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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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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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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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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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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불신

DUMMY

102화 <불신>



대대적인 국가 교모의 선별작업이 이뤄졌다.

이카루스를 중심으로 모인 모험가와 기사들은 도플갱어 차출 작업을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처리한 도플갱어 수는 열셋.

총인구수의 반을 조사한 것치고 적어 보이지만, 그 수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셀레브리디의 사제입니다. 축성을 내리려는데, 손을 내밀어주시겠어요?”

“오, 사제님의 앞날이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늙은이 집까지 축성을 내려주러 오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모험가들은 이카루스가 알려준 방식으로 도플갱어를 찾아냈다.

사제의 축성을 핑계로 비밀리에 도플갱어 색출을 도왔다.


“쿨럭. 하지만 이 늙은이가 감기에 걸려서, 사제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아무래도 전부 발로 뛰다 보니 진척도가 상당히 늦었다.

그래도 날짜가 지날수록 착실히 진전이 있었다.

A 구역은 모두 색출해냈고 남은 건 일곱 개의 구역이었다.


“문지기님. 부탁드릴게요.”

“응, 알겠어.”


가더에게 주변 경계를 부탁하고 노인의 팔을 잡았다.

그런데 노인은 팔을 붙잡히자마자 숨겨둔 손을 휘둘렀다.


“기기기긱!”


조금 전까지 선해 보이던 노인은 도플갱어였다.

신성력을 주입하자마자 노인의 육체와 반발이 있었다.

도플갱어의 수법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복제한 이의 기억을 토대로 행동하여, 한 끗 방심하면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도플갱어의 다행인 점은 베낀 대상의 기억으로만 행동한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마물로 오해받을 일이 거의 없기에, 도플갱어는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는 법을 모른다.


“이렇게 또 하나를 찾았네요.”


신성력에 몸부림친 도플갱어는 정체를 숨기기를 포기했다.

얼굴이 밋밋한 달걀 겉껍질처럼 변하였다.

오른손에는 부엌칼이 들려있었다.

맨 처음 팔을 휘둘렀을 때, 손바닥 피부 안쪽에서 꺼낸 칼이었다.


“이걸로 열넷.”


캣니스는 뺨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목이 꺾인 사체를 누이고 집안을 수색했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집 안의 지하실이다.


“네, 캣니스 센츄어리예요. B 구역 주택가에 도플갱어 한 마리를 처치했어요. 네. 네. 카피 대상자는 지하실에서 사상자로 확인 끝났어요.”


보고가 끝나고 통신석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주위에 널린 게 무기라서 그런지 도플갱어의 수단은 야생보다 극단적이었다.

복사할 대상을 죽이고 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굳이 상대방을 죽이지 않아도 나타나던 개체가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 속에 숨어 있었다.


“부디 무사히 여신님의 품으로 도착하기를.”


백골화가 진행된 노인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구더기 같은 것들을 모두 정화했다.

이제 연락을 받고 온 기사단이 와서 시신을 이송할 것이다.

할 일이 끝나자 지하실을 나왔다.


“어이, 캣니스. 생각보다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아?”


다른 조를 따라갔던 자일리가 돌아왔다.

캣니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 지었다.

그러나 행동과 다르게 마음으로는 깊은 걱정을 품고 있었다.


“···다른 조들이 무사히 선별을 끝내면 좋겠네요.”


시선은 여전히 지하실을 향한 채 한 말이었다.

그들은 집 안에서 벗어나 다음 집으로 향했다.


“계세요?”


겨울인데도 햇빛이 화창하다.

여느 때와 같은 거리의 삶들, 안전한 도시의 내부, 함께 생사를 같이한 동료들.

모든 게 평소와 같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이 모든 걸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판단과 이성뿐.

그것마저도 과신하면 안 되는 게 현 상황이었다.


“이거. 우리가 다 돌면 끝나기는 하는 거지?”


계속 도시를 돌아다녔다.

아직 도시에 남은 불안 요소는 한참 남았다.

가람 왕국, 모험가 길드, 기사단에 침입한 도플갱어, 백골화가 진행된 시신.

착실히 일이 진행되면서도 고개 내미는 불안감에서 고개 돌렸다.

이제 그녀는 겨우 진실에 반 다다랐을 뿐이다.

이 도시를 구제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었다.

