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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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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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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67화 재침공

DUMMY

67화 <재침공>



전시 상황 못지않은 긴장 상황을 유지하는 궁전.

왕가의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에서는 살벌한 공기가 감돌았다.

현 가람왕국의 국왕, 칼투스 14세는 직접 맞이한 손님을 마주했다.

국왕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튀어나왔다.


“자네들. 드디어 미친 건가?”


상대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발언.

마주한 왕가의 손님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미치다니. 왜곡이 심하군요.”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40대는 족히 넘어가는 애꾸눈 성기사.


“우리는 아주 정당한 권리로. 바솔루트 왕국의 사절을 살해한 불한당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조금의 꺼릴 것도 없다는 목소리.

칼투스 14세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바솔루트의 방문은 예정되어있었다. 그들을 매장할 외교를 철저히 준비했다.

그런데 가람왕국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다는 짓이 성기사를 풀어서 이전 사절단을 살해한 사제를 찾는다.

성전이라는 핑계로 웃기지도 않는 일을 벌였다.


“시간이 지나도 범죄자를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무려 추기경을 살해한 중죄인데 왕국에서는 잡으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합의 없이 멋대로 벌인 행위.

얼핏 들으면 사제만 찾고 물러나겠다는 소리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리 없었다.

사제를 붙잡은 뒤에는 과연 어떤 억지를 부릴지.

이토록 뻔한 수작을 부리고 있거늘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음이 분했다.


“저희가 얼마나 가람왕국의 방어선에 신경 쓰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그들과 등지기에는 가람왕국의 손실이 컸다.

명령 한 번에 가람왕국 전력의 30퍼센트가 깎여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왕은 발톱을 숨겨야 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부탁에 어울리는 한이 있더라도.


“추기경을 살해한 자는 내 따로 병사를 풀어 찾아보겠네. 그러니 난동은 이쯤 부리고 조용히 접대나 받으며···”

“하하하. 제 말을 어디로 들은 겁니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을 끊었다.

그러고 쏟아낸다는 말은 억지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긴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저희 제 1성기사단 모두 짐승 알레르기가 심하여서, 길게 끌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이해 부탁드립니다.”

“자네들. 이건 엄연한 월권이라는 걸 알고 하는 짓인가!”

“큭. 재밌는 소리를 하십니다. 전쟁을 치르자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범죄자 하나 잡겠다는데. 금방 끝내고 돌아갈 테니 일말의 걱정도 하지 마시죠.”

“네놈···.”


국왕은 분노로 주먹을 그러쥐었다.

건들거리는 태도나 왕가를 우습게 보는 말버릇이나. 성기사의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그들이 일전에 전보 쳤던 저번 일을 사죄하러 온다는 거짓부렁이에 넘어갔음이 뒤늦게 속이 쓰렸다.


“그래. 어디까지 기고만장하는지 보자꾸나.”


그러나 그들의 속셈에 마냥 당할 생각은 없었다.

칼투스 14세는 의자의 팔걸이를 세게 쥐었다.

노년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악력이 팔걸이를 우그러뜨렸다.


‘무엇이 그리 똥줄 타는지 모르겠다만.’


그는 얼마든지 인내하기로 했다.

애꾸눈의 성기사는 잘 숨겼다고 생각했겠지만, 현왕의 눈을 속이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고집을 부릴 정도로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모습.

여유로운 태도를 연기하지만 속은 조바심 나는 게 눈에 훤했다.

그렇기에 평온을 연기하는 가면이 무너질 때까지만 이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복수를 다짐하며 이마에 돋은 핏줄을 진정시켰다.

훗날에 앙갚음할 모독을 머릿속에 새겼다.

감히 잠자던 맹수의 털을 건드린 죗값이 무엇일지.

휴식기에 접어든 국왕의 눈빛이 오랜만에 날카로운 이채를 띠었다.



*****



“브레드 형씨!”


베르길드의 문이 열렸다.

브레드가 황급히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한창 운동하던 중이었던 지라 땀 범벅인 브레드 머슬릿.

어떠한 연락도 없이 찾아온 손님들을 보고 당황해하였다.


“형씨! 캣니스! 캣니스는 어디에 있는 거냥!”

“루나여. 일단 진정하도록 하게.”


우선 잔뜩 흥분한 루나를 달랬다.

그런 뒤에는 그녀가 부축한 두 사람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냐! 지금 바로 캣니스와 셰인을···”


루나는 모험가 길드가 겪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바솔루트의 성기사가 가람왕국을 습격했음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셰인과 바네샤를 부축하는 일을 도왔다.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도록 하지.”


