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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20 23:25
연재수 :
199 회
조회수 :
11,430
추천수 :
130
글자수 :
1,500,812

작성
23.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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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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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4화 다시 한번 던전

DUMMY

64화 <다시 한번 던전>



“자일리 님!”


푸른 마력석과 붉은 마력석이 만나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 그때.

캣니스는 자일리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온 세상이 하얗게 점멸했다.

눈을 감기 직전에 익숙한 손길이 어깨를 잡아끌었다.


“캣니스.”


한 번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동행자의 품 안이었다.

캣니스는 정신을 차리고 그의 몸에서 멀어졌다.

두 눈을 뜨고 본 세상은 하얗다.

조금 전까지 던전 안에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 광활하고도 아득한 새하얀 광경이 펼쳐졌다.

땅을 딛고 서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점 같은 존재가 된 듯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며 가더의 손을 꼭 붙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뒤를 돌아봤지만 하얀 배경뿐이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없어. 정신 차리고 나서는 너와 나밖에 없었어.”

“무언가 보이거나 느껴지는 건 없나요?”


가더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른 게 없었다.

갑자기 새하얀 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유가 무엇일지. 이전 일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였다.


“캣니스. 저거.”


팔랑.

새하얀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물체가 있었다.


“나비···?”


나비는 돌연히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부터 이 공간에 있었던 존재인지. 아니면 공간 밖에서 들어온 존재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공간이 만들어낸 무언가일지.


“일단 쫓도록 해요.”


그들은 일단 나비의 행방을 추적하기로 했다.

가더가 그녀를 품에 안고 걸어갔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나비의 날갯짓이 멈추었다. 그 앞에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이건···!”


캣니스는 가더의 팔 안에서 뛰어내렸다. 곧바로 신성력 창을 만들었다.

놀란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밖에 없던 공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문지기님. 혹시 제가 이상해진 걸까요? 분명 조금 전까지는···.”

“아니. 나도 그래.”


나비가 날갯짓을 멈추기 전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비가 땅에 착지한 순간. 한 사람의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중요한 건 사람이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고 인식하는 부분이었다.

그 사람은 돌 위에 앉아 있었고 풀잎을 입에 문 채 풀피리를 불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런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거늘.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느꼈다.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는 간격이 문제였다.

너무나 자연스레 나비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칫 의식을 돌리면 바뀐 지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다.


“무언가 말하고 있어요.”


돌 위에 앉은 남자는 입술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지만 확실히 무언가 말했다.


“······해···좋은 선물을 해줬으면 하는데?”


또 다.

캣니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자연스레 그가 듣는 말을 듣고 있었다.

허리를 덮을 정도로 긴 금발 머리카락과 여름 하늘 같은 눈동자. 정체불명의 남자는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동안에 하얀 공간은 풀과 나무 그리고 동물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것들이 채워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

미지의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손바닥 안이 땀으로 젖어갔다.

남자가 캣니스 쪽을 보았다.

캣니스가 긴장한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브···. 기다리고 있었어······왔구나.”

“네?”


설마 이 이상한 남자가 말을 건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선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그녀가 보이지 않는 듯.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시선.

알아채기 무섭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캣니스가 뒤를 돌은 그때, 금빛 머리카락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어?”


캣니스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멍한 눈빛으로 조금 전에 자신을 통과한 인물을 바라봤다.

남자의 외견과 헷갈릴 정도로 닮은 여성이 있었다.

다만 여성의 머리카락은 목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정리된 단발이었다.


“또 여기에 있구나? 하여간 너는 모험심이라는 걸 모른다니까.”

“···브······.”


이쯤 되니 캣니스도 알았다.

두 사람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단편적인 목소리만 들린다는 것을.

그 외에도 이 공간이 무언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정보가 있을 때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브···. 또 어디서 다쳐왔구나?”

“다쳐온 게 아니라 영광의 상처라고! 힝. 난 네가 부럽다. 넌 나 덕분에 다칠 일이 없잖아.”

“···브···. 손 이리 줘.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다쳐온 거야?”


캣니스는 그제야 여성의 손을 보았다.

여성이 지금껏 감추려고 했던 왼손은 뼈와 살이 뒤엉켜 뭉개져 있었다.

그 상처로 용케 저렇게 밝게 행동할 수 있구나 놀란 것도 잠시. 남자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걸 보고 얼굴을 굳혔다.


“무슨? 저게 신성력···?”


분명 환영 비슷한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남자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옆에 선 가더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곤두선 피부를 진정시키려 팔을 문질렀다.


“히이. 역시 ···아···가 최고야. 다른 애들은 까칠해서 힘 보여주기도 꺼린다니까?”


여성은 여전히 밝게 웃었다.

상처투성이 손은 흉터 하나 남지 않고 말끔히 나았다.

무릎이나 옷에 있던 잔인한 흔적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캣니스 못지않은 정화의 신성력이었다.


“···브···. 솔직히 말해.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윽! 또 혼내는 눈빛···. 이번엔 난 잘못 없어! 저번에 단군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축하하러 간 거뿐이라고!”

“···브···. 호랑이 중에서도 단군은 자식 사랑이 특별한 종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네 성격에 그냥 축하만 했을 리는 없고. 그 기다란 송곳니가 머리를 으스러뜨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으으. 하지만 나도 아기 보고 싶었다고···. 숨겨서 안 보여준 개들이 치사한 거지.”

“···브···.”

“알겠다고! 제대로 사과할게! 치잇. 나는 그냥 아기를 보고 싶었을 뿐인데 치사해!”


