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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30 08:09
연재수 :
2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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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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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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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74화 재침공

DUMMY

74화 <재침공>



‘아파···.’


캣니스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다.

몸부림칠 정도의 고통이지만 손가락 하나, 눈꺼풀 하나도 꼼짝하지 못했다.

이는 무리한 신성력을 사용한 여파였다.

주어진 힘에 만족하지 않고 생명력까지 끌어다 쓴 대가였다.

기사단장의 존재를 멸하고 다시금 불러오는 기적이 지금 제 처지에 얼마나 분에 넘치는 행위였는지를 처절히 깨달았다.


‘아파··· 아파··· 아파요···.’


이렇게나 아픈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데 몸이 고장 난 것처럼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윽고 내장이 꿈틀 움직였다.

목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졌다.

용암이라도 뱉은 듯이 목이 쓰라렸다.


-캣니스? 어째서?! 분명 안정되어 있었는데?


목소리와 함께 낯선 기운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마취라도 한 듯이 통증이 덜어졌다.


-젠장. 인체 재생? 아니면 마나 공급? 고위사제를 불러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반대로 몸은 한결 편안해졌다.

눈물이 날듯한 통증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러나 익숙한 이의 목소리는 더욱 초조해했다.

주위에 안정되었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블루. 캐스팅을 도와! 공간이동의 리스크를 나에게 돌려! 육체 강화와 마나 상실 방지 술식도 그리고, 내 몸을 보호하던 마력도 그쪽으로 돌려. 젠장! 시간이 부족해!


분주하게 에이린이 움직이는 광경이 있었다.

여러 빛깔의 마나가 형형색색 공간을 채웠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광경 속에서 이물질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건 온몸을 검은 기운으로 두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거대한 주둥이를 벌려서 주위의 마력을 집어삼켰다.


‘도망쳐요···!’


똑똑히 위험이 드리우는 광경임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위험을 알리려 하는데 알릴 방법이 없었다.


-잡았군.


에이린이 마법에 집중하느라 등 뒤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목을 붙잡힐 때까지도 반응하지 못했다.

오색찬란했던 마력이 검은 기운에 집어삼켜졌다.

에이린의 기운이 사라졌다.


-으. 으윽···!


이내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참아내는 소리가 생겼다.

주위에 빛나던 모든 마법진이 사라졌다.

공기를 떠돌던 잔류 마력이 제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 본능이 발동했는지. 에이린의 몸으로 돌아갔다.


-캣니스··· 캣니스···.


이내 공간에는 자신을 제외한 한 사람만이 남았다.

검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홀연히 떠나갔다.

에이린은 당장이라도 마기에 잠식당할 듯한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성치 않은 몸을 움직여서 제 앞까지 다가왔다.


-죽으면 안 돼···.


체내의 남은 마력을 사용했다.

분명 그녀도 알 터였다.

마력을 사용하면 제 몸을 잡아먹는 마기를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였다.

제 생명을 갉아먹을 마력을 사용하며, 다시금 만든 마법진에 술식을 새겨넣었다.


-미안해. 웬만해서는 같이 가려 했는데···.


시야가 점멸하기 전까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얼굴은 아쉬움의 감정이 아니라 후련한 미소였다.


‘어째서 당신은···’


캣니스는 에이린을 향해 물었다.

목소리가 닿지 못했지만, 부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살릴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사랑해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



꿈뻑.

캣니스는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처음으로 느낀 건, 굉장히 슬픈 꿈을 꾼 거 같다는 소감이었다.

이내 햇빛이 얼굴에 드리우는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 수많은 손. 코를 간질이는 동물의 털. 약초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는···”


캣니스는 몸을 일으켰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어느 교단의 신전이었다.

내부에 여러 동물이 있는 광경을 봤을 때, 프로텐시아의 신전임이 분명했다.


“제가 왜 이곳에···”


캣니스는 기억에 남은 마지막 단편을 되짚었다.

기억에는 흐릿하게 빈 부분이 있었다.

분명 마지막 기억에서 바솔루트에게 붙잡혀갔고. 끌려간 장소에서 에이린과 루나를 만났다.

그 후의 기억이 안개가 낀 뜻 불확실했다.


“윽!”


갑작스레 두통이 느껴졌다.

두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누군가가 머릿속을 때리는 듯한 울림.

마치 잊은 부분을 빨리 기억해내라는 듯이 더 크게 뇌를 울렸다.


-네가··· 전해줘···


잊었던 한 마디를 떠올렸다.

그 후의 있던 모든 일을 떠올렸다.

