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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30 08:09
연재수 :
2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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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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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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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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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76화 재침공

DUMMY

76화 <재침공>



“끝난 건가?”


브레드는 쇠몽둥이를 내려놓았다.

피에 젖어 검붉은색이 된 모습은 사막에 사는 소수 민족과 다를 바 없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물들의 도망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몬스터 파도로 인해 부상자도 많고 사상자도 많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들은 사체의 바닷속에서 살아남았다.

몬스터 파도 앞에서 도시를 지켜낸 것이다.


“브레드 형씨. 방금 그건···”

“아마도 그의 것일 터이지.”


브레드는 민머리를 쓸며 뒤를 돌아봤다.

끝까지 지켜낸 가람왕국의 성을 눈에 담았다.

몽둥이를 내려놓은 손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손바닥의 땀은 오랜 전투로 생긴 종류가 아니었다.

조금 전, 몬스터 파도와 맞서던 중에 느껴진 오싹한 기운.

수많은 마물 무리를 도망가게 하고, 금등급 모험가마저 공포를 느끼게 한 살기의 여파였다.


‘드디어 마음이 풀린 건가···.’


그 기운은 아군의 조력이었다.

브레드가 우상시하는 남자의 것이었다.

브레드는 그가 움직였다는 사실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 라니···. 브레드 형씨는 누굴 말하는 걸까냥?”

“우리 길드의 비밀 무기라네.”

“흐냥.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냐.”


영문 모를 답만 얻은 루나는 벌러덩 누웠다.

이미 싸움은 끝난 마당에 오싹한 기운의 정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험가 길드의 숨겨진 전력답게, 작은 상처만 입고 승리했다.

곧 누운 자리에 죽은 피가 흥건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체를 일으켰다.


“후냥. 코가 아프다냐.”


몸에 달라붙은 끈적한 액체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이미 몸 전체가 피범벅이다.

결국 잠깐만 미간을 찡그렸다가 다시 드러눕기를 선택하였다.

이미 엉망인 모습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흐냥. 캣니스는 괜찮아졌을까냐? 벌써 닷새나 지났다냐.”

“걱정하지 말게. 이미 눈을 뜨고 베르길드로 돌아온 모양이니.”

“냐냥? 그걸 브레드 형씨가 어떻게 알까냐?”

“내 근육이 그리 알려줬다네.”


브레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였다.

직접 이야기를 나눈 루나도, 지켜보던 라군도 쓴웃음을 지었다.


“음? 믿지 않는 건가? 내 근육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근육이라네.”

“예이 예. 브레드 공이니 어련히 그러겠지요. 그보다 오크를 들어서 휘두르다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겁니까?”

“그동안의 노력이 보답받은 것이지. 라군, 자네도 가능성이 무궁하니 더욱 증진하는 게 어떤가?”

“하하하. 농담도 참. 제 나이가 몇인데 그 짓거리를 합니까? 제 딸 놈도 다 컸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은퇴하고 농사나 지으렵니다.”


브레드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자네. 기혼자였나?”

“분수에 맞지 않은 아내와 듬직한 딸이 하나 있죠. 아내는 술을 안 마시니 어쩔 수 없지만. 모험을 떠난 딸이 돌아오면 한 번쯤은 술자리를 만들도록 하지요.”

“이리 훌륭한 아버지를 따라 모험가의 길을 걷다니. 분명 이름 높은 모험가가 될 테지.”

“하하! 안 그래도 저번에 모험가 승급 시험에 떨어졌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브레드와 라군은 웃어젖혔다.

통쾌하게 웃으며 돌아가서 술잔을 나누자는 약속을 정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그들의 약속에 동참하고 싶은 여러 모험가가 하나, 둘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에 절은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냥. 다들 저기 봐라냐!”


줄곧 드러누웠던 루나가 상체를 일으켰다.

사투를 벌인 모두가 손끝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해가 뜨고 있다냐!”


