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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08 23:16
연재수 :
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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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2
추천수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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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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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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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57화 옛 인연

DUMMY

57화 <옛 인연>



베르 길드 모두가 외출하였다.

술 냄새로 찌들어있던 전날과 다르게 상쾌한 얼굴로 밖에 나섰다.

그들은 모험가 길드로 향하는 동안, 가람왕국에 찾아온 새 소문에 관해 이야기했다.


“브레드 님. 소식 들었어요?”

“바솔루트에서 사절단을 보낸다는 말 말인가?”


바솔루트 신성 왕국은 다시 한번 가람왕국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관해서 자세히 밝혀진 내용은 없지만. 칼투스 14세가 바솔루트에게서 사죄 편지를 받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듣기로는 가람왕국 국왕님이 저번 일을 정식으로 따졌기 때문이라 하더라고요.”

“칼투스 14세가 단단히 분노했었다네. 프로텐시아 연합국이 바솔루트와의 무역을 끊었을 정도의 행동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번 일로 마력석이 많지 않은 바솔루트에게는 좋은 벌이 될걸세. 보게나, 벌써 그쪽에서 상벌의 효과가 있지 않은가?”

“그렇군요. 그래서 바솔루트가 사죄 차원에서 사절단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바솔루트가 더 혼났으면 좋겠네요.”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 칼투스 14세도 그동안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이니.”


캣니스와 브레드는 웃었다. 그 뒤를 따라서 자일리와 가더도 걸어오고 있었다.

어엿한 모험가가 된 네 사람은 베르길드라는 이름을 달고 한없이 부상하였다.

얼마 안 가서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였다.

접수처에 선 바네샤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이카루스 님이 저희를 찾아요?”

“그래, 오늘 아침에 도착하셨거든. 오자마자 너희를 찾으셨어.”


바네샤가 말해줬다.

출장 갔던 이카루스 토일이 돌아왔다. 분명 모험가 길드에게도 모험가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그런데 캣니스는 그의 복귀에 반가움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무언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접한 걸까요?”


캣니스의 정체를 아는 이카루스가 모험가 길드 본부에 갔다 오자마자 호출한 일.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이 모두 모이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만큼. 어떠한 소식을 들고 왔을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우리의 길드 창설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지.”

“그렇네요···.”

“그것도 아니라면 밥 한번 먹자는 의도일 수도 있지 않은가?”


브레드가 그럴듯한 농담을 던졌다.

덕분에 조금 긴장했던 캣니스는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네요. 그럴 수 있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당사자와 만나서 이야기해야 했다.


“지금 올라가면 될까요?”

“응. 언제든 오면 찾으라고 했어.”


바네샤가 2층 집무실을 가리켰다.

베르길드 인원은 길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여~ 잘 지냈어?”


길드 집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기 직전에 문이 열리더니, 길드의 책임자가 직접 그들을 반겼다.

이카루스는 여전히 소년 같은 모습으로, 넉살 좋게 이야기했다.


“이야~ 소식 들었다고, 브레드 머슬릿. 드디어 네 이름으로 된 길드를 꾸렸다며.”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 예전에 했던 이야기와 달라서 실망했는가?”

“아니. 전혀. 오히려 이렇게 의욕을 되찾은 모습을 보게 되니 굉장히 기쁜걸. 은퇴 후의 삶도 좋지만 브레드는 충분히 현역이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래서 오늘 우리를 부른 건 무슨 용건이지?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않겠나?”


두 사람은 지켜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편히 말을 주고받았다.

남은 이야기를 안에서 마저 하자며. 브레드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아, 잠깐만.”


문을 여는 브레드를 이카루스가 저지했다.

행동이 가로막혀 당황하는 브레드에게, 이카루스는 주의사항을 알렸다.


“들어가기 전에. 먼저 온 손님에 대해 알아줬으면 해서.”


브레드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먼저 만나던 손님이 있었는가?”

“응. 여기까지 모셔 오는데 아주 고생했어.”

