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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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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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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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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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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화 길드

DUMMY

53화 <길드>



캣니스와 브레드는 탁자 앞에 앉았다. 가고일 티미를 바닥에 꿇어앉히고 심문을 시작했다.


“그러면 간단한 정보부터 물을게요. 종족은 가고일. 이름은 티미이며, 이전 근무처는 마왕성이 맞나요?”

“마, 맞아. 마왕성에서 관상용 13번을 담당했어.”

“그러면 티미 님. 문지기님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어··· 설명하려면 긴데. 마왕성이 갑자기 무너지고 이대로 죽겠구나. 생각했더니 갑자기 이상한 곳에서 눈을 뜬 거야.”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어 그러니까··· 내 원래 모습은 짤막한 임프 같은 석조상이거든? 그런데 마왕성이 무너지면서 몸체가 산산조각이 났어. 당연히 죽었거니 했는데 눈을 뜨니까 처음 보는 곳에서 이상한 조각상에 내 날개가 붙어있었어.”


가고일은 날개가 본체였다. 이는 캣니스도 처음 안 이야기였다.


“음. 그렇군요. 왜 몸이 바뀌었는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나요?”

“마신 숭배자였던 모양이야.”

“네?”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이 마신님을 숭배하는 인간의 집이었다고.”


캣니스는 눈을 깜빡였다.

센츄어리 대륙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긴 하지만 마신을 숭배하는 이는 손에 꼽았다.

마족은 대륙의 평화를 깨는 전쟁을 일으키고, 딱히 마신 숭배자를 살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 탓에 자연스레 마족의 창조주인 마신을 숭배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이 사실이 어이가 없고 놀랍기는 했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캣니스여. 내 생각에는 저 석상의 원래 주인이 모종의 방법으로 가고일의 날개를 구하여 집에 있던 석상에 붙인 모양일세.”


브레드가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했다.

그의 말이 맞는지. 가고일이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 말이야! 잠자고 있어서 제대로는 못 들었지만. ‘마왕성에서 주운 거라더니, 마신님 조각상과 아주 잘 어울리는구먼. 흐흐흐.’라고 하더라고!”

“···마신님 석상이요?”

“그래! 인간 네가 한번 겪어 봐야 해! 안 그래도 영문 모를 곳에 납치되었는데 모르는 할아범이 내 몸을 구석구석 만지는 감각이란···!”


티미는 그때의 일을 떠올렸는지. 스스로 몸을 끌어안았다.

잘생기고 훤칠한 청년이 나르시시즘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썩 볼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캣니스는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옆을 돌아봤다.


“브레드 님. 혹시 이 이야기는···”

“으음.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조금 전, 모험가 길드에서 들었던 이야기.

인근 마을에서 마신님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마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티미 님. 혹시 최근 어디에 머물렀어요?”

“응?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인간치고는 털이 복슬복슬한 곳이었어. 사방이 산이었고······ 그건 왜 물어?”


털이 복슬복슬.

분명 프로텐시아 연합국 내의 마을이었다.

마신의 등장으로 모험가 길드는 소란스러운데. 소문의 유력한 용의자는 자각조차 없는 모습이라니.


“마, 말해두는데 거기 마을 사람들은 다 착하다고! 진심으로 마신을 숭배하는 사람도 촌장 한 명뿐이었어!”


심지어 이상하게 인정이 많아 보인다.

캣니스는 엄지손가락으로 미간을 꾸욱 압박했다.


“혹시 눈을 뜬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해 줄 수 있나요?”

“어. 그, 그 정도쯤이야 별로 어렵지 않지.”


티미는 본인이 겪은 이야기를 하였다.


“변태 노인에게 희롱당한 뒤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이곳이 인간계에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이곳에는 내게 위협이 될 만한 건 없다고 판단했지.”


그에게 있어 위협이란. 몸을 은신하고 있는 집주인의 변태적 성향뿐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잠든 깊은 밤에 탈출하려고 움직였어. 최대한 조심히 집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방 안에서 잠든 줄 알았던 노인이 걸어 나오지 뭐야.”


캣니스의 안색이 굳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곤란하다는 듯이 웃는 티미를 바라보고 주먹을 쥐었다.