다른 걱정을 하기에는 구해야 할 생명이 많았다.



*****



B 구역과 먼 C 구역.

이곳에서도 선별작업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

두 모험가와 한 사제가 거리의 집을 돌아다녔다.


“뭐야 벌써 반이야? 이대로라면 금방 끝나겠는데?”


한 집 안에서 너구리 수인이 양손을 털었다.

격투가이자 레인저인 모험가.

두 가지 직업을 겸업하는 금 등급 모험가 라나였다.


“아저씨. 시체는 찾았어?”


라나는 방금 프로텐시아 사제와 협업하여 도플갱어를 처리했다.

평범한 부인으로 보였던 여성이 목이 뒤틀린 채 널브러졌다.

죽은 여성의 앞에는 조금 전까지 점심 식사하던 남편이 무릎 꿇고 있었다.

얼굴에는 타인이 보기에도 처참한 감정이 깃들었다.


“라, 라나야. 이게 무슨 짓이야···? 왜 갑자기 내 아내를···.”


라나는 귀를 후벼팠다.

그녀는 지독한 약자 멸시를 지니고 있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된다.

이건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익히 떠도는 말로, 야생에서만 존재하는 법칙이 아니었다.


“이봐요 삼촌. 이게 아직도 당신 아내로 보여?”


그렇다고는 해도 민간인을 상대로 손속이 과했다.

라나는 남편의 몸을 걷어차고 시신을 빼앗았다.


“이거 봐. 똑바로 보라고. 이게 네 아내의 얼굴이야?”

“히익!”


시신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올려서 얼굴을 확인시켰다.

시신에는 눈코입이 없었다.


“얼굴! 얼굴이!”

“기겁할 거면서 괜히 사람 성질 건들고 있어.”


죽은 몸을 내려두고 손 털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에 대한 한심함과 답답함으로 한숨을 쉬었다.

의자에 걸터앉아서 집 안 가구를 곁눈질했다.

한 탁자 위에 놓인 그림 액자가 있었다.

그건 라나도 잘 알고 있는 그림이었다.

아이가 없는 부부가 소중히 여긴, 언젠가 어린 라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기분 엿같게.”


예전부터 라나에게 잘 대해줬던 부부다.

남편의 앞에서 부인과 똑같은 얼굴의 괴물을 죽이는 일이 달가울 리 없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가 바뀐 지도 모르고 있어?”


그 와중에 상황도 모르는 남편이 빽빽 소리 질러서 화났다.

좋은 일을 하는데 나쁜 사람 취급하니 기분이 상했다.

물론 이 행위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화풀이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후우. 이러다 정말 미칠 거 같네···. 때려서 미안해요 삼촌.”


병 주고 약 주는 행위일지라도 잘못을 인정했다.

라나는 심란한 기분을 느끼며 뒷머리를 긁었다.


“많이 다쳤으면 말해요. 보상해드릴게.”


하지만 필요 이상 굽신거리지는 않았다.

약자 도태의 개념은 모험가가 된 그녀 안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걸 왜 도와주고 있어요?”


그런 냉혈한 그녀와 다르게, 브레드 머슬릿은 성실했다.

질질 짜는 남자를 굳이 위로해주고 앉았다.


“찾던 거나 마저 찾을 것이지. 이게 그 소문의 브레드 머슬릿이라니. 믿기지 않네요, 정말.”


오크를 고기 반죽으로 만들어 아령에 매달고, 수많은 여자를 울린 희대의 악당.

이를 저지하려던 기사단장까지 희롱한 전적이 있는 악명 높은 금 등급 모험가.

그런 소문을 가진 브레드가 이렇게 여린 심정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게 그토록 동경하던 모험가라니, 라나는 한심해했고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소문과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어요?”


물론 라나의 생각은 소문으로만 이뤄진 상상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소문 대부분이 틀렸다.

실제로 그 소문이 많이 와전되었다는 걸 현시점의 라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아저씨도 그만 울고. 뭐라도 좀 말해봐요.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을 거 아니야.”


아직도 눈물 흘리는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슬슬 또 짜증이 올라오자, 이를 눈치챈 브레드가 먼저 고개 저었다.


“진정하게. 아직 자네의 부인이 무사한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니 말이네. 혹시 함께 생활하면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나?”

