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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그마의 서재

소녀 남편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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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나린
작품등록일 :
2016.06.03 11:34
최근연재일 :
2016.11.14 15:4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6,089
추천수 :
181
글자수 :
161,891

작성
16.09.27 19:27
조회
719
추천
5
글자
12쪽

20

DUMMY

‘진짜 딘이다.’


당혹스런 상황에 맞닥뜨린 에딘이 굳어있는 동안 그의 품에 얼떨결에 안긴 아델린은 그가 에딘임을 알아보고 감격했다. 여전히 신비로워 보이는 외향, 가녀리지만 단단한 몸, 부드러운 손길. 자신이 기억하는 그의 어릴 적 모습과 단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아델린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에딘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아델린은 숨이 턱 막혔다.


‘모른다.’


딘은 나를 몰라.

과거의 다정한 눈빛이 아닌, 어쩐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빛에 아델린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를 기억하지만 그는 아니다. 그가 아델린처럼 회귀한 것이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이성적으로 잘 아는 바였으나 모르는 사람을 보듯 냉정한 그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러면 안 돼. 진정하자.’


그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하게 살아있는 그와 만나기 위해 회귀하고서도 1년을 기다렸다. 과거에는 그와 헤어지고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죽을 때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 한 채 차가워져가던 그의 시신을 안았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런 이가 눈앞에 있는데 태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와의 추억이, 그의 죽음과 회귀 후 겪은 가슴앓이가 되살아나 감정만 더 격해졌다. 눈물이 자꾸 나오려고 해서 아델린은 입을 앙다물었다. 입술을 떼면 둑이 터지듯 울컥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아서 뭐라 말하지도 못 한 채 그저 그의 얼굴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바쁘게 지내다가 찰나의 시간만 생기면 그가 머릿속을 어지럽혀 곤란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는 근거 없는 원망까지 생겼더랬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요.’


차마 전하지 못한 진심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누군가가 심장을 옥죄이듯 가슴이 답답했다. 아델린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한편, 애타는 아델린의 심정을 모르는 에딘은 화려한 차림의 소녀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자 슬쩍 눈썹을 찌푸리며 품에서 떼어냈다. 험악한 호위기사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상했던 심장의 울림이 사라지고 나니 소녀가 거북스럽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언뜻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으나 그는 잘못 들은 것으로 치부했다. 설령 제대로 들었다고 해도 에딘은 아직 ‘임’을 정하지 않았으니 자신을 불렀다고 여기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순간 단단하게 아델린의 허리를 감고 있던 그의 팔이 떨어져나갔다. 아델린은 아쉬움에 에딘을 붙잡을 뻔 했으나 다행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타까워 흘러나온 신음소리까지는 막지 못 했다.


“.......실례했습니다.”

“.......네?”


에딘이 건넨 한마디가 아델린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녀는 잠에서 깨듯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다. 우리 처음 만난 거였지?’


보통 처음 만나면 뭐부터 하더라? 맞아, 인사. 자기소개부터 해야지. 이 상황에선 다치지 않게 잡아준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던가, 귀족의 몸에 함부로 손댄 죄를 묻든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델린은 아직 그런 상식을 떠올리기엔 동요가 가라앉은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 뵈.......”


그래서였다. 에딘의 사과와는 전혀 관계없는 대사를 친 것은. 그마저도 목이 막힌 듯 약한 소리였다.

이래서야 딘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잖아. 그가 듣기 좋다고 칭찬해주던 목소리인데.

아델린은 자책하며 목을 가다듬고 제대로 인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술을 떼기 무섭게 아델린은 다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뭔가가 걸렸다. 진짜 중요한 뭔가가.

고양이처럼 새치름한 눈을 껌뻑이며 아델린이 자문했다.


‘내가 뭐라고 한 거지?’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한 것 같다.


‘......처음?’


처음이라고? 내가 딘을 만난 게?


‘안 돼!!!’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제 입을 아델린은 다급히 막았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도망치듯 뒷걸음질을 쳤다. 의도치 않게 그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에딘의 가라앉은 시선이 그녀를 향했지만 아델린은 그걸 의식할 여가가 없었다.

이게 그와의 첫 만남이면 안 된다!


‘여기가 아니야! 지금도 아니고!’


후작저에서 에딘을 만난 게 아니다. 시기 또한 빨랐다. 그녀가 소년을 처음 만난 건 14세 생일 뒤 후작가에서 도망치듯 달려간 호숫가에서였다. 결코 이렇게 서로의 신분이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 만난 게 아니었다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거지?’


페르난을 만날 뻔한 일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다.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아 아델린은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렸다.


“아가씨!”


너트산의 부축을 받으며 아델린은 멍하니 에딘을 응시했다.

내가 다리안과 친해졌을 때부터였을까? 필리아를 어머니로 인정한 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버지에게 전염병에 대해 말한 순간? 아니면 영애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생일 파티를 연 게 오류였던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내가 잘 못 한 거야!’


에딘은 귀족을 혐오한다. 아델린이 그를 알고 지낸지 얼마 안 되어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런 에딘이 아델린을 좋아하게 된 건 그녀가 신분을 감췄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속이려고 했었던 건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 평민 소녀처럼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호수에서 버젓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던 아델린을 보고 에딘이 착각한 게 먼저였다.

