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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연재수 :
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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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40
추천수 :
130
글자수 :
1,5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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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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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외전 인연의 시작9

DUMMY

외전 <인연의 시작9>



“보여준다는 게 여기까지냐! 용사라는 게 결국 이 정도였냐!”

“모몬! 게일!”


용사와 악마의 싸움 양상이 바뀌었다.

한계라는 허물을 벗었던 용사들이 수세에 몰렸다.

이미 몇 차례나 악마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소용없었다.

몇 번이고 무찔러도 악마는 부활했다.

이 일이 반복되자 아무리 용사라도 지쳐갔다.

다들 지쳐서 제자리에 서 있는 일조차 버거웠다.


“쉽다. 쉬워! 너희들의 운명을 집어삼키면 얼마나 강해질지 기대되는구나!”


악마가 시뻘건 눈동자를 붉게 빛냈다.

새까만 산발 머리 사이로 비릿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사악한 강자의 모습에 에이린은 다리를 떨었다.


“무리야. 저런 거 어떻게 이겨···.”


이 싸움에 승산은 없었다.

매직 미사일을 조준하는 손끝이 잘게 떨렸다.

이번에도 제 공격이 빗나가 피를 흘릴 동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전의를 상실하고 손을 내렸다.


“흐음? 진짜로 끝인 건가? 생각보다 더 별거 없었네.”


악마가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을 바라봤다.

멀쩡한 얼굴에서 입꼬리를 찢으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제를 놓치지 말 걸 그랬나? 너희들의 지금 꼴을 보면 상당히 기분 좋은 모습으로 울부짖었을 텐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용사들을 농락했다.

게일도, 에이린도, 모몬도, 분했지만 다시 싸울 힘이 없었다.


“그래도 제법 잘 싸웠어. 인간치고는 말이야.”


발목이 부러진 모몬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분한 얼굴을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특히 네가 거슬렸어 덩치.”


일순 즐거워하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순식간에 모몬의 몸에 발차기를 먹였다.

모몬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크헉!”

“모몬!”

“크하하하하. 좋아. 좋다고. 이게 승자의 기쁨이지.”


모몬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얻어맞은 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내 몸이 고꾸라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게!”


게일은 동료의 부상에 눈이 돌아갔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 공격도 악마의 손톱에 가로막혔다.


“게일 조심해!”


에이린이 외쳤지만 피할 수 없었다.

길게 뻗은 손톱이 게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급하게 남은 힘을 짜내어 손을 붙잡았다.

가까스로 손톱이 가슴에 더 파고들지 못하게 하였다.


“불행히 생각하지 마라. 너희들은 그 망할 사제에게 복수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까.”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강해지자 서서히 무릎이 꺾였다.

가슴 위로 덧댄 천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며 핏대를 세웠다,


“망할 사제라고···?”

“그래. 아주아주 고약한 년이었지. 그년 탓에 상처를 치료하는 데만 스무 명의 사람이 필요했거든.”


악마는 본인의 얼굴을 가리켰다.

두 눈동자에는 분노와 원망이 깊이 차 있었다.

악마가 말한 대상이 캣니스를 말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을 겨를없이 손에 힘이 들어갔다.


“크윽, 제길!”

“용사의 심장이라면! 지금까지 먹은 인간보다 더 값지겠지!”


두 사람의 힘겨루기로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치도 한계를 맞이했다.


“자, 그러면 이만 맛보게 해줘! 네가 내게 줄 힘을!”

“큿. 크읏. 크아아아악!”


천천히 살갗을 파고드는 손을 바라보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한계를 맞이한 몸으로 공격을 멈추기에는 무리였다.

이내 몸 안에 파고든 손이 심장을 찾아다녔다.

게일의 몸속을 한껏 헤집었다.


“아아아악!”


피를 뿜어내는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비명도 더 처절하게 길어졌다.

더 이상 그에게 희망 따윈 없던 그때였다.


“그만둬-!”


에이린이 동료의 비명을 견디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눈동자에 눈물이 잔뜩 고인 모습으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뭐야? 저거 제정신이야?”


성인 남성보다 못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그런 몸으로 스태프를 휘둘러봤자 맞아줄 리 없었다.

악마는 가소로운 발악에 코웃음 쳤다.

왼쪽 손가락 끝을 들어서 에이린에게 향했다.


“에이린. 도망쳐!”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동료의 행동을 만류하였다.

