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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연재수 :
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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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0
추천수 :
130
글자수 :
1,5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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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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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68화 재침공

DUMMY

68화 <재침공>



퀴퀴한 풍기는 먼지 냄새. 오랜 시간 방치된듯한 곰팡내. 비릿하게 올라오는 물비린내가 있었다.


“깨어났군.”


캣니스는 무거운 눈꺼풀을 열었다.

약물의 효력이 남아있어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몽롱한 약 기운 속에서 힘겹게 정신을 붙잡았다.

눈앞에는 흐릿한 형체가 스스로 손을 닦았다.

경건한 의식을 앞둔 듯이 손수건을 내려두었다.


“자, 몇 가지 답만 해주면 된다. 걱정하지 마라. 순순히 협조하면 금방 풀어 줄 것이니.”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아주 옛날. 바솔루트 왕국에서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너는 바솔루트의 교단을 미워한 감정으로 바솔루트의 사절단을 살해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음산한 분위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모두가 바솔루트의 성기사일 터였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앱솔루트 소속의 사제들을 납치한 건지.

그가 했던 말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질문이 아니라 답을 해달라는 그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분명 답을 정해놓고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거다.

어떠한 말도 무가치하게 들릴 것이다.


“제가 사적인 감정으로 바솔루트를 공격했다고요···?”


캣니스는 그들이 원하던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남자의 인영이 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잠시 입술을 떨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내 그들이 기대했던 말을 꺼냈다.


“그럴 리 없잖아. 멍청이들아.”


약 기운에 취해있어도 또렷하게 눈동자를 빛냈다.

캣니스의 눈동자 안에 담긴 감정은 경외심이 들게 할 무언가였다.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부터 바닥을 짚고 있던 한 물체를 들었다.

의자에 결속되어있는 캣니스의 머리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악마에 사로잡힌 너에게서 진심을 이끌어줄 터이니.”


퍽.

둔탁한 소리가 방을 채웠다.

바닥과 결속된 의자가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



“염병할! 이 녀석도 꽝이야!”


에이린이 잔뜩 심술이 나서 성기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진작에 정신을 잃었던 성기사는 힘없는 지푸라기처럼 쓰러졌다.


“정말로 이 많은 성기사 중에서 캣니스를 본 사람이 없는 걸까냥?”

“없어. 없다고. 누군가와 교대한 기억밖에 없어 빌어먹을 놈들.”


에이린은 루나의 물음에 욕지거리를 짓씹었다.

사라진 캣니스의 행방을 찾으려 했지만. 도시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거리의 사람들도, 여전히 사람을 찾는 성기사들도 전에 기억과 달랐다.

이렇게 얌전해진 걸 보면 분명 그만한 수확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이 많은 사람이 모른다는 게 말이 안된다냥.”


상대의 기억을 헤집는 마법. 애초에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에이린은 혹시 빼먹은 실수가 있을까 싶어서 다시 한번 성기사의 머리를 짚었다.

여전히 그녀가 원하는 정보는 없었다.

마법을 중지하고 안면에 주먹을 먹였다.


“제기랄! 이런 쓸모없는 놈들! 네놈들이 잡아간 게 분명한데 모르는 게 말이 돼?”


에이린은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드러냈다.

두통이 이는지 관자놀이를 짚으며 날카롭게 눈을 떴다.


“혹시 캣니스가 다른 곳에 있는 거 아닐까냥? 지금 이러고 있는 거보다 다른 곳을 찾는 게···”

“아니야. 이놈들이야. 분명 이놈들이 데리고 갔어.”


에이린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캣니스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하거늘.

벌써 해치운 성기사만 두 자리 숫자가 넘는데. 그 누구도 금발 머리 성직자의 행방을 알지 못하였다.

성기사를 두들겨 패는 에이린도, 왜 다른 수단을 찾지 않는지 지켜보는 루나도 답답한 심정이었다.


“내가 고만고만하게 잘해줬더니 감히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오자마자 싹 다 잡아서 불구덩이에 처넣었어야 했는데!”


또다시 축 처진 성기사의 몸을 걷어찼다.

에이린은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성기사를 짓밟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을 찡그리며 머리를 짚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미친놈들이! 지금 그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까부터 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유 없이 머리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한다.

루나가 보기에는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히스테릭을 부리는 장면으로 보였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두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별수가 없기에 그녀를 믿었다.


“에이린냥. 지금이라도 추적 마법을 사용해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냥···?”

“멍청한 고양이야! 내가 그 방법을 몰라서 하나하나 족치고 있는 줄 알아?! 안 그래도 열받는데 너까지 열받게 하지 마!”