몬스터 파도에 맞선 지 닷새째 되는 날.

밤새도록 싸웠던 시간을 지나 아침을 맞이했다.

지겹고 지겨웠던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떠올랐다.


“하하하하. 기사 형씨들. 정말 수고했어!”

“모험가분들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고생했네, 다들.”


지독한 싸움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환호했다.

아름다운 부인과 남편, 술과 유희, 연인과 친구 그리고 행복.

누구나 가지고 있는 행복이 환희에 젖어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들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핏물까지 뒤집어썼지만. 그들의 마음은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그 누구도 그들의 축제를 말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라군의 아리따운 부인이 술잔을 엎어버릴 때까지는 말이다.



*****



“하- 하하하.”


시간은 닷새 전.

모든 기사와 사제들이 숲속을 빠져나간 시간이었다.

숲속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결국 모두 내 뜻대로 되어가는군.”


바솔루트의 비밀기지가 있는 근처 숲속에 몸을 일으켰다.

그는 최근에 다시 복직한 바솔루트의 제1성기사단장 알버스 놀런이었다.

임무 수행 중에 고문을 받고, 중대 규모의 기사를 잃는 꼴사나운 일을 겪었지만, 마지막에는 기어코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어리석은 하등종들 같으니. 신벌에 맞서 최후의 저항을 해보아라.”


알버스는 한쪽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를 토해냈다.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구슬을 손에 쥐고. 그대로 산산조각 냈다.

손가락 사이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숲으로 흘러갔다.

조용하던 새벽의 숲속이 더욱 빛을 잃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욱씬-

한쪽 눈을 가로지른 오래된 상처가 아렸다.

그러나 쓰라린 고통에 비례하여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모든 것은 나의 신을 위해.”


알버스는 유일하게 챙긴 검 한 자루에 입 맞췄다.

줄곧 숨어있던 바위 뒤에서 벗어났다.

이제 곧 베인지역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베인지역에서 생긴 몬스터 파도로, 나라의 중심인 도시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새길 것이다.


“교황이시여. 곧 돌아가겠습니다.”


알버스는 숲속을 걸었다.

목표했던 장소로 거침없이 움직였다.

검은 기운에 이끌린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그를 마주치면 몸을 움츠리고 비껴가기 일쑤였다.


“도착했군.”


마침내 목적한 곳에 도착하였다.

유일하게 마계-타이타닉으로 가는 평지인 마찻길이었다.

알버스는 마찻길에서 살짝 벗어났다.

얼마 안 간 위치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발견하였다.

거대한 나무는 속이 텅 빈 세계수였다.

이미 죽은 나무이며, 흰눈갈가마귀의 둥지이기도 하였다.


“큭. 크크크큭!”


흰눈갈가마귀는 다 큰 성체가 와이번도 잡아먹는 마수이다.

그렇게 강한 마수기에 사람들은 한 가지 착각하곤 한다.

와이번조차 잡아먹는 새이니 당연히 단독으로 활동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견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이걸 발견한 건 크나큰 행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군.”


흰눈갈가마귀는 사냥할 때 단독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사냥할 때만 그러하고, 기본적으로 무리 생활하는 종족이다.

수백 년을 산 네임드가 있는 무리라면 드래곤 성체와도 견주는 게 가능한 마수이다.


‘네임드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


어차피 네임드가 없어도 가람왕국은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둥지 안으로 발을 들이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빛났다.


“자. 이걸로 마지막 조각이 갖춰졌구나. 신의 이름 아래 먹잇감을 찾아 날뛰어라!”


세계수 못지않게 거대한 나무 속에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알버스가 제 손을 찢고 피를 쏟아내자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래. 어째서 익숙한 기운이 내게서 느껴지는 모르겠지. 하지만 의심하지 마라. 개의치 마라. 내가 너희의 주인 될 자이니.”