그들의 상처가 중상임을 확인하고 빈방으로 안내하였다.

막 닫힌 정문에서 몸을 돌린 그때였다.


“이봐! 대머리 모험가!”


또다시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에이린 프런티어와 그에 상반되는 검푸른색 머리카락인 자일리 톨스가 뛰어왔다.

두 사람은 꽤 긴 시간을 달린 건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에이린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대머리 모험가! 캣니스! 캣니스 못 봤어?”


브레드를 발견하고 붙잡았다가, 상처투성이인 모험가 길드의 세 사람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에이린. 자네는 또 무슨 일인가?”

“아···. 저것들이 미쳤어! 바솔루트 성기사단이 셀레브리디 교단 사람이라면 닥치지 않고 잡아들이고 있다고!”


마법 물품을 사러 나갔다가 본 상황을 이야기했다.

거리에 퍼진 이상한 분위기, 셀레브리디 사제를 짓밟는 성기사들.

어떻게든 눈앞에서 일어난 참상은 막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다.

그 후로 그들이 찾는 사람이 캣니스 임을 알고 바쁘게 돌아왔다.


“빨리 숨겨야 해. 저것들 제정신이 아니야!”


마탑의 마법사라고 밝혔음에도 미행을 붙였다.

어떠한 나라에서도 마탑의 마법사에게 이런 대접을 하지 않는다.


“미행? 설마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인형을 세워뒀으니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을 거야.”


미행은 손쉽게 따돌렸다.

하지만 이곳의 위치를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캣니스는 어디에 있어? 이 소동이 잠재울 때까지만이라도 다른 곳에 있어야 해!”


그들이 먼저 찾아오느냐. 아니면 캣니스가 먼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느냐.

바솔루트가 아무리 눈에 뵈는 게 없다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으음. 이거 곤란하군,”


그런데 브레드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애매한 답변에 에이린과 루나가 경악했다.


“설마 집에 없는 거냥?”

“지금 밖에 있다고?!”


브레드는 민머리를 매만졌다.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네. 오늘 티미가 보이지 않기에 그녀가 몸소 놀아주러···.”

“이런 미친! 당장 데리고 와야 해!”


바솔루트의 행동은 과거의 마녀사냥을 방불케 했다.

이런 일에 당사자가 붙잡히면 작은 소란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꼬맹이! 통신석 뒀으니까 캣니스가 돌아오면 바로 연락해!”

“어? 어···? 스승님은 어디로 가는···”

“몰라서 묻냐?! 캣니스를 찾아서 데려와야지!”


에이린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를 따라서 루나도 부랴부랴 망토를 뒤집어쓰고 뛰어나갔다.


“브레드 형씨! 나도 다녀올 테니 바네샤와 셰인을 부탁한다냐!”

“잠깐 기다리게.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는 게.”

“안 된다냐. 이 저택에는 형씨밖에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없다냐! 가더 형씨도 오늘은 외출을 삼가라고 전해줘라냐! 바솔루트가 또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냐!”


루나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갑작스레 일어나는 상황에 브레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일어설 수 있겠는가?”

“아, 네. 그런데 저보다 바네샤 씨를 부탁해요···.”


창백한 안색의 셰인이 다리를 절뚝이며 일어섰다.

브레드는 제 발로 걸으려는 그녀를 다시 앉혔다.


“걱정하지 말게. 두 사람 모두 챙길 터이니.”


두 팔로 바네샤와 셰인을 안고 손님방으로 올라갔다.

뒤따라서 자일리도 의료 물품을 챙겨서 2층으로 올라갔다.

상황이 긴박해서인지 평소보다 로비가 적막했다.

미세하게 열린 문틈으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



“언니. 왠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요.”


평소보다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골목길.

아이의 말에 곧장 걸음을 멈췄다.

캣니스는 여덟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골목길을 가로지르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이상하리만치 겁을 먹고 주위를 살폈다.


“다들 무섭게 소리 지르고 있어요···.”


공교롭게도 캣니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귀가 예민한 수인 아이였기에 들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서둘리 나가도록 해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목적지까지 서둘렀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이 골목길은 평소에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위화감은 있었다.

불길한 느낌을 애써 외면 한 채 다음 모퉁이를 돌려던 그때였다.


“닥치고 따라와!”

“꺄악!”


한 집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기사로 보이는 남성이 여성의 머리카락을 끌고 나왔다.