잊고 있던 부분을 되찾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멈췄다.

두 눈에서 인지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에이린 님은요?”


지난 기억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자리에 없는 이름이 나왔다.

그 질문에 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유일하게 곁에 있는 사제를 바라봤다.

그 사제는 무언가 망설이더니, 눈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시작된 거군요···.”


처음 와보는 신전. 주위에 즐비한 부상자. 그리고 공중에 떠도는 긴장된 분위기.

가람왕국의 사투가 시작되었음을 눈치챘다.

바솔루트가 불러들인 악몽과 가람왕국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바솔루트가 원하는 대로 몬스터 파도가 일어난 것이다.


“자매님께서 눈치채신 대로 그렇습니다. 그래도 칼투스 14세께서 전날 밤에 공성전을 지시하셔서 큰 피해는 없는 와중이죠.”


한 사람이 복도를 걸어왔다.

강아지 귀와 꼬리를 가진 남성이었다.

그는 말했다.

가람왕국 전체가 몬스터 파도와 맞서고 있다고.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옷차림의 수인이었지만. 미약하게 느껴지는 신성력이 그가 사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큰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네요.”


캣니스는 아직 큰 피해가 없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전령 역할을 하는 사람이 늦게 일어나서 걱정했는데. 이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했다니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앞선 사제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상대방이 깊이 관찰하는 눈빛이기에 물었다.

그제야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제 실수를 인지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직 제 정체도 밝히지 않았군요. 저는 프로텐시아 여신님의 사제입니다. 이름은 이유가 있어 밝히지 못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셀레브리디의 자매님.”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손을 내밀었다.

이는 프로텐시아 교단의 특징이었다.

복장의 규정을 자유로이 하는 것.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

다행히 캣니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별 말없이 얌전히 손을 맞잡았다.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사제의 마음 안에서 그녀에 대한 호감이 살짝 좋아졌다.


“프로텐시아의 어린 동물을 뵙습니다. 그런데 에이린 님은···”


캣니스가 그에게 물었다.

이에 본인을 프로텐시아의 사제라 소개한 남성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으음. 셀레브리디의 자매님께서 말씀하시는 마법사님은 이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매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만남은 미루는 편이 좋겠습니다.”


잔잔한 말투였지만 캣니스의 불안했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말은 기억 속의 끝이 좋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상태가 위중한 건가요···?”


캣니스는 참담한 심정에 고개를 숙였다.

하얀 모포 위로 주먹을 그러쥐었다.

프로텐시아 사제는 침묵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곧 어린 종자가 나타나 그의 귀에 말을 속삭였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사제들과의 회의가 있다는군요.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지금! 지금 뵙게 해주세요!”


캣니스가 그의 옷을 붙잡았다.

회의가 있어 떠나야 한다는 그를 멈춰 세웠다.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에이린 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이런 전시상황에서 사제 한 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에이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에 프로텐시아 사제가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부탁하는 눈빛이 마냥 애처롭지만은 않고, 나름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사제는 어떠한 대답을 할지 고민한 끝에 답을 들려주었다.


“웬만하면 미루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디 이 행동이 무리해서 하는 게 아니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캣니스의 부탁은 받아들여졌다.

곧장 캣니스는 신전에서 제공한 하얀 사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쪽입니다.”


캣니스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사제의 등을 따라갔다.

흰색과 겨울 조경이 어우러진 프로텐시아 여신의 신전을 거닐었다.

이곳을 보금자리 삼은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신전을 걷는 동안에 궁금해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법사 일행을 데리고 온 고양이 수인분이 몬스터 파도와 맞서기 위해 전장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전까지 캣니스 양의 곁을 지키던 소년과 중년의 모험가도 성 외곽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루나 님, 자일리 님, 브레드 님이 전장으로···.”

“네, 미리 대비했다지만 가람왕국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나마 위태로운 소식이 없다는 점을 위안거리로 삼고 있죠.”


얼핏 보기에 프로텐시아 신전은 평화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 평화 속에서 어느 때보다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캣니스는 가슴 앞에 둔 주먹을 그러쥐었다.

스멀스멀,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응어리를 강제로 억눌렀다.


“이쪽입니다. 잠시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데려간 곳은 한겨울에도 푸른 잔디가 무성한 숲이었다.

주위에는 신성력으로 구성된 투명한 막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가 먼저 발을 들이고, 뒤따라서 캣니스도 들어갔다.

숲에 발을 들이자 약간의 탈력감이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웬만한 사제는 제자리에 구토할 정도로 어지러움을 호소하는데 말이죠.”