에이린의 독설에 입을 다물었다.

둘 다 조급한 심정인 건 똑같은데,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뭐가 몸에 닿은 흔적이 있어야 추적 마법을 쓰지! 걸어다니는 족족 정화 시켜버리는 인간 성물을 어떻게 추적해?!”


말만큼이나 초조한 기색이 행동으로 드러났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끊임없이 방법을 갈구했다.


“윽. 이런 미친···!”


또 관자놀이를 짚으며 욕지거리를 뱉는다.

그럴 때마다 루나의 표정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 후로 세 명 정도 더 족친 뒤에야 이곳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왕궁 쪽을 바라봤다.


“왕궁으로 가자. 저놈 머릿속에서 얻은 수확이 저곳밖에 없으니 한 번 가야지.”


에이린은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탑주도 아닌 떠돌이 마법사의 신분으로 왕궁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이에 루나는 당황한 모습으로 뒤를 쫓았다.

어떠한 기별도 없이 왕궁으로 쳐들어간다니.

결코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범법행위에 기함했다.


“에, 에이린냥! 아무리 그래도 왕궁으로 쳐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냥?!”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원래라면 그깟 것들이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냥. 저쪽에서도 경비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게 무서웠으면 따라오지 말았어야지!”


걱정하는 목소리에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한 루나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서 어쩔 건데! 따라올 거야? 아니면 말 거야? 그것도 아니고 방해하겠다고 하기만 해봐. 그때는 캣니스의 친구고 자시고···”

“알겠다냥. 친구를 위해서 각오하겠다냥!”


캣니스를 찾을 수단이 그것밖에 없기에 각오를 다졌다.

설령 그것이 왕궁의 처벌을 받게 되는 일이라도, 루나는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최대한 빠르게 갈 수 있는 길로 빨리 안내해!”

“알겠다냥! 달릴 테니 뒤처지지 않게 따라와라냐!”

“누구한테 쓸데없는 걱정이야? 빨리 안 달려?!”


곧바로 두 사람은 골목길을 가로질렀다.

오랜 시간 가람왕국에서 살은 안내자답게 왕궁으로 가는 지름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뒤처지지 말라는 말이 괜한 걱정이 아니었는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벽을 박차는 루나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거기 너희들! 성기사의 검문 중이다! 지금 바로 멈춰서 신원을 밝혀···”

“꺼져! 잔챙아!”


에이린도 루나의 걱정을 마다할 정도의 속도를 보였다.

인간의 육체를 넘어선 루나보다는 뒤처지지만,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지 않으며 달렸다.

그러다가 거슬리는 성기사를 발견하면 자비 없이 손가락을 튕겨서 근처 벽에다 처박았다.


“다음 모퉁이만 돌면 왕궁이다냐! 하지만 기사도 있고 마법도 있는데, 돌파할 수단이 있는 걸까냥?”

“알아서 할 테니 신호 줄 때까지 달려!”

“흐냥. 어떻게 되든 난 모른다냐!”


골목을 벗어나자 환한 빛이 드리웠다.

동시에 왕궁의 모습도 온전히 드러났다.

왕성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창을 들고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왕궁의 안위를 위협한 존재로 간주하여···”


한 경비병이 외쳤다.

다른 경비병은 통신석을 꺼내어서 높은 지위를 가진 이에게 연락하였다.

상대도 수인이기에 육탄전으로 뚫기에는 시간적 손해가 컸다.


“뒤로 비켜 고양이!”


그때, 에이린이 루나를 지나쳤다.

한순간 속도를 멈추면서 오른쪽 팔을 뒤로 뻗었다.

몸을 멈춘 반동을 이용하여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던졌다.

그것은 바솔루트 성기사의 철제 투구였다.

힘껏 던진 철제 투구는 경비병 쪽이 아닌 옆쪽 담벼락 너머로 넘어갔다.


-와장창


그리고 왕궁 주변이 진동했다.

유리가 깨진 듯한 소리가 난 건, 성기사의 투구가 담벼락 너머로 넘어갔을 때였다.


“고양이! 던져!”


에이린은 루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 뜻을 알아챈 루나가 에이린의 팔을 붙잡고 담벼락 너머로 던졌다.


“비상! 비상! 침입자가 담벼락을 넘어서 침입했다!”


본래라면 왕궁 입구 외에는 보호막이 있을 담벼락으로 침입자가 넘어갔다.

난생처음 겪는 사태에 경비병이 당황하여 소리 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나는 담벼락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바네샤가 보았으면 뒷목을 잡았을, 기상천외한 사건이었다.