캣니스는 황급히 아이들을 뒤로 물렸다.

담장 뒤로 몸을 숨겼다.


“언니···.”

“쉿. 아기님. 우리 잠깐만 조용히 있을까요?”


캣니스는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숨겼다.

조금 전의 놀란 아이들을 달래주었다.

그러고는 벽 하나를 둔 채 현장을 염탐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엄습하였다.


“언니··· 저 아저씨 왜 저래요?”

“글쎄요.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기사. 끌려가는 여성.

평소의 그녀였다면 앞으로 나섰겠지만, 아이들이 함께 있는 이상 위험한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이봐. 저기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느새 기사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더 나타났다.

그들은 정확히 캣니스와 아이들이 있는 모퉁이를 두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확인해볼까?”


그냥 지나간다는 선택지는 고르지 않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였다.


“아기님들. 언니랑 하나 약속할까요?”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조우는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곧장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아이들은 당황할지언정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약속의 증표인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약속해요. 저기까지 달려가는 거예요. 오늘 무사히 집에 돌아가면 다음에 만날 때 맛있는 간식을 사줄게요.”


끄덕.

아이들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둘···”


숨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모퉁이 너머까지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봐 거기···.”


상대도 누군가 있음을 눈치챘다.

캣니스는 곧바로 아이들의 등을 밀었다.


“셋! 가세요 얼른!”

“이봐 너! 지금 무슨······”


기사가 발견한 것과 동시에 그녀도 움직였다.

그의 팔을 붙잡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금발과 푸른 눈동······!”


신성력을 주입하여 단번에 제압했다.

약간의 반발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휙 돌아갔다.

흰자위를 드러낸 채 타인의 신성력을 받아들인 여파로 몸을 떨었다.


“이봐! 거기 무슨 일이야!”


이상한 낌새를 보고만 있을 동료가 아니었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거리낌 없는 발소리가 다가왔다.

캣니스는 뒤쪽 골목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무사히 도로로 나갔다.

이제는 마음 놓고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절시킨 기사의 망토를 들쳤다.


‘바솔루트···!’


익숙한 왕국 휘장이 시야에 담겼다.

또다시 엮여온 악연에 혀를 내둘렀다.

빠르게 성기사의 망토를 뺏어서 뒤집어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봐! 거기 웬 놈이냐!”


발각되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빠르게 골목을 누비며 그들을 따돌릴 만한 장소를 찾았다.


‘여기서 오른쪽···’


다음 모퉁이에서 골목 사이를 가로지르며 환한 빛이 보이는 길로 달렸다.

이 골목만 지나면 마차가 다니는 훤한 대로가 있었다.


‘따돌렸···’


뒤에 따라오는 성기사를 따돌렸음에 기뻐하던 찰나였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무슨···”


무사히 벗어난 줄 알았는데 경악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몰려있는 사람들. 수군대는 사람들. 어딘가를 손가락질하며 도리질하는 사람들.

그들 틈으로 보이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두 명이 아닌 바솔루트 성기사가 사람들을 겁박하고 있었다.


‘이건 설마···!’


그 대상은 대부분이 셀리브리디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교황이 아닌 셀레브리디 여신을 따르는 신자들이었다.

이 순간, 어째서 바솔루트가 이곳에 있는지. 어떠한 목적을 가졌는지. 그들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했다.


“이봐! 저기도 있어!”


주춤. 캣니스는 뒷걸음질 쳤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동정, 측은지심, 불만, 혐오.

부정적인 감정은 바솔루트 성기사만 향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을 끌어들인 사제들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잡히면 안 돼···!’


이 순간 깨달았다.

도로의 많은 사람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잡힌다면 최소 납치. 대중 앞에서 마녀사냥까지 당할 수 있었다.


“어이! 거기 붙잡아!”


캣니스는 다시 골목 안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한 번 따돌렸던 성기사와 마주쳤지만, 단번에 제압하고 도망쳤다.


“이쪽! 이쪽으로 갔다!”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골목을 달리면 포위되는 데까지 시간문제였다.

판단을 내리고 신성력을 운용하여 높이 뛰었다.

네모난 지붕에 올라탄 뒤, 밑에 들려오는 소리에서 멀어지기 위해 건물 위를 뛰어다녔다.


-쐐액


“윽!”


그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온갖 수를 동원하였다.

타 왕국의 도시에서 화살까지 쏘는 만행을 보였다.


“맞았다! 한 발 더 쏴!”


캣니스는 화살을 뽑고 치유하였다.