“그러면 조금 있다가 다시 오도록 하지. 밑에 있을 터이니 용건이 끝나면···”

“아니야, 아니야. 너희들을 부른 이유가 내가 데리고 온 손님과 만났으면 해서거든.”


앱솔루트 왕국에서 이카루스가 고생하면서 데리고 온 손님.

그 손님과의 만남을 권장했다.

그런데 극진히 손님 대접할 정도면 꽤 직위가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누군지 호기심이 동하는 가운데, 이카루스가 캣니스를 돌아봤다.


“캣니스 양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에요.”

“저랑요?”

“네, 아마 한눈에 알아보실 거예요.”


캣니스는 눈을 멀뚱멀뚱 떴다.

혹시 그가 데려온 사람이 셀레브리디 신전의 사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저번 바솔루트 왕국의 사절단 건도 그렇고, 이번 신화시대의 골렘 건도 그렇고. 본교의 성직자를 데리고 올 이유는 많았다.


‘사제라면 누굴까?’


캣니스는 같은 교단의 사람이 손님이라면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성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줄곧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녀는 말이죠. 아주아주 섬세한···”


-벌컥


그때, 길드장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캣니스의 눈에 보인 건,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기가 짙은 호박색 눈동자였다.


“아···!”


캣니스는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 벌어진 입은 좀처럼 다물리지 않았다.

이카루스의 말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손님이었다.

손님 쪽도 그녀를 알아봤다. 캣니스와 시선을 맞추고 표정을 굳혔다.

이내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캣니스···?”

“에이린 님···.”


이카루스가 데리고 온 손님은 에이린 프런티어였다.

마왕 토벌 당시에 차기 마탑주 후보이자, 용사의 화력 담당이었던 마법사.

그리고 마왕성에서 캣니스에게 자폭 마법을 걸은 장본인이었다.


“너 살아있었어···?”


성큼, 그녀가 다가왔다.

캣니스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안색은 하얗게 질려서. 수세에 몰린 생쥐처럼 몸을 떨었다.


“캣니스. 살아있었으면 왜 한 번도···”


에이린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캣니스는 또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옛 동료를 알아본 것과 별개로 이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이성을 집어삼켰다.


“캣니스··· 나··· 나를 기억해···?”


에이린이 처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행색은 과거와 많이 변했다.

더 이상 그녀는 어깨선을 기준으로 자른 단발머리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올려 묶어도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예전의 에이린은 이런 수심 깊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 언제나 밝게 웃는 장미 같던 존재가 왜 궁지에 몰린 자의 눈빛을 갖게 되었는지···.

이 이상 알고 싶지 않다.


“손대지 마세요!”


다가오는 손길을 단번에 쳐냈다.

거절당한 에이린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캣니스는 감히 상처 입은 표정을 한 옛 동료에게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


“에이린 님. 당신은 어째서.”


말하다 말고 꾹 입을 다물었다.

마치 더 이상 말을 나누기도 싫다는 듯이 대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캣니스!”


복도를 가로지르는 속도는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고, 조금 전까지 그곳을 향해 달려갔던 캣니스가 뛰어내렸다.

브레드가 황급히 부서진 창가로 달려갔지만. 분명 밑으로 떨어졌을 캣니스는 온데간데없었다.


“어이, 브레드! 키 큰 못난이도 뛰쳐나갔어!”


뒤쪽에서도 자일리가 소리쳤다.

도망치듯 사라진 캣니스. 1층 로비로 뛰어내린 가더.

총체적 난국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에 어리둥절하였다.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에이린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용사를 위해 희생했다는 소문과 다르게, 마탑주와 성직자 사이에서 감동적인 재회는 없었다.

그저 충격과 공포. 타인을 배척하는 감정만 가득한 만남이었다.


-짝


이카루스가 손뼉을 쳐서 주의를 끌었다.

집무실을 열고. 그들에게 들어오라는 몸짓을 보였다.


“자, 다들.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요?”