*****



“풀어줘!”


결론부터 말하면 루나와 에이린은 붙잡혔다.

기세 좋게 왕궁에 침입한 건 좋았는데, 길을 몰라서 헤맨 게 화근이었다.

그 결과, 나란히 밧줄에 포박되어서 칼투스 14세 앞에 무릎 꿇렸다.


“끄응. 자네들은···.”


칼투스 14세는 신음을 뱉었다.

안 그래도 바솔루트의 악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두 침입자가 왕궁을 뒤집어 놓았다.

그들에 대해 심문해야 했지만. 그보다 앞서 침입자를 붙잡은 공신에게 말했다.


“훌륭하다. 내 곧 자작저로 연락해서 너의 용기에 대한 상패와 포상을 내리겠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인 왕궁 시녀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는 길을 묻는 두 침입자를 경비병에게 안내한 공로를 세웠다.

이에 대한 포상으로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왕의 알현이 이뤄지는 중인데.

옆에 무릎 꿇은 두 죄인은 따가운 눈초리를 쉬지 않고 보냈다.

두 명의 살기와 왕을 알현했다는 긴장감.

도저히 몸 둘 바를 모르던 중에 나가도 된다는 신호를 받았다.

부리나케 고개를 숙이고 알현실 밖으로 도망쳤다.

칼투스 14세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 자네의 얼굴을 알고 있지. 오랜 친우의 아픈 아이여.”


흠칫. 시녀가 나간 자리를 노려보던 루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칼투스 14세는 쯧쯧. 혀를 차며 불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는 두 침입자가 아닌. 알현실에 남은 다른 한 명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짐 앞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잘 텐가?”


왕의 못마땅한 목소리에 줄곧 누워있던 누더기가 꿈틀거렸다.

정확히는 누더기가 아니라 기절한 채로 끌려온 궁정 마법사였다.


“폐하···. 제 마력의 8할로 유지되던 보호막이 깨졌습니다. 그런데도 요양이 아니라 잘못부터 문책하다니. 성군의 모습은 나이와 함께 썩었나 봅니다···.”

“여봐라. 궁정 마법사의 조수여. 네 스승의 머리에 마나포션 좀 끼얹거라.”

“예. 확실히 얼음까지 끼얹어서 들이붓겠습니다.”


‘염병.’ 욕을 짓씹었다. 궁정 마법사는 머리 위에서 들이부어지는 마나포션의 한기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 일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제 조수를 노려보고. 두 죄인을 향해서도 죽일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였는가?”

“문제랄 게 있습니까? 지금 이 상황이 문제인데!”


궁정 마법사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격분했다.

왕의 앞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내 마법! 내 술식!”


그도 그럴 것이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마법 술식 제작 도중이었다.

마치 성직자가 신탁이라도 받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영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법 술식 제작 도중에 마나 역류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마법 술식은 혈흔으로 엉망. 기억의 잔해를 뒤져도 반짝였던 술식의 핵심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야! 왕궁을 보호하던 보호막을 부순 것도 모자라서, 안티매직으로 마력 흐름을 역류시킨 괴팍한 마법사는!”


칼투스 14세는 눈을 크게 떴다.

왕궁의 보호막은 그가 즉위하기 전 먼 옛날부터 존재하던 마법이다.

지금 궁정 마법사도 마법 술식 자체는 파악하지 못하고 유지만 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술식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는 디스펠과 더불어서 술식 재구성을 방해하기 위한 안티매직까지 딸려 보내는 마법사라니.


“그깟 조잡한 보호막 얼마나 한다고···.”


이카루스의 아픈 아이가 데려온 인물은 어처구니없는 말을 뱉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에게 흥미가 동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뭐? 조잡한?!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여자가 말 함부로 하다니!”


더 이상 상황을 그냥 두었다가는 개싸움으로 번질 것이라 직감했다.

칼투스 14세는 궁정 마법사의 조수에게 허약한 스승을 조용히 시키라는 언질을 보냈다.


“그래서. 그대처럼 대단한 마법사가 이런 일을 벌인 저의가 무엇인가?”

“이곳에 바솔루트에서 온 대가리 놈 있지?”


예의를 차리지 않는 말에 가벼웠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놈. 왕궁 통째로 엎기 전에 당장 데려와.”


한 왕국의 왕을 앞에다 두고 협박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줄곧 자비를 베풀었던 칼투스 14세는 성군의 빛을 지워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쿵-

무거운 위압감이 공기를 짓눌렀다.

국왕의 노란색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곳을 대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줄곧 눈치만 보던 루나도, 울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궁정 마법사도 입을 다물었다.