그의 처절한 외침이 동료를 구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죽어. 버러지.”


그러나 악마의 행동에 자비는 없었다.

이미 충분한 마력을 모아둔 그는 마법사의 마력을 원치 않았다.

순식간에 늘어나는 손톱이 에이린의 머리를 향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했던 값과 달랐다.


“어?”


악마는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본래라면 손톱이 머리를 꿰뚫었어야 했다.

마법사의 육체 능력으로는 피할 수조차 없어야 했다.

그런데 아주 간발의 차로 손톱이 비껴갔다.


“너. 너희들 무슨 짓을···!”


악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현 상황에서 궁지에 몰린 건 자신인 것처럼 입술 끝을 떨었다.

그런데 그가 당황한 순간에도 스태프는 그의 머리로 향했다.

퍽-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에이린의 뺨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크억. 큭. 으아아악!”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나가떨어진 악마는 발버둥을 쳤다.

머리를 얻어맞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굴렀다.

뭉개진 머리에서 검은 피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어째서. 어째서냐. 어째서 내 힘이···!”


몸을 꿈틀거리며 제대로 서지 못하는 악마.

지금까지의 싸움 양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게일 괜찮아?!”


그 틈에 에이린이 게일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게일은 마력을 사용하던 에이린의 손을 만류했다.


“에이린. 지금 해야 해.”


게일은 다친 몸을 움직였다.

지금이 기회라고 스스로 다그쳤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검을 들었다.

성검에 신력을 두르며 한 걸음 한 걸음 악마에게 다가갔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놈들에게···!”


잔뜩 일그러진 악마의 얼굴.

확실히 여태까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줄곧 여유롭던 태도가 사라졌다. 사람을 깔보던 눈빛이 변했다.

두려움에 빠져서 소리치는 악마 앞에 섰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히 검을 들었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망설임도 자비도 없었다.

하얀 궤적을 그리며 검을 내리꽂았다.

그들은 또 한 번 악마의 목을 잘랐다.

그러나 여태까지 발악한 악마답게 끝까지 끈질겼다.


“크아아악. 이놈들! 네놈들만큼은 절대로 용서 못 한다!”


순식간에 분리된 몸과 머리가 안개로 변하더니, 공중으로 솟구쳤다.

검은 안개 속에서 악마의 비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게일은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안개는 성검의 기운을 받고도 멀쩡했다.


“또다시. 또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니!”


그들은 깨달았다.

더 이상 악마에게 피해를 주는 건 불가능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목소리를 듣는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려 하고 있어.”


에이린이 말했다.

검은 안개가 서서히 모습을 지워나갔다.

그 모습을 허무하게 지켜봤다.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게일. 이대로 악마를 놓치는 거야?”


저 모습은 마지막 발악이었다. 악마가 가진 마지막 패였다.

지금이 놈을 해치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도,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반드시. 반드시 너희에게 치욕을 되돌려주겠다! 몇 년이 됐든 몇십 년이 됐든 반드시 힘을 모아서···”


저주를 듣는 얼굴이 굳었다.

에이린은 마법 스태프를 세게 쥐었다.

그러나 현재 저것에 피해를 줄 수단이 없음을 뼈저리게 인지했다.

무력한 현실에 절망하였다.


‘놓친다고? 저걸···?’


에이린은 아랫입술을 씹었다.

저 악마는 용사 세 명이 덤벼들어도 겨우 상대하는 적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먹어 치우는 수단을 터득한 악마였다.

그런 악마를 이곳에 놓쳤다가는 훗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해치워야 해.”

“에이린?”

“저놈을 그냥 보내서는 안 돼···!”


자욱한 안개를 노려봤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수 없었다.

놈은 이 자리에서, 더 힘을 키우기 전에 인연을 끊어야 했다.


“하지만 에이린. 우리는 놈을 공격할 방법이 없어.”


현실에 굴복한 게일이 괴로워하며 말했다.

성검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저 안개가 모든 공격에 면역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대로 보내기는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아니야. 해치울 수 있어! 해치워야만 해!”


그러나 에이린은 무력한 현실에 저항했다.

어떻게든 끝장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에이린 생각해. 정말로 방법이 없는 거야?!’


저 악마 때문에 게일이 다쳤고 모몬이 다쳤다.

단순히 다친 것뿐만 아니라 죽을 뻔했다.

지금도 모몬은 사경을 헤매는데, 절대로 동료를 상처입힌 악마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떠올려! 놈을 죽일 방법을!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차기 마탑주 후보였던 자신이다.