쏟아진 피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났다.

나무 둥지 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연기가 자욱해졌다.

순식간에 길들인 흰눈갈가마귀 무리 앞에서, 알버스는 하늘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가거라! 오랜 핍박의 역사를 지금. 다시금 써내려 나가는 거다!”


길게 울부짖는 울음소리와 함께 수많은 날갯짓이 공간을 울렸다.

알버스는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이곳에서 맡은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발걸음을 돌려서 흰눈갈가마귀의 둥지를 등졌다.

베인지역의 최악의 마수를 풀어놓고 유유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갑자기 들어온 목소리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우리 고귀한 성기사님에게 알몸으로 마수를 찾는 변태 기질이 있었는지 몰랐는걸?”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

알버스는 곧바로 검을 빼냈다.

목소리가 들려온 위치는 갈가마귀 둥지 저 꼭대기였다.


“여! 알버스~ 거시기에 솜털도 안 났던 애송이가 다 켜서 머리가 희끗희끗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걸?”


달빛에 기대어서 하얀 깃털을 떨구는 소년이 있었다.

묘하게 들뜬 푸른 눈동자가 알버스를 향했다.

알버스는 그를 알아보고 뿌득, 이를 갈았다.


“전설의 모험가 이카루스 토일···.”

“휘유~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가람왕국의 모험가 길드. 어쩐지 너무 완벽한 시기에 자리를 비우나 싶었지. 설마 여태까지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건가?”

“에이. 기다리기는 무슨. 그냥 보물찾기 중에 우연히 만난 것뿐이야. 어디 내가 찾은 보물 한번 볼래?”


후두둑-

하늘에서 여러 구체가 떨어졌다.

알버스는 그 높이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은 구체들을 보았다.

그것은 마석이었다. 누군가의 고의로 땅에 심어뒀던 크나큰 계획의 사전작업물이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마기는 진즉에 정화된 지 오래였다.


“뿌득-”


알버스의 턱이 강하게 맞물렸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스타드 소드에 새까만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빛에 살의가 들어찼다.


“감히 패배한 일족의 떨거지 주제에 위대한 신의 의지를 거스르겠다는 건가?”

“염병하는 소리 하네. 그 시기에는 인간족도 제 허리 못 피고 살았어.”

“하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우리지. 네놈처럼 방랑하며 사는 천인족 도망자들이 아니라.”


알버스의 도발에 이카루스는 싱긋 웃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의 재롱을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그저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오른손을 올렸다.


“그런데 알버스. 내가 너한테 옛날이야기나 해주려 온 건 아니잖아?”


수십 마리의 흰눈갈가마귀가 이카루스에게 날아들었다.

발톱을 세우고 부리를 벌렸다.

마수의 본능에 따라서 둥지에 나타난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싸움을 계시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귀여운 아이의 재롱쯤은 얼마든지 받아줄 테니까.”


날아오르는 새까만 깃털 속에서 하얀빛이 내리쬈다.

하얀빛을 따라서 새까만 마수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치 신에게 도전하다 떨어진 무리의 말로처럼. 날개와 온몸에 구멍이 뚫려서 다시 날지 못했다.

그 무리 위에는 밤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백색 무기가 있었다.


“돌연변이 마력 같으니···!”

“네 사고방식이 돌연변이겠지.”


마기와도 신성력과도 마력과도 다른 힘.

천인족 일부만이 다루는 신력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었다.


“삐이이익.”


마지막 흰눈갉마귀까지 바닥에 추락하였다.

하얀 신력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검이 주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카루스의 주위를 빙빙 돌며 나무 둥지 내부를 밝혔다.


“그런데 알버스. 나이가 많다고 그게 커지는 건 아닌 모양이야. 어떻게 된 게 나보다 작은 거 같아?”

“이놈! 닥쳐라!”


이카루스의 도발에 알버스가 분노했다.