이카루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에이린을 부축했다.

베르 길드의 두 사람에게도 들어오라 손짓하였다.

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자일리와 다른 곳을 신경 쓰던 브레드 머슬릿도, 권유에 마지못해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복도 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클레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또 일을 벌이셨네요.”



*****



캣니스는 달렸다.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가쁜 숨을 뱉어냈다.

에이린과 있던 자리에서 도망친 그녀는, 머릿속에 남은 의문을 지우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였다.


‘이카루스 님은 어째서···.’


이카루스는 캣니스의 정체를 알았다.

정체를 밝히기를 꺼리는 행동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 에이린 프런티어를 눈앞에 데리고 왔을까.

에이린이 아무렇지 않게 제 몸에 불 마법을 사용하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그저 세간의 이야기처럼 극적인 만남을 기대했던 걸까? 이카루스가 의도한 바는 그뿐인 걸까?


“캣니스!”


답은 알 수 없었다.

한때 괜찮은 줄 알았던 마음이, 여전히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살인자.

-끔찍한 년.

-죽어버렸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복받쳤다.

왜 아직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알 수없었다.

확실한 건 자신은 여전히 제자리였고. 과거의 망령은 끊임없이 자신을 진창에 처박는다는 것이었다.


‘왜. 왜. 왜. 왜!’


뛰어난 신성력도 이런 때에 쓸모가 없었다.

신성력은 마음을 이겨내는 힘 따윈 갖고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는데 처참한 심정이 되었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쳤거늘.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진 기분이었다.


“캣니스!”


내달리던 팔이 붙잡혔다. 몸이 뒤로 돌려졌다.

캣니스는 발작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이, 이거 놔!”


팔을 빼내기 위해 악을 썼다.

그러나 팔이 빠지기는커녕 더욱 몸이 잡아끌렸다.


“캣니스! 정신 차려!”


코앞에서 큰 소리가 났다.

곧 정신이 들고.

히꾹, 딸꾹질이 나왔다.


“문지기님···.”


눈물로 얼룩진 시야 너머로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그녀의 동행자 가더였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괜찮아?”


가더는 그녀를 붙잡고 말하였다.

상냥한 목소리와 걱정이 가득한 눈동자로 말하고 있었다.

뚝. 뚝.

그에게 붙잡힌 팔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탓에 몸도 옷도 엉망진창이었다.


“말해, 캣니스. 뭐가 그렇게 힘든 거야?”


마음조차도 엉망이었다.

옛 동료와의 재회에서 도망친 주제에 가더를 보고 위로받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 여자 때문이야?”

“아니에요.”

“그러면 뭐 때문에 그래?”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본심은 그의 말대로 에이린을 탓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건 그녀의 일이었다. 그까지 추악한 고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캣니스 나를 봐.”


대답이 없자 가더가 캣니스의 볼을 감쌌다.

평소에 그녀가 자주 썼던 방식이었다.


“나를 못 믿어?”


그 말에 허를 찔렸다.

캣니스는 자신이 했던 생각들이 전부 변명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심은 그녀가 아끼던 사람들이, 옛날에 있던 일처럼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질까 봐 두려운 거다.

사제복 앞에 둔 두 손을 그러쥐었다. 끝내 동행자의 설득에 못 이겨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무서워요···.”

“어떤 게 그런데?”

“문지기님이, 자일리 님이, 브레드 님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저를 다른 눈으로 볼까 봐 무서워요···.”


그녀가 외면했던 진심을 밝혔다.

과거에 용사가 저질렀던 폭력보다는,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게 두려웠다.


“전. 정말 이기적이에요.”


캣니스는 쓸쓸하게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분명 그의 손에 구해졌을 때 어떤 일이 생기던 감내하겠다고 다짐했던 캣니스였다.

가더가 자신을 버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각오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지금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겨우 얻어낸 평온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싶어질 정도의 집착을 느꼈다.