마탑에서 쌓아 올린 마법사의 정수를 모조리 쏟아부었다.

어떻게든 악마를 죽이기 위해 갖은 수를 떠올렸다.

수십 개의 마법을 연산하고 조합하고 전개하고 부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백 개의 마법을 개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은 찾아왔다.


“···이건?”


에이린은 본인의 변화에 놀랐다.

몸에 담긴 마력이 의지를 따라 요동쳤다.

이 순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만능함을 느꼈다.


“아이스 스피어.”


기적은 찾아왔다.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마법을 전개했다.

거대한 얼음송곳을 허공에 생성했다.

어떻게든 놈을 놓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고유 스킬.

기적을 믿지 않는 마법사가 이번만큼은 기적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굳이 이 스킬의 시험해보지 않아도 성능을 알 수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안개를 조준하고 스태프를 뻗었다.


“마법 필중의 영역.”


얼음송곳이 가공할만한 속력을 보이며 날아갔다.

성검도 가르지 못한 안개의 형체를 정확히 꿰뚫었다.


“크. 크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악마가 추락했다.

안개가 순식간에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형체를 이루었다.

가슴이 뻥 뚫린 악마는 피를 토해냈다.

악마는 바닥을 기며 소리쳤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냐···!”


마지막까지 오만한 말투였다.

불합리한 일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곳 누구도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부서진 얼음결정을 밟으며 다가섰다.


“부, 분명 한심한 인간 마법사였는데···!”


악마가 에이린을 흔한 마법사라고 여겼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고농도의 마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부에 느껴지는 마력에서 확실한 살기를 받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너 같은 인간들에게 이 내가···!”

“확실히. 나 혼자만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콰득-

얼음으로 변한 악마의 팔이 부서졌다.

에이린은 악마의 팔을 밟고도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같은 자들이 볼 수 없는 아주아주 고귀하신 분도, 네가 사라지기를 바란 모양이야.”


중상을 입었던 게일이 에이린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는 성검이 하얀빛을 내뿜었다.

두 사람은 악마 앞에 서서 내려다봤다.

겁에 질린 눈동자에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고마워 에이린. 네 덕분에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어.”


게일은 에이린의 수고에 감사했다.

모몬의 상처도 게일의 상처도 방금 회복된 마력으로 치유하였다.

비록 생명력을 끌어당기는 방법이지만, 당장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러면 이제 작별하자, 악마.”


게일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성검을 거꾸로 쥐었다.

더 지체할 것 없이 악마의 목에 내리꽂았다.

악마는 충격으로 입을 벌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어떤 소리도 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추한 모습만 남긴 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끝났어.”


용사들은 직감했다.

이번에야말로 끝이 났다.

몇 번이고 먼지가 되고 부활했던 악마지만. 더 이상 그와 관련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해냈어! 해냈다고 게일!”

“후우, 게일. 정말로 네 말대로 전부 잘됐군.”


중급 악마와의 전투는 그들의 승리로 끝났다.

부상에서 일어난 모몬이 지친 미소를 지었다.

게일은 모몬의 손을 맞잡았다.

어깨를 부딪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에이린. 결국 너도 한 발짝 나아갔구나. 새로운 힘을 개방한 소감은 어때?”

“응. 용사가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을 조금은 알 거 같아. 사제들이 그렇게 신을 부르짖는 이유도 이해가 가.”

“큭큭. 무신론자인 너까지 그렇게 말하다니. 어서 나도 그 사랑이란 걸 받아보고 싶군.”

“걱정하지 마 모몬. 금방 너도 알게 될 테니까.”


게일은 악마의 마석을 주웠다.

사용이 끝난 성검을 허리춤에 매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모몬의 망치를 들었다.

두 사람을 돌아보고 웃었다.


“자 그러면 이제 의뢰의 보상을 받으러 가볼까?”

“어서 가도록 하지.”


이제 의뢰 완료를 확인받는 일만 남았다.

생존자들을 구했으니 더 큰 활약을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

장비를 모두 챙겨서 커다란 공동을 벗어났다.


“와~ 고작 하루 지났는데 엄청 힘들어.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고기에다가 푹신푹신한 침대를 제공해주겠지?”


에이린이 돌아가서 여독을 풀 생각에 벌써 기뻐했다.

그러나 그 가슴 벅찬 기대를 모몬이 져버렸다.