황금빛과 검은빛을 동시에 몸에 두르며 도약했다.


“마기와 신성력의 조합이라. 확실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듯한데.”


이카루스는 하얀 날개를 펴서 더 높이 날아올랐다.

주위를 맴돌던 검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달빛을 반사하는 무기들이 일제히 알버스를 비추었다.


“천벌.”


순식간에 쏟아지는 검의 비.

우천에 휩쓸린 알버스의 몸이 그대로 낙하하였다.

순식간에 갈가마귀의 사체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각났다.


“흐음. 보물찾기 다음은 숨바꼭질인가?”


그렇게 많은 검의 비가 쏟아졌음에도 어딘가로 빠져나간 성기사단장.

이카루스는 태연하게 기지개를 켰다.



*****



“허억. 헉. 젠장!”


알버스는 이를 사리물었다.

그래. 그때부터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추격전이 시작된 날이.


“제길! 망해버린 일족 주제에···!”


알버스가 성기사의 품격을 벗어던진 지는 오래였다.

이 빌어먹을 추격전에서 검 하나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에 이가 갈렸다.


‘적어도 성물을 가져와야 했다.’


현장에서 빠져나가는 데 급급하여 검만 챙겨온 게 화근이었다.

적어도 무장을 제대로 갖췄다면 이렇게 꼴사납게 도망치지는 않았을 거다.


“큿! 이카루스 제정신이냐! 네놈이 이러는 동안에도 네가 그렇게 아끼는 왕국의 사람들은-!”


숲을 가로지르고 날아드는 흰색 창.

알버스는 곧바로 몸을 굴렀다.

이어서 창과 검이 번갈아 날아왔다.

결국 바위 뒤에 숨어있던 일을 그만두고 숲속을 달렸다.


‘젠장. 옛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리다니!’


이카루스 토일.

그를 지칭하는 단어는 많았다.

소년 모습의 길드장, 몰락한 일족의 후예, 전설적인 파티의 모험가, 용사의 조력자.

그러나 많고 많은 이명 중에서 그를 일컫는 가장 확실한 단어는 하나였다.


“산에 빌붙어 먹고 살던 사냥꾼 주제에!”


사냥꾼.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의 모습.

일전에 그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산에서 최소한의 문명을 갖추고 살았다.


“역시 네놈은 악마다! 여신의 천벌을 받을 악마이다!”


그때의 악취미를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 악취미는 몰이사냥을 빙자한 장난.

금방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을 마지막까지 몰아붙인 뒤에야 죽인다.

행위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인륜적 문제로 언급될 정도였으니.

직접 사냥당하는 이의 마음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내가 이런 수모를···!”


알버스는 치를 떨었다.

알몸으로 숲속에 풀어져서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 장난에 어울릴 수 없어서 공격을 허용했다가 일말의 자비 없이 심장을 꿰뚫렸다.

신성력이 넘쳐나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서 즉사였다.

이런 식의 반항이 도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최소한의 쉬는 시간만 얻어내며. 목숨을 위협받고, 위협받고, 위협받았다.


‘그곳··· 그곳으로 가면······’


그러나 상황이 그에게 마냥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알버스는 관통당한 배를 치유하며 달렸다.

이곳은 베인지역. 조금만 더 가면 이카루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있다.


‘타이타닉으로만 가면 놈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제아무리 전설의 모험가라도 단독으로 마계를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을 터.

그 뒤에는 준비한 수를 써서 바솔루트로 복귀하면 되는 일이었다.


“크읏! 빌어먹을!”


그러나 그 과정이 험난했다.

발목에 박힌 창을 빼내고 다시 달렸다.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

제 꿍꿍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여 마계로 가는 게 관건이었다.


“네놈이 빼앗은 마석은 극히 일부다! 당장 네놈이 없으면 가람왕국은 멸망할 터인데!”


쐐액.

또 창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앞쪽에 날아와서 퇴로를 차단했다.