“문지기님. 저는 사실···”


또르륵.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뭔가, 뺨을 문지르던 캣니스는, 곧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는 문지기님이··· 흐윽··· 저를 버리고··· 흑 ··· 에이린 님에게··· 잘해줄까 봐···.”

“난 또 뭐라고.”

“···문지기님도··· 저를··· 벌레 보듯이··· 하면··· 그때는···.”


가만히 말을 듣던 가더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캣니스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느라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무언가 고민하던 얼굴인 그가 한숨을 쉬며 이름을 불렀다.


“캣니스.”


참아왔던 둑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캣니스. 내 말 좀 들어줘.”


펑펑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제야 그녀도 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나는··· 여전히 너희 인간들 생각을 모르겠어. 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무서워하는 거지?”


가더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언제나 너를 지켜줄 거고. 너는 나를 먹여 살려야지. 그게 우리가 나눈 맹세 아니었어?”


그 말에 캣니스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나누었던 맹세가 그런 의미였나 되돌아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니 그만 울어. 네가 자꾸 그러니까 없던 살의도 솟아나려 한다고.”

“히꾹···.”

“그렇지. 장하다 캣니스.”


난데없는 칭찬에 캣니스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눈물은 온데간데없이 쏙 들어갔다.

평소에 그녀가 해왔던 행동을 이런 식으로 되돌려 받을 줄 몰랐다.


“그러니 제발 누군지도 모를 여자 때문에 아파하지 마. 나에 대해 잘 알잖아. 마왕성이 무너질 때까지 수호했던 문지기라고?”


가더는 캣니스를 안아 들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처음에 캣니스가 경악하였지만,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면서 괜한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자는 둥. 아직도 기분이 안 좋으면 꼬치라도 먹으면서 기분을 풀자는 둥 그녀를 꾀어냈다.

캣니스는 그의 회유를 듣는 동안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안겨본 적 없는 그녀였는데, 다 크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이렇게 안기다니.

심지어 어린아이 다루듯 달래지는 것 같아서···.

슬펐던 기분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났다.


“문지기님··· 저 때문에 화를 내줘서 고마워요.”


그가 해준 위로에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정말로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무얼 요 정도 가지고. 티미가 말했던 고민은 훨씬 끔찍한 수준이었는걸.”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가더는 마왕성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티미의 말도 안 되는 하소연을 일일이 답 해야 했던 문지기의 고충을 고스란히 이야기했다.


“저는 괜찮아요, 문지기님.”


캣니스가 말했다.

가더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에 진심을 전했다.

가더는 자신의 의도가 들통난 게 멋쩍은지 고개를 돌렸다.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요.”


캣니스는 그의 목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직은 힘들지만 분명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이토록 좋은 사람이 함께 있으니.


“캣니스 이것 좀 마셔봐.”


가더가 목이 아플 그녀에게 음료수잔을 건네었다.

당연하게 음료수를 받아서 홀짝였다.


“네··· 히꾹. 문지기님. 그런데 이건···?”

“아, 이거? 너구리가 슬플 때 마시는 거라고 예전에 이야기해서.”


캣니스는 한 모금 마신 음료의 정체에 말문이 막혔다.

자리에 앉아서 술통 하나를 가뿐히 비우는 술꾼이 슬플 때 마시는 음료가 뭐가 있겠는가.

술이다. 그것도 엄청 도수가 높은 술.

캣니스의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으응. 문지기님···.”


그 탓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였다.

제 발로 걸을 수 있다며 그의 어깨를 밀쳤는데. 땅바닥에 서고 얼마 안 가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탓에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는 모양새가 되었다.


“푸우. 저는 계속 문지기님에게 도움만 받아요···.”


어리광을 부리는 캣니스.

가더가 등을 토닥였다.

그는 자꾸 기분이 좋다가도 슬퍼하는 그녀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경 쓸 것 없어. 나는 너를 지키는 문지기야. 문지기는 지키는 사람이지. 걱정이나 받는 직책이 아니라고.”