순식간에 새살을 돋아나게 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도망가는 동안 생각했다.

성기사가 다른 왕국의 도시에서 저지르는 만행이 오래 갈 리 없었다.

이곳도 왕국의 크기가 작기는 하나 프로텐시아 연합국 중 하나.

바솔루트가 잃는 것이 더 많은 싸움이다.


“붙잡히지만 않으면 돼. 할 수 있어. 캣니스.”


스스로 몇 번이고 되새겼다.

붙잡히지만 않으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깡충깡충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최대한 지붕 위쪽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조금 여유가 생기자 의문이 들었다.

도시를 헤집는 성기사의 인기척은 수백 명에 가깝다.

다른 나라에서 이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에 맞는 인물이 찾아왔을 터.


‘그렇다면 분명···’


붙잡혔을 때의 몸의 안위는 그렇다 치고. 기사단장 급만 되어도 그녀의 신변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게 불가능하게 되고. 좋으나 싫으나 정체가 들통날 거다.


‘그것만큼은 안돼···!’


그렇게 되면 몸이 무사해도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아직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정착했는데···!“


드디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어깨를 나란히 할 동료를 찾았는데.

또다시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제 의지를 박탈당하는 곳에서 다시 서고 싶지 않았다.


“누구··· 꺄악!”

“허억··· 헉···. 죄. 죄송해요···.”


캣니스는 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줄곧 찾고 있던 빨간 지붕. 셀레브리디 교단의 기성복을 판매했던 옷 가게였다.


“죄송해요. 죄송한데 제가 조금 급해서···. 제 옷에 맞는 옷 좀 아무거나 주시겠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에 들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셀레브리디 교단을 찾는 방법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교단의 문양과 소문에 의지한 고전적인 방법.

그렇기에 지붕 위로 시선을 끈 뒤, 사제복을 갈아입을 곳으로 들어왔다.


“빨리 아무거나요!”


사태가 시급하여 재촉했다.

성기사의 망토를 미끼 삼아서 가게에 들어왔지만. 망토 안의 텅 빈 내용물을 확인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어서 빨리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제 요청을 못 들었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결국 스스로 맞는 옷을 찾아서 몇 개 집었다.

곧장 눈여겨본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살게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상의와 치마.

당장 살 수 있는 돈은 없기에 펜과 종이를 빌려서 베르길드의 주소를 적었다.


“나중에 이곳으로 청구하세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곁눈질하고는 빠르게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서 묶었다.

이대로 나가기에는 기절시켰던 성직자의 말이 신경 쓰였다.


-금발에 푸른 눈···


이미 찾고 있는 사제가 금발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졌다는 정보는 얻어낸 모양.

거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챙 모자까지 썼다.


‘당장 왕국으로 가는 건 위험하니 브레드 님을 만나야 해.’


베르길드의 사람과 접촉할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지금 거리에 퍼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왕과 알현해야 했다.


‘후우. 좋아, 해보자!’


캣니스는 완벽하게 변장했다.

거리로 나가기 위해 가게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당장 보이는 건 도로 너머에 서 있는 두 명의 성기사.

머리카락은 모자가 가려주고 눈동자 색은 보일 거리가 아니니.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너였구나?”


그때였다.

영문 모를 힘이 손목을 낚아챘다.

잠시 당황한 사이에 몸 전체가 바깥으로 끌려갔다.


“자, 잠깐만요···. 이게 지금 뭐 하는···!”


캣니스가 문턱을 붙잡고 버텼다.

코앞에서 원망 어린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왜···.”


영문 모를 적의에 당황하였다.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옷 가게 주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여인의 입에서 원망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때문이야.”

“네···?”

“너 때문에 내 남편이 끌려갔어!”


캣니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 옷 가게의 주인도 성기사의 손에 피해받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인은 사랑하는 남편이 붙잡힌 이유가 캣니스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잠시만요! 지금 저들이 이러는 이유는···!”


옷 가게 앞의 소란을 성기사가 눈치챘다.

그들은 집을 조사하는 일을 미루고 서서히 다가왔다.

거리가 좁혀옴에 따라 마음도 초조해져 갔다.

평소에 모험가와 많이 어울리면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바솔루트? 걔들이 왜?


직접 모험가 길드의 일을 겪지 않았다면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남편을 빼앗긴 부인의 처지에서는 제 모습이 끔찍한 범죄자로 보이는 것이다.