“훌쩍. 이상한 낌새요? 아니요.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아? 아니네요. 며칠 전부터 저에게만 들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생각나는 게 없다던 남자는 금방 의심스러운 부분을 떠올렸다.


“무슨 소리였는가?”

“아내가 아무 소리 못 들었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는데, 간혹가다 집안에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쿵. 쿵.

때마침 천장이 울렸다.

소리가 들리는 시기가 좋았다.

브레드와 라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귀를 기울이니 새나 쥐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 같기도 했다.


“확인해 보지.”


브레드는 곧바로 일어섰다.

집 안에서 천장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찾아냈다.


“용케 타이밍 좋게 소리가 들렸네요. 용케 저 찌질이에게서 이야기도 얻었고요.”


우뚝, 사다리를 펼치던 브레드의 움직임이 그쳤다.

그는 천천히 라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받은 라나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시선을 준 이유를 알았다.


“왜요?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지금껏 같이 살던 게 몬스터였다는 걸 알았으면 우선 아내부터 찾아야지, 자리에 주저앉아서 질질 짜는 저 모습이 한심하지 않아요?”

“라나여. 그대는 모험가라는 일을 착각하고 있군. 정말 모험가라면 하지 못할 말을 하고 있어.”

“하! 착각? 제가요? 설마요 제가 누구보다 모험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걸요.”

“그렇지 않네. 모험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테니.”

“잘 이해하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보다 아저씨. 언제까지 잔소리하시게요?”


라나는 턱짓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그 행위가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브레드는 짧게 숨을 내쉬고 사다리를 올라갔다.

천장 밑에는 아주 좁은 다락방이 있었다.


“소리의 정체를 알 거 같군.”


꽤 거대한 크기의 궤짝이 있었다.

궤짝 문을 열자 미약한 지린내가 났다.


“오. 안녕, 이모? 오랜만에 보네?”


라나가 궤짝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궤짝 안에는 도플갱어가 변장했던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래. 아주 무서웠지? 안심해 모험가 라나가 구해주러 왔으니까.”


손과 발 그리고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부인은 꽤 오랜 시간 감금되어 있었는지 제 다리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잡아, 이모. 아. 그럴 힘도 없으려나?”


라나의 눈빛에 동정심이 가득했다.

부인을 품에 안고 사다리로 향했다.

쿵, 사다리도 타지 않고 곧바로 뛰어내렸다.


“삼촌. 이모는 무사해요··· 느왓!”


얼굴을 보자마자 남편이 달려왔다.

라나랑 통째로 부인을 껴안았다.

눈물겨운 상봉을 겪는 그의 얼굴에, 라나는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제님.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확인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라나 씨.”


두 사람과 동행한 사제가 부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경계하는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어, 음. 죄송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사항인지라···.”

“아이고 이 양반아. 나 아닌 줄 모르고 살다가 칼빵 맞았을지도 모를 거면서! 어딜 함부로 사제님에게 행동하고 있어!”


남편이 거리를 주지 않자, 그의 부인이 찰싹찰싹 등살을 때렸다.

길을 내주지 않는 남편을 멀리 쫓아냈다.


“미안해요. 남편이 조금 궁상맞은 부분이 있어요.”


그제야 사제가 다가가는 걸 허락했다.

몸이 좋지 않은 부인에게 신성력을 주입했다.

쇠약했던 부인의 몸에 생기가 감돌았다.


“네. 사람이 맞습니다. 기력이 조금 쇠하였으니 건강 잘 챙겨야겠네요.”

“어유 고맙습니다, 사제님. 정말로 사제님 아니었으면 너무 억울해서 눈을 못 감을뻔했어요.”

“이 모든 게 프로텐시아 님의 은총이죠. 우리는 마물 사냥에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이번 작업을 끝으로 오늘치 할당량이 끝났다.

그들이 맡은 C 구역 선별작업은 반쯤 완료되었다.


“아, 조금 어지럽네요···.”


그런데 오늘 무리해서 힘을 쓴 걸까.

프로텐시아의 사제가 중심을 잃었다.


“사제님!”


이마를 짚으며 넘어지려는 몸을 라나가 붙잡았다.


“어?”


파직-

그 순간 불똥이 튀었다.

조금 전까지 어지러움을 호소하던 사제는 라나의 팔을 뿌리쳤다.

엉거주춤 거리를 벌리다가 엉덩방아 찧었다.