여성이 벌떡 일어섰다. 혀를 쭉 내밀고는 남자를 보지 않고 뛰어갔다.

남자는 한참을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 봤던 자세 그대로. 하지만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피가 묻은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미약하게 웃던 조금 전과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시여. 어째서 저 아이에게 아픔을 주셨습니까.”


옆을 돌아본 그는 허공에 중얼거렸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공간인데. 그가 이야기하는 걸 보면 그곳에 누군가 있다고 느껴졌다.


“···저 아이의 아픔을 알게 한 당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남자의 말을 끝으로 본래의 하얀 공간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녹음이 우거지고 풀 향기가 가득했던 숲이라고는 믿기 힘든 변화였다.

캣니스는 가더의 손을 잡았다.

범상치 않은 공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나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또한 아까부터 몸 안의 신성력이 조절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폭주할 것처럼, 둑이 무너진 강물처럼 제어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더의 손을 빌렸다. 그의 힘이 신성력을 억누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또다시 숲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바뀐 풍경도 이쯤 되니 익숙해졌다.

캣니스는 목소리가 들린 뒤쪽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 아래서 조금 전의 여성의 외형을 보며, 어느 한 부분이 크게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이거 봐! 나도 배가 불렀어!”


여성은 숲을 달려서 남자의 허리를 안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이제 나도 아기를 볼 수 있는 거야?”


소중히 배를 쓰다듬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못해 거룩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과 상반되게, 남자의 얼굴에는 자욱하게 그늘이 져 있었다.


“···브···. 이게 무슨···.”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의 반응.

여성은 상처 입을 만도 한데 맑게 웃었다.


“우리 저번에 함께 잤잖아! 그동안 많이 먹어서 살이 쪘나 했는데! 갑자기 오늘 쿵. 하고 이렇게!”


남자의 손을 겹쳐서 부른 배 위에 올렸다.

아기의 태동을 느꼈는지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흐트러진 남자의 머리를 보며 여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아하하하! ···아···. 이젠 당신도 아빠가 될 수 있어!”


그러나 여전히 밝은 그녀의 목소리와 다르게 남자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질 뿐이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보는 눈빛이 계속되자. 여성도 그의 기분을 눈치채고 조용해졌다.


“···브···. 이건 아니야···.”


남자가 처음으로 제대로 꺼낸 말.

여성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무언가 잘못된 거야. 우리 빨리 ······에게 가자. 아기를 갖다니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아···!”


목소리가 끊겼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짐작되었다.

캣니스는 그녀가 화를 내고 있음을 알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너와 내 첫 아이라고! 드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가족을 가질 수 있게 됐는데! 어떻게 아빠인 네가 그런 말을···!”


실망스러움과 슬픔이 가득한 눈물을 흘렸다.

여성은 남자의 가슴에 연신 주먹질했다.

남자는 주먹이 아프다기보다는 그녀가 운다는 사실이 괴로운 듯. 그녀를 껴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해. 괜찮아. 전부 잘 될 거야.”


꼭 껴안고 건네는 위로의 말.

남자가 여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흰색 풍경으로 돌아왔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캣니스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쩐지 그들의 감정에 억지로 공감되는 기분이라 좋은 경험이 아니다.

그에 반해 가더의 얼굴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과민반응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일까요?”


캣니스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직접 겪어본 바로 이 공간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건지는 알았다.

하지만 이 공간의 궁극적인 목적성은 알 수 없었다.


“함정이라면 대부분 파해법이 있을 텐데요.”


정신을 공격하는 함정일 경우, 환상 속에 정답이 있기 마련이다.

당하는 이의 가장 약한 심리적 부분이 마법의 파혜법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떠한 악의도 찾아볼 수 없어요.”


자신과 이 공간 사이에 어떠한 연결점도 찾지 못하였다.

굳이 이곳에서 느껴지는 악의를 찾는다면. 금발의 두 사람을 보고 느끼는 그녀의 감정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체 모를 불쾌함과 폭력성이 내면에서 고개를 내밀려 하는 느낌.

그러나 마법과 연관된 감정은 아니었다.


“차라리 에이린 님이 함께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체계적인 무언가로 구성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에이린의 전문 분야인 마법과 술식 해석에서의 천재성이 빛을 발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캣니스는 뒤를 돌았다.

이미 조금 전부터 풍경이 변해 있었다.

정글 한 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신전.

이번에는 풍경 속에서 금발의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오라는 거겠죠?”


굳이 아무도 없는 신전 앞에서 내버려 뒀을 리는 없다.

분명 신전 안에 무언가 있으니 직접 찾아보란 의도였다.


“피 냄새가 나. 캣니스.”


가더가 툭 한마디를 뱉었다.

미세한 피 냄새에 캣니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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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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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66화 재침공 23.05.10 45 0 19쪽
76 65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5 46 0 18쪽
» 64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2 50 0 12쪽
74 63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9 47 0 14쪽
73 62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5 54 0 18쪽
72 61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2 50 0 18쪽
71 60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1 48 0 20쪽
70 59화 옛 인연 23.04.17 54 0 26쪽
69 58화 옛 인연 23.04.12 55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1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4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5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1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58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59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8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2 0 11쪽
60 외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23.02.26 65 0 10쪽
59 49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21 73 0 17쪽
58 48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7 64 0 13쪽
57 47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3 69 0 14쪽
56 46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0 50 0 13쪽
55 45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8 56 0 14쪽
54 44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4 54 0 11쪽
53 43화 던전 23.02.01 5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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