티미는 홀로 있는 노인. 그것도 자신을 희롱한 노인을 어떻게 한 것일까.

설마 정확한 마을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려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의심했다.


“그래서 나는 노인을···”

“죽였군요. 정체를 알아버려서.”

“응? 죽이다니? 내가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넙죽 엎드리더라고.”


적막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

캣니스는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뱉었다.


“···계속하세요.”

“어··· 알겠어. 노인이 넙죽 엎드렸고.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등을 떠밀더라고. 내가 왜 이러냐고 묻자, ‘자신이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라면서 밖으로 데리고 갔어.”


그렇게 티미는 마을 한복판에서 졸린 눈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마신님. 제 소중한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잠이나 자는 건 불경하기에 데려왔습니다.


“당황스러웠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건 가고일 삶에서 처음이었어.”


티미의 노란 눈동자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듯하였다.


-마신님. 부디 한 말씀만···.


“부담스럽기도 하고···. 정체를 밝힐 생각도 없어서 돌 석상인 척했지. 그랬더니···”


-아아, 마신님. 그렇군요. 저한테만 보여주신 은총이었군요. 그렇다면 저도 보답하겠습니다. 마신님께서 저한테만 보여주신···


티미는 아직도 그때의 감각이 남아있는지 귀를 문질렀다.

잘생긴 얼굴을 한참 구긴 뒤에야 설명을 계속했다.


-사.랑.을.요.


“우와···.”


캣니스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긴. 센츄어리 대륙에서 마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그 말이 너무 소름이 끼쳐서 펄쩍 뛰었어. 그랬더니···”


-마, 마신이다!

-마신이 우리를 죽이려고 찾아왔어!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쳤다.

무기를 든 이조차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차라리 잘 됐다 생각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거리낄 것 없이 움직이게 되었으니.”


가고일은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떠올린 듯 입맛을 다셨다.

이에 캣니스는 또다시 표정을 굳혔다.


“마음 놓고 움직이자고 생각한 뒤, 제일 먼저 보인 건 어린 여자아이였어. 먹음직스러운 다리와 툭 건들면 눈물이 날 거 같은 어린아이가 홀로 바닥에 넘어져 있었지. 그래서 나는 곧장 다가가서 그 먹음직스러운 아이를···”

“이···!”


캣니스가 의자를 박차고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어느새 움직인 가더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더 님 막지 마세요! 저 사악한 마족은 어린아이를···!”

“진정해 캣니스.”

“진정하라고요? 어떻게 어린아이를 잡아먹은 괴물을 앞에 두고···!”

“티미는 채식주의자야.”


캣니스는 두 번째로 얼굴을 굳혔다.

그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 채식주의자요?”

“티미는 풀떼기만 먹어. 고기를 먹으면 다음 날 일어날 때 배가 아프다나 뭐라나.”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티미는 벌벌 몸을 떨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네, 네 맞습니다! 고기를 먹으면 밤새 가스가 차서 몸이 터질 거 같다고나 할까요?”


어느새 방구석에서 몸을 떠는 티미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말투도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었다.

캣니스는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먹음직스러운 다리라고 했잖아요···.”

“그, 그건··· 이쪽 표현으로 약하고 귀여운 다리라는 뜻이었습니다.”

“다리가 다친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말이 아니었나요···?”

“네에?!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합니까!”


티미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며 펄쩍 뛰었다.


“세상에! 그런 입에 담기도 힘들고,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끔찍한 생각을! 분명 사천왕님 뿐 아니라 마왕님도 악몽을 보았다며 펄쩍 뛰고 말 겁니다! 해괴해요. 정말로 해괴합니다. 아직 어린아이를 식용의 대상으로 보다니! 그런 해괴한 짓을 생각하는 건 인육이나 탐하는 어느 높으신 악귀일 겁니다! 저는 단순히 넘어진 어린아이를 일으켜 주었을 뿐이라고요!”


스스로 변호하기 위해 빠르게 쏟아낸 말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캣니스의 양심을 푹푹 찔렀다.

결국 캣니스는 또다시 귀를 붉히며 의자로 돌아가서 앉았다.


“계속 설명해주세요···.”