“뭐, 뭐죠? 라나 씨가 대체 언제부터?!”


사제가 겁에 질린 채 말했다.

서로 당황한 눈빛이 허공에 마주쳤다.


“여보 이리 와!”

“사제여 멀어지게!”

“잠깐만. 다들 왜 이래? 지금 이게 무슨 일인데?”


라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같은 행동을 취했다.

라나만이 본인에게 일어난 일을 당혹스러워했다.

라나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요구하였는데, 몇 번이고 같은 현상을 봐 온 동료들은 얼굴을 굳혔다.


“신성력의 반발.”


사제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대로 사제의 신성력과 충돌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사제의 힘이 이렇게 되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라나여. 아무래도 우리에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은가?”


느긋하게 있던 브레드가 몸을 일으켰다.

우연히 사제가 드러낸 진실을 요구하였다.


“그대는 도플갱어인가?”


이 순간 그녀는 한때 브레드를 깔봤던 평가를 수정했다.

정 많고 심약해 보였던 모험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금 등급 모험가 랭킹 일 위의 남자이며, 기사단장조차 갖고 논 소문의 주인공다운 투기였다.

평소의 라나였다면 한 판 붙어보자고 나섰겠지만, 지금은 다른 행동을 취했다.


“잠깐만! 이상하잖아. 내가 도플갱어라면 왜 같은 종족을 죽였겠어?”


변명하는 모습은 꽤 필사적으로 보였다.

벼랑 끝에 내몰려서 하는 변명도 그럴듯했다.

라군을 닮은 눈매가 브레드의 감정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어, 어쩐지. 옛날 라나와 행동과 말투도 다르고, 내 아내를 죽일 때 망설임도 없더니···.”

“내, 내가 그랬다고?”


상황에 불리한 발언을 막으려는 걸까.

그녀는 남자의 말을 듣기 무섭게 목소리를 키웠다.

자신은 아니라고.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그래. 뭔가 이상한 게 씌었던 거라는. 논리에 맞지 않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아아!”


그때였다.

줄곧 파들파들 떨며 서 있던 사제가 소리 질렀다.


“괴물이야!”


괴물과 함께 지냈다는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방금 그녀가 자신을 노려봐서일까.

사제가 울먹이면서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괴물이에요!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이 망할 사제가! 지금 어디를 가려는 거야?!”


당연히 사제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가 팔을 뻗었다.

모험가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사제 모욕 발언과 함께였다.

그런데 브레드는 그녀가 허리춤에서 날붙이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굳이 날붙이를 꺼내든 의도는 분명했다.


“꺄아아아악!”


쾅-

집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거리의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둘 모였다.

흙먼지가 자욱한 곳에는 피 떡칠이 된 라나가 쓰러져있었다.


“아이 씨. 염병···. 이딴 게 나랑 같은 등급이라니 말이 되냐고.”

“사제를 해하려 하다니, 높은 등급의 모험가라고 생각되지 않는 성급함이군.”


벽이 무너진 집안에서 브레드가 걸어 나왔다.

거리에 쓰러졌던 그녀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퉤, 피를 뱉고 입술을 스윽 닦았다.

조금 전 꺼내든 날붙이를 내동댕이치고 흉흉하게 눈을 빛냈다.


“싸우려는 건가? 감히 충고하네만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그대가 내가 아는 라나라는 사실이 믿기 힘든 상황이니.”

“하. 도플갱어가 도플갱어를 죽이겠냐고! 이 멍청한 아저씨야!”

“이미 나는 동료의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도플갱어를 보았네. 언제 둔갑한 건지 모르네만, 기사단 건물까지 얌전히 따라오게.”


브레드와 그녀는 서로를 마주 봤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신을 몰두한 브레드와 다르게 상대는 주위를 산만하게 살폈다.


“도와주세요! 괴물이! 괴물이 둔갑했어요!”

“저 머저리가···.”


살기 위해 도망친 사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비밀 작전을 다 폭로하며 지원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하나둘 사제의 요청을 따라 모이기 시작했다.

자세한 사정도 몰랐던 사람들도 도시 상황이 흉흉함을 알기에, 사제를 겁박한 이를 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나. 아니라고! 정말 미치겠네! 내가 도플갱어라면 어떻게 도플갱어를 죽이겠냐고!”