“피이. 거짓말.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사랑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니. 그런 건 뇌가 철판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나 가능하다고요.”


캣니스는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러다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신경 쓰이는지. 잔뜩 미간을 찡그린 채 그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그러니 안아줘요.”


자꾸만 하지 않을 부탁을 하는 건 술에 취했기 때문일 터였다.

캣니스는 그의 품에 안겨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에게서 이따금 서글픈 숨소리가 나오면은. 잊지않고 가더가 그녀의 등을 문질렀다.


“항상 고마워요, 문지기님···.”


이 말을 끝으로, 캣니스는 눈꺼풀을 닫았다.

찾아오는 졸음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한낮에 술을 마시고 잠든 그녀를 깨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그래. 캣니스.”


가더가 잠에 취한 캣니스에게 속삭였다.

살아있음이 분명한 심장의 고동에 집중하며.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한 사람의 존재에 위로받는 건 그녀뿐이 아닐지 모른다.

그녀가 깨어난 건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



끔뻑. 눈을 감았다 떴다.

낮, 밤 그리고 아침.

캣니스는 어떻게 숙소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악몽을 꾸지 않고 깊이 잠든 건. 거주지를 바꾼 이후 처음이라고 새삼 놀랐다.


“왠지 손이··· 문지기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따듯한 온기가 손바닥을 감싸고 있었다.

제 손보다 몇 배나 크고 단단한 손이다.

놀랍게도 손의 주인은 가더였다.


“잘 잤어 캣니스?”


심지어 그녀보다 훨씬 빨리 깬 듯 보인다.

분명 각방이 있는데, 굳이 그녀의 침대 옆에서 잠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있어 준 덕분에 자신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모양이다.

가더가 일어서더니, 줄곧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았다.


“아··· 네, 잘 잤어요. 문지기님.”


캣니스는 저릿한 왼손을 문질렀다.

아직 남은 열기를 얼굴로 가져갔다가, 괜히 얼굴을 붉혔다.


“조, 좋은 아침이네요. 문지기님!”


그가 문을 열자 새벽의 공기가 방 안을 환기했다. 그제야 술에 절었던 정신도 온전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최소한의 천만 제 몸에 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더워진 캣니스가 바쁘게 손부채질하였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난데없이 그가 말했다.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캣니스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챘다.


“아니요, 이제 도망가는 건 지긋지긋해요.”


에이린 프런티어와의 재회.

어제의 만남이 짧았으니. 그녀는 또다시 자신을 만나려 할 것이다.


“문지기님. 잠시 뒤돌아주시겠어요?”


캣니스는 길게 늘어뜨렸던 금빛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질끈 묶었다.

벗어두었던 사제복을 입고, 그 위에 회색 망토를 걸쳤다.


“됐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만나야 할 일이었어요.”


캣니스는 망토에 묻은 티끌을 털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도망쳤지만, 오늘은 아니다.

매일같이 잠을 설치게 한 악몽도 이 정도나 꿨으면 지겨웠다.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자, 출발해요.”


모든 것은 용사가 아닌 캣니스 센츄어리로 당당히 남기 위해서.

옛 동료와의 인연을 청산할 각오를 다졌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4/12 수정. 정말 뛰어난 글을 밥 먹듯이 뽑아내는 작가분들 리스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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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54화 길드 23.03.25 60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58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59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8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1 0 11쪽
60 외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23.02.26 65 0 10쪽
59 49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21 73 0 17쪽
58 48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7 63 0 13쪽
57 47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3 68 0 14쪽
56 46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0 50 0 13쪽
55 45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8 56 0 14쪽
54 44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4 53 0 11쪽
53 43화 던전 23.02.01 56 0 11쪽
52 42화 던전 23.01.29 56 0 18쪽
51 41화 던전 23.01.26 56 0 21쪽
50 40화 던전 23.01.25 59 0 17쪽
49 39화 던전 23.01.13 65 0 15쪽
48 38화 던전 23.01.02 7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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