캣니스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사제가 솔선수범하여 숲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 신비로운 공간에 관해 설명하였다.


“성직자라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성역입니다. 여신의 축복이 내려진 땅은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충만한 신성력으로도 가치가 있는 공간이죠.”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이런 공간에 에이린 님이 있다는 건.”

“그 일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프로텐시아 사제는 에이린의 상태에 대해서 미리 언질 않았다.

그만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따스한 배려를 받은 만큼이나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는 힘들 터였다.

푸른 정원과 다르게 캣니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자, 도착했습니다.”


걸음을 멈춘 사제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의 몸 너머에는 현실적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숲의 요람을 보는 듯하였다.

중앙의 원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자란 나무들.

천막을 친 듯이 둘러싼 덩굴 식물과 꽃들.

중앙을 가득 채운 자연 이끼. 그런 자연이 만든 침대 위에 누워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에이린 님···?”


그녀의 몸에는 하얀 천이 덮어져 있었다.

얼굴까지 덮은 하얀 천 밑으로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에이린 님!”


캣니스는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름을 다시금 입에 담았다.

한 발짝 앞으로 내밀고 간절한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길이 닿기 직전, 다른 사람의 손에 가로막혔다.


“아직 안 됩니다.”

“어째서···.”


자신을 막은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사제 두 명이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에이린의 옆에 자리하여 손수건에 성수를 듬뿍 적셨다.

기도문을 외우며 경건하게 손을 씻었다.


“심장은 뛰고 있습니다만 그 상태가 결코 좋지 못합니다.”


이어진 광경에 캣니스는 숨을 삼켰다.

두 사제가 에이린의 얼굴에서 천을 치웠다.

얼굴에는 끔찍한 문양이 있었다.

문양은 얼굴, 목, 가슴, 배, 허벅지, 발끝과 손끝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왜···,”


캣니스 또한 그 증세를 몇 번이고 봤었기에 문양의 출처를 금방 알았다.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의 안배라기에는 너무나 참혹했다.


“대체 왜 마족화의 문양이···.”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보다 더 밑바닥을 마주했다.

그에 비해, 눈을 감은 에이린의 표정은 너무나 편안했다.


“사제가 데려왔을 때는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마족화를 막아보고는 있지만. 이미 5할 이상의 생명력이 마기와 융합되어 있습니다.”

“그런··· 거짓말이죠···?”

“누군가 체내에 직접 마물의 독을 주입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몸이 본능적으로 마족화를 거부하겠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작용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캣니스는 주먹을 떨며 그녀를 보았다.

에이린의 몸이 마족화를 막지 않은 이유,

지난 기억 속에 그 답이 있었다.


“나 때문에 대체 무슨 짓을···”


완전한 진실을 선고받자 다리가 풀렸다.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그녀를 부축했다.

캣니스의 시선은 에이린에게서 떠나갈 줄 몰랐다.

무언가 해낸 듯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목이 졸리는 거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모습 보이려고 제 앞에 돌아온 거예요···?”


슬픈데.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온 건 원망의 말이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상대를 비난했다.


“대체 왜···”


캣니스가 아는 에이린은 항상 강한 사람이었다.

시련에 처하여 무너질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누구보다 강인하게 고난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와의 끝이 좋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

이런 곳에서 쓰러질 사람은 아니었다.


“알아요. 다 저 때문이었겠죠···.”


사실 캣니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건 캣니스 본인이었다.

에이린은 자신을 위해서 위험을 자초했다.

이번 일에 관하여 조금의 연관성도 없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습니다. 성역에서 나오는 성수로 몸을 정화하는 일 정도밖에요.”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슬픔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또한, 주어진 시간의 끝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이제 어떤 식으로 죽게 하겠습니까?”


사제가 눈앞에 선택지를 들이밀었다.

그 선택지는 잔인했다.

살리겠다는 희망을 꿈꾸게 두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품을 헛된 희망을 버리게 종용했다.


“괜한 희망을 품고 마족이 된 그녀를 죽이겠습니까? 아니면 적어도 인족으로서 죽게 두겠습니까?”


잔인한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마족화가 진행된 사람을 구할 방법 같은 건 없었다.

마족화가 진행된 사람은 발견 즉시 그 자리에서 죽이게 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을 자비롭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떻게 죽이겠냐고요···?”


하지만 캣니스는 현실을 부정했다.

온갖 감정으로 그러쥔 주먹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에이린 님은 절대 저 때문에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분명 약속했다.

절대로 캣니스 때문에 죽지 않겠다고.