“할 말이 다 떨어졌나 보군. 이미 통하지 않은 논리만 계속하는 걸 보니.”

“아니. 나는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두 눈 똑똑히 뜨고 잘 봐봐. 나는 정말로 사람···”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작스레 성난 군중이 끼어들었다.

사각에서 찔러 들어온 작살에 옆구리가 찢겨나갔다.


“윽! 아저씨. 이게 지금 무슨···”

“머, 먹혔어! 저건 가짜다! 우리 라나는 무려 금 등급 모험가라고!”

“아니 잠깐만. 이건···!”

“악랄한 것! 제 동료를 팔아먹으면서까지 제 목숨을 부지하고 싶더냐?!”


때로는 믿고 싶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인 경우가 있다.

무려 금 등급 모험가가 평범한 배불뚝이 상인의 습격을 허용할 리 없었다


“자, 잠깐만 다시 확인해봐! 자! 내 손을 잡아! 정말로 내가 도플갱어인지 다시 확인해 보라고!”


성난 군중에 둘러싸인 그녀가 소리쳤다.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꺄악!”


그러나 그 발버둥은 소용없었다.

사제와 다시 한번 손을 잡은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그건 어찌 보면 멍청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변명이 가능한 말로 신중하게 골랐어야 했다.


“하. 너 때문에 이런 샹···!”


그건 마지막 발악이었다.

사제의 머리카락을 잡은 그녀가 군중 속에 휩쓸렸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몽둥이를 들어서 못된 괴물을 두들겨 팼다.


“다들 잠깐만 기다리게.”


또다시 도시에 숨어든 도플갱어 하나를 잡는다.

정말 그렇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확신에 찬 사람들과 다르게 브레드는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다들 기다리라고 말했네!”


발로 땅을 구르면서 말하자,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기백에 밀려서 하나둘 뒤돌아봤다.


“이번 일은 나 브레드 머슬릿의 책임 아래에 있네! 함부로 움직이는 자는 나 브레드 머슬릿과 척을 치겠다는 뜻으로 알겠네!”


지금 도시에서 베르 길드의 명성을 모르는 자는 없다.

하나둘 물러서서 브레드의 판단을 기다렸다.


“라나여. 다시 한번 묻겠네. 만약 그대가 도플갱어라는 걸 시인한다면, 무사히 미궁에 풀어주겠다고 약조하지.”


라군을 닮은 눈동자를 봐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평소의 브레드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언성에도 불구하고 제 고집으로 그녀를 마주했다.


“하, X발. X까라 그래.”


그러나 상대는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찼다.

브레드의 두 눈에 안타까움이 담겼다.


“그렇군.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대는···”


거대한 손이 그녀에게 드리웠다.

그녀는 곧장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드디어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던 결과가 나오나 싶었다.


“아. 여기도 있었군요.”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브레드는 손을 멈췄다.

사람들 너머로 빠르게 시선을 옮겼다.


“역시나. 지금껏 해온 모든 일의 무의미함이 증명이 됐어요.”


베르 길드의 일원이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 밖에서 한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

캣니스의 손아귀에서 쉬지 않고 스파크가 튀었다.


“어, 어, 어, 어째서?”


그곳에는 두려움에 빠진 남자가 있었다.

그 옆에서는 부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 남편을 바라봤다.


“설마 당신?”

“아, 아니야! 나는 아니··· 끄아아악!”

“꺄아아악!”


부인의 남편이었던 남자는 단말마를 질렀다.

아주 끔찍한 고문이라도 받는 것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비명으로 얼룩진 유언을 남기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 앞에서 여사제가 손바닥을 털었다.


“자일리 님. 이걸로 몇 마리죠?”

“C 구역에서 발견한 것만 해도 다섯. 여기 정말 지독할 정도로 많네.”


사람들은 침묵했다.

브레드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코앞에서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부인은 혼절하기까지 하였다.


“설마 저 남자가 도플갱어였다는 건가?”


조금 전까지 제 부인의 죽음에 슬퍼하고, 제 부인을 찾아서 기뻐했던 남자였다.

그랬던 그가 사실은 도플갱어였다.

그 사실이 믿기 힘들지만 쓰러진 시체의 얼굴이 진실을 뒷받침해주었다.

생명을 잃은 얼굴이 밋밋하게 변해있다.