“신자님 잠깐만. 잠깐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저들은 제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저 아무나 계략에 이용할 희생양을 찾아서···”

“그게 내 남편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틀렸다.

설득하기에는 여인의 상황이 절박했다.

여인을 돕고 싶지만, 절박한 건 캣니스도 마찬가지다.

캣니스는 여인과 성기사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결단을 내렸다.


“미안해요···.”


손을 뿌리치고 여인을 밀었다.

성기사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뒤를 돌았다.

다행히 거리의 성기사가 적어서 도망칠 경로가 많았다.

제일 안전해 보이는 길로 달려가려던 그때였다.


“살인자···. 살인자야 너는···.”


우뚝.

또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당장 도망가야 했지만, 여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음산한 느낌이 드는 두 눈동자를 보았다.

불안한 기분이 엄습하였다.


“네가 내 남편과 나를 죽였어.”


손에는 옷을 재단할 때 쓰는 가위가 있었다.

여인은 캣니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매를 접었다.


“자, 장난치지 마세요···.”

“장난치는 거로 보여?”

“제발··· 제발 그러지 마세요···.


캣니스는 애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의식중에 깨달았다.

이윽고 여인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움직였다.


“신자님···!”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 못 한 찰나. 스스로 목에 가위를 들이밀었다.

도망가야 하는 일도 잊고 여인에게 달려갔다.


“대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몸이 제가 할 일을 알고 먼저 움직였다.

피범벅이 된 손을 붙잡고는 가위를 내동댕이쳤다.

가위의 날이 목을 관통했던 상태다.

상체를 숙이게 하고 옷소매를 찢어서 목에 덧댔다.

여인이 숨이 막히면서도 목소리를 냈다.


“끄윽. 끅···. 너도. 너도 아파봐야 해···.”


악의로 가득 찬 한마디에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하지만 기분과 별개로 차근차근 치료했다.

목 안쪽으로 피가 넘어가지 않게 단단히 붙잡았다.

신성력을 사용해 상처를 치유했다.

이제는 성기사의 추궁에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혀가 말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돈이 없던 시절에도 외상으로 옷을 쳐준 선한 사람들이다.

셀레브리디 여신을 모시는 이상, 자신의 사정에 휘말린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치료가 막바지에 다다른 그때.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기 너! 잠깐 따라와라!”


얌전히 상처를 치료할 때까지 기다려줄 성기사들이 아니었다.

캣니스의 팔을 붙잡았다.

어깨를 잡아끄는 힘에 반항하며 더욱 손을 뻗었다.

하지만 힘을 쓴 게 무력하게 뒤로 끌려갔다.


“이거 놓으세요! 잠깐이면! 잠깐이면 된다고요!”


성기사들은 자비가 없었다.

발버둥 치는 그녀를 두 사람이 제압했다.

필사적으로 여인에게 닿으려고 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수면제를 묻힌 손수건이 숨을 막았다.

수면 향에 취하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안돼. 안돼···.”


끝까지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수면 향에 끝까지 저항하려다가, 멀리서 달려오는 성기사들을 발견하고 정화의 힘을 멈추었다.

눈꺼풀이 닫히는 상황을 내버려 두었다,

당장 여인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터였다.

힘없이 떨어지는 제 손을 지켜보았다.

남편을 잃고 궁지에 몰린 여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기를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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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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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79화 그의 비밀 23.06.28 40 0 19쪽
89 78화 이안류 23.06.23 68 0 25쪽
88 77화 이안류 23.06.20 33 0 16쪽
87 76화 재침공 23.06.16 44 0 18쪽
86 75화 재침공 23.06.13 35 0 24쪽
85 74화 재침공 23.06.07 35 0 25쪽
84 73화 재침공 23.06.03 35 0 11쪽
83 72화 재침공 23.06.03 43 0 16쪽
82 71화 재침공 23.05.29 43 0 15쪽
81 70화 재침공 23.05.25 40 0 20쪽
80 69화 재침공 23.05.22 50 0 15쪽
79 68화 재침공 23.05.18 34 0 17쪽
» 67화 재침공 23.05.15 45 0 22쪽
77 66화 재침공 23.05.10 46 0 19쪽
76 65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5 48 0 18쪽
75 64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2 51 0 12쪽
74 63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9 48 0 14쪽
73 62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5 55 0 18쪽
72 61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2 51 0 18쪽
71 60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1 49 0 20쪽
70 59화 옛 인연 23.04.17 55 0 26쪽
69 58화 옛 인연 23.04.12 56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2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5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6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4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60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60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9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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