이대로 에이린이 죽는다면 일전에 나눈 약속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제가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겠어요.”


캣니스는 각오를 말했다.

이런 마지막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다시 한번 등을 떠밀리고 말지. 이런 죽음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신전에 머무는 동안 어느 정도 회복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셀레브리디의 자매님! 지금 이게 무슨!”

“건들지 마세요-!”


캣니스가 당황한 사제의 손을 뿌리치고. 에이린을 향해 팔을 뻗었다.

성수 없이는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피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졌다.


“자매님! 당장 그만두세요!”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호통쳤다.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를 자각시켰다.


“이미 마족화가 진행되는 사람에게 손을 대면 모르는 겁니까?!”


마족화는 전염된다.

마족화가 진행되는 신체는 마기의 덩어리이다.

오랜 시간 동안 호수에 기름을 부으면 본래의 성질이 흐려지듯이. 장시간 접촉한 사람도 마족화로 오염된다.


“어서 떨어지십시오! 지금 자매님이 하는 일은 마법사님도 원치 않는 일입니다!”


사제는 위험을 자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외쳤다.

하나 소리만 지를 뿐. 그 접촉을 강제로 떼어낼 수 없었다.


“크읏! 자매님!”


신성력과 접촉한 마기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그녀가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두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흉흉한 마기 속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가 몹시나 애달파서, 보는 이조차 가슴이 미어질 정도였다.


“괜찮을 거예요, 에이린 님···.”

“서, 성기사를 불러오겠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프로텐시아의 사제 두 명이 증원을 부르러 갔다.

맨 처음 캣니스를 안내했던 사제만이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저 때문에 약속 못 지킨다고 변명하게 둘 생각은 없어요···.”


이윽고 마기가 한층 더 흉흉해져 시야를 방해했다.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신성력을 사용하여 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뚫었다.

어느새 에이린의 심장 위에 올린 캣니스의 팔이 검은 문양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마족화의 전조였다.


“자매님!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손을 떼지 않으면 당신도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예요!”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마지막 경고를 했다.

신성력을 끌어올려서 그녀가 무사히 나올 수 있는 길을 유지했다.


“셀레브리디의 자매님! 이만 포기하고 제발···!”

“저는! 에이린님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요!”


당장 포기하라는 부탁에, 캣니스는 굳센 의지가 담긴 말로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 두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빛났다.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말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듯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성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자매님 불가능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요!”


살리냐, 죽느냐. 양측 모두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던 와중이었다.

갑작스레 빛이 어둠을 가로지르더니. 사제의 두 눈을 멀게 하였다.


“크읏. 이건 대체···?”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팔을 들어서 눈 앞을 가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흐릿하지만 녹색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는 여전히 당신이 미워요. 그러니까 용서를 구할 거면 절대로 이런 방법 쓰지 마세요.”


슬픈 목소리를 들으며 시야가 회복되었다.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마주한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신이시여···.”


평생을 신에게 바친 일생이었다.

그동안에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적을 목격했다.

흉흉했던 마기가 말끔히 지워졌다. 성역의 하늘에는 찬란한 금빛 별이 쏟아졌다.

그 기적 한가운데에 있는 건 붉은 머리 여인.

마족화의 문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프로텐시아시여···.”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두 손을 모았다.

기적을 마주한 기쁨이 가슴을 채웠다.

더 자세히 기적을 맞이하기 위하여 숲의 요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이린 님의 상태를 봐주세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나무 그늘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금빛 별을 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레 에이린에게 다가가서 손목 맥을 짚었다.

더 이상 에이린에게서 신성력에 반발하는 힘은 없었다.

이미 문양 단계까지 다다른 마족화가 치유되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말도 안 됩니다. 자매님. 당신은 어떻게 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겁니까?”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경탄했다. 그녀가 불러온 기적을 칭송했다.

말과 감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자매님? 자매님은 지금 어디에···?”


사라진 여사제의 얼굴을 찾았다.

그의 시선이 숲의 그늘진 부분을 향한 그때였다.

이윽고 사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사제는 더 이상 기적을 찬양하지 않았다.


“셀레브리디의 자매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여전히 걷히지 않는 어둠 너머를, 충격받은 기색이 다분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어둠이 있는 장소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밝은 빛으로도 밝히지 못하는 어둠 속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당신은 무슨 수로. 아니. 그 이전에 제정신입니까···?”


숲의 그늘진 위치에서 캣니스가 서 있었다.

얼굴과 온몸에는 마족화의 문양이 새겨진 채로, 온 몸에서 흉측한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자매님. 정말로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습니까?”