“걱정하지 마. 가람왕국의 모두는 강하거든.”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약을···!”

“글쎄. 솔직히 내가 마석을 제거한 일도 괜한 행동이라 생각하는데.”

“오만이다! 비겁하게 숨어서 싸우지 말고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응. 그러진 않을 거야.”


검이 날아왔다.

창이 날아왔다.

간발의 차로 피했다.

마찻길을 곁눈질하며 달렸다.

알버스는 실컷 몸을 구르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쪽으로 더 달려.”


조롱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겪어본 적 없는 치욕에 이가 갈렸다.


“좀 더 빨리 못 달려? 그래. 더 빠르게. 그렇게 쭉 달려.”


알버스는 이 상황이 분하면서도 안심됐다.

이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사냥에 몰두했다는 거니까.

이 길이 마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도 모르고.

이 속도라면 금방 마계에 도달할 것이다.


‘이 일은 잊지 않겠다.’


달리는 동안에 이를 사리물었다.

이런 굴욕을 안겨 준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성전을 위해 몇백 년을 준비해왔다.’


이를 위한 첫 발걸음을 맛보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프로텐시아의 연합국이 거슬린다만. 어떻게든 그들까지 싸잡아서 쓸어버릴 수 있다.


‘그래. 가능하다.’


어떻게든 본국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무사히 가람왕국에서 벗어나 바솔루트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이런, 이런. 근처 마을에서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얼굴을 봅니다. 알버스 경.”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알버스는 그동안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마석에 이끌리는 건 베인지역의 마물뿐이 아니다.

수십 개의 마석이 만들어낸 마기는 베인지역 너머의 마계에도 닿는다.

그런데 경계선에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에 단 한 번 마물과 부딪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빠른 길로 달리던 것도, 마물을 조우 하지 않던 것도 모두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서였다.

타이타닉과 센츄어리의 경계선에, 백금발의 짧은 머리카락과 무테안경이 빛나는 거대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거대한 어깨에 성인 크기만 한 기요틴을 메고 있었다.


“꽤 지독한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군요. 알버스 경. 그래도 자진해서 찾아온 건 참으로 잘한 행동입니다.”


죽음을 달고 다니는 그가 움직였다.

알버스는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새까만 하늘을 등진 거대한 몸집의 신부. 그 손이 얼굴을 움켜쥐었다.


“끄. 끄아아아악!”

“알몸으로 쫓겨 다닐 정도로 처량한 모습이라니. 아주아주 쌓인 이야기가 많은 거 같으니 천천히 나눠보도록 하지요.”


알버스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카루스에게 잡혔어야 했다.

가람왕국에게 항복해도 좋았고, 그 망할 마법사랑 사제에게서 죽어도 좋았다.

그럴게. 눈앞의 남자에게만큼은 절대로 붙잡혀서는 안 됐으니까.

그를 피하려고 가람왕국에서의 일을 서둘렀으니까.


‘그렇군. 이번만큼은 정말로 몰이사냥이었던 건가.’


왜 죽이지 않나 했다. 왜 돌아가지 않나 했다. 설마 자신을 상대로 장난치는 건가 했다.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이카루스는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거다.

자신이 그와 마주하기를.

그가 자신을 발견하기를.

그의 손에 자신이 죽어주기를.

처형자, 알렉산드로스의 처형장으로 이끌고 가는 게 그의 노림수였다.


“지저스 아가페테오스.”


그가 말했다.

여신에게 기도한 순간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성직자의 고문법은 실로 고전적이기에.

알버스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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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79화 그의 비밀 23.06.28 42 0 19쪽
89 78화 이안류 23.06.23 72 0 25쪽
88 77화 이안류 23.06.20 3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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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68화 재침공 23.05.18 37 0 17쪽
78 67화 재침공 23.05.15 47 0 22쪽
77 66화 재침공 23.05.10 47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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