성군이자 현왕으로 불리는 가람왕국의 국왕 칼투스 14세.

줄곧 현왕이라는 이름에 묻혀있었지만, 그는 과거에 단독으로 마왕군 사천왕과 육탄전을 벌였던 무인이었다.


“닥치고-”


그러나 그의 분노를 아랑곳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닥치고 마지막 경고야. 당장 그놈 데려와. 이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붉은빛 마력과 황금빛 마력이 충돌하였다.

칼투스 14세와 에이린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유를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비는 없다!”


칼투스 14세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왕좌의 팔걸이를 박살 낼 정도의 분노를 드러냈다.

그 가세에 감히 인내심을 운운하던 에이린의 언질이 가소로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살기를 죽이고 있던 건 에이린도 마찬가지였다.


“내 은인이 잡혀갔어.”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투스 14세와 부딪치던 무형의 기운이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

얼마 안 가서 루나와 에이린의 몸을 옥죄던 밧줄이 끊어졌다.

마력의 개방만으로 밧줄을 끊는 모습.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붉은 마력은 점점 더 거대해지며 공간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갔다.


“내 은인이 이 일을 알면 화낼 테니 참고 있는 거야. 그러니 증거든 뭐든 가지고 올 테니까. 지금 당장 놈을 데리고 와!”


처음으로 살기가 담긴 한마디를 뱉었다.

칼투스 14세의 기세가 단숨에 꺾였다.

붉은 마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산소와 버금가는 압도적인 마나의 농도.

궁정 마법사의 조수가 꺽꺽 숨을 토해냈다. 궁정 마법사조차 얼굴을 굳혔다.

서로 부딪쳤던 마력은 한 종류만이 남았다.

알현실을 붉게 물들인 빛이, 정말로 참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왕국의 안위가 갈리는 시점이라는 건가.”


결국 먼저 두 손을 든 건 칼투스 14세였다.

그는 무언가 고심하듯 눈꺼풀을 닫았다.

기세가 꺾인 그와 다르게 에이린은 여전히 불같은 성미를 보여주었다.


“그대가 찾는 사람은 이곳에 없네.”

“뭐라고?”

“그대가 찾아오기 수 시간 전, 이미 왕궁을 나섰···”

“염병!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뺴액 소리 질렀다.

한순간에 공기를 채우던 붉은 마력이 사라졌다.

타오르는 불같던 기세도 한풀 꺾였다.

모두를 압도할 만큼 거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완벽하게 통제하는 모습.

궁정 마법사의 불평이 쏙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어딨는데! 어딨는지 알 거 아니야?!”


에이린은 힘을 거둔 대신에 당당한 태도로 정보를 요구했다.

여기 없다는 말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사투를 벌이는 전사에서 떼를 쓰는 사춘기 소녀롤 연상케 하였다.

칼투스 14세는 침통함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여 이야기했다.


“그건 알 수 없네. 하나 짐의 군사를 빌려줄 테니 함께 수색하면···”

“필요 없어!”


왕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냈다.

단호한 거절에 국왕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이 와서 마신 찻잔. 잡은 손잡이. 뭐든 좋으니까 당장 가져와!”


이제 에이린은 자연스럽게 명령하였다.

왕의 궁전에서 왕을 삿대질하며 반말까지 하며 불편한 본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나중에 그놈 목을 달라고 애원해도 안 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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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79화 그의 비밀 23.06.28 40 0 19쪽
89 78화 이안류 23.06.23 68 0 25쪽
88 77화 이안류 23.06.20 33 0 16쪽
87 76화 재침공 23.06.16 44 0 18쪽
86 75화 재침공 23.06.13 35 0 24쪽
85 74화 재침공 23.06.07 35 0 25쪽
84 73화 재침공 23.06.03 35 0 11쪽
83 72화 재침공 23.06.03 43 0 16쪽
82 71화 재침공 23.05.29 42 0 15쪽
81 70화 재침공 23.05.25 40 0 20쪽
80 69화 재침공 23.05.22 50 0 15쪽
» 68화 재침공 23.05.18 34 0 17쪽
78 67화 재침공 23.05.15 44 0 22쪽
77 66화 재침공 23.05.10 46 0 19쪽
76 65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5 48 0 18쪽
75 64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2 51 0 12쪽
74 63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9 48 0 14쪽
73 62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5 55 0 18쪽
72 61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2 51 0 18쪽
71 60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1 49 0 20쪽
70 59화 옛 인연 23.04.17 55 0 26쪽
69 58화 옛 인연 23.04.12 56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2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5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6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4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60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60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9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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