브레드가 측은한 눈빛을 바라보았으나 무시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제일 나쁜 사람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어, 어쨌든 그래서 여자아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이후로 떠날 곳 없어서 도망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랑 며칠을 더 어울리게 됐는데···. 글쎄 여자아이가 꽃을 가져다주는 것을 시작으로 저에게 이것저것 챙겨줬습니다.”


-마신님. 이거 받아줘.

-아이고 마신님. 용안도 좋으셔라. 저희 딸아이 말씀대로 정말로 선하신 신님이시네요~

-크흠. 마신님. 괜찮다면 발가락 하나만 핥아도···.

-되겠냐! 이 변태 노인아!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해봐! 내 옆에 있었던 네 집 물건들 전부 부숴버릴 테니까.

-하악. 가차 없는 질타 감사합니다. 아침에 마신님이 주무실 때 몰래 핥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고 다음 날, 촌장은 실제로 발가락을 핥았다.

그렇게 티미는 며칠 사이에 마을 사람들과 완전히 동화되었다.


“그런데 가고일이여, 여기서 의문이 드는군. 어째서 자네는 기껏 자리 잡은 곳을 버리고 짐마차에 실려 있던 건가?”

“그러게요. 왜 그런 곳에 있었어요?”


브레드와 캣니스가 질문하였다.

이에 티미는 뽀얀 얼굴을 긁적였다.


“아, 그게··· 한 2주 되었나?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마을을 떠났습니다.”

“기분이요?”

“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아서요.”


티미는 가고일 석상이다. 밤이 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가고일.

마계에서야 24시간 밤과 같은 마력 흐름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 활동할 수 있지만, 인간계에서는 아니다.


“그래서 잠자는 사이에 부서지지 않으려면 미리 알아서 숨어야 했죠. 마왕님이 접착 풀로 몸을 붙여주었던 경험은 아직도 떠올리면 진절머리가 납니다.”


캣니스는 티미의 말에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마계에서는 잠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아니었나요? 그런데 왠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래전부터 잠자는 사이에 곤욕을 겪은 거 같은···”

“아, 그건 말이죠···.”


특이하게도 마계에서 마왕성 내부만큼은 인간계와 똑같은 마력 흐름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에는 사천왕 중 한 명이 밤 시중을 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티미는 몇 번의 죽을 고비 이후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마왕성에서 미래 예지에 가까운 능력을 얻었다.

그 놀라운 능력도 마지막 순간에는 성 자체가 무너져 내려서 무용지물이었지만 말이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용사님이 왜 죄송하다는 건가요. 못난 것은 마왕성을 폭파한 나쁜 용사 놈들이지.”

“······죄송해요.”


캣니스의 고개가 더욱 내려갔다.

티미는 그녀가 자책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아, 아무튼. 그렇게 도망친 뒤 며칠 걸려서 산맥을 오르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땅이 진동하더니 그대로···”


이후의 이야기는 유추가 되었다.

움직인 산은 며칠 전에 토벌한 골렘이었고 그 파편에 섞여서 짐마차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다다라서. 가더가 짐마차에 실린 티미를 발견하였기에 이렇게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어, 어때요···? 저, 저를 살려줄 이유가 되었나요?”


티미는 조각상처럼 잘생긴 얼굴로 새삼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채식주의자 가고일의 열렬한 목숨 구걸.

캣니스와 브레드는 서로를 마주 봤다.


“충분해요.”

“충분하네.”


죽이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

티미의 얼굴이 전례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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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74화 재침공 23.06.07 35 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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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72화 재침공 23.06.03 43 0 16쪽
82 71화 재침공 23.05.29 43 0 15쪽
81 70화 재침공 23.05.25 42 0 20쪽
80 69화 재침공 23.05.22 50 0 15쪽
79 68화 재침공 23.05.18 34 0 17쪽
78 67화 재침공 23.05.15 45 0 22쪽
77 66화 재침공 23.05.10 46 0 19쪽
76 65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5 48 0 18쪽
75 64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2 52 0 12쪽
74 63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9 48 0 14쪽
73 62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5 55 0 18쪽
72 61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2 52 0 18쪽
71 60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1 49 0 20쪽
70 59화 옛 인연 23.04.17 55 0 26쪽
69 58화 옛 인연 23.04.12 56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2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5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6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4 0 16쪽
» 53화 길드 23.03.11 61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61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9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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