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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리라이트 마이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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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20.05.11 14:16
최근연재일 :
2020.07.08 19:18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699
추천수 :
71
글자수 :
88,501

작성
20.06.08 23:08
조회
33
추천
8
글자
7쪽

1-4. 그믐달 결사 (2)

DUMMY

언뜻 누군가가 활짝 웃는 모습이 두 소녀 사이에 겹쳐 보인 것 같았다.


마치 꿈속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어렴풋하고 희미했지만 분명히 기억 저편에 깊이 잠든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세빈은 그를 생각하자 왼쪽 가슴 부근이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선명히 기억해내기엔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나버린 과거의 이야기.


하지만 지금까지도 간간히 꿈속에 나타나 자신을 향해 여린 팔을 뻗는 그의 얼굴은 마주볼 때마다 더없이 처연해졌다.



세빈은 불규칙적으로 쿵쿵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토록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뇌리에서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그 이름은 여전히 그녀를 짓누르는 거대한 바위와도 같았다.


더 이상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비통한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그 탓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곁을 쉬이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굳은 신뢰로 엮여있는 지안과 나연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지금껏 경험한 적 없었던, 아니 아주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느껴봤던 이상하고도 아련한 설렘이 굳게 닫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이 이상 추억을 더듬고 헤집다간 당장이라도 심장이 고장나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세빈은 세차게 고개를 흔든 뒤 양쪽 볼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짝 소리와 함께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은 세빈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의아해하는 지안과 나연을 번갈아보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짓기 위해 광대뼈를 한껏 끌어올렸다.



“아, 잠깐 졸음이 쏟아져서 그랬어. 보충수업 때 안 자려고 억지로 버텼더니 지금 후유증이 나타나나봐.”


“밥 먹는 도중에? 그건 희귀한 케이스네. 밥 먹다가 존다는 사람에 대해선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론 본 적 없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나중에 꼭 좀 연구하게 해주지 않을래? 이렇게 부탁할게.”


“아, 아냐. 진짜로 졸았던 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하단 얘기였어.”



세빈은 나연이 일순간 눈빛을 번뜩이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자신을 압박해오자 기겁하며 반대쪽으로 몸을 숙였다.


특종 취재에 차질이 빚어지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나연은 슬며시 수첩을 집어넣으며 순순히 물러섰다.


잠깐 동안 이어진 간만의 침묵은 나연의 돌발적인 행동과 함께 허망하게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럼 네 졸음을 싹 가시게 만들 깜짝 제안을 하나 하도록 할게. 세빈아, 부디 내 여름방학 프로젝트에 협력해줬으면 해. 이번엔 정말 진지하게 하는 얘기야.”


“또 그 얘기야? 세빈이는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



지안은 나연이 또다시 그 프로젝트에 대한 안건을 꺼내자 쟤는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연은 이번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듯 손을 뻗어 지안을 즉각 제지했다.



“말리지 말아줘. 이번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물러날게. 약속할 수 있어. 하지만 난 진심으로 세빈이 네가 우리 프로젝트에 합류해주길 원해. 물론 이렇게 간절히 부탁하는 것만으론 분명 네 마음이 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근데 말이야.”



돌연 분위기가 바뀐 나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손을 뒤집은 채로 검지를 뻗어 세빈을 가리켰다.



“세계 최고의 기자탐정을 꿈꾸고 있는 내가 단순히 부탁만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할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자, 지금부터 어째서 네가 우리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지, 그리고 왜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어.”



세빈은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나연의 표정을 보고 굳이 자신이 그녀의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도대체 나연이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지에 대해선 살짝 흥미가 있었지만 이대로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려들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안은 이젠 될 대로 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세빈아. 내가 괜한 짓을 했나봐. 나연이 쟨 저렇게 된 이상 백날 말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거든. 한번 스위치가 들어가면 끝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귀찮은 성격이라서 말이야. 저러다 좀 있으면 스스로 제 풀에 지칠 테니 그때까지만 어울려줬으면 해.”


“뭔가 굉장히 실례가 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이번엔 불문에 부치도록 하겠어. 지금은 세빈이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게 최우선이니까.”



나연은 지안의 얘기를 듣고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꿋꿋이 세빈을 쳐다봤다.


세빈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지안의 부탁도 있고 하니 쟤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일단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대화에 응했다.



“좋아. 일단 들어보긴 할게. 그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근거가 뭔지 궁금하니까.”


“고마워.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게. 첫 번째로 넌 저번에 내가 한 부탁을 딱 잘라 명시적으로 거절하진 않았지. 안 그래?”



지난번의 상황을 떠올린 세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그건 그저 대답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고 딱히 내가 네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건 아니잖아. 그 정돈 알 거라 생각하는데?”


“당연하지. 난 그저 사실관계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을 뿐이야. 나중에 딴소리하는 걸 미리 방지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니까.”



전혀 흔들림 없는 나연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살짝 짜증이 솟아오른 세빈은 팔짱을 낀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내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최종결정권은 내게 있는걸.”


“응. 알고 있어.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두 번째. 지안이가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넌 요즘 선일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이라던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듣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던데. 맞아?”



세빈은 이번에도 가만히 고개를 한 차례 숙여 긍정의 의미를 나타냈다.



“그래. 맞는 말이야.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어째서 그게 내가 네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이유가 된다는 거야?”


“그건 내가 지금부터 얘기할 어떤 사항과 관련이 있어. 동시에 그 세 번째 이유야말로 왜 네가 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지에 관한 대답을 겸하게 될 거야.”


작가의말

Tip) 세빈이 최근 선일시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습니다.


p.s. 두 편 연속 너무 짧아서 죄송합니다. 다음 편은 좀 더 길게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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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5. 심령사진 (1) +4 20.07.02 22 2 11쪽
18 1-4. 그믐달 결사 (6) +4 20.06.29 17 2 21쪽
17 1-4. 그믐달 결사 (5) +4 20.06.22 20 2 8쪽
16 1-4. 그믐달 결사 (4) +8 20.06.14 27 4 8쪽
15 1-4. 그믐달 결사 (3) +10 20.06.12 29 4 13쪽
» 1-4. 그믐달 결사 (2) +16 20.06.08 34 8 7쪽
13 1-4. 그믐달 결사 (1) +14 20.06.06 32 6 8쪽
12 1-3. 사자의 심장 (5) +14 20.06.04 33 7 16쪽
11 1-3. 사자의 심장 (4) +6 20.06.02 26 3 11쪽
10 1-3. 사자의 심장 (3) +4 20.05.31 27 2 9쪽
9 1-3. 사자의 심장 (2) +2 20.05.29 19 1 8쪽
8 1-3. 사자의 심장 (1) +4 20.05.27 27 3 8쪽
7 1-2. 흑과 은 (3) +8 20.05.24 28 2 11쪽
6 1-2. 흑과 은 (2) +6 20.05.22 30 2 9쪽
5 1-2. 흑과 은 (1) 20.05.19 31 1 9쪽
4 1-1. 녹슨 화원 (3) +2 20.05.16 35 2 10쪽
3 1-1. 녹슨 화원 (2) 20.05.14 51 1 8쪽
2 1-1. 녹슨 화원 (1) +16 20.05.12 63 4 10쪽
1 Prelude. 세빈 +10 20.05.11 126 1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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