남자는 도플갱어였다.


“음. 이상하게 여기만 많네요. 아. 브레드 님? 여기에 계셨군요. 브레드 님이 이쪽 구역이었나 보네요.”


브레드를 발견한 캣니스가 화색이 되었다.

그러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거기 있는 도플갱어도 놓치면 안 돼요.”


이어지는 한 마디.

그 도플갱어도 놓치지 마라.

그 말을 들은 브레드는 제 밑에 깔린 라나의 손목을 잡았다.


“하. 씨.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밑에 깔린 라나의 표정이 이상했다.

제아무리 분장했어도 그렇지. 생물이 죽음을 앞둔 것치고 어울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

은근히 누군가를 비웃는 거 같기도 하였다.


“바인드.”


자일리의 마법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곳에서 한 여자의 손목을 묶었다.


“그랬군. 그랬던 거였나.”


브레드는 몸을 일으켰다.

손목을 단단히 묶은 이상, 라나를 붙잡아둘 필요가 없었다.


“뭐. 뭐예요 여러분? 다들 무섭게 왜 그러세요?”


사실상 상황은 끝났다.

완벽히 인간을 연기한 마물답게 끝까지 시치미 뗐다.

브레드의 기백에 밀려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한 번 더 매섭게 변했다.

또다시 몽둥이를 들려던 그들이었지만,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러분 진정해주세요. 아무래도 이건 살려서 데려가야 할 거 같으니까요.”


캣니스가 다가왔다.

뒤따라온 자일리가 한 번 더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의 밧줄이 한 번 더 튀어나와서 시치미 떼는 마물의 발목을 묶었다.


“괜찮으세요? 일어설 수 있어요?”


캣니스는 브레드에게 깔렸던 라나에게 손을 뻗었다.

라나는 지친 얼굴로 손을 잡았다.


“젠장. 내가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만큼 놈들이 치밀했다는 거니까요. 그러니 이용당한 저들을 용서해주실 거죠?”


자리에서 일어난 라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피떡이 된 얼굴로 인파를 보았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배가 찢긴 고통을 호소했다.


“그. 그 미안해 라나.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서···”

“너희들은 그렇다고 치고.”


흠칫, 살기를 느낀 사람들의 어깨가 떨렸다.

본능적으로 라나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저건 절대로 용서 못 해.”


복수를 예고한 라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 시선은 조금 전까지 사람들을 선동한 사제에게향했다.


“하하. 실수였어요. 실수였다고요. 살면서 여러분은 실수 한 번 안 하세요?”


제 잘못을 인정하지만, 끝까지 제 정체에 대해서는 부인하였다.

남자가 도플갱어인 건 줄 모르고. 실수로 라나를 지목했다는 변명을 뱉었다.

그러나 더 이상 가녀린 사제의 두려움에 빠진 모습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이 선동된다고 해도, 놓아줄 모험가는 이곳에 없었다.


“설마 사제의 모습으로 숨어들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요?”


터벅 터벅, 옮겨가는 발소리.

캣니스와 라나가 나란히 사제 앞에 섰다.


“라나 님. 이 개체는 특별하니 죽이면 안 돼요.”


한없이 차가운 표정과 끝없는 분노가 표출되는 표정.

두 온도 차를 견디지 못한 사제의 얼굴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마나를 담은 주먹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목에 핏대가 불거졌다.


“이 꽉 물어!”


이미 이 일을 몇 배로 갚아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주먹을 한 대 먹이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너 때문에 며칠을 고생하는 거야!”


분명 살려두라고 했는데 죽이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 상황.

그래도 몇 대 때리는 일쯤이야 캣니스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이번 글은 조금 늦었습니다... 분명 달력에는 빨간 날인데, 왜 주변에는 하라는 게 많은지 혼이 빠지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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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외전 인연의 시작8 23.08.09 18 0 17쪽
108 외전 인연의 시작7 23.08.07 22 0 21쪽
107 외전 인연의 시작6 23.08.03 23 1 13쪽
106 외전 인연의 시작5 23.08.02 25 1 12쪽
105 외전 인연의 시작4 23.08.01 20 1 13쪽
104 외전 인연의 시작3 23.07.31 18 1 15쪽
103 외전 인연의 시작2 23.07.29 19 0 17쪽
102 외전 인연의 시작1 23.07.28 2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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