“고기는 몰라도 잠자리는 제공해줄 거네. 하지만 너무 과한 기대는 품지 말게 에이린.”

“그, 그냥 한번 말해 본 거야. 나도 당연히 알고 있어! 사람들이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건.”


에이린이 주눅이 들자, 게일은 웃었다.

풀이 죽은 그녀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걱정 안 해도 돼 에이린. 마을은 몰라도 도시의 백작님이 확실한 대접을 해줄 거니까.”

“아! 맞아! 그 사람이 있었지! 후후. 마인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한 용사 일행! 납치당했다던 백작님의 자제도 이 안에 있으면 좋겠다.”


용사들은 웃었다.

힘든 일이 끝나니 행복한 일만 남았다.

드디어 잡일이나 하던 신세에서 용사의 명성에 남길만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 보상은 여느 때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자신들을 평가하는 시선들도 앞으로는 달라질 터였다.

의뢰에 대한 보상과 앞으로의 나날을 떠올리니,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경쾌했다.


“만약 우리가 뭐랑 조우 했냐고 물으면 사천왕 못지않은 악마를 만났다고 하자.”


말장난과 농담을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그들은 이 분위기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형체가 그들에게 달려들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윽! 뭐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에이린이 어떤 형체와 부딪쳤다.

에이린은 가슴의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붙잡았다.

본인의 손목보다 가느다란 촉감이 느껴졌다.

얼굴이 부은 남자아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꼬마. 어디서 갑자기 달려온···”


상당히 세게 부딪쳤는지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난데없이 부딪친 아이에게 의문을 표한 그때였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아이가 온몸을 비틀며 놓아달라고 소리쳤다.

그 모습에 에이린은 당황했다.

아이는 붙잡은 팔을 깨물고 할퀴고 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꼬마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들어.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완전히 겁에 질린 아이였기에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차근차근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하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아이는 진정하지 못했다.

결국 발버둥이 더 커지기 전에 마법을 사용하였다.

아이의 집념이 강한 탓인지 본래의 효과보다 현저히 낮은 성과를 보였다.

그래도 아이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죽일 거야··· 그, 그 아이가 나를 죽여···.”

“뭐라고?”

“나, 나, 나는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아이의 말에 에이린은 머리가 멍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이를 좀먹고 있었다.

다시 발작을 일으키자 한 번 더 마법을 사용했다.


“꼬마야 무슨 일인데? 차분히 말해 봐. 누나가 해결해 줄 테니 천천히 이야기를···”


게일과 모몬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닌지 긴장감을 높였다.

도망가려는 아이를 끝까지 붙들었다.

대체 겁에 질린 이유가 뭔지. 에이린이 자세히 물으려던 그때였다.


“아. 모몬 님. 게일 님. 무사하셨군요.”


발소리가 다가왔다.

동굴의 어둠에서 금발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캣니스?”


캣니스 센츄어리.

몇 달 전부터 용사들과 함께 모험한 셀레브리디 교단의 성직자.

분명 조금 전까지 용사들은 그녀와의 행복한 재회를 그리고 있었다.


“너 그 모습은···.”


그러나 지금은 캣니스의 등장을 반길 수 없었다.

에이린의 심장이 가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아이와 캣니스의 등장으로 생긴 불안감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아. 에이린 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역시 용사님들이시군요.”


목소리도 행동도 평소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한없이 맑은 얼굴 위로 붉은 물감이 덧칠해 있었다.

용사들이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그제야 캣니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요.”


신성력을 사용하더니 몸에 묻은 불순물을 지웠다.

한없이 깨끗하고 순진했던 성직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너. 너···”

“에이린 님. 팔 안 아프세요?”


에이린은 제 팔을 물어뜯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어떻게든 에이린. 아니, 캣니스에게서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 이번에도 제가 나서는 게 꺼려지면 에이린 님이 하셔도 돼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용사들은 형용하기 힘든 감정에 목이 막혔다.

특히 에이린은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무슨···.”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용사이기에 더더욱 답을 들어야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캣니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뚫고 목소리를 짜냈다.

그 물음에 캣니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야. 그 아이의 목숨을 거두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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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82화 동향과의 재회 23.07.12 31 0 14쪽
93 81화 동향과의 재회 23.07.10 37 0 13쪽
92 외전 마계의 끝자락에서 23.07.05 43 0 29쪽
91 80화 그의 비밀 23.07.03 41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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