대답은 몇 번의 숨을 고루 쉰 뒤에야 들려왔다.


“괜찮아요. 저는 죽지 않으니까요···.”


그리 말한 그녀는 지쳐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일도 힘들어 보였다.

이내 기우뚱 몸이 기울어졌을 때는,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더 놀라서 움찔 몸을 떨었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캣니스는 영문 모를 혼잣말로 ‘생각보다 빠르네.’라며 중얼거렸다.

그 뒤에는 비틀비틀 몸을 가누어 숲의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충격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타인을 위해 마족화를 감수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신성력이 충만한 사제의 몸은 일반인보다 수십 배의 고통을 받는다고들 한다.

그런 상태에서 타인부터 걱정하다니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었다.


“일단 쫓아야 한다···.”


프로텐시아의 사제는 발밑에 생긴 오염을 바라봤다.

오염된 몸으로 성역을 돌아다닌다.

이는 당장 무력을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중대 사항이었다.

그런데 사제는 어쩐지 성기사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흔적의 끝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확인해야 한다.”


몇 번이고 제 직감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발자취를 따라갔다.


“아···.”


그리고 마주했다.

프로텐이사의 사제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여신의 안배라고 불리는 성수로 가득 찬 호수.

그 한가운데서 셀레브리디의 사제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부디 모두에게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세요···.”


한겨울의 물속에 들어갔음에도 기도하는 모습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토록 흉흉했던 사악한 기운이 서서히 기세를 줄여갔다.


“신이시여···.”


사제복이 젖어서 캣니스의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조금의 여색도 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라고 여기어지는 모습.

마치 신의 재림을 보는 듯한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신이시여···.”


호수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났다.

물안개가 빛을 머금고 사방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사제는 신성력이 충만한 광경 앞에서 조용히 두 무릎을 꿇었다.


“아 프로텐시아의 자매 교단이시여···.”


여신의 이름을 불렀다.

사제는 두 손을 단단히 깍지 끼고 기도하였다.

두 사제와 성기사다 돌아오고,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까지.

단단히 깍지 낀 두 손이 풀리는 일은 없었다.



*****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세요···


“후냥?!”


루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귀를 벅벅 문지르며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녀를 놀라게 한 주체는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온몸에 피범벅이 된 기사와 용병들. 묘한 표정의 대머리뿐이었다.


“무슨 일인가 루나여?”

“방금 무슨 소리 듣지 않았을까냥?”

“흐음? 자네도인가? 나도 방금 환청을 들은 듯하였네.”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오묘해졌다.

혹시 환각을 다루는 마물이 있나 둘러보다가, 주위를 다 정리한 것을 깨닫고 더욱 의아해했다.


“그나저나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군.”

“그야 싸울 수 있는 모든 전력이 나왔으니까다냥.”


가람왕국 국왕이 일급 전투 태세를 지시한 후, 많은 인원이 목숨을 걸고 몬스터 파도에 맞섰다.

몬스터 파도와 아무것도 모른 채 마주친다면 커다란 위협이 되었겠지만,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뒤였기에 무난하게 상대하였다.


“뭐. 그것도 브레드 공과 루나 같은 괴물이나 가능한 일 아닙니까.”


막 오크의 머리를 두 동강 낸 너구리 수인이 배틀 엑스를 내려놓았다.

그 우스갯소리를 들은 브레드는 크게 웃으며 목 근육을 풀었다.


“아무리 나라도 이번 일은 몸풀기 이상으로 힘들었다네. 라군이여.”

“허허. 누구는 목숨 걸고 싸우는데. 누구는 몸풀기와 견주고 있으니 할 말이 없군요.”

“두 사람 모두 잡담은 그만이다냥. 더 큰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냐.”

“더 큰 파도라···. 하지만 별로 걱정되지 않는군. 이번에도 왠지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네.”

“그건 금 등급 모험가의 감입니까?”

“근육의 신의 계시라고 하지.”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과 다르게 진지하게 싸울 준비를 하였다.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몸을 움직였다.

수많은 발톱. 수많은 이빨. 악의로 다가오는 수많은 마물의 포식 본능.


“이번에도 지켜보세.”


이에 질세라 다들 무기를 들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시험기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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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87화 동향과의 재회 23.07.24 28 0 21쪽
98 86화 동향과의 재회 23.07.20 28 0 14쪽
97 85화 동향과의 재회 23.07.19 25 0 17쪽
96 84화 동향과의 재회 23.07.18 29 0 16쪽
95 83화 동향과의 재회 23.07.17 29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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