이건 정말 너무나도 치명적인 오류였다. 왜냐하면, 아델린의 기억이 맞는다면, 에딘과 아델린은 처음 호수에서 만났을 때, 바로 그 때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그가 날 싫어하면 안 되는데!’


에딘을 이리 만나면 안 된다. 절대로! 에딘만은 과거 그대로 만나야 했다. 패닉상태에 빠진 아델린은 그가 에딘임을 자각했을 때와는 다른 이유로 울고 싶어졌다. 심장이 불쾌하게 뛰어대자 시야가 어지러웠다.

에딘이 후작저에 드나들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귀족들만 초대되는 생일 파티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언제가 되든 전생처럼 남은 기간 동안 자신만 후작저에서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판단했었다.


‘이 바보! 멍청이!’


파티가 열리려면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에딘의 후줄근한 옷, 발치에 떨어진 모자, 바람에 실려 오는 옅은 땀 냄새. 아델린은 그제야 자신을 만난 당시 식료품점에서 일하고 있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 자신의 머리를 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되돌려야해.’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델린은 회귀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판단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되돌려야 한다. 아델린 앞에 최대의 지상과제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런 권능이 아델린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마법물품인 귀걸이가 있긴 했지만 이미 한번 써먹은 마법물품이 또 발동될 리 없었다. 그리고 발동조건은 희생이니 아델린 자신이 죽어야 한다.

말도 안 된다. 에딘이 눈앞에 있는데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로 목숨을 버릴 순 없다. 그러니 단 한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정식 만남을 뒤로 미루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최소한 과거와 같은 상황에서 만나 통성명을 해야 한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델린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버둥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아델린은 당장이라도 품에 뛰어들고 싶은 에딘을 놔두고 너트산을 돌아보았다. 에딘과 마주한 시간이 최대한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아델이 뭘 하든 관심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아델린은 필사적으로 평온을 가장했다.


“.......너트산 경. 난 괜찮으니 이만 놔요.”

“엇! 실례했습니다.”


그녀의 호위기사는 화들짝 놀라 아델린을 잡고 있던 팔을 떼었다. 그러곤 그녀의 무사함을 확인한 후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니에요. 제가 앞을 보지 않고 걷다가 생긴 일이니 제 잘못이에요. 저자도 그대로 돌려보내요.”

“하지만 영애의 몸에 함부로 손 댄 자입니다.”

“잡지 않았다면 제가 다쳤을 거예요. 위기상황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불문율입니다. 경도 저를 부축하지 않았어요?”


물론 호위 기사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은 다르다. 더군다나 너트산은 귀족 출신이고 그는 딱 봐도 평민이었다. 하지만 아델린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상을 쓰며 소년을 경계하던 너트산은 그녀의 명령에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보이며 수긍했다.


“아가씨께서 괜찮다고 하시니 이만 물러가라.”


그의 축객 령에 소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아델린은 돌아선 자세 그대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걸음을 옮겼다. 하다못해 그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었으나 자신을 각인시킬 뿐인 일이기에 아델린은 고사했다.


등 뒤로 에딘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특유의 가볍고 당찬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오던 저 소리에 아델린의 심장은 늘 환희로 두근거렸었다. 너무도 사랑했기에 기억하는 사소한 버릇들이 지금은 아델린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아델린은 당장이라도 뒤돌아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은 상황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진정하기 힘들었다.


‘아직 우린 만날 때가 아니야.’


과거와 같은 시작을 하기 위해 1년을 버텨온 아델린이었다. 그 노력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다. 그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경멸할지도 모른다. 아니, 첫 만남이 달라져버리면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한발자국씩 그와 멀어지는 길은 어느 때보다 길고 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본관의 문이 열리고 파티장에 들어섰을 때 아델린은 오히려 안도했다. 이제 그를 붙잡기 위해 뛰쳐나갈 수 없기에.


“누님, 어딜 갔다 이제 오세요?”


아델린은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과 손님들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품위 있는 미소를 그릴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속마음을 예측할 수 없는, 완벽한 귀족 영애의 모습으로 아델린은 그 곳에 섰다.


‘딘.......’


몸은 멀어졌다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델린의 머릿속은 온통 에딘 생각뿐이었다.


‘눈치 못 챘어야 하는데.......’


자신이 후작가의 영애임을 모르기를....... 설령 신분을 알았다 한들 잊히기를....... 부디 그가 오늘 일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프지만 내가 그의 기억 속에 남지 않았기를.......’


그래야만, 그가 자신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

그래야만, 과거에서처럼 그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생에서는 전생에서 수없이 했던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화려한 파티장 안.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은은한 달을 보며 아델린이 간절히 빌었다. 그녀의 시야에 담기지 않는 외딴 곳, 바닥에 떨어져있던 볼품없는 모자가 바람에 두둥실 떠올랐다. 이윽고 한줄기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녀의 소원대로 흔적을 지워낸 듯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그곳에 내려앉은 쓸쓸한 달빛만이 어긋난 만남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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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6.09.28 05:09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5 아라나린
    작성일
    16.10.01 15:21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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