고 웃어주세요, 네? 예전에 제게 웃어주신 것 처럼요.”


달래는 듯한 아델린의 아부에 필리아는 눈물을 닦으며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아델린을 옆에 앉히고 그녀의 볼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필리아가 일부러 부른 적은 손꼽지만 그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후작이 저택에 머물 땐 가문의 전통 때문에 늘 저녁 식사는 함께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리아는 잃어버렸던 딸을 이제야 찾은 것처럼 애틋하게 아델린을 바라보았다.


“정말 너를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단다. 널 정말 내 친딸로 여겨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알아요, 어머니. 그만 말씀하셔도 돼요. 제가 오해하고 제멋대로 군거니까 제가 용서를 구해야죠.”

“네가 잘못 했던 게 아니야. 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아니에요. 제가.......”

“미안하다, 아가.”


이대로 가다간 서로 미안해하다가 끝나겠다. 그래서 아델린은 타협점을 제시했다.


“어머니 탓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해요. 우리 둘 다 미안해하니까 서로를 용서하는 걸로. 괜찮죠?”

“하지만.......”

“아이참, 계속 그러시면 저 어머니 얼굴 불편해서 못 봬요. 저 보기 싫으세요?”

“그럴 리가 없잖니!”


아델린의 애교 섞인 농담에도 필리아는 펄쩍 뛰었다. 설마 협박으로 받아들인 건가?

어찌됐든 필리아는 아델린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 뒤로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어색했던 시간이 지나자 서먹함은 사라지고 그들은 곧 수다의 꽃을 피웠다. 거리를 두었던 만큼 할 얘기가 많아서 주제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돌고 돌아 어느덧 아델린의 친모, 미엘라에 대해 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내가 기억하는 네 어머니, 미엘은 참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어.”


필리아가 아련하게 읊조린 애칭에 아델린은 진지한 태도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친어머니에 대해서 소녀가 들은 건 전부 한나가 전해준 것뿐이었다.


“밝고 강한 햇살 같은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난 그녀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어.”

“......미워하실만한 이유가 있었나요?”

“후후, 그땐 아직 첫 연정이 남아있었으니까.”


연정? 설마.......


“아버지를 좋아하셨던 거예요?”

“그랬지. 지금 생각해 보면 동경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 같지만 말이야.”


어린 시절, 파티장에서 젊은 후작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필리아는 그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막연하고 아련한 첫사랑이었다. 자작가 출신이니 자신이 그의 옆에 설 일이 없는데도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듯이 그의 아내가 된 자신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러니 난데없이 나타나 그의 옆자리를 차지한 미엘라에게 반감을 품은 건 지극히 당연했다.

어찌 보면 아델린의 오해도 그렇게 근거 없지는 않았던 셈이다.


작가의말

제 주 연재처가 조아라인데 거긴 요즘 텍본유출관련 이슈와 로맨스 판타지 크리스탈 로드의 표절건 얘기로 떠들썩합니다. 그에 비해 문피아는 왜 이렇게 잠잠한지 의문스럽네요. 네이버도 그렇고 대형 사이트들 다 털렸다고 알고 있는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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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2 16.09.27 71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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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 +2 16.09.19 530 6 13쪽
17 16 +2 16.09.17 333 4 14쪽
16 15 +4 16.08.11 569 5 18쪽
15 14 +4 16.07.27 601 4 15쪽
14 13 소녀 만남을 준비하다 +2 16.07.23 644 5 16쪽
13 12 +2 16.07.18 506 5 13쪽
12 11 +2 16.07.16 562 8 14쪽
11 10 +8 16.07.15 702 5 14쪽
10 9 +2 16.07.13 608 6 13쪽
9 8 +2 16.06.28 777 7 16쪽
8 7 소녀 후작과 마주하다 +2 16.06.18 619 7 12쪽
7 6 +4 16.06.16 513 8 15쪽
» 5 16.06.13 672 12 11쪽
5 4 +4 16.06.09 701 11 11쪽
4 3 +4 16.06.07 719 12 15쪽
3 2 +2 16.06.06 848 13 15쪽
2 1 아이 소녀가 되다 +6 16.06.04 1,117 13 13쪽
1 프롤로그 +15 16.06.03 1,262 2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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